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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남자세례명 26가지

pieonane 2023. 10.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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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귈레르모 쿠르테, 네온, 니콘, 델피노, 도미니코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 라우렌시오, 라우렌시오 루이스, 라자로, 마르코, 마르티알리스, 막시모,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 벤체슬라오,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 살로니오, 시몬 데 로하스, 안토니오 곤살레스, 알렉산데르, 알피오,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 엑스수페리오, 요한, 조시모, 티에모, 파우스토, 헬리오도로, 총 26분 목록이에요.

 

9월 28일이 영명축일인 남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9월 28일 여자세례명 리오바, 에우스토키움, 테타, 총 3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9월 28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6가지

 

 

 

 

9월 28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귈레르모 쿠르테

  2. 네온

  3. 니콘

  4. 델피노

  5. 도미니코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

  6. 라우렌시오

  7. 라우렌시오 루이스

  8. 라자로

  9. 마르코

  10. 마르티알리스

  11. 막시모

  12.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

  13. 벤체슬라오

  14.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

  15. 살로니오

  16. 시몬 데 로하스

  17. 안토니오 곤살레스

  18. 알렉산데르

  19. 알피오

  20.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

  21. 엑스수페리오

  22. 요한

  23. 조시모

  24. 티에모

  25. 파우스토

  26. 헬리오도로

 

9월 28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6가지

 

 

1. 귈레르모 쿠르테

 

  • 가톨릭 성인 이름
    Guillermus Courte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37년 나가사키

 

 

귈레르모 쿠르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굴리엘모, 귈레르무스, 기욤, 빌리암, 빌헬름, 윌리암, 윌리엄, 쿠르텟.

 

 

귈레르모 쿠르테 자료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는 첫 번째 필리핀인 성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첫 필리핀 순교자이다. 

그는 1600년경 마닐라(Manila)의 비논도(Binondo)에서 신자였던 중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와 타갈로그어를 배웠다. 그리고 도미니코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는 비논도 성당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성사 보조자와 성사 기록자로 봉사하였다. 그는 아마도 서예로 생계를 유지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사적 혹은 공적인 용도의 서류를 아름다운 필기체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 그 직업은 안정되고 교육받은 사람임을 암시하는데,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1636년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살인 혐의로 고발되었다. 그릇된 재판으로 사형을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성 라우렌티우스는 필리핀을 떠나기 위해 배를 탔다. 

그런데 그 배에는 세 명의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안토니우스 곤살레스(Antonius Gonzalez), 성 귈레르무스 쿠르테(또는 귈레르모 쿠르테),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Michael de Aozaraza)와 일본인 사제인 성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와 평신도이며 나환자인 교토(Kyoto)의 성 라자루스(Lazarus)가 타고 있었다. 

그는 바다에 나오고 나서야 그 배가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의 오키나와(Okinawa)에 도착한 성 라우렌티우스와 동료들은 곧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갖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신앙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의 사형집행인에게 자신은 하느님을 위해 죽으며, 자신이 죽는 대신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1637년 9월 27일 그는 교수대에 거꾸로 달려 구덩이로 떨어졌다. 이틀 동안의 고통 후에 그는 출혈과 질식으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같이 이 시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순교한 15명의 동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시복되었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네온

 

  • 가톨릭 성인 이름
    Ne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경

 

 

네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네온 자료

성 마르코(Marcus)는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알피우스(Alpius), 성 조시무스(Zosimus), 성 니콘(Nicon), 성 네온, 성 헬리오도루스(Heliodorus)와 30명의 군인들과 함께 소아시아 피시디아(Pisidia) 지방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마르코는 양을 치던 목동이었고, 군인이 아닌 동료 순교자들은 그의 형제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니콘

 

  • 가톨릭 성인 이름
    Nic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경

 

 

니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니꼰.

 

 

니콘 자료

성 마르코(Marcus)는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알피우스(Alpius), 성 조시무스(Zosimus), 성 니콘, 성 네온(Neon), 성 헬리오도루스(Heliodorus)와 30명의 군인들과 함께 소아시아 피시디아(Pisidia) 지방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마르코는 양을 치던 목동이었고, 군인이 아닌 동료 순교자들은 그의 형제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델피노

 

  • 가톨릭 성인 이름
    Delph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58년 리옹

 

 

델피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달피노, 달피누스, 델삐노, 델삐누스, 델피누스, 샤몽, 안네문도, 안네문두스.

