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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남자세례명 10가지

피어나네 2023. 1.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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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다시오, 말라키, 사바, 아마데오, 에우프라시오, 오도, 오도리코, 펠릭스 (증거자), 펠릭스 (신부), 풀젠시오, 총 10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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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여자세례명 마크리나, 총 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월 1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0가지

 

 

 

 

1월 14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다시오

  2. 말라키

  3. 사바

  4. 아마데오

  5. 에우프라시오

  6. 오도

  7. 오도리코

  8. 펠릭스 (증거자)

  9. 펠릭스 (신부)

  10. 풀젠시오

 

1월 1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0가지

 

 

1. 다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Da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52년 밀라노

 

 

다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다시우스, 다씨오, 다씨우스, 다티오, 다티우스.

 

 

다시오 자료

성 다티우스(또는 다시오)의 일생은 참으로 험난하였다. 그의 주교 재임 기간은 530년에서 552년까지 계속되었지만 끝없는 반목과 투쟁 속에서 때로는 영적인 문제보다는 세속적인 일에 대항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동고트족(Ostrogoths)의 침공으로부터 밀라노를 방어하기 위하여 그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벨리사리우스(Belisarius) 장군과 동맹을 맺었으나 불행하게도 희망을 이루지 못했다. 벨리사리우스 장군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전에 그는 체포되어 갇혔기 때문이다.

 

포로가 된 성 다티우스는 그 얼마 후에 카시오도루스(Cassiodorus)라는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석방되었다. 밀라노에서 쫓겨난 그는 결국 콘스탄티노플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용감하게 교황 비길리우스(Vigilius)를 도와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일파와의 논쟁에 가담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체류하는 동안에 운명한 듯 하고, 그의 유해는 나중에 밀라노의 주교좌 성당으로 옮겨졌다. 그는 매사에 두려움을 몰랐으며 완전한 내적 평화를 간직한 채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말라키

 

  • 가톨릭 성인 이름
    Malach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구약인물, 예언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말라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말라기, 말라끼, 말라끼아스, 말라키아스, 맬러키.

 

 

말라키 자료

성 말라키(Malachias, 또는 말라기)는 구약성서 열두 편의 소예언서 중 마지막 책인 말라키서의 저자로 등장한다. 말라키서는 “야훼께서 말라키를 시켜 이스라엘에 내리신 경고”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말라키서는 종교와 사회 생활에 대해 가치있는 증언을 수록하고 있는 하까이서와 즈카르야서와 함께 유배 시대 이후의 예언을 담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말라키’라는 이름은 말라키서 1장 1절 표제에만 등장한다. 히브리어로 말라기는 ‘나의 특사’ 또는 ‘나의 천사’라는 뜻이다.


4세기의 유대 전승들을 모은 “예언자들의 삶”(Lives of the Prophets)에는 말라키가 즈불룬의 소파(Sopha) 출신으로 레위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전승에는, 말라키가 신앙심이 깊고 온유하여 백성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는데, ‘보는 것이 공정하여’ 말라키란 이름이 주어졌다고 전한다.

 

가(假)에피파니우스(Pseudo-Ephiphanius)와 다른 교부들은 이 전승을 받아들였으나, 현대의 학자들은 이러한 전승들이 기원이 늦고 비현실적이어서 예언자의 생애에 관한 증명으로는 역사적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다만 예언 내용을 통해서 볼 때, 그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인간 죄의 심각함(2.17-3,4; 3,6-7. 13-20)을 파악한 인격적인 신앙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와 이혼(2,10-16), 사회 불의(3,5)에 반대한 매우 헌신적이고 통합적인 인물이었다(A.E. Hill).

 

그는 성전과 사제와 희생 제사 등 종교의 형식에 대한 외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설교하였지만, 단지 형식주의자나 예식주의자가 아니고 윤리적, 영성적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사바

 

  • 가톨릭 성인 이름
    Sab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대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174-1237년 세르비아

 

 

사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사바스.

