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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남자세례명 15가지

피어나네 2023. 2.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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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그레고리오 2세, 다티보, 라자로, 루치오, 베네딕토, 사투르니노, 세베리노, 아돌포, 암펠리오, 요나, 채드몬, 카스트렌시스, 칼로체로, 파스칼 1세, 펠릭스, 총 15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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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여자세례명 곱나타, 테오도라, 헬비사, 총 3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2월 1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5가지

 

 

 

 

2월 11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그레고리오 2세

  2. 다티보

  3. 라자로

  4. 루치오

  5. 베네딕토

  6. 사투르니노

  7. 세베리노

  8. 아돌포

  9. 암펠리오

  10. 요나

  11. 채드몬

  12. 카스트렌시스

  13. 칼로체로

  14. 파스칼 1세

  15. 펠릭스

 

2월 1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5가지

 

 

1. 그레고리오 2세

 

  • 가톨릭 성인 이름
    Gregory I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731년

 

 

그레고리오 2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그레고리오 2세 자료

669년 로마(Roma)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젊어서부터 교회 일에 종사하며 두각을 나타내 차부제 때 이미 교황청 재정을 관리했다. 성 세르기우스 1세(Sergius I, 9월 8일) 교황 때에는 도서관장직을 맡는 등 주요 직책을 맡아 그의 학덕과 지혜가 널리 알려졌다.

그 후 그는 710년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교황을 수행하여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에게 행한 그의 대답으로 더욱 유명해졌으며, 이때 그는 황제로 하여금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715년 5월 19일에 그는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그가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성직자들의 규율 정비와 이단 배척이었다. 그는 사라센의 침략을 대비하여 로마 주변에 성곽 복원사업을 시작하였고, 교회와 병원 그리고 몬테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을 포함하여 수많은 수도원의 재건사업을 펼쳤다.

또한 독일 지역에 ‘독일의 사도’로 불리는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6월 5일)를 파견해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를 주교로 서품하고 그의 선교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다.

이를 통해 황제가 교회에 간섭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등 교황권 확립에도 큰 공을 남겼다. 727년에는 로마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하였고, 레오 3세 황제의 지원을 받던 성화상 공경 금지를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다티보

 

  • 가톨릭 성인 이름
    Dativ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아비티나

 

 

다티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다띠보, 다띠부스, 다티부스.

 

 

다티보 자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북아프리카의 아비티나에서 어느 사제가 주일을 맞이하여 경건하게 미사를 봉헌하던 도중에 49명의 남녀 신도들이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사투르니누스 2세와 펠릭스, 마리아(Maria) 그리고 힐라리우스(Hilarius)란 자녀 넷을 둔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사제와 성 다티부스(또는 다티보), 성 암펠리우스(Ampelius) 그리고 다른 성 펠릭스(Felix)가 다른 많은 교우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 사투르니누스와 성 다티부스는 관리들에게 끌려가는 교우들의 맨 앞에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순교를 다짐하였다.

그들이 관리 앞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자 그 관리는 오히려 그들의 용기와 믿음을 칭송하였으나 집정관이 있는 카르타고(Carthago)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먼 길을 가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편과 노래를 부르며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집정관은 먼저 성 다티부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어디 숨었고 또 어떤 집회를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또 성 사투르니누스와 그 자녀들 역시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자 집정관은 나는 너희들의 코와 귀를 베겠다고 위협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천주께 감사” 라고 응답하였다. 이에 집정관은 위협만 하고 그들을 감옥에 넣어 옥사시켰다고 한다. 이런 옥사는 그 당시 관례에서는 보기 드문 처형 방법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라자로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50년경 밀라노

 

 

라자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라자로 자료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449년경에 밀라노의 주교가 되었다. 이 시기는 고트인들이 이탈리아를 점령하던 시기였으므로, 그는 수많은 고초를 겪었으나 지혜롭게 신자들을 사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2명의 밀라노 최고의 성인 반열에 든다. 특히 그는 예수 승천과 관련된 기도문을 처음으로 도입한 주교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루치오

 

  • 가톨릭 성인 이름
    Luc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50년 아드리아노플

 

 

루치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기오, 루치우스, 루키오, 루키우스.

 

 

루치오 자료

에우트로피우스(Eutropius)의 사후 성 루키우스(또는 루치오)는 그를 계승하여 마케도니아(Macedonia) 지방 아드리아노플의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반대한 이유로 그의 주교좌에서 쫓겨나 갈리아 지방으로 유배를 갔다. 그 후 로마(Roma)로 간 그는 그곳에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주교인 성 바오로(Paulus, 6월 7일)를 만났다.