 

 

델피노 자료

역사가이자 교회학자로 존경받는 성 베다(Beda, 5월 25일)가 델피누스(또는 델피노)라고 부르는 주교이자 요크(York)의 주교 성 발프리두스(Walfridus, 10월 12일)의 친구인 성인은 안네문두스(Annemundus, 또는 안네문도), 달피누스(Dalfinus, 또는 달피노), 샤몽(Chamond) 등으로도 불린다.

그는 갈리아(Gallia) 지방 리옹의 행정책임자의 아들로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 왕의 궁중에서 훈련과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클로비스 2세(Clovis II)가 왕위를 계승했을 때 그는 왕의 자문관이 되었고, 몇 년 뒤에는 리옹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로마를 처음 방문할 때 20세에 불과하던 요크의 성 발프리두스를 데리고 갔다고 한다. 658년 9월 28일, 성 델피누스는 클로비스 2세 왕의 사망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기에 리옹 인근 마콩(Macon)에서 군인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되었다.

성 발프리두스가 그의 장례를 리옹에서 거행했고, 성 달피누스는 리옹에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 리옹 근교의 생샤몽(Saint Chamond)은 그의 이름을 딴 지명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도미니코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

 

  • 가톨릭 성인 이름
    Dominic Ibanez de Erquici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89-1633년 나가사키

 

 

도미니코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미니쿠스, 도미니크, 도미닉, 도밍고, 에르퀴치아, 이바네즈.

 

 

도미니코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 자료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와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Dominicus Ibanez de Erquicia, 또는 도미니코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와 성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Jacobus Kyushei Tomonaga)와 13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일본 나가사키 지방에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1633년, 1634년, 1637년에 모두 순교하였다.

그들은 체포된 이후 잔혹한 고문을 당했고 그 시신은 불태워진 후 재마저도 흩어지고 말았다. 출신 국가별로 보면 일본 9명, 에스파냐 4명, 프랑스 1명, 이탈리아 1명, 필리핀 1명이다. 에스파냐 출신의 도미니코회 사제인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가 1633년 8월 처음 순교한 이후 필리핀 출신 평신도인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가 1637년 9월에 순교할 때까지 이들의 순교는 계속되었다. 총 16명의 순교자들 중 13명이 도미니코회 사제이거나 3회원이고 나머지 3명도 그들과 연관되어 있다.

이들 순교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나라에서 필리핀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왔다. 마닐라(Manila)의 성 토마스(Thomas)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필리핀의 여러 지방에서 설교하며 선교활동을 하던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가 1623년에 처음으로 일본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유력한 쇼군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가 묵인된 상태였다. 그러다 다음 쇼군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1587년에 반포된 모든 선교사들의 추방 칙령 시대로 되돌아가 혹독한 박해가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를 비롯한 도미니코회 사제들은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던 중 발각되어 십자가형, 참수형, 물고문형, 교수대에 거꾸로 달아 구덩이에 떨어뜨려 죽이는 등 여러 방법으로 마지막 며칠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순교하였다. 당시 선교지의 대목구장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던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는 1633년 8월 4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고, 현재 그의 편지 중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성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는 일본인 출신 사제로 기데수(Kyudetsu)의 귀족 출신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가사키의 예수회 대학에서 수학한 후 교리교사로 활동하다가 1614년에 일본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필리핀의 마닐라와 대만에서 설교하다가 1632년에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모국인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제로서 신앙을 전파했다는 지목으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1633년 8월에 5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와 성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와 13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모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복자품에 올랐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로마(Roma)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이들의 축일은 모두 9월 28일에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라우렌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Lawrence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457년 리파프라타

 

 

라우렌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라우렌시우스, 라우렌티오, 라우렌티우스, 로렌스, 로렌조.

 

 

라우렌시오 자료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는 이미 부제품을 받고서 피사(Pisa)에 있는 설교자회에 입회하여 다년간 학문과 설교를 연구하였으며, 코르토나(Cortona) 수도원의 수련장이 되었다. 그는 매우 엄격히 회칙을 준수하는 사람이었으나, 이해심이 많았고 수련자들이 하느님의 사랑에 불타오르도록 지도했던 뛰어난 수도자였다.

