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세례명 날짜 찾기

7월 17일 여자세례명 9가지

피어나네 2023. 8. 16. 09:01
반응형

 

7월 17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도나타, 마르첼리나, 베스티나, 세쿤다, 야누아리아, 제네로사, 유스타, 루피나, 헤드비지스, 총 9분 목록이에요.

 

7월 17일이 영명축일인 여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7월 17일 남자세례명 나르잘레, 네르세스 람프로낫츠, 레오 4세, 레탄시오, 베투리오, 스페라토, 아칠리노, 알렉시오, 엔노디오, 제네로소, 치티노, 케넬름, 클레멘스, 테오도시오, 테오도타, 펠릭스, 히야친토, 총 17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7월 17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9가지

 

 

 

 

7월 17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도나타

  2. 마르첼리나

  3. 베스티나

  4. 세쿤다

  5. 야누아리아

  6. 제네로사

  7. 유스타

  8. 루피나

  9. 헤드비지스

 

7월 17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9가지

 

 

1. 도나타

 

  • 가톨릭 성인 이름
    Donat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0년 튀니지

 

 

도나타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나따.

 

 

도나타 자료

성 스페라투스(Speratus)와 그 동료 순교자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었으나, 실제로는 그의 아들 코모두스 황제의 명에 따라 순교하였다.

이 순교자들은 쉴리움, 곧 오늘날 북 아프리카의 튀니지 출신으로 스페라투스와 성 나르잘레(Narzales), 키티누스(Cythinus), 베투리우스(Veturius), 펠릭스(Felix), 아킬리누스(Acyllinus), 레탄티우스(Laetantius) 등 남자가 7명이고, 성녀 야누아리아(Januaria), 제네로사(Generosa), 베스티나(Vestina), 도나타, 세쿤다(Secunda) 등 여자가 5명이었다.

그들은 카르타고(Carthago)의 감옥으로 끌려가서 집정관 사투르니누스의 이교 신상에 대한 희생 제의를 끝내 거부하고 순교하였다. 이때 함께 순교한 스페라투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느님, 감사합니다.”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르첼리나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i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398년경

 

 

마르첼리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리나.

 

 

마르첼리나 자료

이탈리아 밀라노(Milano)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의 동생인 성녀 마르첼리나는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에서 태어났다.

그 후 가족과 함께 로마(Roma)로 가서 두 동생을 돌보아야 할 입장이 되었을 때 지극히 덕스런 말과 표양으로 좋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녀는 매사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처리하였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녀는 완전히 세속을 멀리하였다.

353년 주님 공현 축일 날, 그녀는 성 베드로(Petrus) 대성전에서 교황 리베리우스(Liberius)부터 수도복을 받았다. 이때 교황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는 길은 꾸준한 보속과 고행 그리고 교회에 대한 봉사와 사랑이라고 권고하니, 그녀는 그대로 실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성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주교로 있을 때 그녀는 수차례나 방문하여 영적담화를 나누었고, 주교의 사업들을 도왔다. 그녀는 매일 저녁은 먹지 않았고, 온 밤을 기도와 영적 독서 그리고 묵상으로 지샜다. 성 암브로시우스조차 그녀의 과도한 고행을 완화시키려고 애썼다. 그녀는 암브로시우스보다 더 오래 살았는데 정확한 연대는 모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베스티나

 

  • 가톨릭 성인 이름
    Vesti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0년 튀니지

 

 

베스티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스띠나.

 

 

베스티나 자료

성 스페라투스(Speratus)와 그 동료 순교자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었으나, 실제로는 그의 아들 코모두스 황제의 명에 따라 순교하였다.

이 순교자들은 쉴리움, 곧 오늘날 북 아프리카의 튀니지 출신으로 스페라투스와 성 나르잘레(Narzales), 키티누스(Cythinus), 베투리우스(Veturius), 펠릭스(Felix), 아킬리누스(Acyllinus), 레탄티우스(Laetantius) 등 남자가 7명이고, 성녀 야누아리아(Januaria), 제네로사(Generosa), 베스티나, 도나타(Donata), 세쿤다(Secunda) 등 여자가 5명이었다.

