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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남자세례명 14가지

pieonane 2023. 6.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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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니카노르, 도로테오, 마르첼리노, 마르치아노, 마인베르크, 보니파시오, 산치오, 아폴로니오, 에오바노, 율리아노, 치리아코, 파우스티노, 페르디난도, 플로렌시오, 총 14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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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5일 여자세례명 마르치아, 발레리아, 제나이스, 치리아, 총 4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6월 5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6월 5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니카노르

  2. 도로테오

  3. 마르첼리노

  4. 마르치아노

  5. 마인베르크

  6. 보니파시오

  7. 산치오

  8. 아폴로니오

  9. 에오바노

  10. 율리아노

  11. 치리아코

  12. 파우스티노

  13. 페르디난도

  14. 플로렌시오

 

6월 5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1. 니카노르

 

  • 가톨릭 성인 이름
    Nicano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초

 

 

니카노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니까노르, 니깐데르, 니깐드로, 니카놀, 니칸데르, 니칸드로.

 

 

니카노르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와 성 니카노르와 성 아폴로니우스(Apollonius)와 동료 순교자들이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205~311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이집트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교회의 전승을 반영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추가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항구한 신앙을 고백하고 혹독한 매질과 고문을 당한 후 감옥으로 던져졌다.

그들은 물도 음식도 금지된 채 6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고통을 받았는데,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 옆에는 진수성찬과 시원한 음료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바치겠다고만 하면 주어질 상급이자 유혹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루카 4,4)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하며 하느님의 상을 받기까지 인내하였다.

결국 그들은 무더운 감옥 안에서 갈증과 굶주림으로 순교하였다. 성 니카노르는 니칸데르(Nicander) 또는 니칸드로(Nicandro)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도로테오

 

  • 가톨릭 성인 이름
    Dorothe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62년경 티레

 

 

도로테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로떼오, 도로떼우스, 도로테우스.

 

 

도로테오 자료

순교자 성 도로테우스(또는 도로테오)는 티레의 사제였고, 또 불확실하긴 하지만 그 교구의 주교였다는 설도 있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체포되어 유배되었다.

박해가 다소 누그러지자 그는 양떼에게로 돌아왔고,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에 참석하였다. 학식이 풍부한 그는 그리스와 라틴 시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 그의 저서들도 여러 권 있었다고 한다.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가 새로운 박해를 일으키자, 그는 잠시 발칸 반도 동부 트라키아(Thracia)의 오디소폴리스(Odyssopolis)로 피신하였으나, 결국은 체포되어 비참한 죽음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마르첼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마르첼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리노, 마르셀리누스, 마르첼리누스.

 

 

마르첼리노 자료

성 플로렌티우스(Florenti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키리아쿠스(Cyriacus), 성 마르첼리누스(또는 마르첼리노)와 성 파우스티누스(Faustinus)는 데키우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의 페루자(Perugia)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마르치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초

 

 

마르치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시안, 마르치아누스, 마르치안, 마르키아노, 마르키아누스.

 

 

마르치아노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 또는 마르치아노)와 성 니카노르(Nicanor)와 성 아폴로니우스(Apollonius)와 동료 순교자들이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205~311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이집트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교회의 전승을 반영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추가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항구한 신앙을 고백하고 혹독한 매질과 고문을 당한 후 감옥으로 던져졌다.

그들은 물도 음식도 금지된 채 6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고통을 받았는데,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 옆에는 진수성찬과 시원한 음료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바치겠다고만 하면 주어질 상급이자 유혹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루카 4,4)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하며 하느님의 상을 받기까지 인내하였다. 결국 그들은 무더운 감옥 안에서 갈증과 굶주림으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인베르크

 

  • 가톨릭 성인 이름
    Meinwerk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036년 파더보른

 

 

마인베르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인베르그.

