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세례명 이름 찾기

로마노 남자세례명 8인 목록

pieonane 2024. 4. 17.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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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세례명 로마노는 로마누스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로마노 8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로마노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로마노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본받고 싶은 남자 세례명 찾기

로마노
천주교 남자세례명
8인 목록

 

 

 

 

로마노 남자세례명 목록

 

  1. 로마노 (2월 28일)

  2. 로마노 (5월 22일)

  3. 로마노 (8월 9일)

  4. 로마노 (8월 24일)

  5. 로마노 (10월 1일)

  6. 로마노 (10월 23일)

  7. 로마노 (11월 18일)

  8. 로마노 (11월 24일)

 

로마노 천주교 남자세례명 8인 목록

 

 

1. 로마노

 

  • 세례명 축일
    2월 2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omanus

  • 신분과 직업
    은수자,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463년 콘다트

 

 

로마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마누스, 로맹.

 

 

로마노 이야기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4세기 말경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에서 태어난 갈로-로망(Gallo-Roman) 출신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은수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 리옹(Lyon) 근처에 있는 에나이(Ainay) 수도원으로 가서 사비누스(Sabinus) 수도원장의 지도를 받았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후 은수 생활을 실천하기에 적합한 장소를 찾았고,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대에 있는 쥐라(Jura) 산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성 요한 카시아누스(Joannes Cassianus, 7월 23일)가 쓴 “제도서”(Instituciones)와 사막 교부들의 생애와 몇 가지 도구와 종자만 가지고 가서 움막을 짓고 기도하며 땅을 일구어 파종하고 독서에 열중하였다. 그러나 야수와 사냥꾼들 때문에 그의 첫 번째 은둔소는 파괴되고 말았다.

그즈음에 그의 동생인 성 루피키누스(Lupicinus, 3월 21일)가 은수 생활에 합류했다. 이들 형제는 두 강이 흐르고 절벽으로 둘러싸인 콘다트(오늘날의 생클로드[Saint-Claude])라는 곳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들의 경건한 삶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제자가 모여들자 그들을 위한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이 나중에 유명한 콘다트 수도원(Condat Abbey)이 되었다. 성 로마누스는 444년에 아를(Arles)의 성 힐라리우스(Hilarius, 5월 5일)에게 사제품을 받고 수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수도원에 모여드는 제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성 로마누스와 성 루피키누스 형제는 인근에 몇 개의 수도원을 더 세웠다.

그리고 형제가 공동으로 수도자들을 조화있게 지도하였다. 한편 여성 제자들도 모여오자 그들을 위해서 라 봄므(La Baume)에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성 로마누스 형제가 설립한 수도원은 상당히 엄격한 규율을 지켜야 했다.

기도 시간 외에는 주로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야 했고, 육식을 금하고 아픈 경우에만 우유와 달걀을 먹을 수 있었다. 성 루피키누스는 형보다 더 엄격한 성격의 소유자로 절대로 침대를 사용하지도 않았으며 포도주도 입에 대지 않았다.

성 로마누스는 테반 군단(Theban Legion)이 순교한 스위스 남부 발레(Valais)의 생모리스(Saint-Maurice)를 순례했는데, 길에서 만난 두 명의 나병 환자를 안아서 치유하는 기적을 행했다. 그리고 그가 제네바(Geneva)를 지나갈 때 소문을 듣고 나온 주교와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아 놀랐다고 한다.

그는 463년 2월 28일 선종하여 라 봄므 수도원 성당에 묻혔다. 성 로마누스가 선종한 후에 성 루피키누스가 수도원장을 맡아 480년까지 이끌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2월 28일과 3월 21일 목록에서 성 로마누스와 그의 동생인 성 루피키누스에 대해 기록하였다.

특히 성 로마누스는 쥐라산맥에 세운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으로서 고대 수도승들의 모범을 본받아 은수자로 살다가 나중에 많은 수도승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성 루피키누스는 성 로마누스와 함께 수도원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적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로마노

 

  • 세례명 축일
    5월 2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omanus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560년경 수비아코

 

 

로마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마누스.

