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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남자세례명 15가지

피어나네 2023. 6.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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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라자로, 랄프, 레우프리도, 루피노, 마르티노, 메엥, 아폴리나리스 알로이시오 곤자가, 알바노, 에우세비오, 엔젤문도, 요한 릭비, 우르치세노, 치리아코, 테렌시오, 총 15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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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여자세례명 데메트리아, 마르시아,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6월 2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5가지

 

 

 

 

6월 21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라자로

  2. 랄프

  3. 레우프리도

  4. 루피노

  5. 마르티노

  6. 메엥

  7. 아폴리나리스

  8. 알로이시오 곤자가

  9. 알바노

  10. 에우세비오

  11. 엔젤문도

  12. 요한 릭비

  13. 우르치세노

  14. 치리아코

  15. 테렌시오

 

6월 2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5가지

 

 

1. 라자로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약인물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라자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라자로 자료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루가 복음 16장 19-31절에 언급된 예수님의 비유 중에 나오는 가난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중세시대에 널리 알려졌는데, 대개는 라자레토(병원), 라자로네(걸인) 그리고 성 라자로 수도회(나환자를 돌보는 수도회) 등의 명칭이 그에게서 유래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랄프

 

  • 가톨릭 성인 이름
    Ralph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866년 부르주

 

 

랄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라둘프, 라울, 랠프.

 

 

랄프 자료

라울(Raoul) 또는 라둘프(Radulf)로도 불리는 성 랄프는 프랑스 남서부 카오르(Cahors)의 라울 백작의 아들로서, 솔리냑(Solignac)의 베르트란드(Bertrand)로부터 교육을 받고 여러 수도원의 원장들을 도왔다. 그러나 수도자가 되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던 중 840년에 부르주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845년의 모(Meaux) 시노드를 비롯하여 수차례나 시노드를 개최하여 교회와 수도회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레우프리도

 

  • 가톨릭 성인 이름
    Leufrie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738년

 

 

레우프리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우프리두스, 뢰트프리도, 뢰프로이.

 

 

레우프리도 자료

성 레우프리두스(Leufridus, 또는 레우프리도)는 프랑스의 에브뢰(Evreux)에서 태어나 그곳의 성 타우리노 성당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잠시 고향에서 어린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보이던 그는 갑자기 세상을 등지고 자기 부정의 생활을 시도하였다.

어느 날 밤에 그는 몰래 집을 빠져나가 거지와 옷을 바꾸어 입고서 카일리 수도원으로 갔다. 그 후 그는 루앙(Rouen)으로 가서 성 시도니우스(Sidonius)의 지도를 받으며 은수생활을 하였는데, 루앙(Rouen)의 대주교인 성 안스베르투스(Ansbertus, 2월 9일)는 그를 위대한 인물로 간주하여 크게 존경하였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성 십자가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곳이 지금의 라 크로와-생-뢰프로(La Croix-Saint-Leufroy)이다. 그는 뢰프로이(Leufroy)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루피노

 

  • 가톨릭 성인 이름
    Ruf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루피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피누스.

 

 

루피노 자료

성 루피누스(또는 루피노)와 성녀 마르티아(Martia)는 교회에 대한 초기 박해 중 시칠리아(Sicilia) 섬 시라쿠사(Siracus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르티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50년 통에런

 

 

마르티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띠노, 마르띠누스, 마르티누스, 마틴, 말딩.

 

 

마르티노 자료

성 마르티누스(또는 마르티노)는 오늘날의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에 속한 림뷔르흐(Limburg) 지방 통에런의 제7대 주교로서 벨기에 북동부 에스베(Hesbaye) 사람들의 사도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메엥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경? 브르타뉴

 

 

메엥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인, 매앵, 메벤노, 메벤누스, 메앵, 메완.