그의 수련생 중에서 뛰어난 제자들은 피렌체(Firenze)의 성 안토니누스(Antoninus, 5월 10일), 복자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2월 18일) 그리고 무젤로의 베네딕투스(Benedictus)가 있다.

그는 복자 프라 안젤리쿠스와 베네딕투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안배하면서, 입에서 나오는 말과 같이 그림으로도 설교할 수 있다는 신념을 그들에게 심어주어 후일 위대한 화가로 만들었다. 또 그의 해박한 성서 지식은 그로 하여금 '성서의 궤'라는 별명을 얻게 하였다.

또한 그는 총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에 고통 받고 소외된 사람들, 특히 농아들을 위하여 수도자들이 봉사토록 배려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51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라우렌시오 루이스

 

  • 가톨릭 성인 이름
    Lawrence Ruiz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00?-1637년 마닐라

 

 

라우렌시오 루이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라우렌시우스, 라우렌티오, 라우렌티우스, 로렌스, 로렌조, 루이즈.

 

 

라우렌시오 루이스 자료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 또는 라우렌시오 루이스)는 첫 번째 필리핀인 성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첫 필리핀 순교자이다.

그는 1600년경 마닐라의 비논도(Binondo)에서 신자였던 중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와 타갈로그어를 배웠다. 그리고 도미니코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는 비논도 성당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성사 보조자와 성사 기록자로 봉사하였다.

그는 아마도 서예로 생계를 유지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사적 혹은 공적인 용도의 서류를 아름다운 필기체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 그 직업은 안정되고 교육받은 사람임을 암시하는데,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1636년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살인 혐의로 고발되었다. 그릇된 재판으로 사형을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성 라우렌티우스는 필리핀을 떠나기 위해 배를 탔다.

그런데 그 배에는 세 명의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안토니우스 곤살레스(Antonius Gonzalez), 성 귈레르무스 쿠르테(Guillermus Courtet),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Michael de Aozaraza)와 일본인 사제인 성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와 평신도이며 나환자인 교토(Kyoto)의 성 라자루스(Lazarus)가 타고 있었다.

그는 바다에 나오고 나서야 그 배가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의 오키나와(Okinawa)에 도착한 성 라우렌티우스와 동료들은 곧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나가사키(Nagasaki)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갖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신앙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의 사형집행인에게 자신은 하느님을 위해 죽으며, 자신이 죽는 대신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1637년 9월 27일 그는 교수대에 거꾸로 달려 구덩이로 떨어졌다. 이틀 동안의 고통 후에 그는 출혈과 질식으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같이 이 시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순교한 15명의 동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시복되었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라자로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평신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37년 나가사키

 

 

라자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라자로 자료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는 첫 번째 필리핀인 성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첫 필리핀 순교자이다. 그는 1600년경 마닐라(Manila)의 비논도(Binondo)에서 신자였던 중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와 타갈로그어를 배웠다. 그리고 도미니코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는 비논도 성당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성사 보조자와 성사 기록자로 봉사하였다. 그는 아마도 서예로 생계를 유지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사적 혹은 공적인 용도의 서류를 아름다운 필기체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 그 직업은 안정되고 교육받은 사람임을 암시하는데,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1636년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살인 혐의로 고발되었다. 그릇된 재판으로 사형을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성 라우렌티우스는 필리핀을 떠나기 위해 배를 탔다.

그런데 그 배에는 세 명의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안토니우스 곤살레스(Antonius Gonzalez), 성 귈레르무스 쿠르테(Guillermus Courtet),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Michael de Aozaraza)와 일본인 사제인 성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와 평신도이며 나환자인 교토(Kyoto)의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가 타고 있었다.

그는 바다에 나오고 나서야 그 배가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의 오키나와(Okinawa)에 도착한 성 라우렌티우스와 동료들은 곧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갖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신앙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의 사형집행인에게 자신은 하느님을 위해 죽으며, 자신이 죽는 대신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1637년 9월 27일 그는 교수대에 거꾸로 달려 구덩이로 떨어졌다. 이틀 동안의 고통 후에 그는 출혈과 질식으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같이 이 시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순교한 15명의 동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시복되었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마르코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경

 

 

마르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자료

성 마르코(Marcus)는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알피우스(Alpius), 성 조시무스(Zosimus), 성 니콘(Nicon), 성 네온(Neon), 성 헬리오도루스(Heliodorus)와 30명의 군인들과 함께 소아시아 피시디아(Pisidia) 지방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마르코는 양을 치던 목동이었고, 군인이 아닌 동료 순교자들은 그의 형제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마르티알리스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a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르티알리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시알, 마르시알리스, 마르씨알, 마르씨알리스.