 

 

로마노 이야기

이탈리아 몬테 수비아코(Monte Subiaco) 근방의 어느 수도원에서 살던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누르시아(Nursia)의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를 격려하여 성 베네딕투스가 은수자로서 3년 동안 살았던 동굴로 데려다준 인물이기도 하며, 그동안 성 베네딕투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 후 성 로마누스는 반달족(Vandals)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갔으며, 오세르(Auxerre) 교외에 퐁트루주(Fontrouge) 수도원을 세우고 그 수도원에서 운명하였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로마노

 

  • 세례명 축일
    8월 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omanus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8년 로마

 

 

로마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마누스.

 

 

로마노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과 교회 전승에 따르면,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당시 로마의 군인이었다.

그는 교회의 모든 재산을 넘기라는 황제의 명령을 거부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성 라우렌시오(Laurentius, 8월 10일) 부제의 영웅적 인내와 용기에 감동하여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았다.

성 로마노는 자신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당당히 선언하고 나서, 성 라우렌시오가 순교하기 하루 전날 채찍을 맞은 후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8월 9일 목록에서 성 로마노 순교자가 티부르티나 가도(Via Tiburtina)에 있는 성 라우렌시오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간단히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로마노

 

  • 세례명 축일
    8월 2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omanus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 네피

 

 

로마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마누스.

 

 

로마노 이야기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이탈리아 네피의 주교 성 프톨로메우스(Ptolomaeus, 8월 24일)를 계승하여 주교가 되었다. 그 또한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로마노

 

  • 세례명 축일
    10월 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omanus

  • 신분과 직업
    부제, 음악가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경

 

 

로마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마누스.

 

 

로마노 이야기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비잔틴 찬미가 저자로서는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는 유대인 출신인 듯하며 힘스(Hims)에서 이주해온 시리아 사람이다. 

그는 베이루트(Beirut)에서 부제로 지냈고 그 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왔다.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고, 다만 수천 곡의 찬미가 가운데 80여 편이 남아 있는 것으로 믿어진다. 

그 찬미가는 매우 극적이고 생기발랄하며 전례에 꼭 맞는 아름다운 시들인데, 현대인의 취향에는 다소 긴듯하고 또 산만한듯하게 느껴진다고도 평을 하지만, 뛰어난 영성과 신앙을 묘사하는 가사들이다. 

성 로마누스는 소위 콘타키온(Kontakion)이라 부르는 찬미가 형태에 전통적인 형태를 부여한 인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첫 번째 시는 성탄을 노래한 것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로마노

 

  • 세례명 축일
    10월 23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oman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44년경 루앙

 

 

로마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마누스, 로망, 로맹.

 

 

로마노 이야기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585년경 프랑크 왕국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과 관련한 전설에 따르면, 어머니가 불임으로 슬퍼하던 어느 날 밤에 천사가 아버지에게 나타나 아이가 태어날 것이며 그가 로마노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라 예고했다고 한다.

당시 귀족들의 관례대로 성 로마노도 어린 시절 클로타르 2세(Chlothar II) 왕의 궁정으로 보내져 왕의 시중을 들며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루앙의 성 아우도에노(Audoenus, 8월 24일)와 누아용(Noyon)의 성 엘리지오(Eligius, 12월 1일) 주교를 만나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법과 행정에 관한 교육을 받아 왕실 행정을 개혁하고 조직화하는 등의 일을 수행하면서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 629~639년 재위) 왕 때 두각을 나타냈다.

630년 루앙의 주교가 선종하면서 주교좌가 공석이 되었을 때 그가 많은 이들의 지지 속에 후임자로 선임되었다. 전설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그 지방의 수많은 우상을 제거했는데, 그 도시 사람들이 좋아하던 비너스 신을 모신 이교도의 성전을 기적적으로 그 기초부터 모두 허물어 버렸다고 한다.

