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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남자세례명 17가지

피어나네 2023. 9. 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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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루피노, 마뇨, 마르첼로 (신부), 마르첼로 (주교), 막시모, 모세, 보니파시오 1세, 비탈리코, 실바노, 암미아노, 오체아노, 울탄, 율리아노, 젠틸리스, 카스토, 타멜, 테오도로, 총 17분 목록이에요.

 

9월 4일이 영명축일인 남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9월 4일 여자세례명 가타리나, 로사, 로살리아, 이다, 칸디다, 총 5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9월 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7가지

 

 

 

 

9월 4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루피노

  2. 마뇨

  3. 마르첼로 (신부)

  4. 마르첼로 (주교)

  5. 막시모

  6. 모세

  7. 보니파시오 1세

  8. 비탈리코

  9. 실바노

  10. 암미아노

  11. 오체아노

  12. 울탄

  13. 율리아노

  14. 젠틸리스

  15. 카스토

  16. 타멜

  17. 테오도로

 

9월 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7가지

 

 

1. 루피노

 

  • 가톨릭 성인 이름
    Ruf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소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루피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피누스.

 

 

루피노 자료

성 루피누스(또는 루피노)와 성 실바누스(Silvanus) 그리고 성 비탈리쿠스(Vitalicus)는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함께 소아시아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안키라(Ancyra, 오늘날 터키의 앙카라 Ankar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나이 어린 소년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뇨

 

  • 가톨릭 성인 이름
    Mag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그누스, 마누스, 망누스.

 

 

마뇨 자료

성 마뇨, 성 카스투스(Castus), 성 막시무스(Maximus)를 비롯해서 모두 17명의 신자들이 같은 날 소아시아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안키라(Ancyra, 오늘날 터키의 앙카라 Ankar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마르첼로 (신부)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8년 리옹

 

 

마르첼로 (신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신부) 자료

177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 때 리옹에서는 성 포티누스(Pothinus, 6월 2일) 주교와 수많은 신자들이 대량으로 학살되었는데, 이때 리옹의 사제이던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샬롱쉬르손(Chalon-sur-Saone)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를 숨겨준 이는 이교인이었다. 그 이교인이 마르스(Mars), 메르쿠리우스(Mercurius) 그리고 미네르바(Minerva) 신상 앞에 향을 피우고 기도하자 성 마르첼루스는 그를 설득하여 개종시켰다.

한 번은 성 마르첼루스가 여행하던 중에 집정관 프리스쿠스를 만났는데, 그가 자기 집에 와서 기도해 주기를 청하자 그를 따라갔다. 그런데 프리스쿠스가 예식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구경꾼들이 갑자기 폭도로 변하여 성 마르첼루스를 나무 위에 묶었다.

그리고 집정관은 사투르누스(Saturnus) 신상 앞에 제사를 드리라고 강요하였다. 성 마르첼루스가 이를 거절하자 형리들은 그를 손(Saone) 강변의 땅에다 목만 나오게 하여 묻어두었다. 그는 3일 동안 갈증과 뜨거운 태양으로 말미암아 순교하였다.

성 발레리아누스(Valerianus)는 이때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탈출하였지만, 오툉(Autun) 교외 투르뉘(Tournus)에서 체포되어 참수형을 받고 치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마르첼로 (주교)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트리어

 

 

마르첼로 (주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주교) 자료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0세기로, 그는 아마도 독일 트리어나 오늘날의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에 속한 림뷔르흐(Limburg) 지방의 통에런(Tongeren)의 주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막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막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자료

성 마뇨(Magnus), 성 카스투스(Castus),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를 비롯해서 모두 17명의 신자들이 같은 날 소아시아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안키라(Ancyra, 오늘날 터키의 앙카라 Ankar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모세

 

  • 가톨릭 성인 이름
    Mos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구약인물, 예언자, 율법학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모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모이세스, 모제스.

 

 

모세 자료

성 모세(Moyses)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당시 백성의 지도자요 예언자이자 율법의 중개자였다. 그의 절대적 권위는 구약과 신약성경 시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의 율법을 ‘모세법’이라고 부르는 전통이 철저히 지켜지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구약성경의 모든 신학이 흘러나오는 가장 중요한 원천이 ‘이집트 탈출’과 ‘시나이산 계약’이라고 한다면, 주 하느님께서 모세를 선택하여 이 해방 사건과 계약의 중개자로 삼으신 것이 바로 이스라엘 안에서 모세가 가지는 절대적 권위의 근거가 된다.