 

 

마르티알리스 자료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는 21명의 동료들과 함께 오늘날의 알제리(Algeria) 지방인 북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막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

 

 

막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자료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에 있던 고대도시인 에페수스(Ephesus)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

 

  • 가톨릭 성인 이름
    Michael de Aozaraz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37년 나가사키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이클, 미가엘, 미겔, 미구엘, 미키, 아오사라사.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 자료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는 첫 번째 필리핀인 성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첫 필리핀 순교자이다. 그는 1600년경 마닐라(Manila)의 비논도(Binondo)에서 신자였던 중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와 타갈로그어를 배웠다. 그리고 도미니코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는 비논도 성당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성사 보조자와 성사 기록자로 봉사하였다. 그는 아마도 서예로 생계를 유지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사적 혹은 공적인 용도의 서류를 아름다운 필기체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 그 직업은 안정되고 교육받은 사람임을 암시하는데,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1636년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살인 혐의로 고발되었다. 그릇된 재판으로 사형을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성 라우렌티우스는 필리핀을 떠나기 위해 배를 탔다. 

그런데 그 배에는 세 명의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안토니우스 곤살레스(Antonius Gonzalez), 성 귈레르무스 쿠르테(Guillermus Courtet),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와 일본인 사제인 성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와 평신도이며 나환자인 교토(Kyoto)의 성 라자루스(Lazarus)가 타고 있었다. 

그는 바다에 나오고 나서야 그 배가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의 오키나와(Okinawa)에 도착한 성 라우렌티우스와 동료들은 곧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갖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신앙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의 사형집행인에게 자신은 하느님을 위해 죽으며, 자신이 죽는 대신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1637년 9월 27일 그는 교수대에 거꾸로 달려 구덩이로 떨어졌다. 이틀 동안의 고통 후에 그는 출혈과 질식으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같이 이 시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순교한 15명의 동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시복되었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벤체슬라오

 

  • 가톨릭 성인 이름
    Wencesla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907-929년 보헤미아

 

 

벤체슬라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츨라프, 벤체슬라우스.

 

 

벤체슬라오 자료

체코 서부 보헤미아의 통치자였던 보르지보이 1세(Borivoj I)와 그의 아내 성녀 루드밀라(Ludmilla, 9월 16일)의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은 그의 민족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당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던 체크가(家)는 새롭게 등장한 그리스도교를 극구 반대하였다. 

889년경 보헤미아의 첫 번째 그리스도교 신자 통치자였던 보르지보이가 사망하고, 915년경 그의 아들인 브라티슬라프 1세(Vratislaus I)가 전국을 통치하게 되었다. 브라티슬라프는 906년경 슬라브족 이교도인 드라호미라(Drahomira)와 결혼하여 두 아들과 네 명의 딸을 두었는데, 프라하(Prague)에서 태어난 성 벤체슬라우스와 볼레슬라우스(Boleslaus)가 후에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성 벤체슬라우스(또는 벤체슬라오)는 할머니인 성녀 루드밀라의 배려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고, 부데치(Budec)의 학교에서 라틴어와 슬라브어를 익히는 등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921년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부친 브라티슬라프가 마가르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어린 나이에 왕위를 계승하자 어머니인 드라호미라의 섭정이 시작되었다.

이교도 신자였던 드라호미라는 철저히 반그리스도교적인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할머니인 성녀 루드밀라의 영향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한 성 벤체슬라우스와 그의 어머니 사이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성녀 루드밀라를 시기한 드라호미라는 자신을 따르는 두 명의 귀족을 시켜 921년 9월 15일 서부 보헤미아의 테틴(Tetin)에서 성녀 루드밀라를 목 졸라 살해하였다.

계속되는 궁정 내의 음모와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 사이의 당파 싸움에 실망한 백성들의 염원에 따라 922년 결국 성 벤체슬라우스가 실권을 잡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인 드라호미라를 추방하고, 신하들의 동의 없이 전통적인 관습을 강제로 변화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동시에 그는 독일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을 장려하고 모든 방면에서 그리스도교적 기준을 적용하고자 노력했다. 929년 독일의 하인리히 1세 황제의 침략을 받은 성 벤체슬라우스는 무력에 의해 국가가 패망하는 것보다 그를 카알 대제의 후계자이자 대군주로 인정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해 항복을 결정하였다. 

