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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 남자세례명 21가지

pieonane 2023. 9.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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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6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도나시아노, 라이토(레토), 리베라토, 마카리오, 만수에토, 베드로니오, 베르트란드, 상티아노, 아우구스티노, 에우제니오, 엘레우테리오, 오네시포로, 제르마노, 즈카르야, 카뇨알도, 코티도, 파우스토, 페레그리노, 포르피리오, 푸스쿨로, 프레시디오, 총 21분 목록이에요.

 

9월 6일이 영명축일인 남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9월 6일 여자세례명 베가, 베아타,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9월 6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1가지

 

 

 

 

9월 6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도나시아노

  2. 레토

  3. 리베라토

  4. 마카리오

  5. 만수에토

  6. 베드로니오

  7. 베르트란드

  8. 상티아노

  9. 아우구스티노

  10. 에우제니오

  11. 엘레우테리오

  12. 오네시포로

  13. 제르마노

  14. 즈카르야

  15. 카뇨알도

  16. 코티도

  17. 파우스토

  18. 페레그리노

  19. 포르피리오

  20. 푸스쿨로

  21. 프레시디오

 

9월 6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1가지

 

 

1. 도나시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Dona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4년경 아프리카

 

 

도나시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나시아누스, 도나씨아노, 도나씨아누스, 도나씨안, 도나티아노, 도나티아누스, 도나티안.

 

 

도나시아노 자료

반달 왕국(반달족이 439년 카르타고를 수도로 북아프리카에 세운 왕국)의 국왕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를 신봉하던 후네릭(Huneric, 477-484년 재위)은 아프리카의 모든 가톨릭 성당을 폐쇄하고 성직자들을 추방하는 명을 내리고, 그들 대신에 아리우스파에 속한 성직자들을 배치하였다. 

그러면서 수많은 가톨릭의 주교와 사제들이 추방당했는데, 성문 밖에서 후네릭 왕과 가톨릭 성직자들 일부가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생겼다. 

이때 아프리카의 주교들인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또는 도나시아노), 성 만수에투스(Mansuetus), 성 게르마누스(Germanus), 성 푸스쿨루스(Fusculus) 그리고 성 프레시디우스(Praesidius)가 왕에게 격렬히 항의하며 가톨릭의 진리를 고백하고 선포하였다. 

결국 후네릭 왕의 명령으로 그들 모두 잔인하게 매를 맞고 사막으로 유배당해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들 외에도 오늘날 튀니지 네프타(Nefta)의 주교였던 성 라이투스(Laetus)도 함께 기억하는데, 그 또한 후네릭 왕에게 정면으로 맞서 가톨릭의 참된 교리를 고백하였다.

그는 매우 용기 있고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 인물이었는데, 오랫동안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9월 6일 목록에서 가톨릭 진리를 고백하고 고통을 받다가 순교한 아프리카의 주교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라이토 (레토)

 

  • 가톨릭 성인 이름
    Lae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4년경 아프리카

 

 

라이토 (레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라이또, 라이뚜스, 라이투스, 래또, 래뚜스, 래토, 래투스, 레또, 레뚜스, 레토, 레투스.

 

 

라이토 (레토) 자료

반달 왕국(반달족이 439년 카르타고를 수도로 북아프리카에 세운 왕국)의 국왕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를 신봉하던 후네릭(Huneric, 477-484년 재위)은 아프리카의 모든 가톨릭 성당을 폐쇄하고 성직자들을 추방하는 명을 내리고, 그들 대신에 아리우스파에 속한 성직자들을 배치하였다. 

그러면서 수많은 가톨릭의 주교와 사제들이 추방당했는데, 성문 밖에서 후네릭 왕과 가톨릭 성직자들 일부가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생겼다. 

이때 아프리카의 주교들인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성 만수에투스(Mansuetus), 성 게르마누스(Germanus), 성 푸스쿨루스(Fusculus) 그리고 성 프레시디우스(Praesidius)가 왕에게 격렬히 항의하며 가톨릭의 진리를 고백하고 선포하였다. 

결국 후네릭 왕의 명령으로 그들 모두 잔인하게 매를 맞고 사막으로 유배당해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들 외에도 오늘날 튀니지 네프타(Nefta)의 주교였던 성 라이투스(또는 라이토)도 함께 기억하는데, 그 또한 후네릭 왕에게 정면으로 맞서 가톨릭의 참된 교리를 고백하였다.