출생에서부터 특별한 일화를 남기고 있는 모세는, 비록 모세오경 외의 구약성경에서 그 이름이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율법 중심의 이스라엘 사회에서 계약과 율법의 중개자로서의 그 독보적인 권위는 확고하다.

탈출기 1장에 의하면 모세는 불어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위협을 느낀 이집트의 왕 파라오가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1,22)라고 명령한 시대에 태어났다.

그는 레위 지파에 속한 아므람과 요케벳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의 누이는 미르얌이었고, 형제로는 아론이 있었다(탈출 6,16-20. 7,7. 15,20; 민수 26,59; 1역대 23,12-14). 모세의 부모는 파라오의 눈을 피해 석 달 동안 모세를 숨겨 기르다가, 더는 숨겨 둘 수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파라오의 딸인 공주가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기를 안아 들자, 이를 지켜보던 아기의 누이(미르얌)는 아기의 친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하여 아기는 다시 어머니의 품에서 자라다가 파라오의 딸에게로 보내졌다.

공주를 그 아기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탈출 2,10) 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이집트 궁중 안에서 성장하게 되었다(탈출 2,1-10 참조).

청년이 된 모세는 어느 날 이집트 사람 하나가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한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그 이집트인을 죽이고 몰래 모래 속에 묻어 버렸는데, 그 일이 탄로난 것을 알고는 파라오를 피해 미디안 땅으로 도망갔다(탈출 2,14-15).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치포라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장인 르우엘(또는 이트로라고도 함, 탈출 2,18-21. 3,1. 4,18. 18,1)의 집안에서 양 떼를 치는 목자 생활을 하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떨기나무에 불꽃이 솟아오르는 데도 타지 않는 떨기 가운데 신비로이 나타나신 주 하느님께서는 “나는 네 아버지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극심한 노역에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고, 그들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하셨다. 또한 조상들과 맺은 계약을 기억하시며 모세가 이집트의 손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해내어 당신이 약속하신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갈 것을 명하셨다(탈출 3,1-12 참조).

주 하느님께 소명을 받고 파견된 모세는 이집트의 왕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광야에서 주님을 위한 축제를 지낼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말을 전했지만, 파라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심한 노역을 부과해 모세는 같은 민족들로부터도 원성을 듣게 되었다.

모세는 파라오의 고집을 꺾기 위해 주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이집트 땅에 열 가지 재앙을 선포하였다.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까지 모조리 치는 열 번째 재앙에 굴복한 파라오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 주었다.

모세는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지만, 곧 이집트 군대의 추격을 받았다. 이때 앞을 가로막던 갈대 바다가 갈라져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서 바다를 건너고, 뒤쫓던 이집트 군대는 갈라진 바다 한가운데서 다시 합쳐지는 물에 휩쓸려 몰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탈출 5-14장 참조).

구약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한 지 석 달째 되는 바로 그날, 시나이 광야에 이르게 되었다(탈출 19,1). 주 하느님은 모세를 산 위로 부르시고 그를 중개자로 삼아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삼아 계약을 맺으셨는데, 여기에서 모세의 특별한 위치가 분명히 드러났다.

모세는 산을 오르내리며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해 주었다. 모세가 백성 앞에 내놓은 하느님의 말씀은 곧 계약의 말씀으로서 주된 내용은 십계명이었다.

모세가 하느님의 이 모든 말씀과 법규들을 백성에게 전하자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환호하며 주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히 따라 살 것을 서약하고, 모세는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 맺는 계약을 위해 열두 개의 기둥을 세우고 제사를 드렸다(탈출 24장). 이로써 주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주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다.

이집트를 탈출해 해방의 기쁨을 맛본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보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해 여행을 시작할 때, 광야에서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세에게 자신들을 굶겨 죽이려고 이집트 땅에서 데려 내왔느냐는 식으로 대들었고, 모세는 백성의 불평을 주 하느님께 아뢰어 만나와 메추라기와 물을 얻었다(탈출 15,22-17,7).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 생활을 하면서 단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동적인 위치에만 있지 않고, 하느님의 법이 곧 삶의 길임을 백성에게 가르쳤고,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세우는 등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나면 그들을 맹렬히 비난하면서도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분노를 풀어드리기 위한 기도를 끊임없이 바쳤다(탈출 32장 참조).

