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는 사랑을 감정으로 먼저 떠올리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순간에 몸소 낮아지심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 주십니다. 배신의 그림자가 이미 드리워진 자리에서도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에 오래 마음이 머물러요.
사랑은 그저 좋은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아픔과 분열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을 내어주는 것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이렇게 서로의 발을 씻어 주는 삶으로 초대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4월 2일 성목요일 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명동성당 실시간 생중계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4월 2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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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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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탈출기 12장 1-8.11-14절

파스카 만찬에 관한 규칙
그 무렵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코린토1서 11장 23-26절

여러분은 먹고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23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요한복음 13장 1-15절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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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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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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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내어줌으로 완성된 사랑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고 계십니다. 이 만찬이 끝나면 곧 겟세마니에서 붙들리시고, 다음 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이 급박한 이별의 순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셨는지 헤아려 보는 일은 ‘파스카’를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분명히 전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요한 13,1), 곧 이 세상의 삶에서 저세상의 삶으로, 삶의 한복판에서 죽음의 문턱으로 당신 자신을 ‘내주실’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조차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이나 투쟁심보다 당신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지니셨습니다.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13,1).
그 사랑의 기억은 성찬례 안에서 오늘도 이어집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 말씀처럼 성찬례는 그분의 ‘내주심’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참례하는 성찬례는 과거 사건을 기념하는 예식으로 그치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내주심, 곧 자기 봉헌의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앞에 사랑의 징검다리를 놓아 주십니다. 지상의 삶을 넘어 하늘 나라에 이르도록, 현세의 한계를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도록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배신에서 용서로, 분열에서 일치로, 아픔에서 위로로, 미움에서 사랑으로 건너가도록,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내어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분께서 열어 주신 영원한 길로 건너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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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우리는 하느님의 몫을 나누어 가진 거룩한 존재다.
오늘, <성 목요일>은 성체성사 설정의 신비와 의미를 되새기는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체성사 설정 장면이 아닌,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장면을 들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 ‘발 씻김’은 당혹스런 쇼크요, 스캔들이었습니다.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는 스캔들이었습니다. 섬김을 받아야 할 분이 섬기신 까닭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8)
이 말씀에는 우리의 구원에 필수적인 그 무엇이, 이 ‘발 씻김’안에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단지 섬기는 자의 본보기로 보여주신 것만이 아니라, 무언가 또 다른 비밀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바로 여기에, ‘발 씻김’의 놀라운 신비가 있다. 곧 ‘발 씻김’은 한갓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 차원인 것이 아니라, 무릇 ‘참된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로 제시됩니다. 이 ‘섬김’은 벗을 위해서 자신을 바치는 ‘무한한 사랑의 행위’요, 동시에 ‘죄를 씻어주는 용서와 구원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파스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투완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한 성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섬김은 자신을 헌신하여 내어주는 ‘성체’가 됩니다. ‘성체’인 이 섬김으로 우리의 죄가 씻겨 지고, 다른 사람의 죄를 씻어주게 됩니다. ‘섬김’은 이렇게 ‘구원의 성체’가 됩니다. 곧 ‘섬김’은 성체성사가 현실 속에 실현되는 구체적인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섬김’을 통해서, 예수님과 함께 구원의 ‘몫’을 함께 하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과 함께 구원사업의 ‘몫’을 하기 위해서 ‘먼저 예수님께 섬김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먼저’ 섬김을 받은 자라야 섬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섬김’ 받은 바로 그 ‘섬김’으로 다른 이들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자기 전달, 자기 양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섬김’은 신적인 행위가 됩니다. 예수님을 내어주는 ‘성체’가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몫’을 나누어 받게 되고, 진정한 파스카가 됩니다.
그래서 성 베르나르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발 씻김의 성사는 단순한 본보기가 아니라 화해성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는 ‘발 씻김’으로 우리의 죄가 씻겨 지고, 또한 다른 사람의 죄를 씻어주게 된다는 뜻입니다. 곧 ‘섬김’은 용서의 능력이 됩니다. 그리하여 ‘섬김’은 서로가 서로에게 베푸는 ‘화해성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배신할 베드로와 십자가 아래서 옷마저 벗어버리고 도망쳐버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그들을 미리 용서하셨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주시기 전에 이미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요한 13,10)
이는 당신께서 제자들을 ‘이미 사랑해 오신 증거’입니다. 이제 그렇게 사랑해오던 제자들에게 ‘끝까지’ 사랑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씻어주실 뿐만 아니라 닦아주시며 돌보십니다. 그래서 ‘발 씻김’은 깨끗함의 완성을 가리키는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해줍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의 ‘발 씻김’으로, ‘당신의 몫’을 건네받은 것입니다. 당신의 생명을 전달하는 이 감격의 성체성사의 몫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이토록 놀랍고 거룩한 성사인 ‘발 씻김’으로 하여, 우리는 마침내 ‘구원의 몫’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이토록, 우리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몫’을 나누어 가진 거룩한 존재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3장 8절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주님! 제 영혼을 씻어주소서.
당신 사랑을 입고 생명의 몫을 얻게 하소서.
