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시나이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시나이까?
어리석고 완고한 마음을 열어 주시어 말씀을 깨닫고 새로운 걸음을 걷게 하시는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신앙은 이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이어지는 길임을 배웁니다.

2026년 4월 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4월 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3장 11-26절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 무렵 치유받은 불구자가
11 베드로와 요한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데, 온 백성이 크게 경탄하며 ‘솔로몬 주랑’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 그들에게 달려갔다.
12 베드로는 백성을 보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또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
13 여러분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고, 그분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빌라도 앞에서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하느님과 이사악의 하느님과 야곱의 하느님, 곧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배척하고 살인자를 풀어 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16 이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믿음 때문에, 바로 그분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또 아는 이 사람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었습니다.
17 이제,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시리라고 예고하신 것을 그렇게 이루셨습니다.
19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20 그러면 다시 생기를 찾을 때가 주님에게서 올 것이며,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정하신 메시아 곧 예수님을 보내 주실 것입니다.
21 물론 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예로부터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만물이 복원될 때까지 하늘에 계셔야 합니다.
22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야 한다.
23 누구든지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백성에게서 잘려 나갈 것이다.’
24 그리고 사무엘을 비롯하여 그 뒤를 이어 말씀을 전한 모든 예언자도 지금의 이때를 예고하였습니다.
25 여러분은 그 예언자들의 자손이고, 또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희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하시며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어 주신 계약의 자손입니다.
26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루카복음 24장 35-48절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4월 9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11:3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부활은 과거가 아닌 현재입니다.
부활은 엄청난 사건이지만, 현실의 일상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기도 합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분명한 희망이 되지만,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의혹의 대상이 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환상처럼 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시고, 직접 만져 보라고 하셨으며, 심지어 물고기 한 토막을 잡수셨습니다.
또한 성경 말씀도 풀이해 주셨습니다. 곧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멀리 계시는 신비로우신 분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 함께 계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현존을 보도록 초대하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본다’라는 말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곧 단순히 눈으로 보는 단계, 주의 깊게 바라보는 단계, 그리고 보이지 않는 뜻까지 깨닫는 단계입니다. 제자들은 처음에는 놀라서 보고, 이어서 주의 깊게 살펴보다가, 마침내 믿음으로 부활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돌아봅시다.
부활은 단순히 과거의 기적이 아니라, 나를 새롭게 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내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라고 하셨듯이 우리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증인으로서 우리가 전할 것은 화려한 기적이 아니라 십자가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과 죄의 용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 우리 삶 안에서 열매 맺어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때, 부활은 더 이상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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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주간 첫날, 엠마오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루카 24,34)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엠마오로 가다가 되돌아온 두 제자들도 그들이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서시며 당신의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그러나 제자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마치 바다를 걸으신 예수님을 보고서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보아라.” (루카 24,38-39)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증명하시기 위해, 손발의 상처를 보여주시며 만져보라고 하십니다. 당신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보고도 믿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히브리인들이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왔건만 기적을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목이 뻣뻣하여 믿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의 삶에서 벌어지는 기적들을, 특히 성체성사를 매일 거행하면서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물고기를 잡수시면서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 살아계심을 증명해 보여주시기까지 하십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유령이 아니라는 것만이 아니라, 제자들과 여전히 친교를 이루고 함께 사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줍니다.
이토록 보여주고, 만지게 하고, 함께 먹으며 친교를 나누시는 주님의 사랑으로 제자들은 차차 눈이 열려갑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한 가지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믿음은 기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부터 오는 까닭입니다. 마침내, “성경말씀”을 들려주심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마태 24,45)
이는 부활신앙이 기적을 보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말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곧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여는 열쇠임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부활의 생명을 부어주십니다. 그 지고한 ‘사랑’을 말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마음 속 깊은 곳을 여시어, 침묵의 언어로 새겨진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깨달은 바를 제 삶으로 인쇄하게 하소서. 제 삶 안에 당신 사랑이 피어나게 하소서.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복음 24장 45절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주님! 제 마음 속 깊은 곳을 여시어, 침묵의 언어로 새겨진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하소서.