 

 

마인베르크 자료

색슨의 귀족인 마인베르크는 할베르슈타트와 히데샤임에서 사제직 수업을 받았고, 파더보른 주교가 서거했을 때 후임자로 선출되어 성 빌리지스(Willigis)로부터 축성되었다. 그는 흔히 파더보른 교구의 제2의 설립자로 불릴 만큼 큰일을 많이 하였다.

먼저 그는 화재로 소실된 주교좌를 복원하고 압딘고프에 클뤼니(Cluny) 수도원을 세우는 한편 도시의 성을 쌓고 방비를 튼튼히 하였다. 또 학문과 예술의 수호자답게 그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파더보른 학교를 운영하였는데, 이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유산으로 충당하였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보니파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Bonifac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대주교,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75?-754년

 

 

보니파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보니파시우스, 보니파키오, 보니파키우스, 보니파티오, 보니파티우스, 보니페이스, 빈프리트, 윈프리드, 윈프리트.

 

 

보니파시오 자료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675년경 영국 웨식스(Wessex)의 크레디톤(Crediton)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빈프리트(Winfrid, Wynfrith)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불과 7살의 나이에 잉글랜드 남서부 데번셔(Devonshire)의 엑서터(Exeter)에 있는 성 베네딕투스 수도원 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14살이 되던 해에는 햄프셔(Hampshire)의 너슬링(Nursling)에 있는 성 베네딕투스 수도원 학교에서 윈버트(Winbert) 수도원장의 지도하에 교육을 받았다.

그는 그곳에서 앵글로-색슨 수도원의 사상과 신학적인 지식 · 선교 활동 등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너슬링의 성 베네딕투스회에 입회하여 서른 살의 나이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너슬링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어 교수와 설교자로서 성공적인 활동을 했다. 그는 많은 시를 쓰고 영국에서 최초로 라틴어 문법서를 저술해 출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영국에서 명성을 얻는 것보다는 프리슬란트(Friesland) 지방의 선교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716년에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고 프리슬란트로 갔으나 라드보트(Radbod) 공작의 방해로 선교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다시 너슬링 수도원으로 돌아왔다.

717년 너슬링 수도원의 원장이 선종한 후 후계자로 선출되었으나 성 빈프리트는 이를 사양하고 이듬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II)를 알현하기 위해 로마로 갔다.

몇 차례 교황을 알현한 그는 719년 5월 교황으로부터 라인강 동쪽에 사는 이교도들에게 선교하라는 사명을 받고 길을 떠났다. 이때 교황은 그에게 선교 활동에 대한 당부와 함께 빈프리트라는 이름 대신 로마의 순교자인 ‘보니파티우스’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

이때부터 성 보니파티우스는 우선 튀링겐(Thuringen)에서 지식인들에 대한 설교를 시작했고, 라드보트 공작이 사망하자 프리슬란트로 가서 위트레흐트(Utrecht)의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11월 7일) 주교를 도와 3년을 활동했다.

성 빌리브로르두스는 그를 후계자로 지명하고자 했으나 독립된 활동을 원한 성 보니파티우스는 722년 가장 이교도적 지역인 헤센(Hessen)으로 가서 아뫼네부르크(Amoneburg)에 최초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설립했다.

그가 이곳에서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성공적인 선교 활동을 펼치자, 교황은 성 보니파티우스를 로마로 불러들여 주교로 서품하고 교회 법령집과 독일의 모든 수도자와 관리들에게 보내는 추천서를 써주었다. 이 서한은 그의 독일 선교 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특히 프랑크 왕국의 재상인 카를 마르텔(Karl Martell)의 보호를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 보니파티우스는 카를 마르텔의 보호를 받으며 723년부터 725년까지 제2차 헤센 선교에 나섰다. 이때 그는 가이스마르(Geismar)에서 이교도들이 신성시하는 떡갈나무를 베어 경당을 짓는 데 사용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계기로 개종자들이 확산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 후 그는 교황의 명을 받고 튀링겐으로 가서 교리 지식이 부족한 사제들과 이교도적 관습에 빠진 이들을 위해 오르트루프(Ohrdruf)에 수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영국의 수도자들을 독일 선교사로 파견받아 교육과 선교 활동을 돕도록 했다. 73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3세는 그를 명의 대주교로 승품하고 장차 설립될 독일 교회의 주교들을 서품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 지방에 잘츠부르크(Salzburg) 교구,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교구, 프라이징(Freising) 교구들을 설립하고 여러 교구에 수도원도 세웠다. 하이덴하임(Heidenheim) 수도원에 이어 744년에는 성 스투르미우스(Sturmius, 12월 17일)와 함께 풀다(Fulda)에 수도원을 설립했다.