 

 

메엥 자료

메엥, 마인, 메완(Mewan) 혹은 메벤누스(Mevennus)로 알려진 성 메엥은 각종 피부질환의 치유자로 명성을 떨쳤던 인물이다. 그는 주로 성인께 봉헌한 우물이나 개울물로 치유했으나, 특히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의 가엘에 있던 자기 수도원과 이웃한 샘물로 치유하였다. }

그 당시에 5천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는데,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브르타뉴 상부에 있는 체꽃류의 식물들은 성 마인의 풀이라고 부른다.

그는 원래 남 웨일스(Wales)의 그웬트 태생으로 성 삼손(Samson, 7월 28일)과 관련이 있었는데, 어떤 경로를 거쳐 가엘에 수도원을 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대자 가운데 성 아우스텔(Austell)이 있으며, 브르타뉴의 여러 지방은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 많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아폴리나리스

 

  • 가톨릭 성인 이름
    Apollinari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아폴리나리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뽈리나리스.

 

 

아폴리나리스 자료

성 키리아쿠스(Cyriacus)와 성 아폴리나리스는 아프리카의 순교자로 초기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들의 순교 행전은 현존하지 않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알로이시오 곤자가

 

  • 가톨릭 성인 이름
    Aloysius Gonzag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사, 신학생

  • 활동 연도와 지역
    1568-1591년

 

 

알로이시오 곤자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공사가, 루도비꼬, 루도비코, 루도비쿠스, 루이, 루이스, 루이지, 알로이시우스.

 

 

알로이시오 곤자가 자료

성 알로이시우스 곤자가(또는 알로이시오)는 1568년 3월 9일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Brescia)와 만토바(Mantova) 사이에 있는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 성(城)의 후작 페란테(Ferrante de Gonzaga)와 마르타 타나(Marta Tana di Santena)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부유했지만 다소 야만적이고 부도덕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앙심 깊은 어머니는 사랑으로 성 알로이시우스를 키우려고 노력하였다. 성 알로이시우스의 아버지는 그가 군인이 되기를 원했으나 그는 이를 원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의 가정 교사였던 피에르프란체스코(Pierfrancesco del Turco)는 성 알로이시우스의 영혼과 정신을 길러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577년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Felipe II, 1556-1598)의 부름을 받은 아버지는 성 알로이시우스를 피렌체(Firenze)의 대공 프란치스코 데 메디치(Francesco de Medici) 궁의 시동(侍童)으로 보냈다. 그리고 2년 후인 1579년에 성 알로이시우스와 그의 동생 로돌포(Rodolfo)를 만토바(Mantova)의 공작에게 보냈다.

여기서 사제직의 꿈을 키우던 성 알로이시우스는 1580년 7월 여행 도중 들른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 추기경을 만나 그에게 직접 첫영성체를 받았다.

1581년 오스트리아 황후 마리아가 마드리드(Madrid)로 돌아갈 때 곤자가 가문도 함께 갔고, 성 알로이시우스는 펠리페 2세 궁정에서 왕자 돈 디에고(Don Diego)의 시동으로 지내면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 후 왕자가 사망하자 1583년 8월 15일 성 알로이시우스는 예수회에 입회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며 일단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원하는 대로 하라고 아들을 설득했다. 이탈리아로 돌아가자 아버지는 온갖 방법으로 그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1585년 11월 25일 로마에 있는 예수회에 입회한 성 알로이시우스는 밀라노(Milano)의 예수회 분원에서 몇 달을 지낸 후 만토바에서 수련을 받았다. 이듬해 2월 15일 아버지가 사망하여 잠시 집에 들러 모든 일을 정리하고 돌아온 후 학업에 정진하였다. 그는 나폴리(Napoli)에 머물면서 형이상학을 공부하였고, 예수회 로마 학원에서 철학을 배웠다.

1587년 11월 25일 첫 서원을 한 뒤 곧바로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를 가르치던 교수 중에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 바스케스(G. Vazquez, 1549-1604)가 있었으며, 훗날 성인이 된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노(Robertus Bellarmino, 9월 17일)가 성 알로이시우스의 영성 지도 신부였다.