이로써 그는 독일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도교적인 기치 아래 슬라브족의 통합을 진행하고자 했다. 그는 프라하에 성 비토(Vitus) 성당을 건립하고 독일과의 우의를 돈독히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정책은 보헤미아 일부 귀족들의 극심한 반발을 샀고, 그로 인해 곳곳에서 귀족들의 봉기가 일어났다. 성 벤체슬라우스를 반대하는 귀족들은 그의 동생 볼레슬라우스를 선동해 형을 제거하도록 꾸몄다. 

929년 9월 성 벤체슬라우스는 볼레슬라우스의 초대를 받아 성 코스마(Cosmas)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 축일 기념행사를 지내려고 동생의 거처가 있는 스타라 볼레슬라프(Stara Boleslav)로 갔다. 

그는 축일 저녁에 이미 자신이 위험에 처했음을 알았다. 성 벤체슬라우스는 9월 28일 미사에 참례하러 가던 도중 동생의 부하들에 의해 성당 문 앞에서 살해되었다. 성당 문 앞에 쓰러지면서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쳤다. 

“동생아, 하느님께서 너를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그는 살해당한 후 즉시 그의 할머니 성녀 루드밀라와 함께 순교자로서 높은 공경을 받았다. 그의 유해는 932년 프라하의 성 비토 성당으로 옮겨졌다. 오래전부터 보헤미아 전 주민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아온 성 벤체슬라우스는 오늘날에도 체코의 수호성인으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체코에서 성 바츨라프(Vaclav)로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

 

  • 가톨릭 성인 이름
    Vincent Shiwozuka de la Cruz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37년 나가사키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뱅상, 빈센트, 빈첸시우스, 빈첸티오, 빈첸티우스, 빈켄티오, 빈켄티우스, 시오주카, 원선시오.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 자료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는 첫 번째 필리핀인 성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첫 필리핀 순교자이다. 그는 1600년경 마닐라(Manila)의 비논도(Binondo)에서 신자였던 중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와 타갈로그어를 배웠다. 그리고 도미니코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는 비논도 성당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성사 보조자와 성사 기록자로 봉사하였다. 그는 아마도 서예로 생계를 유지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사적 혹은 공적인 용도의 서류를 아름다운 필기체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 그 직업은 안정되고 교육받은 사람임을 암시하는데,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1636년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살인 혐의로 고발되었다. 그릇된 재판으로 사형을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성 라우렌티우스는 필리핀을 떠나기 위해 배를 탔다.

그런데 그 배에는 세 명의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안토니우스 곤살레스(Antonius Gonzalez), 성 귈레르무스 쿠르테(Guillermus Courtet),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Michael de Aozaraza)와 일본인 사제인 성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와 평신도이며 나환자인 교토(Kyoto)의 성 라자루스(Lazarus)가 타고 있었다.

그는 바다에 나오고 나서야 그 배가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의 오키나와(Okinawa)에 도착한 성 라우렌티우스와 동료들은 곧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갖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신앙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의 사형집행인에게 자신은 하느님을 위해 죽으며, 자신이 죽는 대신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1637년 9월 27일 그는 교수대에 거꾸로 달려 구덩이로 떨어졌다. 이틀 동안의 고통 후에 그는 출혈과 질식으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같이 이 시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순교한 15명의 동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시복되었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살로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Salon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세기 제네바

 

 

살로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살로니우스, 쌀로니오, 쌀로니우스.

 

 

살로니오 자료

성 살로니우스(또는 살로니오)는 5세기의 증거자이자 주교였다. 그는 400년에 리옹(Lyon)의 주교인 성 에우케리우스(Eucherius, 11월 16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레랭(Lerins) 수도원에서 아를(Arles)의 성 힐라리우스(Hilarius, 5월 5일)나 레랭의 성 빈첸시오(Vincentius, 5월 24일) 등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440년 그는 스위스 제네바 교구의 주교가 되어 오랑주(Orange, 441년), 베종(Vaison, 442년), 아를(451년) 시노드에 참석하였다. 그는 라틴 교회의 작가로서 잠언과 전도서에 대한 신비적이고 비유적인 해석을 저술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시몬 데 로하스

 

  • 가톨릭 성인 이름
    Simon de Roj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552-1624년

 

 

시몬 데 로하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사이먼.