풀다 수도원은 몇 년 지나지 않아 독일 지역 내에서 종교적 · 지성적 생활의 중심지가 되었다. 동시에 성 보니파티우스의 지속적인 선교 활동과 영성적 쇄신을 위한 근거지가 되었다.

성 보니파티우스는 독일과 프랑크의 교황 특사로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피핀 3세를 프랑크의 유일한 통치자로 세우는 대관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그는 쾰른에 자신의 대주교좌를 설립하고자 했으나 프랑크 주교들의 반대로 무산된 후 마인츠(Mainz)의 대주교가 되었다.

피핀 3세의 견제로 활동에 제약을 느낀 성 보니파티우스는 마인츠의 대주교직을 사임하고 성 빌리브로르두스가 선종한 후 다시 이교도적 관습에 떨어진 프리슬란트 지역을 재건하는 데 여생을 바쳤다. 그러던 중 754년 6월 5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도쿰(Dokkum) 근처 보르네(Borne) 강변에서 개종자들에게 견진성사를 주려고 준비하던 중 프리슬란트 이교도들의 급습을 받아 동료 52명과 함께 살해되어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의 유해는 위트레흐트와 마인츠를 거쳐 그의 유언대로 풀다 수도원 성당에 안치되었다. 독일 지역 사람들의 개종에 헌신하고, 신설된 독일 교회가 로마 교회와 밀접하게 일치하도록 조직하고, 성직자의 개혁과 선교 활동을 위한 수도회 설립 등에 헌신한 성 보니파티우스는 ‘게르만족의 사도’ 또는 ‘독일의 사도’로 불리며 공경을 받고 있다. 그의 축일은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1874년부터 보편 교회력에서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산치오

 

  • 가톨릭 성인 이름
    Sancius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51년 코르도바

 

 

산치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산초, 산치우스, 산키오, 산키우스, 상티오, 상티우스, 싼치오, 싼치우스, 싼키오, 싼키우스, 쌍티오, 쌍티우스.

 

 

산치오 자료

산치우스(또는 산치오)는 오늘날 프랑스 남부에 속한 알비(Albi)에서 태어났으나 무어인들의 전쟁 포로가 되어 에스파냐 남부의 코르도바로 끌려왔다. 그는 궁중에서 보병 훈련을 받고 젊은 나이에 왕실 수비대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그는 성 이사악(Isaac, 6월 3일) 수도승이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자신도 그리스도인임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무함마드(Muhammad) 예언자를 배격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즉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당시 몇몇 다른 신자들도 같은 이유로 고문을 받았지만, 산치우스만 잔인한 형벌 끝에 순교하였다. 그의 유해는 성 이사악의 경우처럼 며칠 동안 전시되었다가 화장하여 재를 강물에 흘려보냈다. 그는 산초(Sancho) 또는 상티우스(Sancti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아폴로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pollon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초

 

 

아폴로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뽈로니오, 아뽈로니우스, 아폴로니우스.

 

 

아폴로니오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와 성 니카노르(Nicanor)와 성 아폴로니우스(또는 아폴로니오)와 동료 순교자들이 갈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황제(205~311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이집트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교회의 전승을 반영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추가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항구한 신앙을 고백하고 혹독한 매질과 고문을 당한 후 감옥으로 던져졌다.