섬김 받기보다 먼저 섬기게 하소서.
낮아져 높일 줄 알고 작아져 의탁할 줄을 알게 하소서.
쪼개지고 부서져 내어주고 파스카를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얼굴 닦아주는 부모, 발 닦아주는 부모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는 그 지극한 신비 안으로 초대받았습니다. 성목요일, 주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세우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이 발 씻김 예식을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 발을 씻기시는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크게 두 부류의 부모 밑에서 자랍니다. 하나는 자녀의 '얼굴'을 닦아주는 부모이고, 다른 하나는 자녀의 '발'을 닦아주는 부모입니다.
먼저 얼굴을 닦아준다는 것은 자녀를 세상 사람들에게 "내 자식 이렇게 잘났어!"라고 보여주기 위해 다듬는 행위입니다. 얼굴은 세상에 드러나는 '자존심'과 '명예'를 상징합니다. "너는 나의 자랑이야!"라고 말하며 자녀의 성적, 외모, 학벌이라는 얼굴을 반짝반짝하게 닦아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결국 불행해집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욕망인데, 결국 부모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인공 주디 갈랜드(Judy Garland)의 어머니 에델 검(Ethel Gumm)은 그녀는 딸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기 위해 아홉 살 소녀였던 딸에게 '에너지 약'이라며 각성제를 먹였고, 밤에는 잠을 자게 하려고 수면제를 강제로 투여했습니다.
촬영장에서 지치지 않고 예쁜 '얼굴'을 유지하게 하려고 하루에 블랙커피와 묽은 수프만 먹이며 혹독한 다이어트를 시켰습니다. 딸의 건강이나 정서보다 영화사의 계약 조건과 수입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주디 갈랜드는 평생을 약물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마흔일곱이라는 이른 나이에 화장실 바닥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출처: 제럴드 클라크 『겟 해피: 주디 갈랜드의 생애』)
자녀의 얼굴을 씻는 부모는 심리학적으로 '자기애적 대리만족'에 빠진 것입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자녀를 통해 보충하려는 욕망입니다. 가지지 못한 배고픔으로 자녀까지 먹어 치우는 괴물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반면, 발을 씻어주는 부모는 자녀의 얼굴(자존심)이 아니라 발(욕망과 상처)을 봅니다. 발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이며, 가장 낮고 더럽고 수치스러운 곳입니다. 그것을 씻어주고 닦아줄 때 세상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아이 가슴 속에는 자존감이 샘솟습니다. "내 자부심이 되어라"가 아니라, "괜찮아,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너는 있는 그대로 소중하단다"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 (1988)의 알프레도(Alfredo)도 그런 인물입니다. 눈이 멀어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영사기사 알프레도는 고아나 다름없던 어린 토토를 매몰차게 밀어냅니다. 그는 토토가 낡은 시골 마을에 남아 자신의 곁을 지키며 안주하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욕망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토토를 위해 기꺼이 악역을 자처하며 마을을 떠나라고 매정하게 밀어냅니다.
"돌아보지 마라. 향수에 젖지 마라. 네가 하는 일을 사랑해라."
그는 토토가 가진 과거에 대한 집착과 고립이라는 '더러운 발'을 자신의 외로움으로 씻어준 것입니다. 알프레도가 죽은 뒤 토토에게 남긴 유산, 즉 검열로 잘려 나갔던 수많은 '키스 신'들을 이어 붙인 필름은 "너의 모든 불완전한 순간들이 실은 사랑이었다"라는 최고의 발 씻김이었습니다. 그 사랑 덕분에 토토는 죄책감 없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출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 영화 '시네마 천국' 1988)
오늘 복음은 아주 중요한 비밀을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셨다는 것, 그리고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오셨다가 하느님께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요한 13,3)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받았음을 확신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께 다 받았다고 믿고 감사하는 부모는 자녀에게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내 잔이 넘치니 그저 흘려보낼 뿐입니다.
베드로의 발을 씻기신 주님의 행위는 그의 교만을 씻어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습니다. 하지만 유다와 달리 베드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무릎을 꿇고 자신의 더러운 발을 만지시던 그 '겸손한 사랑'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통곡하며 회개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위해 노예가 되셨던 그분의 '발 씻김'을 기억하며 그분이 나에게 '다 주셨음'을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감사한 것을 찾아내 다 주신 분이 계심을 믿을 때, 비로소 우리의 죄는 씻겨 나갑니다. 감사하는 자만이 깨끗해질 자격을 얻습니다.
여기, 감사의 힘으로 자신의 비극을 축복으로 바꾼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천 개의 은총』의 저자 앤 보스캠프(Ann Voskamp)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동생이 농장 사고로 트럭에 치여 죽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그녀의 삶은 분노와 공포, 결핍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녀는 자녀들에게도 늘 완벽을 강요하며 '얼굴 닦아주는' 엄격하고 신경질적인 어머니였습니다. 아이들이 우유를 쏟거나 진흙 묻은 발로 거실을 더럽히면, 그녀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고함을 쳤습니다. "빨리 안 닦아! 왜 이렇게 말썽이니!" 그녀에게 자녀는 자신의 완벽함을 증명해야 할 '얼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제안했습니다.
