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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남자세례명 3가지

pieonane 2023. 6. 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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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세례명 다비드는 다윗, 데이비드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다비드3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다비드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다비드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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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천주교 남자세례명
3인 목록

 

 

 

 

다비드 남자세례명 목록

 

  1.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 (5월 21일)

  2. 다비드 롤단 라라 (5월 21일)

  3.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 (5월 21일)

 

다비드 천주교 남자세례명 3가지

 

 

1.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

 

  • 세례명 축일
    5월 2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David Galvan Bermudez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81-1915년 멕시코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다윗, 데이비드.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 이야기

성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는 1881년 1월 29일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때 신학교에 들어갔고 우수한 학생이었으나 성소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3년 동안 신학교를 떠나 살았다. 

그는 세상의 일을 하며 여자를 만나고 방탕한 생활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 번은 술에 만취해 자신의 여자 친구를 때려 체포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제직에 대한 하느님의 부르심을 더는 무시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1년간의 엄격한 근신 기간을 보낸 뒤 비로소 신학교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1909년 5월 20일 뒤늦게 사제품을 받은 그는 아마티탄(Amatitan)에서 신학교 강사가 되었고 이어 지도교수가 되었다.

사제가 된 뒤에 성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는 과달라하라에 있는 병원과 고아원에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헌신했다. 그리고 멕시코 혁명이 진행되던 시기에는 부상자들의 상처를 돌보고 그들의 고해를 들으며 생활했다. 그는 시가전의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과달라하라로 가던 도중 호세 아라이사(Jose Araiza) 신부와 함께 체포되었다.

호세 아라이사 신부는 후에 몸값을 내고 감옥에서 풀려났다. 감옥에서 그는 동료 수감자들을 위로하며 자신의 처형이 이루어지기 몇 시간 전까지도 그들에게 정성껏 고해성사를 주었다. 1915년 1월 30일, 그는 과달라하라에서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사제의 신분으로 살해를 당했다.

성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사제와 24명의 동료 순교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보편 전례력 안에서 그들의 기념일은 시성식이 거행된 5월 21일로 결정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그들이 각각 순교한 날 목록에서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5월 21일 목록에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Christophorus Magallanes)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이 멕시코의 여러 지역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리스도 왕을 고백하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기록하였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같은 날 시성식에서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멕시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Maria de Jesus Sacramentado, 7월 30일) 수녀를 성인품에 올려 모두 27위의 멕시코인 성인이 탄생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다비드 롤단 라라

 

  • 세례명 축일
    5월 2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David Roldan Lara

  • 신분과 직업
    평신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902-1926년 멕시코

 

 

다비드 롤단 라라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다윗, 데이비드.

 

 

다비드 롤단 라라 이야기

성 다비드 롤단 라라는 1902년 3월 2일 두랑고(Durango) 대교구에 속한 멕시코 중부 사카테카스(Zacatecas) 주(州)의 찰치위테스(Chalchihuites)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기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정성 어린 돌봄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어릴 때 두랑고의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가족들의 생계를 돌보기 위해 나와서 광부가 되었다.

결국 그는 다시 신학교로 돌아가지 못했고 평신도로 남았다. 그의 친구들과 동료 노동자들은 활기차고 관대한 성품과 지성과 친절함을 지닌 그의 성품을 칭찬했다. 그는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감독으로서 착하고 신심 깊으며 정직한 일꾼이었다. 약혼녀에게도 그는 순수하고 완벽한 젊은이였다.

그는 가톨릭 액션을 위한 멕시코 청년회(The Mexican Youth for Catholic Action)의 책임자로서 자신의 본당신부인 성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Luis Batiz Sainz) 신부를 있는 힘껏 보좌했다. 그는 멕시코 정부의 박해로 인해 교회가 처한 상황에 고뇌하면서, 설령 그것이 순교를 의미하더라도 그리스도께 충실한 신앙인으로 남기를 소망했다.

그는 정부의 반종교적 헌법에 저항했고, 종교 자유 수호를 위한 전국연맹(The National League for the Defense of Religious Liberty, LNDLR)의 부의장으로서 활동했다. 성 마누엘 모랄레스(Manuel Morales)와 사촌 형제인 성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Salvador Lara Puente)와 뜻을 같이했던 그는 결국 그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6년 8월 15일, 성 마누엘 모랄레스와 성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 신부가 총살당한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성 다비드 롤단 라라와 성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 역시 총살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스도 왕 만세! 과달루페(Guadalupe) 성모 만세!”라고 외쳤다.

성 다비드 롤단 라라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Christophorus Magallanes) 사제와 24명의 동료 순교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보편 전례력 안에서 그들의 기념일은 시성식이 거행된 5월 21일로 결정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그들이 각각 순교한 날 목록에서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5월 21일 목록에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이 멕시코의 여러 지역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리스도 왕을 고백하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기록하였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같은 날 시성식에서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멕시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Maria de Jesus Sacramentado, 7월 30일) 수녀를 성인품에 올려 모두 27위의 멕시코인 성인이 탄생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

 

  • 세례명 축일
    5월 2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David Uribe Velasco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89-1927년 멕시코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다윗, 데이비드, 벨라스꼬.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 이야기

성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는 1889년 12월 29일 칠라파(Chilapa) 교구에 속한 멕시코 남부 태평양 연안 게레로(Guerrero) 주(州)의 부에나비스타 데 쿠에야르(Buenavista de Cuellar)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칠라파의 신학교에서 수학한 후 1913년 3월 2일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여러 지역에서 본당 사목을 수행했는데, 반가톨릭적인 멕시코 정부의 폭력에 직면해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는 게레로의 이괄라(Iguala)에서 본당 사목을 하면서 개신교와 정부에 동조해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려는 세력이 득세하던 지역이었기에 힘들게 사제직을 수행해야 했다.

1926년 가톨릭교회의 공적인 전례 거행이 금지되고 성당마저 폐쇄되자 그는 은밀히 사제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1927년 4월 7일 체포되어 모렐로스(Morelos) 주의 쿠에르나바카(Cuernavaca)로 끌려갔다. 그를 체포한 군인은 만일 그가 가톨릭교회를 반대하는 헌법에 서명하고 정부에 의해 설립된 어용(御用) 천주교회의 주교가 되는 것을 수용한다면 모든 형태의 권리를 보장하고 자유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그는 굳건한 믿음으로 이 모든 제안과 회유를 단호히 거부했다. 감옥에서 쓴 마지막 글에서도 그는 박해자들이 자신을 모함해 적용한 모든 범죄 사실에 대해 결백하며, 하느님의 손길 안에서 모든 원수를 용서한다고 적었다.

그는 1927년 4월 12일 모렐로스 주의 산 호세 비스타 에르모사(San Jose Vista Hermosa) 역 근처로 끌려가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그의 유해는 고향 본당에 안치되었다.

성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과 관련해 순교한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Christophorus Magallanes) 사제와 24명의 동료 순교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보편 전례력 안에서 그들의 기념일은 시성식이 거행된 5월 21일로 결정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그들이 각각 순교한 날 목록에서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5월 21일 목록에서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이 멕시코의 여러 지역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리스도 왕을 고백하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기록하였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같은 날 시성식에서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멕시코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Maria de Jesus Sacramentado, 7월 30일) 수녀를 성인품에 올려 모두 27위의 멕시코인 성인이 탄생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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