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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술라 여자세례명 2인 목록

피어나네 2024. 12. 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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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술라
천주교 여자세례명
2인 목록

 

 

 

 

우르술라 여자세례명 목록

 

  1. 우르술라 레도호프스카 (5월 29일)

  2. 우르술라 (10월 21일)

 

우르술라 천주교 여자세례명 2인 목록

 

 

1. 우르술라 레도호프스카

 

  • 세례명 축일
    5월 29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Ursula Ledochowska

  • 신분과 직업
    설립자,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865-1939년

 

 

우르술라 레도호프스카 세례명과 같은 이름

기울리아, 레도호브스카, 레두호브스카, 레두호프스카, 마리아, 메리, 미리암, 오르솔라, 우루술라, 우르슐라, 우술라, 율리아, 줄리아, 쥴리아.

 

 

우르술라 레도호프스카 이야기

성녀 우르술라 레도호프스카는 1865년 4월 17일 오스트리아(Austria)의 저(低) 오스트리아(Lower Austria) 주(洲)의 루스도르프(Loosdorf)에서 폴란드 출신 귀족인 안토니 레도호프스카(Antoni Ledochowski) 백작과 스위스 태생으로 살리스(Salis)의 명문가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율리아 마리아 레도호프스카(Julia Maria Ledochowska)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문 출신 중에는 유럽과 교회의 역사와 관련된 많은 정치인과 군인,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있었다. 그녀는 사랑 가득하고 독실한 집안에서 다섯 형제자매와 함께 성장했는데, 마리아 우르술라를 포함한 세 명이 봉헌생활을 선택하였다.

마리아 테레사(Maria Teresa)는 후에 성 베드로 클라베르의 수녀회(Society of St. Peter Claver)를 설립하였고, 1975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다. 남동생인 블라디미로(Vladimiro)는 후에 예수회의 총장신부가 되었다.

1874년 그녀의 가족은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장크트폴텐(Sankt Polten)으로 이주하였고, 그곳에서 율리아 마리아와 그녀의 자매는 메리 워드(Mary Ward) 수녀가 설립한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문법학교를 다녔다.

1883년 그녀의 가족은 다시 폴란드(Poland) 동남부 타르누프(Tarnow) 인근 리프니카 무로바나(Lipnica Murowana)에 있는 레도호프스카 백작 가문의 영지로 이사를 했다. 1885년 2월 아버지가 천연두로 사망하자 그녀의 삼촌인 레도호프스카 추기경이 가족들을 돌보게 되었다.

수도 성소를 느낀 율리아 마리아는 1886년 8월 18일 크라쿠프(Krakow)에 있는 우르술라회에 입회하여 수련기를 마치고 서원을 발하면서 ‘예수의 마리아 우르술라’라는 수도명을 선택했다. 마리아 우르술라는 크라쿠프의 수녀원에서 21년을 살았으며 1904년에는 원장수녀로 선출되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그녀의 교육적인 재능과 감각은 사회적 · 정치적 · 윤리적 상황의 변화에 놓인 젊은이들의 요구를 향하고 있었다. 비로소 여성들에게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을 때 그녀는 폴란드에 여학생들을 위한 첫 번째 기숙학교를 성공적으로 조직하여 여학생들에게 공부와 생활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고 또한 충실한 종교적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마리아 우르술라 수녀의 이러한 열정은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의 축복과 함께 교회에 대한 반감이 심했던 러시아의 중심으로 진출할 힘을 주었다. 수도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당시 수도생활이 금지되어 있는 페테르부르크(Petersburg)의 수녀원을 향해 떠날 때, 그녀는 자신이 미지의 목적지를 향하고 있으며 성령께서 그녀가 알지 못하는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잘 알지 못했다.

페테르부르크의 우르술라회 수녀들은 우르술라 원장수녀와 함께 비밀리에 생활하며, 비밀경찰의 지속적인 감시에도 불구하고 열성적으로 교육과 종교적 사업을 펼쳐 나갔다. 그러면서 폴란드와 러시아의 관계가 개선되기를 희망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마리아 우르술라는 러시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스톡홀름(Stockholm)으로 향했고,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스웨덴 · 덴마크 · 노르웨이를 두루 다니며 교육 활동뿐만 아니라 전쟁 희생자들과 교회일치 사업을 돕기 위한 지역교회의 활동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그녀가 활동하던 수녀회는 정치적, 종교적으로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의 상호이해를 위한 좋은 예가 되었다. 그녀의 모국에 대한 강한 사랑은 다양성 안에서 다른 나라에 대한 관용과 다르지 않았다. 한번은 그녀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녀는 즉시 ‘나의 정책은 사랑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1920년 마리아 우르술라 수녀는 자신의 사명과 뜻을 같이하는 40여 명의 수녀들과 많은 이민자 가정의 고아들과 함께 폴란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교황청의 승인을 받아 사도직 본부를 통고의 예수 성심의 우르술라회(Ursulines of the Sacred Agonising Heart of Jesus)라는 자치 수도회 성격으로 변경하여 설립하였다.

새 수도회의 영성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에 대한 관상과 교육 사업을 통한 사명 수행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고통 받고 외롭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특별히 봉사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두고 사랑하며 모든 사람과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찾도록 수녀들을 교육하였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미소와 영혼의 감수성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유대를 이루었고, 복음화와 교육 활동의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는 듬직한 증거로서 자신을 제시하였다. 그녀의 겸손과 수용력은 평범한 매일의 일상을 성덕을 향한 특별한 길로 살아갈 수 있는 분명한 모범이 되었다.