깨달은 바를 제 삶으로 인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는 잉크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선과 질서, 당신의 뜻과 지혜, 형언할 수 없는 당신의 신비들을 온몸에 새기며 살아가는 당신의 복음서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성경을 읽어야 진리에 도달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에게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루카 24,45)
부활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 팔일 축제의 목요일을 지내며,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시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신앙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먼저 만났기 때문에 성경이 이해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성경 강의를 하다 보면 많이 항의를 받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여전히 가톨릭 안에서도 성경을 공부해야 예수님을 만나고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여깁니다. 저는 성경 연구는 개신교나 사이비처럼 잘못된 해석으로 교회가 갈라지는 원인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성체와 같습니다. 우리가 현미경으로 성체를 분석한다고 해서 그 안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성체는 주님을 만난 사람에게만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이 '인식의 순서'에 대해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먼저 만나고 그분이 마음을 열어주어 성경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이 재밌어집니다.
우리는 기록이나 글을 연구하는 자아가 어떻게 실제 인격을 밀어내는지, 그 비극적인 지적 자폐의 사례를 보아야 합니다. 프랑스의 작가 기 드 모파상의 일화에는 이와 유사한 인간의 어리석음이 묘사됩니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가 남긴 수만 장의 편지와 일기를 연구하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필체, 문체, 자주 쓰는 단어의 빈도수까지 분석하여 『내 아버지의 모든 것』이라는 완벽한 평전을 썼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우주에서 가장 잘 이해하는 전문가라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안으려 했습니다.
"아들아, 보고 싶었다! 한 번만 안아보자!"
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품을 거칠게 밀쳐냈습니다.
"당신은 내 연구 결과와 다릅니다. 내 책에 따르면 아버지는 이런 투박한 말투를 쓰지 않고, 이런 낡은 옷을 입지도 않으십니다. 당신은 내 아버지일 수 없습니다. 가짜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이 바로 이랬습니다. 그들은 성경이라는 기록은 달달 외웠지만, 정작 그 성경을 뚫고 살아나신 당사자가 나타나 안아주려 하자 "당신은 우리 율법 해석과 다르다"라며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실체를 만나는 것보다 자기가 분석한 지식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젠 더 심각하게 성경을 연구할수록 왜 더 우상숭배자가 되기 쉬운지 하나의 예도 들어드리겠습니다.
20세기 초,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실체를 찾겠다며 이른바 '역사적 예수 탐구'에 열을 올렸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배제하고 오직 과학적 연구로만 성경을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그의 저서 『역사적 예수 탐구』 (1906)에서 이 연구자들을 향해 통렬한 일침을 가했습니다.
"수많은 학자가 성경이라는 깊은 우물 속에서 예수의 진짜 얼굴을 찾으려 들여다보았지만, 결국 그들이 본 것은 우물 바닥에 비친 '자기 자신의 얼굴'뿐이었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 없는 연구는 결국 '내가 믿고 싶은 예수', '내 입맛에 맞는 하느님'이라는 우상을 만들어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자기를 신격화하는 사이비 교주가 되거나, 자기 정치적 성향에 맞게 성경을 가위질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거세된 연구는 결국 '자기 숭배'로 귀결될 뿐입니다. 자기 숭배가 우상숭배의 원형입니다.
이제 올바른 성경 읽기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당사자를 인격적으로 조우했을 때 죽은 문자가 어떻게 생명으로 부활하는지에 대한 실화입니다.
우리는 헬렌 켈러가 펌프가에서 'WATER'라는 단어를 깨달은 순간을 잘 압니다. 하지만 헬렌은 이후 '사랑(LOVE)'이라는 추상적인 단어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앤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의 손바닥에 끊임없이 'L-O-V-E'라고 써주었지만, 헬렌에게 그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진동이었습니다. 헬렌은 "꽃의 향기가 사랑인가요? 태양의 온기가 사랑인가요?"라고 물으며 답답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을 자기 품으로 부드럽게 끌어당겨 꼭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헬렌의 손에 "I love Helen(나는 헬렌을 사랑한단다)"이라고 썼습니다. 헬렌은 훗날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 (1903)에서 이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선생님이 나를 가까이 끌어당겨 주셨을 때, 저는 비로소 그동안 읽었던 '사랑'에 관한 모든 단어와 시적 표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순간에 깨달았습니다. 그날의 포옹은 제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게 만든 결정적인 열쇠였습니다."
