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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여자세례명 2가지

피어나네 2023. 7. 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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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순니바, 프리스킬라, 총 2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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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8일 남자세례명 그림발도, 라이문도, 아우스피치오 (+475년 프랑스), 아우스피치오 (+130년경 독일), 아퀼라, 에우제니오 3세, 칠리아노, 콜로만노, 토트나노, 프로코피오, 하드리아노 3세, 총 1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7월 8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2가지

 

 

 

 

7월 8일 여자세례명 목록

 

  1. 순니바

  2. 프리스킬라

 

7월 8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2가지

 

 

1. 순니바

 

  • 가톨릭 성인 이름
    Sunniv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0세기?  노르웨이

 

 

순니바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순니파.

 

 

순니바 자료

아일랜드 왕의 딸인 성녀 순니바는 이교도 왕이 쳐들어와 결혼을 강요하자 이를 피하고자 일단의 수행원들과 함께 배를 탔으나 배의 키나 선원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 노르웨이 연안의 셀리에(Selje) 섬에 상륙한 뒤 동굴 속에서 생활하였다. 이곳에서 일행들과 함께 기도와 고행으로 일생을 살다가 모두 선종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두 명의 농부가 노르웨이 중남부의 트론헤임(Trondheim)으로 가던 길에 셀리에 섬에 닻을 내리고 밤을 지새우다가 신비한 불빛을 보고 그들의 유해를 찾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노르웨이의 왕 올라프 트리그바손(Olaf Tryggvason)은 수색대와 더불어 주교를 파견하여 동굴을 파헤치니, 그때까지 성녀 순니바의 시신이 썩지 않고 생전의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고 한다.

왕은 그들을 위해 성당을 세워주었고, 그들의 유해는 베르겐(Bergen)의 주교좌성당으로 운구하여 안장하였다. 셀리에 섬의 주민들은 지금도 성녀 순니바를 공경하고 있다. 성녀 순니바는 아일랜드 이름인 순니파(Sunnifa)의 라틴어 이름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프리스킬라

 

  • 가톨릭 성인 이름
    Priscill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

 

 

프리스킬라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브리스킬라, 쁘리스까, 프리쉴라, 프리스까, 프리스낄라, 프리스카, 프리실라.

 

 

프리스킬라 자료

폰토스(Pontus, Pontos) 출신의 유다인으로 천막 만드는 일을 했던 성 아퀼라(Aquila)와 로마의 귀족 출신인 성녀 프리스킬라는 부부 사이이다. 성녀 프리스킬라는 성 아퀼라와 우연히 만나 그의 인품과 신앙에 이끌려 결혼을 했다. 그런 부부에게 위기가 닥쳐왔는데,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정치적 이유로 모든 유다인의 거주 금지령을 내려 로마를 떠나야만 했다(사도 18,2). 그들은 당시 지중해 연안의 유명한 항구 도시이자 국제도시인 코린토스(Corinthos, 코린토)로 갔다. 그곳에서는 민족이나 인종에 따른 차별 없이 생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던 중 코린토스에서 복음을 선포하던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를 만나 친분을 맺게 되었다. 마침 성 바오로와 생업이 같아 함께 지내며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이들 부부는 당시 아테네에서의 선교 활동에 별다른 성과 없이 코린토스로 돌아온 성 바오로를 그들의 집에 모시고 살면서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당시 성 바오로는 많은 유다인들에게 공격받는 처지라 그와 함께 있다는 것은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재물을 봉헌해 사도의 활동을 돕고, 그들의 집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이 모이는 가정 교회(Domus Ecclesiae)로 사용했다.

날이 갈수록 유다인들의 위협이 증가하자 사도 성 바오로는 코린토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성 아퀼라와 성녀 프리스킬라도 그를 따라나섰다. 그들은 바오로 사도를 따라 에페수스(Ephesus, 에페소)로 가서 그곳에 머물렀다.

사도 성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에게 다시 오겠습니다.”(사도 18,21)라는 작별 인사를 하고 에페소를 떠나 예루살렘을 거쳐 안티오키아로 돌아갔다. 에페수스에서도 이들 부부의 집은 가정 교회이자 교리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한 번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으로 성경에 정통한 아폴로(Apollos)라는 유다인이 에페소에 도착했다. 그는 이미 주님의 길을 배워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성 요한(Joannes, 6월 24일)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설교하자 성녀 프리스킬라와 성 아퀼라는 그의 말을 듣고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하느님을 길을 정확히 설명해 주었다(사도 18,24-26).

성경이 전해주는 대로 성녀 프리스킬라는 남편인 성 아퀼라와 함께 학식이 높았던 사람까지 가르치는 교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들 부부는 에페수스의 가정 교회 안에서도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특히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성이 종교적으로 무엇인가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성녀 프리스킬라가 초대교회의 선교 활동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마지막에 성 아퀼라와 성녀 프리스킬라는 로마로 돌아갔다. 사도 성 바오로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그들의 공덕을 다음과 같이 칭송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나의 협력자들인 프리스카와 아퀼라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하여 주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들의 모든 교회가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도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로마 16,3-5)

이를 통해 성녀 프리스킬라와 성 아퀼라 부부가 로마의 교회 공동체 내에서도 중요한 봉사를 수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전히 그들의 집이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가정 교회로 사용되고 있음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로마 순교록은 7월 8일 목록에서 그들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로마에서 장렬하게 순교했다고 한다. 가톨릭교회에서 성 아퀼라와 성녀 프리스킬라의 축일을 7월 8일에, 동방 정교회에서는 2월 13일에 함께 기념하고 있다.

다른 정교회에서는 성 아퀼라 홀로 소아시아 지역의 주교로서 7월 14일에 기념한다. 성녀 프리스킬라는 사도행전(18,2.18.26)에서 그렇게 불리지만 사도 성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서는 프리스카(Prisca)로 불리고 있다(로마 16,3; 1코린 16,19; 2티모 4,19)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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