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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영인 비비안나
- 세례명 축일
5월 29일 - 호칭 구분
복녀 - 가톨릭 성인 이름
文榮仁 Vivian - 신분과 직업
중인, 궁녀,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76-1801년 한국
문영인 비비안나 세례명과 같은 이름
문 비비안나, 문비비안나, 비비아나, 비비안.
문영인 비비안나 이야기
문영인(文榮仁) 비비안나(Vivianna)는 한양에 거주하던 중인 집안의 셋째 딸로 태어나, 일곱 살이 되던 1783년에 궁녀로 뽑혔다. 그때 작은 벼슬을 하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는 나이가 많은 딸들은 숨겨 두고, 어린 문 비비안나와 동생들만을 집에 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관리들은 문 비비안나의 총명함과 용모를 보고 궁녀로 선발하였다.
이렇게 하여 문 비비안나는 궁궐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글씨를 잘 쓰게 되자 궁궐에서는 그녀에게 문서 쓰는 일을 맡겼다.
스물한 살 되던 1797년에 문 비비안나는 병에 걸려 잠시 궁궐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그녀는 한 노파로부터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게 되었고, 얼마 뒤에는 그 노파에게서 교리를 배웠다.
문영인 비비안나는 그 뒤,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와 알게 되었다. 그리고 1798년에는 그녀의 집으로 가서 주문모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때부터 그녀는 가끔 강 골룸바의 집을 찾아가 교우들과 함께 교회 서적을 공부하거나 미사에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문 비비안나는 병이 완쾌되면서 다시 궁궐로 들어가야만 하였다. 물론 궁궐에서는 신자의 본분을 지키기가 몹시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녀는 최선을 다하여 기도 생활을 하였는데, 끝내는 천주교 신자라는 것이 발각되어 궁궐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제 문 비비안나는 신자의 본분을 지키는 데만 노력할 수 있었다. 그녀는 성인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그들의 모범을 본받으려고 하였으며, 열심히 기도 생활을 하는 동안, 자주 순교의 뜻을 드러내곤 하였다.
그러다가 집에서도 쫓겨나게 되자, 청석동에 집을 얻어 살면서 헌신적으로 교회 일을 돕기 시작하였다. 또 1800년에는 정약종 아우구스티노 회장이 한양으로 이주해 오자 그에게 집을 빌려 주기도 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난 뒤, 문 비비안나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순교할 때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그녀는 혹독한 형벌 도중에 정신이 혼미해져 신앙을 버리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만,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비록 죽음을 당할지라도 천주교 신앙을 믿는 마음을 고칠 수는 없습니다.”라고 신앙을 굳게 증언하였다.
이후 문 비비안나는 형조로 이송되어 다시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열심히 교리를 설명하면서 천주교 신자임을 증명할 뿐이었다. 이때 그녀가 형조에서 한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포도청에서의 첫 번째 진술에서는 비록 천주교를 배척한다고 했지만, 돌이켜 보건대 입으로는 배척한다고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실제로 배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곧 진술을 번복한 것입니다. 여러 해 동안 독실히 믿어온 신앙인데, 하루아침에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형조에서는 이제 문 비비안나의 마음을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녀의 죄목은 “천주교에 깊이 빠져 끝내 이를 뉘우치지 않으니, 만 번 죽여도 합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녀는 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녀는 동정녀로서 25세였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문영인 비비안나가 형벌을 받을 때에 다리에서 나오는 피가 꽃으로 변하여 공중으로 떠올랐고, 참수를 당할 때는 목에서 나오는 피가 젖과 같이 희었다고 한다.
문영인 비비안나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해 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비비아나
- 세례명 축일
12월 2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Bibiana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경
비비아나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비안, 비비안나.
비비아나 이야기
로마의 동정 순교자인 성녀 비비아나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은 “교황 연대표”(Liber Pontificalis) 안의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 468-483년) 교황의 생애 중에 등장한다.
그 내용 중에 성 심플리키우스 교황이 로마의 팔라티움 리키니아눔(Palatium Licinianum) 근처에서 거룩한 순교자 비비아나의 유해를 모신 성당을 축성했다는 언급이 있다.
5세기부터 성녀 비비아나와 그녀의 어머니인 성녀 다프로사(Dafrosa, 1월 4일)에 대한 공경이 널리 퍼졌지만, 그들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승에 따르면, 성녀 비비아나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신앙 때문에 고문을 받고 아쿠아스 타우리나스(Aquas Taurinas, 아마도 오늘날의 몬테피아스코네 Montefiascone)로 추방당한 로마의 전 총독 성 플라비아누스(Flavianus, 12월 22일)의 딸이자 성녀 데메트리아(Demetria, 6월 21일)의 언니이다.
성 플라비아누스는 박해받는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 피신처를 마련해 도울 만큼 모범적인 신앙인이었다. 군대가 들이닥친 순간에도 교우들과 함께 성녀 아녜스(Agnes)의 순교록을 읽으며 용기를 북돋우고 주님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순교의 길로 들어섰다.
성 플라비아누스가 순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에 있던 성녀 다프로사와 두 딸 역시 재판관 앞에 끌려가 심문을 받고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고 배교할 것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재판관은 성녀 다프로사를 참수형에 처했다.
졸지에 부모를 잃고 모든 재산마저 빼앗긴 성녀 비비아나와 성녀 데메트리아는 로마의 집정관으로부터 갖은 유혹과 회유, 배교를 강요당하며 잔인한 고문의 위협까지 받았다. 그 충격과 고통으로 인해 어리고 연약했던 성녀 데메트리아는 병약한 상태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재판관은 성녀 비비아나를 굴복시키고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게 만들려고 속임수를 써서 어느 창녀의 집으로 보냈다. 하지만 성녀 비비아나는 믿음의 힘으로 정결을 지킬 수 있었다. 집정관은 다시 그녀를 간질환자들과 미친 사람들이 갇힌 방에 집어넣었지만, 그들 또한 그녀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의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결국 집정관은 성녀 비비아나를 기둥에 묶어놓고 죽을 때까지 채찍질하라고 명령했다. 수없이 매를 맞아 죽어가던 그녀에게 한 사형 집행인이 날카로운 칼로 가슴을 찔러 목숨을 빼앗고, 그 시신을 야생 짐승들에게 던져주었지만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그녀의 시신은 로마의 한 사제가 거두어 어머니와 동생이 묻힌 곳에 안장했다.
로마의 신자들은 363년경 그들의 무덤 위에 경당을 세워 순교자들을 공경하며 전구를 청했다. 그리고 5세기 성 심플리키우스 교황 때 그곳에 동정 순교자 성녀 비비아나에게 봉헌한 성당이 건립되어 현존하고 있고, 그 성당 안에 성녀 비비아나가 죽기까지 묶여서 채찍질을 당한 기둥이 보존되어 있다.
비비안나(Bibianna, Vivianna)로도 불리는 성녀 비비아나(Viviana 또는 Vivian으로도 표기)는 박해 때 겪은 일로 인해 간질병 환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또 성녀의 무덤 주변에서 자란 허브의 효능에서 기인해 알코올 중독자, 두통 환자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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