그들은 카르타고(Carthago)의 감옥으로 끌려가서 집정관 사투르니누스의 이교 신상에 대한 희생 제의를 끝내 거부하고 순교하였다. 이때 함께 순교한 스페라투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느님, 감사합니다.”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세쿤다

 

  • 가톨릭 성인 이름
    Secund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0년 튀니지

 

 

세쿤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군다, 세꾼다, 쎄꾼다.

 

 

세쿤다 자료

성 스페라투스(Speratus)와 그 동료 순교자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었으나, 실제로는 그의 아들 코모두스 황제의 명에 따라 순교하였다.

이 순교자들은 쉴리움, 곧 오늘날 북 아프리카의 튀니지 출신으로 스페라투스와 성 나르잘레(Narzales), 키티누스(Cythinus), 베투리우스(Veturius), 펠릭스(Felix), 아킬리누스(Acyllinus), 레탄티우스(Laetantius) 등 남자가 7명이고, 성녀 야누아리아(Januaria), 제네로사(Generosa), 베스티나(Vestina), 도나타(Donata), 세쿤다 등 여자가 5명이었다.

그들은 카르타고(Carthago)의 감옥으로 끌려가서 집정관 사투르니누스의 이교 신상에 대한 희생 제의를 끝내 거부하고 순교하였다. 이때 함께 순교한 스페라투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느님, 감사합니다.”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야누아리아

 

  • 가톨릭 성인 이름
    Januari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0년 튀니지

 

 

야누아리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자누아리아.

 

 

야누아리아 자료

성 스페라투스(Speratus)와 그 동료 순교자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었으나, 실제로는 그의 아들 코모두스 황제의 명에 따라 순교하였다.

이 순교자들은 쉴리움, 곧 오늘날 북 아프리카의 튀니지 출신으로 스페라투스와 성 나르잘레(Narzales), 키티누스(Cythinus), 베투리우스(Veturius), 펠릭스(Felix), 아킬리누스(Acyllinus), 레탄티우스(Laetantius) 등 남자가 7명이고, 성녀 야누아리아, 제네로사(Generosa), 베스티나(Vestina), 도나타(Donata), 세쿤다(Secunda) 등 여자가 5명이었다.

그들은 카르타고(Carthago)의 감옥으로 끌려가서 집정관 사투르니누스의 이교 신상에 대한 희생 제의를 끝내 거부하고 순교하였다. 이때 함께 순교한 스페라투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느님, 감사합니다.”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제네로사

 

  • 가톨릭 성인 이름
    Generos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0년 튀니지

 

 

제네로사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네로사, 게네로싸, 제네로싸.

 

 

제네로사 자료

성 스페라투스(Speratus)와 그 동료 순교자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었으나, 실제로는 그의 아들 코모두스 황제의 명에 따라 순교하였다.

이 순교자들은 쉴리움, 곧 오늘날 북 아프리카의 튀니지 출신으로 스페라투스와 성 나르잘레(Narzales), 키티누스(Cythinus), 베투리우스(Veturius), 펠릭스(Felix), 아킬리누스(Acyllinus), 레탄티우스(Laetantius) 등 남자가 7명이고, 성녀 야누아리아(Januaria), 제네로사, 베스티나(Vestina), 도나타(Donata), 세쿤다(Secunda) 등 여자가 5명이었다.

그들은 카르타고(Carthago)의 감옥으로 끌려가서 집정관 사투르니누스의 이교 신상에 대한 희생 제의를 끝내 거부하고 순교하였다. 이때 함께 순교한 스페라투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느님, 감사합니다.”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유스타

 

  • 가톨릭 성인 이름
    Just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7년경?

 

 

유스타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유스따.

 

 

유스타 자료

성녀 유스타와 성녀 루피나(Rufina)는 자매지간으로 에스파냐의 세비야(Sevilla)에서 가난하지만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성녀 유스타는 268년에, 성녀 루피나는 270년에 태어났다.