 

 

사바 자료

중세의 세르비아 왕국인 네만야(Nemanya) 왕조를 세운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의 셋째 아들인 성 사바는 17세 때에 그리스의 아토스 산(Mount Athos)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부친의 도움으로 세르비아 수도자들을 위하여 아토스 산에 수도원을 따로 세운 후 원장으로 봉사하였다. 그러다가 1207년 그의 형제인 스테파누스 2세와 불칸(Vulkan) 사이에 불화와 내전이 발발했을 때 고향으로 잠시 돌아가기도 했었다.

수많은 수도자들과 함께 돌아온 그는 스투데니카(Studenica)에 수도원을 세운 것을 비롯하여 온 나라의 개혁, 특히 교육을 위하여 헌신하여 땅에 떨어졌던 신앙과 교육이 부흥되기 시작하였다.

 

그의 노력은 국민들의 단결을 불러 일으켰고 교회 또한 크게 융성하게 하였다. 그는 방인사제와 주교를 존중하여 그들에게 교회를 맡김으로써 더욱 발전시키는 덕을 지녔다.

 

그는 두 차례나 성지를 순례했는데, 두 번째 순례 중 불가리아(Bulgaria)의 티르노보(Tirnovo)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세르비아의 수호성인이다. 그는 사바(Sava)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아마데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madeus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승

  • 활동 연도와 지역
    +1150년경 클레르몽

 

 

아마데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마데우스.

 

 

아마데오 자료

프랑스 오트리브(Hauterives)에서 태어난 아마데우스(또는 아마데오) 영주는 16명의 봉신(封臣)들과 함께 본느보 (Bonnevaux)의 시토 수도원에 들어갔다.

 

후에 그는 그의 아들인 로잔(Lausanne)의 아마데우스(1월 28일)를 교육시키기 위해 한 동안 클뤼니(Cluny) 수도원에서 지냈다. 그는 네 개의 수도원을 설립한 뒤 본느보 수도원으로 돌아와 지내다가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에우프라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phra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에우프라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크라티오, 에우크라티우스, 에우프라시우스, 유프라시오, 유프라시우스.

 

 

에우프라시오 자료

성 에우프라시우스(또는 에우프라시오)는 아마도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9월 16일)의 기록에 나오는 성 에우크라티우스(Eucrathius)와 동일인이거나 아니면 아프리카에서 아리우스파 반달족(Vandals)에 의해 순교한 주교일 것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오도

 

  • 가톨릭 성인 이름
    Odo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05-1200년 노바라

 

 

오도 자료

12세기 말 이탈리아의 카르투지오 회원 가운데 노바라의 오도가 그 성덕에 있어서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고, 다만 몇 사람의 증언이 남아 있을 뿐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는 그의 시복 준비로 질문서를 작성했는데, 그 중에서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오도는 진실로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밤낮으로 기도에만 열중했다. 그는 조그마한 움막 속에서 지냈고, 끊임없이 성경을 읽었으며, 손수 일하여 일용할 양식을 얻었다.

 

한 번은 대주교인 오데리시오가 그를 방문했는데 그는 거의 알몸으로 맨땅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는 주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주교님,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주님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저는 지금 그분 앞에 서 있습니다.”

 

이때 오도의 나이는 거의 100세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59년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오도리코

 

  • 가톨릭 성인 이름
    Odoric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사, 선교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286-1331년 포르데노네

 

 

오도리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오데리코, 오데리쿠스, 오도리꼬, 오도리꾸스, 오도리쿠스, 오도리크, 오도릭.

 

 

오도리코 자료

오도리쿠스(Odoricus, 또는 오도리코)는 이탈리아 프리울리(Friuli)의 포르데노네 마을에서 태어나 15세 때에 우디네(Udine)에서 작은 형제회의 회원이 되었다.

 

한적한 곳에서 하느님만을 섬기려는 사명을 느낀 그는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고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다시 우디네로 돌아와서 주민들에게 설교했는데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다닐 정도로 그의 설교는 성공적이었다.

그 후 선교사로서 동양으로 파견된 그는 1321년경 서 인도에 상륙했고, 1322년과 1328년에는 중국 북부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했으며, 1331년 1월 14일 우디네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모든 여정은 그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영혼을 구원하려는 열망 때문에 가능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75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는 오데리쿠스(Oderic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펠릭스 (증거자)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x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0년경 놀라

 

 

펠릭스 (증거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체.