그녀의 수도회는 빠르게 발전하였다. 폴란드와 가난하고 다국적이며 다종교적인 동쪽 국경 지역에 우르술라회 공동체들이 설립하였다. 1928년에는 로마(Roma)로 진출하여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소녀들을 위한 기숙학교를 포함한 수도회 센터를 설립하였다. 이를 통해 가난한 소녀들에게 교회와 유럽 문명의 중심에서 영성적 · 종교적 풍요로움과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수녀들은 또한 로마 외곽의 가난한 지역에서도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30년에는 30여 명의 수녀들을 프랑스로 파견하여 소녀들을 위한 일을 찾고 수녀원을 설립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가난한 지역의 마을에 교리교육과 활동을 위한 수녀들을 파견했고,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위한 책과 논문도 작성했다. 그러면서 어린이들과 젊은이들과 여성들을 위한 교회 조직을 설립하고 유지해 나갔다.

교회와 국가의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교회와 국가 모두로부터 큰 인정과 훈장을 받았던 마리아 우르술라 수녀는 1939년 5월 29일 로마의 수녀원에서 그녀의 고되고 싶지 않았던 삶을 마감하였다. 그녀가 선종하자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성인으로서 죽었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그녀는 1983년 6월 20일 폴란드 서부의 포즈나뉴(Poznan)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9년 5월 29일에는 그녀의 유해를 폴란드의 수녀회 본원으로 옮겨 모셨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2003년 5월 18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그녀를 성인품에 올렸다.

그녀는 마리아 우르슐라 레도호프스카(Maria Urszula Ledochowska), 마리아 오르솔라 레도호프스카(Maria Orsola Ledochowska), 우르술라 율리아 레도호프스카(Ursula Julia Ledochowska) 등으로도 불리며, 5월 26일에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우르술라

 

  • 세례명 축일
    10월 21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Ursula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경 쾰른

 

 

우르술라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오르솔라, 우루술라, 우술라.

 

 

우르술라 이야기

성녀 우르술라는 4세기경 독일 쾰른에서 11,000명의 동정녀와 함께 순교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들의 순교에 얽힌 이야기는 중세 때 널리 읽힌 복자 야고보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7월 13일)의 “황금 전설”(Golden Legend)이란 성인전에 수록되어 있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성녀 우르술라는 영국에서 그리스도교 신자인 어느 왕의 딸로 태어났다. 성녀 우르술라는 이교도 왕의 아들에게 청혼을 받았으나 결혼보다는 동정녀로 살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래서 어렵게 3년이란 시간을 얻어 귀족 가문의 처녀 10명과 함께 여행길에 나섰고, 그 사이에 비신자인 왕자는 교리 공부를 하고 세례받을 것을 약속받았다. 성녀 우르술라와 10명의 처녀들은 각각 1,000명의 처녀들을 데리고 11척의 배에 나눠 타고 항해를 떠났다.

약속한 기간인 3년이 지나자 약혼자는 성녀 우르술라를 불러들이고자 했다. 그런데 강풍이 불어 성녀 우르술라와 그 일행이 탄 배가 영국 해안에서 떠밀려 멀리 유럽 대륙의 쾰른까지 내려갔다. 쾰른에 도착한 성녀 우르술라와 동료 동정녀들은 육로로 이탈리아의 로마로 가서 교황의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일행 중에 아직 세례받지 않은 모든 동정녀에게 세례를 주고 다시 쾰른으로 돌아왔다. 성녀 우르술라와 그 일행이 쾰른으로 돌아왔을 때 그 도시는 이미 훈족에게 포위당한 상태였다. 약탈과 살인을 일삼던 포악한 훈족의 족장은 성녀 우르술라의 미모에 반해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화가 난 족장은 성녀 우르술라와 그 일행에게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며 혹독한 고문을 자행했으나 성녀 우르술라의 지도를 받은 동정녀들은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모두 순교했다고 한다.

성녀 우르술라와 11,000명의 동료 순교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중세 시대에 가장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순교 이야기 중 하나였다. 10세기부터 이들의 순교 이야기에 11,000명이란 동정녀 숫자가 명시되기 시작했는데, 사실 11,000이란 숫자는 ‘XIMV’을 후대의 필사자가 잘못 읽은 데서 기인했다고 한다.

본래 이 표기는 ‘11명의 동정 순교자’(11[XI] Martyres Virgines)라는 의미인데, 이를 ‘11,000명의 동정녀’(11[XI] Milla Virgines)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즉 ‘M’이란 글자를 ‘순교자’가 아닌 ‘천(千)’이란 숫자로 잘못 해석한 것이다. 그런데 1152년 쾰른에서 고대 로마 비석 발굴로 순교자들의 이름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성녀 우르술라 일행에 관한 전설이 더욱 확고하게 정착되었다.

1535년 브레시아(Brescia)의 성녀 안젤라 메리치(Angela Merici, 1월 27일)는 특별히 소녀들의 교육과 가톨릭 여성 교육에 헌신하는 수도회를 설립하면서 성녀 우르술라의 이름을 따서 ‘우르술라회’로 명명하였다. 이 수도회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여러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성녀 우르술라에 관한 이야기도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중엽 교황 베네딕토 14세(Benedictus XIV)가 성녀 우르술라 외에 엄청난 숫자의 ‘일행 순교자들’에 대한 언급을 옛 “로마 순교록”에서 삭제했고,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 때는 성녀 우르술라 이름도 빠졌다.

그래서 보편 전례력 안에서 성녀 우르술라의 이름을 찾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여러 지역교회에서 성녀 우르술라는 가톨릭 교육(특히 여성 교육), 교육자와 교사들, 학생들, 선종(善終)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21일 목록에서 독일 쾰른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로써 삶을 마감한 성녀 우르술라와 동료 동정 순교자들을 기념해 그 자리에 대성당이 봉헌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성녀 우르술라는 오르솔라(Orsola)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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