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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남자세례명 10가지

피어나네 2023. 6.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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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막시미노, 메다르도, 빅토리노, 살루스티아노, 요한 라이누치, 윌리엄, 질다르도, 클로둘포, 파치피코, 헤라클리오, 총 10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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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8일 여자세례명 멜라니아, 칼리오파,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6월 8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0가지

 

 

 

 

6월 8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막시미노

  2. 메다르도

  3. 빅토리노

  4. 살루스티아노

  5. 요한 라이누치

  6. 윌리엄

  7. 질다르도

  8. 클로둘포

  9. 파치피코

  10. 헤라클리오

 

6월 8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0가지

 

 

1. 막시미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예수의 제자,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엑스

 

 

막시미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망, 막시맹, 막시미누스, 막씨미노, 막씨미누스.

 

 

막시미노 자료

교회 전승, 특별히 프랑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 막시미누스(또는 막시미노)는 7월 29일에 기념하는 베타니아의 성 라자로(Lazarus)와 성녀 마르타(Martha)와 성녀 마리아(Maria) 3남매 집안의 청지기로 예수님의 72명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 명의 거룩한 마리아, 곧 클로파스(Clopas)의 아내 마리아(Maria, 4월 24일)와 예전에 마리아 살로메(Maria Salome)로도 불렸던 살로메(4월 24일)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르타와 성 라자루스와 더불어 프랑스 남서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승은 베타니아의 마리아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같은 사람으로 보았던 잘못된 오랜 전통을 바탕에 깔고 있다. 성 막시미누스는 엑스에 선교 본부를 두고 그 지방의 초대 주교로서 활동했다.

그는 알프스 산의 한 동굴에서 30년 동안 은수자로 살다가 선종할 때를 예감하고 평지로 내려온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마지막으로 성체를 모시도록 해주었고, 그녀의 시신을 라 생트 보메(la-Sainte-Baume)에 안장하였다.

오늘날 그곳은 그의 이름을 포함해서 생 막시망 라 생트 보메(Saint-Maximin-la-Sainte-Baume)로 불리는 도시가 되었고,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 막시미누스의 유해를 모신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이 봉헌되었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는 요한 복음 9장 1-38절에 나오는 태중 소경으로 주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은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막시미누스를 프랑스 엑스 지방의 초대 주교이자 예수님의 제자로 소개했고,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막시미누스가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지방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를 전한 인물이라고 간단히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메다르도

 

  • 가톨릭 성인 이름
    Medar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45년경 누아용

 

 

메다르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다르, 메다르두스, 메따르도, 메따르두스, 메타르도, 메타르두스.

 

 

메다르도 자료

성 메다르두스(Medardus, 또는 메다르도)는 456년경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 지역의 살랑시(Salency)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넥타리두스(Nectaridus)는 프랑크족 출신의 귀족이었고, 그의 어머니 프로타기아(Protagia)는 갈리아 지역에 정착한 로마인의 후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상 베르망(Vermand)과 투르네(Tournai)를 자주 갔는데, 그곳은 오늘날 프랑스 북동부의 도시인 생캉탱(Saint-Quentin) 지역이다. 성 메다르두스의 부모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그를 생캉탱의 수도원으로 보냈다. 평소 정직하고 사랑이 넘쳤던 그는 베르망의 주교를 도우며 신학과 성경에 관한 지식을 배웠다. 

그렇게 평범한 삶을 지내다가 그의 경건함과 지식을 눈여겨본 베르망의 주교에 의해 33살의 나이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설교와 선교 활동에 적극적이었고, 부모에게 물려받은 막대한 유산 또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모두 사용할 정도로 자선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는 또한 국왕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과감히 비판하는 용기도 지니고 있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프랑스 북부 지방을 다스리던 이교도 왕인 클로비스 1세(Clovis I)가 살리족(Salier)을 통합한 후 게르만족의 여러 부족을 정복해 프랑크족 중심의 메로빙거 왕조의 창시자로서 프랑크 왕국을 세울 때였다. 

530년 베르망의 주교가 선종한 후 그는 베르망의 후임 주교로 선임되었다. 비록 그는 주교가 되기를 원치 않았으나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를 주교로 축성한 이는 국왕 클로비스 1세를 개종시키고 세례를 준 랭스(Reims)의 성 레미기우스(Remigius) 주교로, 성 메다르두스도 성 레미기우스와 함께 국왕의 개종에 많은 공헌을 했다. 주교가 된 후 성 메다르두스는 자신의 주교좌를 더 크고 안전한 도시인 오늘날의 누아용으로 옮겼다.

