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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천주교 여자세례명

pieonane 2023. 8. 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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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세례명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는 베네데따, 캄비아조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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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여자세례명 목록

 

  1.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3월 21일)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천주교 여자세례명

 

 

1.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 세례명 축일
    3월 21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Benedetta Cambiagio Frasinello

  • 신분과 직업
    설립자, 수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791–1858년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네데따, 캄비아조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이야기

성녀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는 1791년 10월 2일 이탈리아 제노바(Genova)의 란가스코(Langasco)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고, 이는 그녀의 믿음 생활에 깊숙이 뿌리 내렸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아직 어린 소녀였을 때 파비아(Pavia)로 이주해 정착하였다. 성녀 베네데타는 20살 되던 해에 신비한 체험을 하고, 일생을 기도와 속죄의 삶을 살며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봉헌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1816년 조반니 프라시넬로(Giovanni Frassinello)와 결혼하고 2년 동안 함께 지냈다. 

1818년 남편 조반니는 부인의 거룩한 삶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각자 ‘형제와 자매로서’ 순결하게 지낼 것을 약속하고 대장암으로 투병 중인 성녀 베네데타의 여동생 마리아(Maria)를 간호해 주기로 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교회 역사상 독특하고 영적인 부모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1825년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후 남편 조반니는 성 히에로니무스 에밀리아니(Hieronymus Aemiliani, 2월 8일)가 설립한 ‘소마스카(Somascha)의 성직 수도회’에 입회했고, 성녀 베네데타는 카프리올로(Capriolo)의 우르술라회에 들어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을 위해 봉헌하였다. 

그녀는 일 년 후 건강상의 문제로 파비아로 돌아왔지만, 성 히에로니무스 에밀리아니에 의해 기적적으로 완전한 치유를 받았다.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주교의 허락하에 어린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였다. 성

녀 베네데타는 도움이 필요했으나 그녀의 아버지는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파비아의 토시(Tosi) 주교는 조반니에게 소마스카의 성직 수도회를 나와 성녀 베네데타를 도와주도록 권고하였다. 둘은 서로에게 온전한 순결을 맹세하고 도시의 가난하고 소외된 소녀들을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생활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들의 교육적인 활약은 파비아에 큰 도움이 되었고, 성녀 베네데타는 여성 최초로 이와 관련된 일을 수행하여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공교육의 주창자(옹호자)’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녀는 젊은 자원봉사 여성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들의 생활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 나중에 교회의 승인을 받았다. 

성녀 베네데타는 교육 과정 중에 교리교육과 요리와 바느질 같은 유용한 기술도 함께 가르쳐서 학생들 스스로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도록 변화시키고 동시에 안정된 가족을 이루도록 돕고자 했다.

성녀 베네데타의 이러한 활동은 당시에 파격적일 뿐만 아니라 선구적이었기 때문에 유력한 인사들로부터 반대를 받았고 몇몇 성직자들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1838년에 자신이 만든 조직을 파비아의 주교에게 넘기고, 조반니와 5명의 동료와 함께 제노바 북쪽의 론코 스크리비아(Ronco Scrivia)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비아에서 했던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녀 베네데타는 ‘섭리의 베네딕토 딸들 수도회’(Benedictine Sisters of Providence)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수도회의 규칙에서 어린 소녀들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였다. 

또한 가난과 애덕을 통해 하느님 사랑과 섭리를 무한히 신뢰하고 자신을 포기할 수 있는 정신을 불어넣었다. 수녀회는 빠르게 성장했고, 성녀 베네데타는 선종할 때까지 수녀회의 발전을 이끌었다. 1858년 3월 21일 론코 스크리비아에서 삶을 마감한 성녀 베네데타는 초자연적 모성애의 모범이었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용기와 믿음의 훌륭한 본보기였다.

오늘날 섭리의 베네딕도 딸들 수도회는 이탈리아, 에스파냐, 부룬디(Burundi), 코트디부아르(Cote d'Ivoire), 페루, 브라질 등에 퍼져 있다. 그들은 어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나약한 이들을 돌보고 있다.

설립자인 성녀 베네데타는 제노바와 밀라노 사이의 보게라(Voghera)에도 수녀원을 세웠는데, 그녀가 삶을 마감하고 40년이 흐른 뒤 그곳의 주교는 그 수녀원을 나머지 수녀회와 분리하여 설립자를 공경하는 의미에서 ‘하느님 섭리의 베네딕토 수녀회’(Benedictines of Divine Providence)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녀는 참된 아내이자 수도회의 설립자였다. 성령께서 그녀를 이끌어 결혼 생활에서 교육과 종교적 봉헌 생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였다. 또한 성녀 베네데타는 관대한 남편의 도움으로 젊은 여성들을 위한 학교와 수도회를 세울 수 있었다.

그녀는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사회’에서 여성들이 가정을 형성하고 완전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고 증진한 여성 교육의 개척자였다. 성녀 베네데타는 1987년 5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2년 5월 19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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