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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여자세례명 3가지

pieonane 2023. 6. 1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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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마리아 로사 몰라스 이 바베, 바울라 프라시네티, 욜렌타, 총 3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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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남자세례명 바르나바, 파리시오, 펠릭스, 포르투나토, 총 4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6월 11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3가지

 

 

 

 

6월 11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마리아 로사 몰라스 이 바베

  2. 바울라 프라시네티

  3. 욜렌타

 

6월 11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3가지

 

 

1. 마리아 로사 몰라스 이 바베

 

  • 가톨릭 성인 이름
    Mary Rose Molas y Vallve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설립자, 수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815-1876년

 

 

마리아 로사 몰라스 이 바베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싸, 로즈, 메리, 미르얌, 미리암.

 

 

마리아 로사 몰라스 이 바베 자료

성녀 마리아 로사 몰라스 이 바베(Maria Rosa Molas y Vallve)는 1815년 3월 24일 에스파냐 북동부의 타라고나(Tarragona) 근처 레우스(Reus)에서 태어나 로사 프란치스카 마리아 데 로스 돌로레스(Rosa Francisca Maria de los Dolore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레우스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는 매우 경건한 부모 밑에서 성장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을 물려받았다. 그녀가 17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그 지방에 퍼진 콜레라에 걸려 돌아가셨다.

그녀는 첫영성체 이후 오랫동안 종교적인 성소를 갈망했지만 아버지는 그녀가 집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 곁에 머물며 가사를 돕다가 26살이 된 1841년 1월에 레우스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공동체에 입회하였다.

그녀는 종교적 덕행뿐만 아니라 병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돌보는 데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또한 그녀는 분쟁 상태에 있는 이들의 중재자로도 활약했다.

1844년 레우스를 둘러싸고 양측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끝까지 도시에 남았고, 협상을 위해 전선 한가운데를 지나가며 마르틴 수르바노 바라스(Martin Zurbano Baras) 장군에게 포격 중단을 요구해 휴전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성녀 마리아 로사는 1849년 동료 자매들과 함께 토르토사(Tortosa)로 갔고, 그곳에서 지역 고아들과 노인들 그리고 정신 장애인들을 수용하는 시설인 ‘애덕의 집’ 운영 책임을 맡았다. 그녀가 애덕의 집에 처음 갔을 때 그곳에 수용된 이들이 너무나 소홀하게 방치되고 있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요양기관에 입원한 300여 명의 환자는 의학적으로 적절하고 적합한 처치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열악한 환경과 대우로 인해 ‘비참의 집’으로 불렸다. 그래서 그녀는 요양기관의 위생체계와 환자들을 돌보는 방법을 현대적으로 개선해 나갔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요양기관의 질서 체계를 확립해 나갔다.

그녀는 질병에 취약한 유아들을 격리 수용하고 의료체계의 표준화와 개선된 간호방식을 하나하나 만들어갔다. 그녀는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8년 동안 요양기관에 요구되는 그 시대의 의학적 요청을 하나하나 받아들여 개선해 나갔다. 그러자 토르토사 당국은 그녀에게 학교와 시립병원의 책임도 맡게 하였다.

그러던 중 성녀 마리아 로사는 자신이 입회한 공동체가 적법한 방식으로 설립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와 12명의 동료 수녀들은 관할권을 지닌 지역 주교의 뜻에 자신들을 맡겼고, 지역 주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위로를 주는 그녀의 헌신과 탁월한 행정 능력 그리고 개인적인 성덕을 보고 1857년 3월 14일 ‘위로의 수녀회’ 설립을 허락하였다.

성녀 마리아 로사는 이듬해 11월 14일 수녀회의 명칭을 ‘위로의 성모 수녀회’(Sisters of Our Lady of Consolation)로 명명하고, 하느님의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특별히 가난한 지역을 찾아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자비의 사도직을 수행하고자 했다. 일생을 그렇게 헌신한 성녀 마리아 로사는 1876년 6월 11일에 토르토사에서 선종하였다.

