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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여자세례명 3가지

피어나네 2023. 6. 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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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바울라, 올리바, 클로틸다, 총 3분 목록이에요.

 

6월 3일이 영명축일인 여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6월 3일 남자세례명 가롤로 르왕가, 갸비라 무소케, 다비노, 디오니시오, 라우렌시노, 루칠리아노, 루카 바아나바킨투, 리파르도, 모란도, 무가가 루보와, 무카사 키리와완부, 바오로, 브루노 세룬쿠우마, 아나톨리오 키리그과조, 아돌포 무카사 루디고, 아킬레오 키와누카, 안드레아 카치올리, 암브로시오 키부우카, 야고보 부자발야보, 요한 그란데, 음바가 투진데, 이사악, 제네시오, 체칠리오, 케빈, 클라우디오, 키지토, 페르젠시노, 히파시오, 총 29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6월 3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3가지

 

 

 

 

6월 3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바울라

  2. 올리바

  3. 클로틸다

 

6월 3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3가지

 

 

1. 바울라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3년 니코메디아

 

 

바울라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빠올라, 빠울라, 파올라, 파울라.

 

 

바울라 자료

성녀 바울라는 감옥에 갇힌 성 루킬리아누스(Lucillianus, 6월 3일)와 그와 함께 순교한 네 명의 소년 순교자들을 도와주었다. 그 이유로 체포된 그녀는 고문을 당하고 마침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보내져 참수되었다.

그녀와 다른 다섯 명의 순교자와의 연관은 후에 그녀는 성 루킬리아누스의 아내이며 다른 네 소년들의 어머니라는 이야기가 나온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올리바

 

  • 가톨릭 성인 이름
    Oliv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492년? 아나니

 

 

올리바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올리브.

 

 

올리바 자료

“로마 순교록”은 6월 3일 목록에서 성녀 올리바에 대해 이탈리아 중서부 라치오(Lazio) 지역의 유서 깊은 도시인 아나니의 동정녀였다고만 간단히 전해주고 있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아나니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당했지만,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동정녀로 살기 위해 수도원으로 피신해 일생을 거룩히 살다가 선종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클로틸다

 

  • 가톨릭 성인 이름
    Clotilde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왕비

  • 활동 연도와 지역
    474?-545년

 

 

클로틸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글로틸다, 글로틸드, 끌로틸다, 끌로틸디스, 클로틸드, 클로틸디스.

 

 

클로틸다 자료

성녀 클로틸다(Clotildis)는 부르고뉴(Burgundy) 공국의 왕 킬페리크 2세(Chilperic II)의 딸로서 474년경 오늘날 프랑스의 리옹(Lyon)에서 태어났다.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비신자인 남편으로부터 딸들에게 가톨릭 교육을 해도 좋다는 약속을 받고 이를 실천했다.

그러나 486년경 또는 493년에 킬페리크 2세가 왕국을 분할 통치하던 다른 형제인 공드보(Gondebaud)의 손에 암살당하고, 어머니마저 삼촌에 의해 우물에 던져져 익사 당하는 아픔을 겪은 성녀 클로틸다는 다른 자매인 크로나(Chrona)와 함께 왕국에서 추방당했다. 크로나는 제네바(Geneva)에서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 생활에 전념했다.

성녀 클로틸다는 493년 프랑크 왕국의 초대 국왕인 클로비스(Clovis I)의 청혼을 받았다. 공드보 왕은 이 결혼을 반기지 않았으나 정치적 이유로 마지못해 수락하였다. 클로비스 왕은 많은 부하를 대동하고 와서 그녀를 맞이한 후 수아송(Soissons)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 뒤로 성녀 클로틸다는 기회가 되는대로 남편을 그리스도교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했고, 랭스(Reims)의 주교인 성 레미기우스(Remigius, 1월 13일)도 힘껏 그녀를 도왔다. 그러던 그녀에게 첫 시련이 닥쳤다. 첫째 아들이 세례성사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클로비스 왕은 아들이 세례를 받은 탓으로 일찍 죽었다고 생각해 아내인 성녀 클로틸다를 원망했다. 그러나 혼인 전에 약속한 대로 다른 자녀들이 세례받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둘째 아들 역시 세례 후 중병에 걸렸지만,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그 후 태어난 두 아들과 딸 하나도 모두 건강하게 자랐다.

495년 게르만족의 하나인 알레마니족(Alemanni)이 쳐들어왔을 때, 클로비스 왕의 연합군은 전투에 패해 톨비악(Tolbiac)까지 퇴각했다. 군인들의 사기도 떨어지고 탈주병이 속출하는 가운데 클로비스 왕은 국가의 운명이 걸린 톨비악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자기 아내가 믿는 그리스도를 전 국민과 함께 섬기겠다고 기도하며 외쳤다.

성녀 클로틸다의 기도로 힘을 얻은 클로비스의 군대는 496년에 톨비악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무사히 돌아왔다. 왕의 승리와 개선을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맞이한 성녀 클로틸다는 랭스 성 레미기우스 주교와 함께 남편의 세례를 준비시켰고, 498년 또는 499년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성 레미기우스 주교가 클로비스 왕에게 세례성사를 주었다.

이로써 프랑크 왕국의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계기가 되었다. 성녀 클로틸다는 남편의 도움을 받아 파리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에게 봉헌한 거룩한 사도들의 성당(후에 성 제노베파 수도원 성당이 됨)을 비롯해 몇 개의 성당을 건립했다.

511년 클로비스 왕이 사망하자 성녀 클로틸다는 궁전을 떠나 투르(Tours)에 있는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수도원에 들어가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지냈다. 그런데 친척들 간에 권력 투쟁이 벌어져 자식들도 거기에 참여해 형제끼리 싸우는 일이 발생하자 그녀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졌다.

임종을 앞둔 그녀는 마침내 아들들의 화해를 보고 545년 6월 3일 투르의 성 마르티누스 주교의 무덤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유해는 남편이 묻힌 파리의 거룩한 사도들의 성당으로 운구되어 남편 곁에 안장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녀 클로틸다가 기도로써 남편인 클로비스 왕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인도했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여왕이 아니라 주님의 참된 종으로 살기 위해 성 마르티누스 수도원으로 들어가 살았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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