그들은 물도 음식도 금지된 채 6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고통을 받았는데, 다른 전승에 의하면 그 옆에는 진수성찬과 시원한 음료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바치겠다고만 하면 주어질 상급이자 유혹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루카 4,4)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반복하며 하느님의 상을 받기까지 인내하였다. 결국 그들은 무더운 감옥 안에서 갈증과 굶주림으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에오바노

 

  • 가톨릭 성인 이름
    Eob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755년 위트레흐트

 

 

에오바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오바누스, 에오반.

 

 

에오바노 자료

아일랜드 태생의 성 에오바누스(Eobanus, 또는 에오바노)는 베네딕토회 수도승이자 사제로서 독일 선교 중에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11월 7일)와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6월 5일)와 함께 활동하였다.

성 보니파티우스는 그를 위트레흐트의 주교로 임명했고, 그는 프리슬란트(Friesland)의 도쿰(Dokkum)에서 독일의 사도인 성 보니파티우스를 뒤따라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율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Jul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율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율리아누스, 줄리안, 줄리언.

 

 

율리아노 자료

성 플로렌티우스(Florenti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 성 키리아쿠스(Cyriacus), 성 마르첼리누스(Marcellinus)와 성 파우스티누스(Faustinus)는 데키우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의 페루자(Perugia)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치리아코

 

  • 가톨릭 성인 이름
    Cyria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치리아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치리아꼬, 치리아꾸스, 치리아쿠스, 키리아코, 키리아쿠스.

 

 

치리아코 자료

성 플로렌티우스(Florenti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키리아쿠스(또는 치리아코), 성 마르첼리누스(Marcellinus)와 성 파우스티누스(Faustinus)는 데키우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의 페루자(Perugia)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파우스티노

 

  • 가톨릭 성인 이름
    Faust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파우스티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파우스띠노, 파우스띠누스, 파우스티누스.

 

 

파우스티노 자료

성 플로렌티우스(Florenti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키리아쿠스(Cyriacus), 성 마르첼리누스(Marcellinus)와 성 파우스티누스(또는 파우스티노)는 데키우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의 페루자(Perugia)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페르디난도

 

  • 가톨릭 성인 이름
    Ferdinand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증거자, 왕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402-1443년 포르투갈

 

 

페르디난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페르디난두스, 페르디난드.

 

 

페르디난도 자료

포르투갈의 요한 1세(Joannes I) 국왕과 필리파(Philippa)의 아들인 페르디난도(Ferdinandus)는 포르투갈의 산타렘(Santarem)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 당시의 왕자로서 보기 드문 신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부친의 명에 따라 아비스(Aviz) 기사직을 수여받았지만,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Eugenius IV)가 제의한 추기경직을 사양할 만큼 겸손하고 열심하였다.

항해사인 동생 엔리케(Henrique)와 함께 페르디난도는 오늘날 아프리카 북서부 끝에 있는 모로코(Morocco)의 항구 도시 탕헤르(Tangier)에 주둔해 있던 무어인을 치기 위하여 군대를 인솔하였으나, 그의 동생인 국왕 에드워드가 큰 착오를 일으킴에 따라 포르투갈 군대는 대패하고 말았다.

엔리케는 겨우 피신하였으나 페르디난도는 체포되어 혹사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왕이 석방금을 보내지 않아 그는 더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그는 6년 동안이나 포로생활을 하다가 페스(Fez) 감옥에서 옥사하였는데, 무어인들은 그의 시신을 감옥 벽에 걸어두는 등 시신에게조차 온갖 모욕을 주었다. 그는 흔히 '지조 있는 사람'으로 불리며 포르투갈의 영웅 중에서도 가장 공경을 받는 사람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플로렌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Floren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플로렌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플로렌시우스, 플로렌씨오, 플로렌씨우스, 플로렌티오, 플로렌티우스.

 

 

플로렌시오 자료

성 플로렌티우스(또는 플로렌시오),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키리아쿠스(Cyriacus), 성 마르첼리누스(Marcellinus)와 성 파우스티누스(Faustinus)는 데키우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의 페루자(Perugia)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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