그는 매우 용기 있고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 인물이었는데, 오랫동안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9월 6일 목록에서 가톨릭 진리를 고백하고 고통을 받다가 순교한 아프리카의 주교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리베라토

 

  • 가톨릭 성인 이름
    Liber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258년? 로로

 

 

리베라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리베라또, 리베라뚜스, 리베라투스.

 

 

리베라토 자료

1868년 교황 비오 9세(Pius IX)가 성 리베라투스(또는 리베라토)의 공경을 허락하였으나 전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브룬포르테(Brunforte)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지만, 은수자로서 관상생활만 하였다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 46장과 47장에 성모님의 환시를 본 무명의 수도자가 성 리베라투스가 틀림없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마카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Maca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마카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까리오, 마까리우스, 마카리우스.

 

 

마카리오 자료

성 파우스투스(Faustus) 신부와 성 마카리우스(또는 마카리오)를 포함해서 모두 12명의 신자들이 데키우스 황제 치하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만수에토

 

  • 가톨릭 성인 이름
    Mansue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4년경 아프리카

 

 

만수에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만수에또, 만수에뚜스, 만수에투스.

 

 

만수에토 자료

반달 왕국(반달족이 439년 카르타고를 수도로 북아프리카에 세운 왕국)의 국왕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를 신봉하던 후네릭(Huneric, 477-484년 재위)은 아프리카의 모든 가톨릭 성당을 폐쇄하고 성직자들을 추방하는 명을 내리고, 그들 대신에 아리우스파에 속한 성직자들을 배치하였다. 

그러면서 수많은 가톨릭의 주교와 사제들이 추방당했는데, 성문 밖에서 후네릭 왕과 가톨릭 성직자들 일부가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생겼다. 

이때 아프리카의 주교들인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성 만수에투스(또는 만수에토), 성 게르마누스(Germanus), 성 푸스쿨루스(Fusculus) 그리고 성 프레시디우스(Praesidius)가 왕에게 격렬히 항의하며 가톨릭의 진리를 고백하고 선포하였다. 

결국 후네릭 왕의 명령으로 그들 모두 잔인하게 매를 맞고 사막으로 유배당해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들 외에도 오늘날 튀니지 네프타(Nefta)의 주교였던 성 라이투스(Laetus)도 함께 기억하는데, 그 또한 후네릭 왕에게 정면으로 맞서 가톨릭의 참된 교리를 고백하였다.

그는 매우 용기 있고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 인물이었는데, 오랫동안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9월 6일 목록에서 가톨릭 진리를 고백하고 고통을 받다가 순교한 아프리카의 주교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베드로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etron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50년 베로나

 

 

베드로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드로니우스, 페트로니오, 페트로니우스.

 

 

베드로니오 자료

성 베드로니우스(또는 베드로니오)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로서,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잘 알려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베르트란드

 

  • 가톨릭 성인 이름
    Bertrand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230년경 가리규

 

 

베르트란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르트란도, 베르트란두스, 베르트란트, 베르트랑.

 

 

베르트란드 자료

베르트란드는 님(Nimes) 교구의 가리규 태생으로 알비파(Albigenses) 이단과 내란이 소용돌이치는 와중에서 성장하였다. 그 역시 처음에는 정통교리를 배웠지만 이단의 유혹은 주변에 늘 있었기 때문에 그 위험성도 잘 알고 있었다. 

1208년 그는 처음으로 성 도미니코(Dominicus)를 만났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1215년 베르트란드는 도미니코 주위에 모인 6명 중의 한 사람이 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16명으로 불어나면서 큰 수도회가 될 조짐을 보였다.

그는 사부 도미니코의 명에 따라 파리 수도원을 세웠고, 볼로냐 수도원 등 수많은 수도원을 세우는데 공을 세웠다. 

1221년 볼로냐(Bologna)에서 개최된 제 2차 총회는 수도회를 8개 관구로 나누었고, 이때 베르트란드는 프로방스 관구를 맡았다. 이때 그는 유명한 마르세유(Marseilles) 대수도원을 세웠다.

그의 제자인 베르나르두스 구이도니스 형제는 그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겼다. 