 

 

시몬 데 로하스 자료

1552년 에스파냐 카스티야(Castilla) 지방의 바야돌리드(Valladolid)에서 태어난 성 시몬 데 로하스는 12세 때 그곳의 삼위일체회에 입회하였다. 1573년부터 1579년까지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수학한 후 1577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1581년부터 1587년까지 톨레도(Toledo)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고, 1588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여러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그는 삼위일체회의 모범적인 수도자로 뽑혀서 에스파냐의 국왕 필리페 3세의 궁에서 지내기도 했다. 1622년 그는 왕비인 이사벨라의 고해신부로 큰 활동을 하였는데, 마드리드(Madrid)에 흑사병이 만연하자 희생자들을 돌볼 준비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국왕은 그가 병균을 옮겨올까 두려운 나머지 이를 금지시켰다. 이에 그는 궁중을 떠나 선교사로 활약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성모 성명(姓名) 축일의 성무일도를 만들 정도로 성모 성명 신심에 불탔던 인물이었다.

1624년 9월 29일 마드리드에서 선종한 성 시몬 데 로하스는 사후에 그의 높은 성덕을 기리는 많은 이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았다. 결국 그는 1766년 3월 19일 교황 클레멘스 13세(Clemen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8년 7월 3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위대한 성모의 종이자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였던 그를 성인들의 반열에 올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안토니오 곤살레스

 

  • 가톨릭 성인 이름
    Anthony Conzal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37년 나가사키

 

 

안토니오 곤살레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곤잘레스,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안토니오 곤살레스 자료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는 첫 번째 필리핀인 성인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해 순교한 첫 필리핀 순교자이다. 그는 1600년경 마닐라(Manila)의 비논도(Binondo)에서 신자였던 중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국어와 타갈로그어를 배웠다. 그리고 도미니코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스페인어를 배웠다. 

그는 비논도 성당의 복사로 활동하였고 성사 보조자와 성사 기록자로 봉사하였다. 그는 아마도 서예로 생계를 유지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사적 혹은 공적인 용도의 서류를 아름다운 필기체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였다. 그 직업은 안정되고 교육받은 사람임을 암시하는데, 당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기술을 배우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1636년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살인 혐의로 고발되었다. 그릇된 재판으로 사형을 받을까 두려운 나머지 성 라우렌티우스는 필리핀을 떠나기 위해 배를 탔다. 

그런데 그 배에는 세 명의 도미니코회 신부인 성 안토니우스 곤살레스(Antonius Gonzalez, 또는 안토니오 곤살레스), 성 귈레르무스 쿠르테(Guillermus Courtet), 성 미카엘 데 아오자라자(Michael de Aozaraza)와 일본인 사제인 성 빈첸시오 시오즈카 드 라 크루스(Vincentius Shiwozuka de la Cruz)와 평신도이며 나환자인 교토(Kyoto)의 성 라자루스(Lazarus)가 타고 있었다. 

그는 바다에 나오고 나서야 그 배가 대대적인 그리스도교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일본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본의 오키나와(Okinawa)에 도착한 성 라우렌티우스와 동료들은 곧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갖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으나 용감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는 신앙을 철회하지 않았고 그의 사형집행인에게 자신은 하느님을 위해 죽으며, 자신이 죽는 대신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1637년 9월 27일 그는 교수대에 거꾸로 달려 구덩이로 떨어졌다. 이틀 동안의 고통 후에 그는 출혈과 질식으로 인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같이 이 시기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순교한 15명의 동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시복되었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알렉산데르

 

  • 가톨릭 성인 이름
    Alexand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경

 

 

알렉산데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레산드로,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알렉산데르 자료

성 마르코(Marcus)는 성 알렉산데르, 성 알피우스(Alpius), 성 조시무스(Zosimus), 성 니콘(Nicon), 성 네온(Neon), 성 헬리오도루스(Heliodorus)와 30명의 군인들과 함께 소아시아 피시디아(Pisidia) 지방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마르코는 양을 치던 목동이었고, 군인이 아닌 동료 순교자들은 그의 형제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알피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lp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경

 

 

알피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삐오, 알삐우스, 알피우스.