이렇게 모세는 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면서 시나이산에서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로이 탄생하게 하는 중개자가 되었다.

40년의 광야 생활에서 한편으로는 하느님 백성의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지도자로서 백성에게 하느님의 길을 가르치고 그들의 모함과 질시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죄를 일깨우고 하느님께 중재의 기도를 드렸고, 다른 한편으로 광야의 여정에서 만나는 이민족과의 전투에서는 군사 지도자로서 백성을 지휘하여 앞길을 터 나갔다.

40년에 걸친 광야의 여정이 끝나고 예리고 맞은편 느보 산의 피스가 꼭대기에서 주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요르단강 건너편에 자리한 약속의 땅을 보여주셨다. 이때 모세의 나이는 120세였다. 그러나 모세는 그 강을 건너가지는 못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신명 3,27. 34,1-12).

성경은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가나안 땅 정찰 후에 하느님의 약속을 불신하고 저버렸던 백성들을 올바로 인도하지 못한 탓(민수 14,28-35; 신명 1,37)과 둘째로 므리바에서 하느님의 말씀 그대로 실행하여 그분 영광을 드러내지 못한 탓(민수 20,12)이 그것이다.

이렇게 모세를 포함해서 이집트에서 해방을 직접 몸으로 경험한 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생을 마감하고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만 남게 되었는데, 모세와 이집트를 탈출한 세대에게 허락된 몫은 자신들이 아닌 그 후손들이 약속의 땅의 풍요함을 누리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주님의 종 모세는 모압 땅에서 죽어 벳 프오르 맞은쪽 골짜기에 묻혔는데, 오늘날까지 그가 묻힌 곳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신명 34,6).

그로 인해 그의 무덤은 전례적인 장소가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모세가 죽기 전에 고별사인 모세의 노래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가르치고(신명 32장),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는(신명 33장) 부분은 모세에 관한 성경 내용 중 가장 아름다운 에필로그를 이루고 있다.

모세오경을 끝맺으며 모세에게 주어진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이다.”(신명 34,10)라는 찬사는 모세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이룬 모든 위업과 놀라운 대업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 모세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상징인 십계명 판을 들고 있거나 탄생과 소명, 이집트 탈출과 광야에서 있었던 여러 일화와 기적 이야기와 함께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모세 대리석 조각을 비롯해 많은 조각과 회화에서 모세는 머리에 두 개의 뿔이 난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는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역의 결과이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눈 후 십계명 판을 받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고, 백성들은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을 정도였다(탈출 34,29-30).

여기서 모세의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는 광채를 엉뚱하게 ‘모세의 뿔 달린 얼굴’(cornutam Moysi faciem)로 오역하면서, 후대의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모세의 머리에 두 개의 뿔을 붙이는 전통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뿔을 그리는 대신 모세의 머리에서 마치 뿔처럼 생긴 광채가 빛나는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보니파시오 1세

 

  • 가톨릭 성인 이름
    Boniface 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422년

 

 

보니파시오 1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보니파시우스, 보니파키오, 보니파키우스, 보니파티오, 보니파티우스, 보니페이스.

 

 

보니파시오 1세 자료

이탈리아 로마(Roma) 태생의 사제였던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418년 12월 28일 테오도라 대성전에서 성 조시무스(Zosimus, 12월 26일)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의 선출에는 큰 소란이 따랐다. 일단의 반대파들이 라테라노(Laterano) 대성전을 점거하고, 대부제인 에우랄리우스를 교황으로 선출한 바로 그 다음 날 그가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황제 호노리우스는 두 번의 회의를 소집하여 성 보니파티우스의 적법성을 가려내고, 에루랄리우스와 그의 일파를 제거하였다.

성 보니파티우스는 펠라기우스주의에 반대하던 선임자들의 정책을 고수하였고, 동로마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를 설득하여 일리리쿰(Illiricum)을 서방교회 관할권으로 되돌아오게 하였다.