“그분의 관조, 단식 그리고 다른 모든 보속행위로써 성 베르트란드는 당신이 가장 사랑하신 성부를 본받는데 성공하였으며, 참으로 스승에 비길만한 제자가 되었고, 성 도미니코를 그대로 닮은 위대한 수도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상티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anc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3년 상스

 

 

상티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산티아노, 산티아누스, 상띠아노, 상띠아누스, 상티아누스, 쌍띠아노, 쌍띠아누스.

 

 

상티아노 자료

베아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성녀는 두 명인데, 3월 8일이 축일인 성녀 베아타는 아프리카 출신의 순교자이다. 

초기 교회의 기록에 성 키릴루스(Cyrillus), 성 로가투스(Rogatus) 등의 순교자 명단과 함께 이 성녀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의 순교에 관한 기록의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는 있다.

9월 6일이 축일인 또 다른 순교자 성녀 베아타(Beata)는 본래 에스파냐 출신이지만, 박해를 피해 현재의 프랑스 지역으로 피난하였으나, 결국 박해 중에 붙잡혀 273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성 상티아누스(Sanctianus, 또는 상티아노)와 함께 상스에서 순교하였다.

훗날 성녀의 무덤 위에 성당이 세워졌으며, 성녀 베아타를 포함한 세 명의 순교자에 대한 상스에서의 공경 예식은 중세와 근세까지 지속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아우구스티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ugustin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3년 상스

 

 

아우구스티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오스딩, 아우구스띠노, 아우구스띠누스, 아우구스티누스, 어거스틴, 오스틴.

 

 

아우구스티노 자료

베아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성녀는 두 명인데, 3월 8일이 축일인 성녀 베아타는 아프리카 출신의 순교자이다.

초기 교회의 기록에 성 키릴루스(Cyrillus), 성 로가투스(Rogatus) 등의 순교자 명단과 함께 이 성녀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들의 순교에 관한 기록의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는 있다.

9월 6일이 축일인 또 다른 순교자 성녀 베아타(Beata)는 본래 에스파냐 출신이지만, 박해를 피해 현재의 프랑스 지역으로 피난하였으나, 결국 박해 중에 붙잡혀 273년에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또는 아우구스티노), 성 상티아누스(Sanctianus)와 함께 상스에서 순교하였다.

훗날 성녀의 무덤 위에 성당이 세워졌으며, 성녀 베아타를 포함한 세 명의 순교자에 대한 상스에서의 공경 예식은 중세와 근세까지 지속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에우제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gen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에우제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게니오, 에우게니우스, 에우제니우스, 유진.

 

 

에우제니오 자료

성 코티두스(Cottidus) 부제와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를 비롯해서 여러 명의 동료 신자들이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순교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순교행전이 분실되어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엘레우테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leuthe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 스폴레토

 

 

엘레우테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엘레우떼리오, 엘레우떼리우스, 엘레우테리우스.

 

 

엘레우테리오 자료

‘거룩한 사제이신 엘레우테리우스’란 호칭이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의 “대화” 속에 여러 번 나온다. 성 엘레우테리우스(또는 엘레우테리오)는 이탈리아 스폴레토 교외 성 마르코 수도원의 원장이었다. 

한번은 어느 수녀원에 유숙하였을 때 밤새도록 악령에 시달리는 어떤 소년을 돌보아 주도록 요청받았다. 성인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으나, 그 소년에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때 그는 “악마가 수녀님들과 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명을 부르면 악마는 얼씬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런 다음 그 소년이 완전해질 때까지 밤새워 기도하였다.

또 한 번은 어느 해 성 토요일에 성 그레고리우스께서 병이 들어 매우 위험하였는데, 그는 엘레우테리우스에게 기도해 주기를 청하자 곧 병이 나았다고도 한다. 성인은 성 그레고리우스의 로마(Roma) 수도원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가 그곳에서 운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오네시포로

 

  • 가톨릭 성인 이름
    Onesipho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0년경

 

 

오네시포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오네시포로스, 오네시포루스.

 

 

오네시포로 자료

성 오네시포루스(또는 오네시포로, 오네시포로스)는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가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자신의 협력자이자 로마에서 감옥에 갇힌 자신을 자주 찾아와 돌본 고마운 인물로 등장한다. 