성 알로이시우스가 신학을 공부한 지 4년째 되던 1590년 로마 전역에 페스트가 퍼졌다. 그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들을 보살피고 그들이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시켰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병자들을 간호하던 성 알로이시우스는 이듬해 3월 초 자신도 페스트에 전염되어 같은 해 6월 21일 23세의 젊은 나이로 선종했다. 그의 시신은 로마의 성 이냐시오(Ignatius) 예수회 성당에 안치되었다.

성 알로이시우스는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모든 일을 잘 처리하는 뛰어난 학생이었다. 긍정적이고 관찰력이 탁월했던 그는 철학과 신학의 전 과목에서 그를 가르쳤던 교수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앙 안에서 어려서부터 정결을 지키며 살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있었고, 어떠한 반대에도 그 뜻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특별히 정결에 대한 은사를 받은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는 수도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악습들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으며, 자신의 자존심과 이기심을 이기기 위한 수련을 끊임없이 실천했다.

성 알로이시우스의 시성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는 1605년 10월 19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시복되었고, 1726년 12월 3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로부터 3년 후 성 알로이시우스는 젊은이와 신학생들, 특별히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을 잡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주위에 백합화나 해골 등과 함께 그려지곤 한다. 백합은 정결을 상징하는 꽃으로 특별히 성 알로이시우스가 받은 정결의 은사를 상징하고, 해골은 회개와 보속의 삶을 의미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루이지 곤자가(Luigi Gonzaga)로 불리는데, 이탈리아 이름인 루이지의 라틴어 형식이 알로이시우스이기 때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알바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lb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세기경 마인츠

 

 

알바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바누스, 알반, 알비노, 알비누스.

 

 

알바노 자료

성 알바누스(Albanus, 또는 알바노)는 그리스인 사제로서 성 우르수스(Ursus)와 함께 그리스 남부 낙소스 섬에서 이탈리아 밀라노(Milano)로 여행을 하였는데, 이때는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가 아리우스파(Arianism)와 격렬한 싸움을 하던 때였다. 암브로시우스는 이 두 사람을 환대하고 정통교회 수호를 위하여 노력할 것을 당부하는 한편, 알프스 건너편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헌신할 것을 권하였다.

이에 그들은 쾌히 승낙하였으나 성 우르수스는 발레다오스타(Valle d'Aosta)에서 순교하고, 알바누스는 마인츠로 가서 이단들을 상대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후눔에서 아리우스파의 자객들에 의해 목이 잘려 숨졌다.

마인츠 시민들은 성 알바누스를 위하여 성당을 세웠고, 그의 유해가 처음 묻혔던 곳의 지명을 알반스베르그로 바꾸기까지 하였다. 그는 알비누스(Albinus) 또는 알반(Alban)으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에우세비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seb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79년 사모사타

 

 

에우세비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세비오스, 에우세비우스.

 

 

에우세비오 자료

정통 교리의 강력한 옹호자이며 사모사타의 주교이던 성 에우세비우스(또는 에우세비오)는 361년의 안티오키아 시노드(Synod of Antiochia)에 참석하여 멜레티우스(Meletius)를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선출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대부분의 투표자들이 아리우스파(Arianism)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멜레티우스가 선출될 것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멜레티우스가 정통파임이 명백해지자 아리우스파 황제인 콘스탄티우스는 에우세비우스에게 시노드(Synod)의 선거권 행사를 포기하도록 요구하였다. 그가 완강히 거부하자 황제는 그의 오른손을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하였다. 끝내 그가 거부하자 황제는 그의 용기에 크게 감동하여 그를 석방하였다.

그 후 에우세비우스는 약 2년 동안 정통파(가톨릭)와 아리우스파간의 화해를 모색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372년 그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Caesarea) 주교로 성 바실리우스(Basilius)를 선출하는데 큰 몫을 하였고, 이때부터 이 두 사람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또 에우세비우스는 시리아와 팔레스티나(Palestina)를 두루 다니면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발렌스 황제에게 항거하라고 격려하다가 마침내 374년 황제에 의하여 트라스로 유배를 갔다. 378년 발렌스 황제가 죽자 그는 사모사타로 돌아왔고, 다음 해에 돌리카에서 운명하여 풍운아의 일생을 마쳤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엔젤문도

 

  • 가톨릭 성인 이름
    Engelmun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선교사

  • 활동 연도와 지역
    +720년 벨젠

 

 

엔젤문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엔겔문도, 엔겔문두스, 엔젤먼드, 엔젤문두스, 엔젤문드.