532년 친구이던 투르네의 성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 2월 20일) 주교가 선종하자 장례식에 참석하러 갔던 성 메다르두스는 투르네의 시민과 사제들로부터 자기 교구를 맡아달라는 간청을 받았다. 

그는 한 주교가 두 교구를 맡을 수 없다며 극구 사양했지만 랭스의 성 레미기우스와 국왕까지 나서자 순명의 마음으로 맡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누아용과 투르네 교구 간의 통합은 1146년까지 지속되다가 다시 분리되었다. 

542년에는 국왕 클로타르 1세(Chlothar I)의 부인인 성녀 라데군다(Radegundis) 왕비가 그에게 도망 오는 일이 생겼다. 클로타르 1세와 정략결혼 후 남편의 난폭한 성격을 참으며 10여 년을 살던 성녀 라데군다는 하나뿐인 오빠가 클로타르 1세에 의해 살해당하자 더는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해 왕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갈 마음을 먹었다. 

성 메다르두스는 고심 끝에 왕비의 청을 받아들였고 왕도 결국은 허락하였다. 성녀 라데군다는 성 메다르두스 주교의 도움으로 수도 서원을 하고 푸아티에(Poitiers)에 수녀원을 세웠다.

성 메다르두스는 545년경 평화로이 선종하였다. 국왕과 왕자들이 그의 시신을 직접 메고 묘지까지 갔을 정도로 그는 왕과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나중에 국왕은 수아송(Soissons) 근처 자신의 영지로 성 메다르두스의 무덤을 옮기고 그곳에 그의 이름을 딴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농부, 포도주 양조자, 우산 제작자 등의 수호성인으로 특별히 날씨와 연관된 전설이 전해진다. 

전승에 따르면, 성 메다르두스가 어린 시절 그의 위를 맴도는 독수리에 의해 비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필요에 따라 비가 오거나 맑게 할 수 있는 성인으로 여겨졌고, 그의 축일에 비가 오면 40일 동안 계속 오고 그렇지 않으면 40일 동안 쾌청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는 메타르두스(Metardus)로도 불린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8일 목록에서 성 메다르두스를 소개하고 이어서 루앙(Rouen)의 주교인 성 길다르두스(Gildardus)를 소개하면서 같은 날 태어나고, 같은 날 주교가 되고, 같은 날 선종해 함께 하늘나라에 들어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9세기경에 생겨난 전설로 신빙성은 없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두 성인 주교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형제와 관련된 언급은 모두 삭제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빅토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Victor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43년 카메리노

 

 

빅토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빅또리노, 빅또리누스, 빅토리누스.

 

 

빅토리노 자료

성 세베리누스(Severinus, 5월 15일)와 성 빅토리누스(또는 빅토리노)는 형제지간으로 자기들의 막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Marche) 지방 셉템페다 근처에 있는 몬테네로(Montenero)에 가서 은수자가 되었다.

성 빅토리누스는 유혹을 이기기 위해 두 개의 나뭇가지 사이에 자신의 손을 끼워 넣고 기도하는 등 참회를 위한 특별한 고행을 실천했다. 그런데 540년에 교황 비길리우스(Vigilius)는 그들의 뜻과는 달리 성 세베리누스는 셉템페다(Septempeda)의 주교로, 성 빅토리누스는 카메리노의 주교로 임명했다. 그들은 몬테네로에서 은수자로 계속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성 세베리누스는 자신의 교구 내에서 신자들의 신앙심을 되살리는 데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동고트족(Ostrogoths)의 토틸라(Totila)에게 그의 주교좌가 파괴되기 전에 갑자기 선종하였다. 하지만 후대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 도시 이름을 산 세베리노(San Severino)로 부르게 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세베리누스와 성 빅토리누스를 모두 6월 8일 목록에 기록해서 기념했었다. 그러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세베리누스를 5월 15일 목록으로 옮겨 기록했고, 성 빅토리누스에 대해서는 6월 8일이나 다른 날 목록에서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살루스티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allus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사르데냐

 

 

살루스티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살루스띠아노, 살루스띠아누스, 살루스티아누스.

 

 

살루스티아노 자료

성 살루스티아누스(Sallustianus, 또는 살루스티아노)는 고대로부터 사르데냐에서 공경을 받아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다. 어떤 순교록은 그가 순교자라고 또 다른 순교록은 은수자라고 주장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요한 라이누치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Rainuzz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330년?

 

 

요한 라이누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라이누치 자료

이탈리아의 토디 지방의 관습 가운데 악령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그곳의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 성당으로 데리고 와서 구마예식을 한다. 