성녀 마리아 로사가 설립한 위로의 성모 수녀회는 1888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교황청 설립 수녀회로 승격되었고, 1901년 최종적으로 회헌을 인준받았다. 그녀는 1977년 5월 1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8년 12월 1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을 통해 성녀 마리아 로사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을 위로하였고, 위로하면서 온갖 위로의 원천이신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이 여인의 삶 자체가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를 선포하는 예언자적인 표시”라고 언급하였다.

많은 사람에게 ‘자비의 사도’이자 ‘위로의 사도’로 불리는 성녀 마리아 로사는 자신의 직무를 실용적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행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바울라 프라시네티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a Frassinetti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09-1882년

 

 

바울라 프라시네티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빠올라, 빠울라, 파올라, 파울라, 프라씨네티.

 

 

바울라 프라시네티 자료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이탈리아 제노바(Genova)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가정에서 자라났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슬픔 중에서도 가사를 돌보며 아버지와 사제가 된 네 오빠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기관지 관련 병이 심해져 오빠가 주임사제로 있던 시골 마을 귄토(Quinto) 본당으로 갔다. 여기서 건강을 회복하고 식복사로 일하던 그녀는 가난한 어린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연이어 수도성소를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녀 주위에는 뜻을 같이 하는 자매들이 많이 모였으므로 공동체를 세우려고 하였으나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나타났다. 그녀는 기도로써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는데 결국은 성공하였다.

1834년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제노바에서 가난한 아동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성 도로테아 수녀회'(Congregation St. Dorothea)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곧 이탈리아 전역뿐만 아니라 포르투갈과 브라질까지 진출하여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1863년에 성좌로부터 인가 받은 이 수녀회는 그리스도교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단체이다. 특히 설립자인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사람들의 내면을 읽고 이해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몇 차례의 뇌출혈로 인해 고생하다가 1882년 6월 11일 로마(Roma)에서 선종하였고, 시신은 로마의 성 도로테아 수녀회 모원에 있는 성 오노프리오(Onofrio)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녀는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3월 1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파올라 프라시네티(Paola Frassinetti)로도 불리는 성녀 바울라 프라시네티는 병든 이들의 수호성녀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욜렌타

 

  • 가톨릭 성인 이름
    Jolenta

  • 호칭 구분
    복녀

  • 신분과 직업
    과부,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235?-1298년 폴란드

 

 

욜렌타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욜란다, 욜렌따, 욜렌타, 졸란다, 졸렌따, 졸렌타, 헤레나, 헬레나, 헬렌.

 

 

욜렌타 자료

헝가리의 왕 벨라 4세(Bela IV)와 마리아 라스카리나(Maria Laskarina)의 딸인 욜렌타는 헝가리의 성녀 마르가리타(Margarita, 1월 18일)와 폴란드의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7월 24일)와는 자매 사이이다.

어린 나이에 그녀는 폴란드의 볼레스와프 5세(Boleslaw V)와 결혼한 언니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7월 24일)에게 보내져 그녀의 돌봄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곳에서 욜렌타는 칼리시(Kalisz)의 공작 볼레스와프와 결혼하여 세 명의 딸을 두었다.

결혼 생활 중에 그녀는 나라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했고, 수도원과 병원 등의 주요 후원자였다. 그녀의 남편 또한 그런 아내의 자선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함으로써 ‘신심 깊은 볼레스와프’(Boleslaw the Pious)라는 별칭을 얻었다.

1279년에 남편과 사별한 후 욜렌타는 클라라회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 후 그녀는 폴란드의 그니에즈노(Gniezno)에 새 수도원을 설립해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여생을 수도 생활에 전념하다 그곳에서 선종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27년 교황 레오 12세(Leo XII)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녀의 축일은 지역에 따라 6월 12일 또는 15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그녀는 또한 폴란드의 성녀 헬레나(Helena) 또는 욜란다(Yolanda)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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