 

 

알피오 자료

성 마르코(Marcus)는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알피우스(또는 알피오), 성 조시무스(Zosimus), 성 니콘(Nicon), 성 네온(Neon), 성 헬리오도루스(Heliodorus)와 30명의 군인들과 함께 소아시아 피시디아(Pisidia) 지방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마르코는 양을 치던 목동이었고, 군인이 아닌 동료 순교자들은 그의 형제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0.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

 

  • 가톨릭 성인 이름
    James Kyushei Tomonag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82-1633년 나가사키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또모나가,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자크, 제임스, 쿠세이.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 자료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Laurentius Ruiz)와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Dominicus Ibanez de Erquicia)와 성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Jacobus Kyushei Tomonaga)와 13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일본 나가사키 지방에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1633년, 1634년, 1637년에 모두 순교하였다.

그들은 체포된 이후 잔혹한 고문을 당했고 그 시신은 불태워진 후 재마저도 흩어지고 말았다. 출신 국가별로 보면 일본 9명, 에스파냐 4명, 프랑스 1명, 이탈리아 1명, 필리핀 1명이다.

에스파냐 출신의 도미니코회 사제인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가 1633년 8월 처음 순교한 이후 필리핀 출신 평신도인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가 1637년 9월에 순교할 때까지 이들의 순교는 계속되었다. 총 16명의 순교자들 중 13명이 도미니코회 사제이거나 3회원이고 나머지 3명도 그들과 연관되어 있다.

이들 순교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나라에서 필리핀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왔다. 마닐라(Manila)의 성 토마스(Thomas)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필리핀의 여러 지방에서 설교하며 선교활동을 하던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가 1623년에 처음으로 일본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유력한 쇼군의 지원으로 그리스도교가 묵인된 상태였다.

그러다 다음 쇼군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1587년에 반포된 모든 선교사들의 추방 칙령 시대로 되돌아가 혹독한 박해가 다시 시작되었다.

결국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를 비롯한 도미니코회 사제들은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던 중 발각되어 십자가형, 참수형, 물고문형, 교수대에 거꾸로 달아 구덩이에 떨어뜨려 죽이는 등 여러 방법으로 마지막 며칠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순교하였다.

당시 선교지의 대목구장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던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는 1633년 8월 4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고, 현재 그의 편지 중 일부가 전해지고 있다.

성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는 일본인 출신 사제로 기데수(Kyudetsu)의 귀족 출신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가사키의 예수회 대학에서 수학한 후 교리교사로 활동하다가 1614년에 일본에서 추방되었다.

그는 필리핀의 마닐라와 대만에서 설교하다가 1632년에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모국인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제로서 신앙을 전파했다는 지목으로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1633년 8월에 5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성 라우렌티우스 루이스와 성 도미니쿠스 이바네스 데 에르키시아와 성 야고보 기세이 토모나가와 13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모두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1981년 2월 18일에 마닐라에서 복자품에 올랐고, 1987년 10월 18일 같은 교황에 의해 로마(Roma)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이들의 축일은 모두 9월 28일에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1. 엑스수페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xsupe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12년경 툴루즈

 

 

엑스수페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엑수뻬리오, 엑수뻬리우스, 엑수페리오, 엑수페리우스, 엑스수뻬리오, 엑스수뻬리우스, 엑스수페리우스.

 

 

엑스수페리오 자료

피레네 산맥의 아로에서 출생한 성 엑스수페리우스(또는 엑스수페리오)는 405년경에 툴루즈의 주교로 승품되어 그의 선임자인 성 실비우스(Silvius)가 시작했던 성 사투리아누스(Saturianus) 대성당을 완공시켰다. 이 주교의 뛰어난 특징은 관용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집트와 팔레스티나(Palestina)에까지 은수자들에게 선물을 보냈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는 그로부터 선물을 받고 “그는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을 곧 자기 자신으로 알았던 사람”이라고 엑스수페리우스의 성덕과 관용을 격찬하는 감사의 글을 보낼 정도였다.