펠라기우스주의를 반박하는 여러 편의 글을 썼던 히포(Hippo)의 주교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를 공개적으로 지지함으로써 혼란스럽던 교회를 끝까지 잘 지켰다. 그는 자신이 건축한 성녀 펠리치타 카타콤바의 경당에 안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비탈리코

 

  • 가톨릭 성인 이름
    Vitali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소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비탈리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딸리꼬, 비딸리꾸스, 비탈리쿠스.

 

 

비탈리코 자료

성 루피누스(Rufinus)와 성 실바누스(Silvanus) 그리고 성 비탈리쿠스(또는 비탈리코)는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함께 소아시아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안키라(Ancyra, 오늘날 터키의 앙카라 Ankar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나이 어린 소년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실바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ilv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소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실바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실바누스, 씰바노, 씰바누스.

 

 

실바노 자료

성 루피누스(Rufinus)와 성 실바누스(또는 실바노) 그리고 성 비탈리쿠스(Vitalicus)는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함께 소아시아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안키라(Ancyra, 오늘날 터키의 앙카라 Ankar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나이 어린 소년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암미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mmi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10년

 

 

암미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암미아누스.

 

 

암미아노 자료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성 오케아누스(Oceanus), 성 암미아누스(또는 암미아노)와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동로마 제국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화형대 위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오체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Oce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10년

 

 

오체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오체아누스, 오케아노, 오케아누스.

 

 

오체아노 자료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성 오케아누스(또는 오체아노), 성 암미아누스(Ammianus)와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동로마 제국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화형대 위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울탄

 

  • 가톨릭 성인 이름
    Ult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57년 아르드브라칸

 

 

울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울딴.

 

 

울탄 자료

성 울탄은 아르드브라칸의 주교인 듯하며 달 콘추베르 지방에서 사목생활을 하였다. 그는 특히 어린이에게 지극한 정성을 쏟았는데, 주로 가난한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에 헌신하였다.

성녀 브리지다(Brigid)의 찬미가 ‘우리 섬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성 울탄을 기리는 노래이다. 아일랜드에는 이런 말이 전해온다.

“성 울탄의 오른 손에는 어린이들을 먹이는 양식이 있고, 왼손에는 약탈자들을 내좇는 힘이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율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Jul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10년

 

 

율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율리아누스, 줄리안, 줄리언.

 

 

율리아노 자료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성 오케아누스(Oceanus), 성 암미아누스(Ammianus)와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는 동로마 제국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화형대 위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젠틸리스

 

  • 가톨릭 성인 이름
    Gentili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340년 마텔리카

 

 

젠틸리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겐틸리스.

 

 

젠틸리스 자료

이탈리아 안코나(Ancona)의 마텔리카 출신인 성 겐틸리스(또는 젠틸리스)는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서원한 뒤 알베르나 산으로 파견되어 그곳에서 두 번이나 수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극도의 고독과 침묵을 사랑하였다.

그 후 그는 이집트 선교사로 파견되었으나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왔다가 다시 페르시아로 가는 베네치아(Venezia) 대사를 따라 아라비아로 가던 중에 코마로에서 중병에 걸렸다.

그러나 그들은 시나이 사막에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 경당을 순례하였는데, 어느 날 하느님의 신비스런 권능에 의하여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탈리아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트레비소(Treviso) 지방을 돌며 설교하다가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카스토

 

  • 가톨릭 성인 이름
    Cas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카스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스또, 가스뚜스, 가스토, 가스투스, 카스투스.

 

 

카스토 자료

성 마뇨(Magnus), 성 카스투스(또는 카스토), 성 막시무스(Maximus)를 비롯해서 모두 17명의 신자들이 같은 날 소아시아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안키라(Ancyra, 오늘날 터키의 앙카라 Ankar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타멜

 

  • 가톨릭 성인 이름
    Thame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5년

 

 

타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따멜.

 

 

타멜 자료

성 타멜은 이교도의 사제였으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동로마 제국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그의 여자 형제를 포함한 동료 신자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테오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10년

 

 

테오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루스.

 

 

테오도로 자료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 성 오케아누스(Oceanus), 성 암미아누스(Ammianus)와 성 율리아누스(Julianus)는 동로마 제국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에 화형대 위에서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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