그는 347년에 열린 사르디카(Sardica) 공의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후 교황 성 율리우스 1세(Julius I, 4월 12일)의 지지를 받으며 아드리아노플로 되돌아갔으나 아리우스파에 의해 재차 거절당했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감옥에서 사망하였다.

이때 여러 가톨릭 신자들이 그와 함께 체포되어 아리우스파 황제인 콘스탄티우스에 의해 참수되었다. 성 루키우스 주교의 친구인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는 그의 용기와 항구심을 높이 치하하면서 그의 덕을 기리는 글을 남겼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베네딕토

 

  • 가톨릭 성인 이름
    Benedic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747-821년 아니아네

 

 

베네딕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네데토, 베네딕도, 베네딕또, 베네딕뚜스, 베네딕투스, 베네딕트, 분도.

 

 

베네딕토 자료

프랑스 남부 마구엘론(Maguelone)의 백작이자 서고트족(Visigoth)의 귀족 아이굴프(Aigulf)의 아들로 태어난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페피누스 3세(Pepinus III)의 궁정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탈리아에 주둔했던 샤를마뉴(Charlemagne)의 군대에서 복무하다가 죽을 뻔한 경험을 한 774년경 수도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종으로서 일생을 봉사하며 살기로 결심하고 군대를 떠나 상센(Saint-Seine) 수도원에 입회했다.

동방의 수도생활을 동경했던 그는 780년경 아니아네로 이주해 동방의 수덕생활을 실천하는 수도원을 설립했다가, 782년경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을 다시 설립했다.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수도생활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며 각 수도원이 사용하던 여러 규칙서를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서와 비교 연구하여 임의 해석이 아닌 수도 규칙서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개혁의 출발점임을 확신했다.

샤를마뉴는 그에게 프랑크 왕국 내 수도원 개혁을 위임하였다. 그의 사후 왕위를 계승한 경건왕 루도비쿠스(Ludovicus) 역시 그에게 재차 수도원 개혁을 위임하였다. 경건왕 루도비쿠스 시절 성 베네딕투스는 코르넬리뮌스터(Cornelimnster) 수도원을 설립하고 개혁의 중심지로 삼았다.

그는 당시 사용되던 25개의 수도 규칙서를 모은 “수도 규칙서 전집”(Codex Regularum)과 그 규칙들을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서와 병행하며 주석한 “규칙서들의 대조”(Concordia Regularum)를 저술했다.

결국 아니아네의 성 베네딕투스는 수도원 연합의 수석원장이 되어 모든 수도자가 같은 수도 규칙서를 따르며 세상을 포기하고 구원에 다다르기를 희망했다.

루도비쿠스 왕은 816년과 817년 아헨 교회회의에서 성 베네딕투스의 수도원 개혁 의지를 담아 수도자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규칙인 “수도회 참사규칙”(Capitulare Monachorum)’을 공표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서방 수도생활의 재건자로 추앙받으며, 제2의 베네딕투스라고 불린다. 그의 축일은 2월 12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사투르니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aturn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아비티나

 

 

사투르니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사뚜르니노, 사뚜르니누스, 사투르니누스.

 

 

사투르니노 자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북아프리카의 아비티나에서 어느 사제가 주일을 맞이하여 경건하게 미사를 봉헌하던 도중에 49명의 남녀 신도들이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사투르니누스 2세와 펠릭스, 마리아(Maria) 그리고 힐라리우스(Hilarius)란 자녀 넷을 둔 성 사투르니누스(또는 사투르니노) 사제와 성 다티부스(Dativus), 성 암펠리우스(Ampelius) 그리고 다른 성 펠릭스(Felix)가 다른 많은 교우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 사투르니누스와 성 다티부스는 관리들에게 끌려가는 교우들의 맨 앞에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순교를 다짐하였다. 그들이 관리 앞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자 그 관리는 오히려 그들의 용기와 믿음을 칭송하였으나 집정관이 있는 카르타고(Carthago)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먼 길을 가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편과 노래를 부르며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집정관은 먼저 성 다티부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어디 숨었고 또 어떤 집회를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또 성 사투르니누스와 그 자녀들 역시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자 집정관은 나는 너희들의 코와 귀를 베겠다고 위협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천주께 감사” 라고 응답하였다. 이에 집정관은 위협만 하고 그들을 감옥에 넣어 옥사시켰다고 한다. 이런 옥사는 그 당시 관례에서는 보기 드문 처형 방법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세베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ever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507년 아가우눔

 

 

세베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베리누스, 쎄베리노, 쎄베리누스.