1568년 어느 날 거행된 구마예식에서 악령이 “여기는 성 요한의 유해가 있다”는 말을 하여 발굴을 시작하자 마침내 대리석 관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토디의 성 요한 라이누치우스, 토디의 성녀 마르가리타 수도원에 묻힘“이란 글귀가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내력은 잘 모른다. 다만 그가 베네딕토 회원의 수도복을 입은 것으로 판명되었을 뿐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윌리엄

 

  • 가톨릭 성인 이름
    William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154년 요크

 

 

윌리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굴리엘모, 빌리암, 빌헬름, 윌리암.

 

 

윌리엄 자료

트웨이트의 윌리엄(William of Thwayt) 또는 윌리엄 피처버트(Fitzherbert) 등으로 알려진 성 윌리엄은 헨리 1세의 재무상 허버트(Herbert)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140년에 요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주로 시토 회원과 아우구스티누스 회원들이 그의 임명에 도전하고 나섰다.

이 사건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주교좌에 오르지 못하였으나 교황 아나스타시우스 4세(Anastasius IV)에 의하여 겨우 승인을 받고, 1154년에 요크로 부임하였지만 불과 한 달 뒤에 독살되고 말았다. 그는 1227년에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질다르도

 

  • 가톨릭 성인 이름
    Gildar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14년 루앙

 

 

질다르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길다르도, 길다르두스, 질다르두스.

 

 

질다르도 자료

성 길다르두스(Gildardus, 또는 질다르도)는 약 15년 동안 프랑스의 루앙 교구를 다스렸다. 유감스럽게도 로마 순교록은 후대의 전설을 그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에 따르면 그는 누아용(Noyon)의 주교인 성 메다르두스(Medardus, 6월 8일)의 형제로 같은 날 태어나서 같은 날 주교로 축성되고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성 길다르두스는 적어도 성 메다르두스가 주교로 축성되기 5년 전에 사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클로둘포

 

  • 가톨릭 성인 이름
    Clodulf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96년 메스

 

 

클로둘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글로둘포, 글로둘푸스, 글로둘프, 끌루드, 클로둘푸스, 클로둘프, 클루드.

 

 

클로둘포 자료

성 클로둘푸스(Clodulphus, 또는 글로둘포)는 프랑스 메스의 주교인 성 아르눌푸스(Arnulphus, 7월 18일)의 아들로 605년경에 태어났다. 그는 커서 고다(Goda)와 결혼하였다. 성 클로둘푸스는 부친처럼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궁중에서 고관으로 지냈었다.

평신도인 그는 신심이 깊고 올바른 삶을 살았는데, 656년에 메스의 주교인 성 고도가 서거함으로써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가 사제로 서품되었을 때 그의 아내는 수녀가 되었고, 이어 657년에 메스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성 클로둘푸스는 교구를 지혜롭게 다스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애롭게 자선하는 등 이상적인 사목자가 되었다. 그는 메스 교구를 40년 동안이나 지도하다가 고령으로 선종하였다. 그는 클루드(Cloud)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파치피코

 

  • 가톨릭 성인 이름
    Pacificus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424-1482년 체라노

 

 

파치피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빠치피꼬, 빠치피꾸스, 파치피쿠스, 파키피코, 파키피쿠스.

 

 

파치피코 자료

이탈리아 노바라(Novara)의 파치피쿠스로도 불리는 체라노의 파치피쿠스 라모타(Pacificus Ramota, 또는 파치피코)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의 노바라 교구 출신으로 어렸을 때에 부모를 잃었다.

그는 노바라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21세 되던 해에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다. 그 후 사제가 된 그는 주로 이탈리아 내에서 설교자로서 활동했는데, 이것이 성공함으로써 선교사로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또 그는 윤리신학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고 1475년에는 이를 발간하였다.

1480년에 그는 체라노의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이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지역의 선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사르데냐(Sardegna) 섬으로 갔을 때 중병을 얻어서 운명하고 말았다.

그의 유해는 자신의 유언에 따라 체라노에 안장되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45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헤라클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Herac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15년 상스

 

 

헤라클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헤라끌리오, 헤라끌리우스, 헤라클리우스.

 

 

헤라클리오 자료

성 헤라클리우스(또는 헤라클리오)는 프랑스 상스의 14번째 주교로 496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랭스(Reims)의 주교좌 성당에서 있은 클로비스 왕의 세례식에 참석했었다. 그는 상스에 성 요한(Joannes) 복음사가 수도원을 지었고, 사망 후 그곳에 묻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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