 

 

엔젤문도 자료

성 엔겔문두스(Engelmundus, 또는 엔젤문도)는 영국 사람으로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젊은 나이에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 후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그의 성덕과 학덕으로 인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생활하고 있던 수도원의 원장으로 피선되었으나, 선교사에 대한 열망을 이기지 못하여 사임하고 북 네덜란드와 프리슬란트(Friesland)의 선교사로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 후에는 벨젠에 근거지를 두고 시민들에게 순회 설교를 하였다. 그는 성인 또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으나 그 도시에서 유행하던 열병에 걸려 거룩한 일생을 마쳤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요한 릭비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Rigb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평신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70?-1600년 영국

 

 

요한 릭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리그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릭비 자료

성 요한 릭비(Joannes Rigby)는 1570년경 영국 잉글랜드 랭커셔(Lancashire)에서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성장하면서 집안에서 일어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간의 갈등 때문에 많은 고민과 고통을 당했다.

그러던 중 서더크(Southwark)의 클링크 감옥(The Clink)에 갇혀있던 작은 형제회의 성 요한 존스(Joannes Jones, 7월 12일)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성 요한 릭비는 존스 신부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도 걷잡을 수 없는 생활에 빠져들었다. 여러 명의 배교자를 회개시키는 활동을 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자기 부친도 들어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국교회의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여왕의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는 가톨릭을 믿고 있음이 드러나자 자신이 가톨릭 신자임을 밝히고 런던의 뉴게이트(Newgate) 감옥에 갇혔다. 그는 두 번이나 자기 뜻을 철회할 기회를 얻었지만, 그때마다 단호히 거절했다. 판사가 반역죄로 유죄를 선고하자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라고 당당히 말했다.

1600년 6월 21일, 자신이 처형되는 날에는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태어난 이래 이처럼 기쁜 일은 없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그는 서더크의 네킹어(Neckinger) 강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부근(St. Thomas Waterings)에서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사형 집행자에게 “내 죽음에 가담한 당신과 다른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한다.”라며 그 징표로 간직하라고 작은 금 조각 하나를 주었다.

성 요한 릭비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일인 6월 21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우르치세노

 

  • 가톨릭 성인 이름
    Urcisce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216년 파비아

 

 

우르치세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우르치세누스, 우르치셰노, 우르치셰누스, 우르키스케노, 우르키스케누스.

 

 

우르치세노 자료

성 우르키스케누스(또는 우르치세노)는 183년부터 이탈리아 파비아 교구의 주교로서 험난한 박해의 시대에 교구를 이끌어나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치리아코

 

  • 가톨릭 성인 이름
    Cyria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치리아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치리아꼬, 치리아꾸스, 치리아쿠스, 키리아코, 키리아쿠스.

 

 

치리아코 자료

성 키리아쿠스(또는 치리아코)와 성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는 아프리카의 순교자로 초기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들의 순교 행전은 현존하지 않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테렌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Terenc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 이코니움

 

 

테렌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르디오, 떼렌씨오, 떼렌씨우스, 테런스, 테렌시우스, 테렌씨오, 테렌씨우스, 테렌티오, 테렌티우스, 테르티오, 테르티우스.

 

 

테렌시오 자료

이코니움(오늘날 터키의 코니아, Konya)의 주교인 성 테렌티우스(Terentius, 또는 테렌시오)는 교회의 초기 주교 중 한 명이다. 일부 현대 학자나 성인전 작가들은 그를 사도 바오로(Paulus)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16장 22절에서 언급한 필기자 '테르티우스'(Tertius, 또는 테르티오)와 동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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