헬렌은 '사랑'에 관한 책을 백 권 읽어서가 아니라, 자기를 안아준 선생님의 인격(만남)을 체험했기에 비로소 종이 위의 글자들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의 살아있는 현존이라는 품에 안겨보지 못한 이에게 성경은 따분한 언어 유희일 뿐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포옹을 느끼는 순간, 성경의 모든 구절은 나를 향한 피 섞인 연서로 부활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을 완전하게 해석해 줄 수 있는 성령을 주시는 분께 가야 합니다. 성령은 교회에 내렸습니다. 교회에 진리가 있습니다. 그 진리가 쓰인 책이 교리서입니다. 교리서는 이미 성경 해설서입니다.
성경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내시의 이야기는 성경 읽기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그는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이사야서를 읽으며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필립보가 다가가 묻습니다.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내가 나랏일 하는 사람인데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냐"며 무시했겠지만, 그는 겸손하게 답합니다.
"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8,31)
그는 필립보에게 주님의 마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글자가 가리키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그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고집하지 않고 교회의 가르침(해석자)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삶을 바꾸어 세례를 받고 기쁘게 길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내가' 깨닫는 책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내신 이들'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책입니다. 내 식대로의 오독을 막으려면 교회의 권위 앞에 무릎 꿇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오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 공부를 많이 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사랑에 빠지면 성경은 절로 읽힙니다.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믿어지는 것은 신학적 논리 때문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인 것과 같습니다.
성경을 깨달으려면 먼저 예수님을 더 사랑하도록 그분 품으로 달려드십시오. 교회 품에 달려드십시오. 교리 안에 안기십시오. 성체 품에 머무십시오. 그러면 깨닫게 되고 성경으로 증언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미국 드라마 ‘애나 만들기’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고 합니다(보지 않아서 어떤 드라마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 대한 소개는 아주 인상 깊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출산을 앞두고 진통 막바지에 다다른 순간, 고통에 몸부림치며 이렇게 외칩니다.
“안 될 것 같아. 더는 힘들어.”
그러자 남편이 아내를 진정시키며 말합니다.
“아니, 당신은 할 수 있어! 왜인지 알아?”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결연한 얼굴로 말합니다.
“맞아, 난 특별하지 않으니까.”
모두가 자신의 특별함을 인정받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아내는 자기의 평범함을 되새기며 고통의 순간을 버텨냅니다. 특별해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평범하기에 남들처럼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가 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 어쩌면 남들과 다르다는 특별함에 사로잡혀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의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버려두고 도망쳤다는 죄책감과, 유다인들의 지도자들에 대한 공포로 문을 닫아걸고 숨어 있었습니다. 이들 앞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들의 배신을 꾸짖지 않으시고, 가장 먼저 ‘평화’를 선언하십니다. 이 평화는 단순한 마음의 안정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된 관계가 십자가를 통해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선포하는 구원의 인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엠마오에서 돌아온 이들의 증언을 듣고 있었습니다. 크게 기뻐할 일입니다. 하지만 막상 주님을 뵙자 무서워하며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시고, 구운 물고기까지 드십니다. 그러나 기뻐하면서도 아직 믿지 못하고 놀라워합니다. 아마 ‘이게 꿈이야, 생시야?’라면서 의심하는 연역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의심 많은 연약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라고 말씀하시면서 커다란 사명을 주십니다. ‘증인’이라는 단어는 훗날 ‘순교자’라는 뜻으로 발전합니다. 즉,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바를 목숨을 걸고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과 다름없는 의심 많고 연약하며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런 모습에도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특별하지 않기에 남들처럼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절망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이 모습은 그저 부활을 지켜보는 구경꾼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살아계심을 세상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인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잘 살아가려면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밖에 없다(신현림).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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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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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