이들 자매의 집은 도자기와 그릇 등을 만들어 팔았는데, 우상숭배가 이뤄지는 이교도들의 축제에 사용할 그릇을 만들어달라는 요청과 판매를 과감히 거절하였다. 그러자 분노한 이교도들은 그들이 만든 도자기와 그릇 등을 모두 깨뜨리고 지방 관리에게 그들을 고발하였다.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된 성녀 유스타와 성녀 루피나는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고백했다. 그러자 세비야의 총독인 디오게니아누스(Diogenianus)는 불에 달군 쇠로 살을 지지고 물과 음식을 주지 않는 등 잔인한 고문을 자행하였다.

이로 인해 언니인 성녀 유스타는 감옥에서 먼저 숨을 거두었고 시신은 우물에 던져졌다. 성녀 루피나는 끝까지 신앙을 고백해 원형 경기장의 사자들에게 던져졌지만, 사자들마저 온순해지자 분노한 총독에 의해 목이 부러진 뒤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이들 자매의 유해는 지역 주교에 의해 수습되어 나란히 묻혔고, 세비야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았다. 그들은 또한 도자기 제작자(도예가)나 판매자의 수호성인이다. 이들 자매의 축일은 세비야에서 7월 17일에, 에스파냐의 다른 지역에서는 7월 19일에 기념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19일 목록에서 성녀 유스타와 성녀 루피나의 순교 행적을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17일 목록으로 옮겨 이들 자매의 순교 사실을 전해주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루피나

 

  • 가톨릭 성인 이름
    Rufi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7년경?

 

 

루피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루피나 자료

성녀 유스타(Justa)와 성녀 루피나는 자매지간으로 에스파냐의 세비야(Sevilla)에서 가난하지만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성녀 유스타는 268년에, 성녀 루피나는 270년에 태어났다.

이들 자매의 집은 도자기와 그릇 등을 만들어 팔았는데, 우상숭배가 이뤄지는 이교도들의 축제에 사용할 그릇을 만들어달라는 요청과 판매를 과감히 거절하였다. 그러자 분노한 이교도들은 그들이 만든 도자기와 그릇 등을 모두 깨뜨리고 지방 관리에게 그들을 고발하였다.

그리스도인으로 체포된 성녀 유스타와 성녀 루피나는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고백했다. 그러자 세비야의 총독인 디오게니아누스(Diogenianus)는 불에 달군 쇠로 살을 지지고 물과 음식을 주지 않는 등 잔인한 고문을 자행하였다.

이로 인해 언니인 성녀 유스타는 감옥에서 먼저 숨을 거두었고 시신은 우물에 던져졌다. 성녀 루피나는 끝까지 신앙을 고백해 원형 경기장의 사자들에게 던져졌지만, 사자들마저 온순해지자 분노한 총독에 의해 목이 부러진 뒤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이들 자매의 유해는 지역 주교에 의해 수습되어 나란히 묻혔고, 세비야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았다. 그들은 또한 도자기 제작자(도예가)나 판매자의 수호성인이다. 이들 자매의 축일은 세비야에서 7월 17일에, 에스파냐의 다른 지역에서는 7월 19일에 기념하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19일 목록에서 성녀 유스타와 성녀 루피나의 순교 행적을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17일 목록으로 옮겨 이들 자매의 순교 사실을 전해주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헤드비지스

 

  • 가톨릭 성인 이름
    Hedwig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여왕

  • 활동 연도와 지역
    1373/4-1399년 폴란드

 

 

헤드비지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야드비가, 헤드비가, 헤드비그, 헤드비제스, 헤드비히, 헤트비히.