 

 

펠릭스 (증거자) 자료

시리아인으로서 로마 군인이던 헤르미아스(Hermias)의 아들로 태어난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의 남부 나폴리(Napoli) 교외인 놀라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친이 사망하자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놀라의 성 막시무스(Maximus, 1월 15일)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성 막시무스 주교의 보좌로 활약하다가 그의 스승이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사막으로 갔을 때 스승 대신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러던 어느 날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가서 주교를 도와 주라고 지시하였다.

 

그러자 그의 몸을 감고 있던 사슬이 풀리고 감옥 문이 열려 마침내 그는 주교에게 갈 수 있었다. 성 펠릭스가 성 막시무스 주교를 찾아갔을 때 주교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데키우스 황제 사후에도 성 펠릭스는 수배 인물이었으나 박해가 종식될 때까지 6개월 동안 마른 우물 속에 숨어 지내다가 이듬해에 박해가 그치자 다시 사제 직무로 돌아왔다.

 

성 막시무스 주교가 서거했을 때 신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가 주교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자신의 선배 사제인 퀸투스(Quintus)를 주교품에 올리도록 그들을 설득하였다. 그 후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260년 1월 14일에 선종하였는데, 서거한 연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성 펠릭스를 기념하여 봉헌된 성당 중 대표적인 곳이 놀라에 세워진 성당으로, 이곳에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성 바울리누스(Paulinus, 6월 22일)가 놀라의 주교가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선임자인 성 펠릭스의 무덤 위에 큰 성당을 지어 성서 내용의 벽화로 내부를 장식하였고, 성인에 대한 자료들을 많이 수집, 정리하여 이후에 만들어진 전기의 자료가 되도록 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펠릭스 (신부)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x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로마

 

 

펠릭스 (신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체.

 

 

펠릭스 (신부) 자료

로마의 사제인 성 펠릭스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거의 없다. 그는 종종 같은 날 기념하는 놀라(Nola)의 성 펠릭스와 혼동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풀젠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Fulgen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30년경 에시하

 

 

풀젠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풀겐티오, 풀겐티우스, 풀젠시우스, 풀젠티오, 풀젠티우스.

 

 

풀젠시오 자료

성 풀겐티우스(또는 풀젠시오)는 성 레안데르(Leander, 3월 13일)와 성 이시도루스(Isidorus, 4월 4일) 그리고 성녀 플로렌티나(Florentina, 8월 28일)와 형제지간으로 에스파냐 남동부 카르타헤나(Cartagena) 또는 남서부의 세비야(Sevilla)에서 태어났다.

 

이들 남매는 모두 나중에 성인 · 성녀의 품에 올랐다. 에스파냐계 로마인 귀족 가문에서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549년경 서고트족(Visigoths)의 침입으로 도시가 파괴되자 가족과 함께 에스파냐 남서부의 세비야로 이주해 살았다.

그의 생애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내용은 많지 않지만, 그는 세비야의 주교가 된 큰형 성 레안데르에 의해 카르티헤나로 파견되어 어려운 일을 수행했고, 590년에서 600년 사이에 안달루시아(Andalusia) 지방 에시하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610년에 군데마르(Gundemar) 왕의 칙령에 서명해 비잔틴 제국의 통치 아래 있던 카르타헤나에서 영토를 분리해 톨레도(Toledo) 지방을 설정했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레카레두스(Reccaredus) 왕은 왕국을 위해 다양한 임무를 그에게 맡겼다고 한다.

 

그는 619년 동생이자 세비야의 대주교인 성 이시도루스가 소집한 제2차 세비야 교회 회의에 참석했고, 성 이시도루스는 “교회의 직분”에 관한 자신의 저작을 그의 형인 성 풀겐티우스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그의 축일은 에스파냐의 일부 지역에서 1월 16일이나 성녀 플로렌티나와 함께 6월 20일에 기념하기도 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월 14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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