 

 

세베리노 자료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사람인 성 세베리누스(또는 세베리노)는 아리우스(Arius) 이단이 그 지방에서 판을 칠 때에 가톨릭 교육을 받았다.

그는 세상을 등지고 스위스 아가우눔의 성 마우리티우스(Mauritius) 수도원으로 들어갔는데, 이때의 수도원은 모두 독방으로 구성된 움막의 집합체였다.

그 후 그는 원장으로서 활약했는데, 프랑스의 첫 번째 그리스도인 왕인 클로비스는 오랜 동안 병을 앓다가 그의 기도로써 치유된 후 개종하였다. 성 세베리누스는 자기 수도자들에게 다시는 자기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뒤 수도원을 떠났다.

그는 정처 없는 여행을 즐기던 중 느베르(Nevers)의 주교인 에우랄리우스가 한동안 귀머거리와 벙어리로 지낸 것을 알고 그를 치유했고, 파리(Paris) 성문 앞에서는 나환자를 고쳐주었다.

그 후 그는 아가우눔으로 돌아와서 샤토-랑동 수도원에 머물렀으나 아무도 그를 몰라보았다고 한다. 파리의 생세브랑(Saint-Severin) 성당은 그를 기념하여 세워졌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아돌포

 

  • 가톨릭 성인 이름
    Adolf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185-1224년 오스나브뤼크

 

 

아돌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돌뽀, 아돌뿌스, 아돌푸스, 아돌프.

 

 

아돌포 자료

독일의 베스트팔렌(Westfalen)에서 테클렌부르크(Tecklenburg) 백작 가문의 아들로 태어난 성 아돌푸스(Adolphus, 또는 아돌포)는 쾰른(Koln) 대성당의 참사위원이 되었으나 이를 사임하고 라인(Rhein) 강변의 시토회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승이 되었다.

1216년 그는 독일 북부 니더작센(Niedersachsen) 지방에 있는 오스나브뤼크의 주교가 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애덕을 베푼 주교로 기억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암펠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mpe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아비티나

 

 

암펠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암뻴리오, 암뻴리우스, 암펠리우스.

 

 

암펠리오 자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북아프리카의 아비티나에서 어느 사제가 주일을 맞이하여 경건하게 미사를 봉헌하던 도중에 49명의 남녀 신도들이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사투르니누스 2세와 펠릭스, 마리아(Maria) 그리고 힐라리우스(Hilarius)란 자녀 넷을 둔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사제와 성 다티부스(Dativus), 성 암펠리우스(또는 암펠리오) 그리고 다른 성 펠릭스(Felix)가 다른 많은 교우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 사투르니누스와 성 다티부스는 관리들에게 끌려가는 교우들의 맨 앞에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순교를 다짐하였다. 그들이 관리 앞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자 그 관리는 오히려 그들의 용기와 믿음을 칭송하였으나 집정관이 있는 카르타고(Carthago)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먼 길을 가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편과 노래를 부르며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집정관은 먼저 성 다티부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어디 숨었고 또 어떤 집회를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또 성 사투르니누스와 그 자녀들 역시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자 집정관은 나는 너희들의 코와 귀를 베겠다고 위협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천주께 감사” 라고 응답하였다. 이에 집정관은 위협만 하고 그들을 감옥에 넣어 옥사시켰다고 한다. 이런 옥사는 그 당시 관례에서는 보기 드문 처형 방법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요나

 

  • 가톨릭 성인 이름
    Jon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데메스케냐노스

 

 

요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요나스, 조나스.

 

 

요나 자료

성 요나는 성 파코미우스(Pachomius, 5월 9일)의 지도 아래 데메스케냐노스에서 수도자가 된 이집트인이다. 그는 85세까지 공동체를 위해 정원사로서 낮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밤에는 새끼를 꼬거나 시편을 노래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채드몬

 

  • 가톨릭 성인 이름
    Caedm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시인

  • 활동 연도와 지역
    +670년경

 

 

채드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채드먼, 체드먼, 체드몬, 카이드몬, 캐드먼, 캐드먼, 캐드몬, 케드몬.

 

 

채드몬 자료

성 카이드몬(또는 채드몬)의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성 베다(Beda, 5월 25일)의 "영국 교회사"에 소개됨으로써 그의 존재와 작품이 알려진 영국 최초의 그리스도교 시인이다.

성 베다에 의하면 그는 휘트비(Whitby) 수도원에서 일꾼으로 또 목동으로 일하면서 아름다운 시를 지어 하느님을 찬미하는 놀라운 선물을 받았다.