 

 

헤드비지스 자료

폴란드 왕국의 첫 여왕이 된 성녀 헤드비지스(Hedwigis)는 헝가리와 폴란드 왕국의 러요시 1세(Lajos I, 또는 루드비크 1세[Ludwik I]) 왕과 보스니아(Bosnia)의 엘리자베타(Elizabeta) 왕비의 막내딸로 옛 헝가리 왕국의 수도인 부다(Buda)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아기 때인 1375년 오스트리아 왕국의 빌헬름(Wilhelm) 공작과 정략적 약혼을 하고 1378년부터 1380년까지 빈(Wien)에서 살았다. 1378년 그녀의 맏언니인 카타리나(Catharina)가 어린 나이에 사망한 후 러요시 1세는 자신의 후계자로 장차 성녀 헤드비지스와 그녀의 남편이 될 빌헬름을 생각했으나 폴란드의 귀족들은 러요시 왕의 둘째 딸인 마리아(Maria)와 그의 약혼자인 룩셈부르크(Luxemburg)의 지기스문트(Sigismund)를 지지했다.

1382년 러요시 1세 왕이 사망한 후 정치적 혼란 속에서 성녀 헤드비지스는 귀족과 왕실 의회의 뜻에 따라 빌헴름과의 약혼을 파기해야 했다. 그리고 1384년 10월 16일 아버지의 뒤를 이어 크라쿠프(Krakow)의 주교좌 대성당에서 즉위식을 올리고 폴란드 왕국의 여왕이 되었다.

성녀 헤드비지스는 여왕으로 등극하면서 빌헬름과의 결혼을 포기하고 오직 폴란드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자신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뜻임을 깨닫고 그에 순명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3살 무렵인 1386년 2월 15일 리투아니아(Lithuania)의 대공 야기엘로(Jagiello)와 정략결혼을 함으로써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간의 평화를 거의 400년 동안이나 지속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결혼 전까지도 이교도였던 야기엘로 대공은 성녀 헤드비지스와 결혼하면서 자신과 전 리투아니아 백성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겠다는 약속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실천했다. 그 후 리투아니아 왕국은 전 유럽에서 가진 신앙심 깊은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성녀 헤드비지스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봉헌하고자 노력했다. 폴란드뿐만 아니라 리투아니아의 복음화에도 큰 발자취를 남긴 그녀는 왕국 내의 가난한 이와 병자들을 위해 병원을 건립하고 구호와 자선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그리고 카시미르 대왕(Casimir III the Great)이 교황 우르바누스 5세(Urbanus V)의 허가를 받아 1364년 크라쿠프에 세운 대학교의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대왕의 조카 손녀인 성녀 헤드비지스와 남편 야기엘로의 노력으로 리투아니아의 복음화가 큰 열매를 맺자 기존의 법학, 의학, 문과 세 단과대학에 신학대학을 추가할 허가를 받았고, 죽기 전에는 모든 보석을 크라쿠프의 대학교에 남겨 남편 이름을 따라 야기엘론스키(Jagiellonski) 대학교로 불리게 되었다.

성녀 헤드비지스 여왕은 1399년 오랜 기다림 끝에 나은 딸이 사망한 후 며칠 뒤인 7월 17일 산후 열병으로 크라쿠프에서 선종했다. 그녀와 딸의 시신은 크라쿠프의 주교좌 대성당에 안치되었고, 그 후 그녀의 무덤은 폴란드 사람들이 즐겨 찾는 순례지가 되었다.

그녀는 1986년 8월 8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공적으로 시복이 승인되었고, 1997년 6월 8일 폴란드 크라쿠프(Krakow)의 블로니아 에스플라나데(Blonia Esplanade)에서 150만 명 이상의 신자들이 참례한 가운데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폴란드어로 야드비가(Jadwiga), 헝가리어로 헤드비그(Hedvig)로 부르는 성녀 헤드비지스의 전례 기념일(축일)은 폴란드에서는 선종일인 7월 17일에서 시성식이 거행된 6월 8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2월 28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그 외 세례명 날짜로 찾기

 

날짜순 천주교 세례명

어떤 세례명이 좋을까?

pieonane.com

 


 

그 외 세례명 이름으로 찾기

 

이름순 가톨릭 세례명

본받고 싶은 가톨릭 성인 찾기

pieonane.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