“주님께서 오네시포로스 집안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빕니다. 그는 여러 번 나에게 생기를 돋우어 주었으며,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로마에 와서는 열심히 나를 찾아 만나 주었습니다. 그날에 주님께서 허락하시어 그가 주님에게서 자비를 얻기 바랍니다. 에페소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였는지는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1,16-18) 

또 같은 서간 4장 19절에서는 “프리스카와 아퀼라에게, 그리고 오네시포로스 집안에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라며 끝 인사에서도 그를 언급했다.

전승에 의하면 성 오네시포루스는 사도 성 바오로를 따라 에스파냐까지 갔다가 흑해와 지중해, 발칸 반도를 잇는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 부근으로 돌아왔는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에 체포되어 순교했다고 한다.

그는 야생말 사이에 묶여 사지가 찢어지는 잔인한 방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도 순교했는데, 그는 성 오네시포루스 집안의 하인으로서 주인의 사명과 순교까지도 함께 나누었다.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파견하신 70명(또는 72명, 루카 10,1)의 제자 목록에 성 오네시포루스도 포함되어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제르마노

 

  • 가톨릭 성인 이름
    Germ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4년경 아프리카

 

 

제르마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르마노, 게르마누스, 제르마누스, 젤마노.

 

 

제르마노 자료

반달 왕국(반달족이 439년 카르타고를 수도로 북아프리카에 세운 왕국)의 국왕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를 신봉하던 후네릭(Huneric, 477-484년 재위)은 아프리카의 모든 가톨릭 성당을 폐쇄하고 성직자들을 추방하는 명을 내리고, 그들 대신에 아리우스파에 속한 성직자들을 배치하였다.

그러면서 수많은 가톨릭의 주교와 사제들이 추방당했는데, 성문 밖에서 후네릭 왕과 가톨릭 성직자들 일부가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생겼다.

이때 아프리카의 주교들인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성 만수에투스(Mansuetus), 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 성 푸스쿨루스(Fusculus) 그리고 성 프레시디우스(Praesidius)가 왕에게 격렬히 항의하며 가톨릭의 진리를 고백하고 선포하였다.

결국 후네릭 왕의 명령으로 그들 모두 잔인하게 매를 맞고 사막으로 유배당해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들 외에도 오늘날 튀니지 네프타(Nefta)의 주교였던 성 라이투스(Laetus)도 함께 기억하는데, 그 또한 후네릭 왕에게 정면으로 맞서 가톨릭의 참된 교리를 고백하였다.

그는 매우 용기 있고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 인물이었는데, 오랫동안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9월 6일 목록에서 가톨릭 진리를 고백하고 고통을 받다가 순교한 아프리카의 주교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즈카르야

 

  • 가톨릭 성인 이름
    Zachar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구약인물, 예언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 BC

 

 

즈카르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자카리아, 자카리아스, 자카리야, 재커리, 즈가리아, 즈가리야.

 

 

즈카르야 자료

구약성경 열두 소예언서에 하나인 즈카르야서는 즈카르야(그리스어와 라틴어 Zacharias)라는 예언자의 이름으로 전해진다. ‘주님께서 기억하신다’는 의미를 지닌 즈카르야 예언자는 ‘이또의 손자이며 베레크야의 아들’로 소개되었다(즈카 1,1.7).

다른 곳에서는 ‘이또의 아들’(에즈 5,1; 6,14; 느헤 12,16)로 불리기도 하는데, 히브리어에서는 ‘아들’과 ‘손자’를 같은 단어로 표기한다.

성경학자들은 14장으로 구성된 즈카르야서를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독려하며 활동했던 하까이(Haggai, 12월 16일) 예언자와 같은 시대(기원전 6세기 말경)에 함께 활동한 즈카르야 예언자가 직접 쓴 제1 즈카르야서(1-8장)와 기원전 4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활동한 익명의 예언자자 쓴 제2 즈카르야서(9-14장)로 구분한다.

두 부분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문체는 비슷해도 그 안에 담긴 신학 사상과 역사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제2 즈카르야서에는 즈카르야라는 에언자 이름이 더는 언급되지 않고, 기원전 515년에 완공된 제2 예루살렘 성전도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느헤미야서에 의하면 즈카르야 예언자는 본래 사제 집안 출신으로 바빌론 유배지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향한 인물로 전해진다(12,16). 즈카르야서 1장 1절은 그가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고 활동을 시작한 때를 ‘다리우스 제이년 여덟째 달’이라고 전해주었다.