그는 교구 내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이교도의 우상에 빠진 이들을 개종시켰으며, 계속해서 그를 유혹하던 악마와 우상의 도전을 모두 물리쳤다. 그는 또한 센(Seine) 강변의 늪지대에 사는 전설적인 용을 십자성호를 그어 붙잡아 죽였다고 한다.

성 로마노가 주민들의 청으로 그들을 괴롭히던 용을 잡으러 갈 때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는데,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사형수만이 그를 도와 함께 갔다. 그래서 그 이후로 18세기 말까지 매년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 한 명을 사면할 수 있는 주교의 특권이 유지되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에서 로맹(Romain)으로 불린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23일 목록에서 루앙의 주교인 성 로마노가 도시의 이교 신전을 철거하고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자 노력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로마노

 

  • 세례명 축일
    11월 1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omanus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안티오키아

 

 

로마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마누스.

 

 

로마노 이야기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증언에 의하면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시리아의 카이사레아(Caesarea)와 안티오키아 교회의 부제였다. 

그는 팔레스티나(Palestina) 출신으로 기혼자였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그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투옥되는 것을 보고 용감하게 일어나서 박해자의 말로에 대하여 엄중히 경고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그는 체포되었고 산채로 구워 죽이라는 형을 받았다.

그는 최후 진술을 통하여 참되고 유일한 하느님께 대한 깊은 사랑을 호소하여 듣는 이를 감동케 하였다. 프루덴티우스(Prudentius)의 시에 따르면 그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로마누스는 7살의 성 바룰라(Barula)라는 소년과 함께 순교하였는데, 성 바룰라에 대해 어떤 확실한 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학자들은 그를 시리아의 순교자인 성 바를라암(Barlaam, 11월 19일)과 동일인물로 보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로마노

 

  • 세례명 축일
    11월 2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omanus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385년 르망

 

 

로마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마누스.

 

 

로마노 이야기

이탈리아의 로마(Roma)에서 태어난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다. 그는 천성적으로 내성적이었고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를 떠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 갈리아 지방(오늘날의 프랑스) 르망의 초대주교이자 그 지역의 선교사 주교로 활동하고 있던 삼촌 성 율리아누스(Julianus, 1월 27일)의 부르심에 의해 알프스 산맥을 넘게 되었다. 당시 성직을 열망하던 그는 삼촌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였다.

성 로마누스는 그의 삼촌인 성 율리아누스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지롱드(Gironde) 강 주변에 복음을 선포하도록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그는 달변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선포하는 복음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명백하여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은 바로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는 또한 악마를 쫓아내고, 병든 이들을 낫게 하는 기적을 행하기도 하면서 이교도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주었다.

성 율리아누스 주교가 사망했을 때 그는 르망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아버지처럼 존경했던 성인의 무덤 곁에서 지내는 것이 그가 원하는 전부였다.

성 율리아누스를 계승한 주교는 성 로마누스에게 성인의 무덤을 관리하도록 허락하였고, 그는 충실히 그곳에 머물며 삼촌을 애도하였다. 후임 주교 역시 선종하여 성 율리아누스의 옆에 안장되었다.

그 후 교회 묘지는 빠른 속도로 확장되어 갔다. 신자들은 자신이 죽은 뒤에 성인들 곁에 묻히기를 원하였다. 그러면서 교회 묘지 근처에 앞서 간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을 돌보는 성직자들의 작은 공동체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들은 ‘무덤 파는 사람’이라 불리는 소품(小品)을 만들었다. 성 로마누스 역시 무덤 파는 사람이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르망의 신자들이 세상을 떠나면 그들의 육신을 초대주교인 성 율리아누스와 그의 후임 주교 곁에 묻는 일을 하였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안 그는 마지막으로 로마를 방문한 후 블레(Blaye)에서 세상을 떠나 그의 삼촌 곁에 묻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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