창백한 그의 얼굴은 다소 엄격하게 보였지만 실은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지닌 애정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그리스도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의 사망 연대와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의 과도한 자선행위 때문에 죽기 얼마 전에 유배를 갔기 때문인 듯하다. 성 바울리누스(Paulinus)는 이분이 지방 교회에서 가장 위대한 주교 중의 한 분이었다고 회상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2. 요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1414-1484년 두클라

 

 

요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이오흔,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자료

1414년경 폴란드 갈리치아(Galicia)의 두클라에서 태어난 성 요한(Joannes)은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는 은수자로서 자신의 종교적인 삶을 시작했으나 후에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사제품을 받았다. 설교사제로 활동하던 그는 뛰어난 성덕과 명석한 판단으로 인해 후에 수도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임기가 끝난 후 그는 우크라이나의 리비프(lvov) 지방을 순회하며 선교사로서 헌신적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설교와 표양은 수많은 루테니아인(Ruthenian, 고대 키예프와 러시아 주민)들을 개종시켰으며 후스 이단자 개종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말년에 실명(失明)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사목자로서 늘 책임을 다하였다. 신자들의 고해사제이자 영적 지도자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그는 1484년 9월 29일 리비프에서 선종하여 그 지방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후에 두클라로 이장되었다.

그는 1733년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고, 1997년 6월 10일 폴란드의 크로스노(Krosno)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Lithuania)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의 축일은 지역에 따라 9월 29일, 10월 3일, 7월 10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3. 조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Zos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경

 

 

조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소시모, 조시무스, 조씨모, 조씨무스.

 

 

조시모 자료

성 마르코(Marcus)는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알피우스(Alpius), 성 조시무스(또는 조시모), 성 니콘(Nicon), 성 네온(Neon), 성 헬리오도루스(Heliodorus)와 30명의 군인들과 함께 소아시아 피시디아(Pisidia) 지방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마르코는 양을 치던 목동이었고, 군인이 아닌 동료 순교자들은 그의 형제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4. 티에모

 

  • 가톨릭 성인 이름
    Thiem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02년 잘츠부르크

 

 

티에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띠에모.

 

 

티에모 자료

성 티에모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 지방 귀족 가문 출신으로 베네딕토회에 입회하였고, 곧이어 화가이자 금속 예술가 그리고 조각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077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성 베드로(Petrus)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고, 1090년에는 잘츠부르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주교로서 성 티에모는 독일 왕 하인리히 4세(Heinrich IV)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가 서임권 문제로 충돌할 때 교황 편에 서서 왕과 투쟁하였고, 결국 하인리히 4세에 의해 추방되었다.

그 후 십자군 원정을 지원하기 위해 팔레스티나(Palestina)로 가는 중에 아스칼론(Ascalon, 오늘날의 이스라엘 지방)에서 이슬람교도에게 체포되어 오랫동안 고문을 당한 후 끝까지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를 거부하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5. 파우스토

 

  • 가톨릭 성인 이름
    Faus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493년경 리에즈

 

 

파우스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파우스또, 파우스뚜스, 파우스투스.

 

 

파우스토 자료

성 파우스투스(또는 파우스토)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사람으로 처음에는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양심적으로 변호하기가 어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레랭(Lerins) 수도원의 은수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7~8년을 수도원에서 지내다가 성 막시무스(Maximus, 11월 27일)를 계승하여 원장이 되었다.

그는 동시대를 살았던 성 호노라투스(Honoratus)와 클레르몽(Clermont)의 성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Sidonius Apollinaris, 8월 21일)로부터 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들에 의하면 그는 사막의 교부처럼 엄격한 수도생활로 성덕을 높이 닦았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리에의 주교로 승품되었다. 그는 훌륭한 주교이자 수도원장이었다. 주교직을 수행하면서도 수도자의 고행과 기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를 배격하여 강력히 대처한 분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마르세유(Marseille)의 성 요한 카시아노(Joannes Cassianus, 7월 23)와 힘을 모아 아리우스(Arius) 이단 등 교회 내의 모든 이단을 거슬러 정통 교리를 옹호하였다. 결국 그는 이런 활동의 결과로 죽을 때까지 유배형을 받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6. 헬리오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Heliodo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경

 

 

헬리오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헬리오도루스.

 

 

헬리오도로 자료

성 마르코(Marcus)는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알피우스(Alpius), 성 조시무스(Zosimus), 성 니콘(Nicon), 성 네온(Neon), 성 헬리오도루스(또는 헬리오도로)와 30명의 군인들과 함께 소아시아 피시디아(Pisidia) 지방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마르코는 양을 치던 목동이었고, 군인이 아닌 동료 순교자들은 그의 형제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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