그때는 기원전 520년 10/11월로, 그때부터 7장 1절에서 언급하는 ‘다리우스 임금 제사년 아홉째 달’인 기원전 518년 11월 중순까지 약 2년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다.

이 시기 동안 즈카르야 예언자는 하까이와 함께 유배에서 돌아온 직후 황폐와 혼란 가운데 현실적 문제에 급급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마저 상실해가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이스라엘을 회복하고자 했다.

사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의 칙령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려 했으나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팔레스티나에 남아 있던 이들의 방해로 재건축 시도 자체가 좌절되고 말았었다.

그렇게 17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독려하고 나선 것이다. 즈카르야 예언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 민족들까지 메시아 시대의 행복을 찾아 몰려와 하느님을 찬미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선포하였다(8장).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옛 “로마 순교록”과 같은 9월 6일 목록에서 백성들이 유배에서 풀려나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을 예언하고,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된 평화와 승리의 임금님에 대한 예언(즈카 9,9)을 전한 즈카르야 예언자를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카뇨알도

 

  • 가톨릭 성인 이름
    Cagnoal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35년 랑

 

 

카뇨알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카그노알드, 카뇨알두스, 카뇨알드.

 

 

카뇨알도 자료

성 파로(Faro)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귀족의 아들로 몇 년 동안 국왕 다고베르트(Dagobert)의 무관으로 근무하였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 그의 누이인 성녀 부르군도파라(Burgundofara)의 권유로 사제품을 받았고, 637년에는 모(Meaux) 지방의 주교가 되었다.

그의 재임 기간은 길지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성 베다(Beda)에 의하면 그는 특히 캔터베리(Canterbury)의 성 하드리아누스(Hadrianus)를 후원한 것으로 나타난다.

성 파로의 남동생은 랑(Laon)의 주교 성 카뇨알두스(Cagnoaldus, 또는 카뇨알도)이고, 여동생은 성녀 부르군도파라(4월 3일)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코티도

 

  • 가톨릭 성인 이름
    Cottid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코티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곳티도, 곳티두스, 꼬띠도, 꼬띠두스, 코티두스, 콧티도, 콧티두스.

 

 

코티도 자료

성 코티두스(또는 코티도) 부제와 에우게니우스(Eugenius)를 비롯해서 여러 명의 동료 신자들이 소아시아의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순교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순교행전이 분실되어 그들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파우스토

 

  • 가톨릭 성인 이름
    Faus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파우스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파우스또, 파우스뚜스, 파우스투스.

 

 

파우스토 자료

성 파우스투스(또는 파우스토) 신부와 성 마카리우스(Macarius)를 포함해서 모두 12명의 신자들이 데키우스 황제 치하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페레그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Peregrine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240년경 팔레로네

 

 

페레그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뻬레그리노, 뻬레그리누스, 페레그리누스, 페레그린.

 

 

페레그리노 자료

페레그리누스(Peregrinus, 또는 페레그리노)는 이탈리아의 페르모(Fermo) 근교의 팔레로네에서 훌륭한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하였다.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가 1220년 볼로냐(Bologna)에서 설교하던 해에 그는 그곳의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때 그의 친구 리체리오(Rizzerio, 2월 7일)는 성인의 설교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와 함께 작은 형제회 회원이 되고자 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들을 받아들였고, 페레그리누스의 지식이 풍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평수사로서 살도록 하였다.

그래서 페레그리누스는 사부인 성 프란치스코의 말씀대로 일생을 평수사로서 살았다. 그는 인내와 겸손의 모범이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포르피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orphyr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0년경

 

 

포르피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뽀르삐리오, 뽀르삐리우스, 포르피리, 포르피리오스, 포르피리우스.

 

 

포르피리오 자료

성 오네시포루스(Onesiphorus)는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가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자신의 협력자이자 로마에서 감옥에 갇힌 자신을 자주 찾아와 돌본 고마운 인물로 등장한다.

“주님께서 오네시포로스 집안에 자비를 베푸시기를 빕니다. 그는 여러 번 나에게 생기를 돋우어 주었으며,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로마에 와서는 열심히 나를 찾아 만나 주었습니다. 그날에 주님께서 허락하시어 그가 주님에게서 자비를 얻기 바랍니다. 에페소에서 그가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였는지는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1,16-18)

또 같은 서간 4장 19절에서는 “프리스카와 아퀼라에게, 그리고 오네시포로스 집안에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라며 끝 인사에서도 그를 언급했다.