그 후 그는 그 수도원의 평수사가 되었고 성서를 공부하여 그것을 시로 옮겼다. 그는 앵글로색슨족의 첫 번째 종교시인으로 추앙받으며 '영국 종교시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카스트렌시스

 

  • 가톨릭 성인 이름
    Castrensi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세기 카푸아

 

 

카스트렌시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스뜨렌시스, 가스트렌시스, 카스뜨렌시스.

 

 

카스트렌시스 자료

성 카스트렌시스는 9월 1일 축일을 지내는 아프리카 출신 주교 성 프리스쿠스(Priscus)와 그의 사제들 - 성 탐마루스(Tammarus), 성 로시우스(Rosius), 성 헤라클리우스(Heraclius), 성 세쿤디누스(Secundinus), 성 아주토르(Adjutor), 성 마르코(Marcus), 성 아우구스투스(Augustus), 성 엘피디우스(Elpidius), 성 카니온(Canion), 성 빈도니우스(Vindonius) - 과 함께 두 번째 축일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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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리스쿠스와 사제들은 아리우스파 반달족에 의해 키가 없는 배에 던져져 바다를 표류하다가 다행히 남부 이탈리아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결국 성 프리스쿠스는 카푸아의 주교가 되었고 몇몇 다른 사제들은 다른 주교좌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적들은 다소 신뢰성이 떨어진다. 즉 성 프리스쿠스의 그의 동료들은 로마 순교록이 전하는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은 프리스쿠스 카스트렌시스(Priscus Castrensis)의 의미를 “프리스쿠스는 예전에 북부 아프리카에 있는 카스트라(Castra)의 주교였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칼로체로

 

  • 가톨릭 성인 이름
    Caloce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30년 라벤나

 

 

칼로체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갈로체로, 갈로체루스, 칼로체루스, 칼로케로, 칼로케루스.

 

 

칼로체로 자료

성 칼로케루스(또는 칼로체로)는 성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7월 23일)의 제자로 스승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라벤나의 주교가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파스칼 1세

 

  • 가톨릭 성인 이름
    Paschal 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824년

 

 

파스칼 1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빠스깔리스, 빠스칼리스, 파스깔리스, 파스칼리스.

 

 

파스칼 1세 자료

로마(Roma) 사람 보노수스(Bonosus)의 아들인 성 파스칼(Paschalis)은 라테라노(Laterano) 학교에서 수학한 후 교황 성 레오 3세(Leo III, 6월 12일)에게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에서 오랫동안 일하던 그는 성 베드로 대성전 인근 성 스테파누스 수도원의 아빠스로 있던 817년 1월 24일 교황 스테파누스 4세(Stephanus IV)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프랑크 왕국의 경건왕 루도비쿠스(Ludovicus Pius)는 조약을 통해 교황의 관할권을 존중하였지만, 그의 아들 로타리우스(Lotharius)가 즉위하면서부터 교황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이윽고 로타리우스는 교황의 관할권과 이탈리아 내에서의 정치권을 엄격히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그는 이 모든 수모를 감내하였고, 동방 교회에서 벌어지는 레오 5세 황제의 성화상 파괴 정책을 끝내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로마의 여러 성당을 재건하거나 신축하였고 많은 유해들을 카타콤바에서 성전으로 옮겼다. 그의 이름은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지만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펠릭스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x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아비티나

 

 

펠릭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체.

 

 

펠릭스 자료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북아프리카의 아비티나에서 어느 사제가 주일을 맞이하여 경건하게 미사를 봉헌하던 도중에 49명의 남녀 신도들이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사투르니누스 2세와 펠릭스, 마리아(Maria) 그리고 힐라리우스(Hilarius)란 자녀 넷을 둔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사제와 성 다티부스(Dativus), 성 암펠리우스(Ampelius) 그리고 다른 성 펠릭스가 다른 많은 교우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성 사투르니누스와 성 다티부스는 관리들에게 끌려가는 교우들의 맨 앞에서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순교를 다짐하였다. 그들이 관리 앞에서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자 그 관리는 오히려 그들의 용기와 믿음을 칭송하였으나 집정관이 있는 카르타고(Carthago)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먼 길을 가면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편과 노래를 부르며 감사의 기도를 바쳤다.

집정관은 먼저 성 다티부스에게 그리스도인들이 어디 숨었고 또 어떤 집회를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또 성 사투르니누스와 그 자녀들 역시 당당하게 신앙을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자 집정관은 나는 너희들의 코와 귀를 베겠다고 위협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천주께 감사” 라고 응답하였다. 이에 집정관은 위협만 하고 그들을 감옥에 넣어 옥사시켰다고 한다. 이런 옥사는 그 당시 관례에서는 보기 드문 처형 방법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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