"감사한 일 천 가지를 매일 적어보게."
그녀는 처음엔 비웃었습니다.
"내 인생에 감사할 게 뭐가 있다고!"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라도 적기 시작했습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아이들의 웃음소리', '부드러운 비누 향기'... 아주 사소한 것부터 하느님께 받은 것들을 찾아내기 시작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아, 하느님은 이미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계셨구나!' 감사일기를 통해 그녀가 '다 받은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자, 자녀들을 향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실수로 바닥에 잼을 잔뜩 쏟았을 때,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그녀가 조용히 아들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의 눈을 보며 웃어주었습니다.
"괜찮아. 우리에게 먹을 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니? 그리고 네가 건강하게 움직여서 이걸 쏟을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야."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닦아 완벽하게 만들려던 강박을 버리고, 아이의 실수와 부끄러움이라는 '더러운 발'을 감사의 수건으로 씻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아이의 발치를 기쁘게 닦아낼 때, 아이는 비로소 엄마의 사랑 안에서 안식하며 정직하고 밝은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할 때 부모는 비로소 기쁘게 노예가 되어 자녀의 발을 닦습니다. (출처: 앤 보스캠프 『천 개의 은총』)
자녀를 키울 자격은 내가 얼마나 풍족한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감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 다 받았음을 믿을 때만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니 힘들더라도 감사할 것이 없다는 자신과 싸워 하루에 감사한 것 5개씩 쓰고 잠자리에 드는 기적의 5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부유하다고 믿는 자는 남의 발을 씻기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자신이 모든 것을 가졌음을 깨닫는 자는 기쁘게 노예가 되어 타인의 발을 닦는다. 부모가 무릎을 꿇을 때, 자녀는 그 무릎 사이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요한 복음 강론』)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사람들이 많이 본 영화, 마동석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범죄도시2’에서 유명한 대사가 있습니다. 위협을 무릅쓰고 불법 수사까지 불사하며 범인을 쫓는 모습에 동료 형사가 만류하면서 “도대체 타지에서 이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뭡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때 주인공 마석도 형사가 이렇게 답합니다.
“이유가 어딨어, 나쁜 놈은 그냥 잡는 거야.”
솔직히 영화를 안 봐서 잘 모르겠지만, 아마 위협을 무릅쓰고 범인을 쫓는 이유를 ‘그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쁜 놈은 잡아야 한다’라는 단 하나의 원칙을 따르니 그냥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님을 따르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시 ‘그냥’이 아닐까요? ‘사랑하라’는 단 하나의 원칙을 따르니 그냥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삶은 그냥 편안한 마음을, 그리고 기쁨과 평화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른 이유를 계속 붙이는 우리입니다. 남들과의 비교,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드러내는 것 등등…. 이렇게 이유를 붙이다 보면 어떻게 될까요?
그냥 사랑하기 힘들어집니다.
주님 만찬 성목요일인 오늘, 복음에서는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라고 말하면서 이어질 세족례와 십자가 수난의 동기를 이야기하십니다. 배반할 유다,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할 베드로, 도망칠 제자들임을 아시면서도 이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족례는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 위에 군림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시는 것입니다. 먼저 겉옷을 벗고 수건을 두르십니다. 당시 발을 씻어주는 일은 이방인 노예 등 ‘아랫사람’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겉옷을 벗으셨다는 것은 당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으심을 상징하며, 수건을 두르신 것은 스스로 가장 비천한 종의 형상을 취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요한 13,8)라고 말합니다. 겸손해 보이는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적인 체면과 위계질서에 갇혀 하느님의 방식을 거부하는 교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종처럼 낮아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다음,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5)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도 자존심, 직함, 체면 등의 겉옷을 벗어야 하고, 수건을 두르고 허물, 실수, 아픔 등의 누군가의 더러운 발을 닦아줘야 합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힘들게 하는 유다와 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냥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다주듯, 잘 보낸 삶이 행복한 죽음을 가져다준다(미상).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타인의 발을 씻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약함과 불완전함을 존중으로 받아들이며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정화와 용서가 필요한 우리의 여정입니다. 사랑은 사람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함께 먹고 나눈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연결되는 가장 깊은 친교의 행위입니다. 만찬과 함께 이루어진 발 씻김은 사랑이 반드시 행동이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먹이는 사랑은 곧 씻겨주는 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다시 살아내는 우리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부족하고 흔들리는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이어주고 소외된 이들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초대하는 관계의 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깊이 갈망하는 ‘조건 없는 수용’을 보여주십니다. 붙잡을수록 줄어들고, 나눌수록 넓어집니다. 빵을 떼어 나누신 행위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홀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나눌 때 비로소 자신이 되는 존재입니다.
주님 만찬은 기억하라는 초대입니다. 오늘 우리의 식탁과 삶의 자리에서, 자신을 떼어 나누는 사랑은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는 생명이 됩니다. 주님 만찬은 살아 있는 사랑의 가장 좋은 식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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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