전승에 의하면 성 오네시포루스는 사도 성 바오로를 따라 에스파냐까지 갔다가 흑해와 지중해, 발칸 반도를 잇는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 부근으로 돌아왔는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에 체포되어 순교했다고 한다. 그는 야생말 사이에 묶여 사지가 찢어지는 잔인한 방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성 포르피리우스(Porphyrius, 또는 포르피리오)도 순교했는데, 그는 성 오네시포루스 집안의 하인으로서 주인의 사명과 순교까지도 함께 나누었다.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파견하신 70명(또는 72명, 루카 10,1)의 제자 목록에 성 오네시포루스도 포함되어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0. 푸스쿨로

 

  • 가톨릭 성인 이름
    Fuscu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4년경 아프리카

 

 

푸스쿨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푸스꿀로, 푸스꿀루스, 푸스쿨루스.

 

 

푸스쿨로 자료

반달 왕국(반달족이 439년 카르타고를 수도로 북아프리카에 세운 왕국)의 국왕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를 신봉하던 후네릭(Huneric, 477-484년 재위)은 아프리카의 모든 가톨릭 성당을 폐쇄하고 성직자들을 추방하는 명을 내리고, 그들 대신에 아리우스파에 속한 성직자들을 배치하였다.

그러면서 수많은 가톨릭의 주교와 사제들이 추방당했는데, 성문 밖에서 후네릭 왕과 가톨릭 성직자들 일부가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생겼다.

이때 아프리카의 주교들인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성 만수에투스(Mansuetus), 성 게르마누스(Germanus), 성 푸스쿨루스(또는 푸스쿨로) 그리고 성 프레시디우스(Praesidius)가 왕에게 격렬히 항의하며 가톨릭의 진리를 고백하고 선포하였다. 결국 후네릭 왕의 명령으로 그들 모두 잔인하게 매를 맞고 사막으로 유배당해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들 외에도 오늘날 튀니지 네프타(Nefta)의 주교였던 성 라이투스(Laetus)도 함께 기억하는데, 그 또한 후네릭 왕에게 정면으로 맞서 가톨릭의 참된 교리를 고백하였다.

그는 매우 용기 있고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 인물이었는데, 오랫동안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9월 6일 목록에서 가톨릭 진리를 고백하고 고통을 받다가 순교한 아프리카의 주교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1. 프레시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raesid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4년경 아프리카

 

 

프레시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쁘레시디오, 쁘레시디우스, 프레시디우스.

 

 

프레시디오 자료

반달 왕국(반달족이 439년 카르타고를 수도로 북아프리카에 세운 왕국)의 국왕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를 신봉하던 후네릭(Huneric, 477-484년 재위)은 아프리카의 모든 가톨릭 성당을 폐쇄하고 성직자들을 추방하는 명을 내리고, 그들 대신에 아리우스파에 속한 성직자들을 배치하였다.

그러면서 수많은 가톨릭의 주교와 사제들이 추방당했는데, 성문 밖에서 후네릭 왕과 가톨릭 성직자들 일부가 우연히 마주치는 일이 생겼다.

이때 아프리카의 주교들인 성 도나티아누스(Donatianus), 성 만수에투스(Mansuetus), 성 게르마누스(Germanus), 성 푸스쿨루스(Fusculus) 그리고 성 프레시디우스(또는 프레시디오)가 왕에게 격렬히 항의하며 가톨릭의 진리를 고백하고 선포하였다.

결국 후네릭 왕의 명령으로 그들 모두 잔인하게 매를 맞고 사막으로 유배당해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그들 외에도 오늘날 튀니지 네프타(Nefta)의 주교였던 성 라이투스(Laetus)도 함께 기억하는데, 그 또한 후네릭 왕에게 정면으로 맞서 가톨릭의 참된 교리를 고백하였다. 그는 매우 용기 있고 학식과 교양이 풍부한 인물이었는데, 오랫동안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이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9월 6일 목록에서 가톨릭 진리를 고백하고 고통을 받다가 순교한 아프리카의 주교들을 기억하고 있음을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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