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멀리 있는 특별한 순간이라기보다,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밤의 끝에서 조용히 밝아오는 새벽 빛처럼 다가옵니다.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있기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응답해 보라고 다가오시는 오늘이 유난히 또렷하게 느껴져요.
이미 차려진 아침을 받아 먹으며 오늘을 다시 시작하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4월 1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4월 1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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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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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4장 1-12절

예수님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그 무렵 불구자가 치유받은 뒤,
1 베드로와 요한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사제들과 성전 경비대장과 사두가이들이 다가왔다.
2 그들은 사도들이 백성을 가르치면서 예수님을 내세워 죽은 이들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을 불쾌히 여기고 있었다.
3 그리하여 그들은 사도들을 붙잡아 이튿날까지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 이미 저녁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4 그런데 사도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가 믿게 되어,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5 이튿날 유다 지도자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6 그 자리에는 한나스 대사제와 카야파와 요한과 알렉산드로스와 그 밖의 대사제 가문 사람들도 모두 있었다.
7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에 세워 놓고,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하고 물었다.
8 그때에 베드로가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원로 여러분,
9 우리가 병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한 사실과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라면,
10 여러분 모두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곧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11 이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12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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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1장 1-14절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4월 10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10:52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주님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모습을 전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눈앞에서 본 제자들은 깊이 좌절하고 절망하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 듯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보냈던 시간은 이제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아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 자리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제자들 삶의 자리, 그들이 있는 바로 그곳에 오십니다.
흥미로운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시는 모습이 처음 제자들을 부르시던 장면과 매우 닮았다는 점입니다. 빈 그물, 허탈한 마음, 밤새 수고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새로운 시작을 여십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신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다시 부르시며, 그들에게 기쁨에 찬 새로운 삶을 허락하십니다. 복음 환호송의 시편이 노래하듯이, 제자들은 이제 주님께서 마련해 주시는 하루하루의 날들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것은, 예수님께서 그 누구에게도 과거를 따져 물으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당신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에게도, 두려움에 떠나 버린 다른 제자들에게도 주님께서는 질책보다 희망을 먼저 건네십니다.
처음 부르실 때 그들의 신분도 능력도 물으시지 않았던 것처럼, 새롭게 부르실 때도 과거의 실패는 결정적 조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새롭게 열리는 현재이며, 그 현재에 우리가 다시 응답하는 일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이십니다”(요한 21,7).
이 고백이 우리의 삶 전체에서 드러날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부활하신 주님의 기쁨과 자비가 전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두가이가 아니라 베드로여야 하는 우리
“당신들은 무슨 힘으로, 누구의 이름으로 그런 일을 하였소?”
이것은 사두가이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에게 한 질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사두가이는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지요.
다시 말해 죽은 다음에 되살아남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도 하느님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시라는 것은 믿고, 살아있는 동안 인간을 살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도 믿지만 죽은 다음에 되살리시는 분이라는 것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베드로는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느님께서 되살리셨고, 그 예수의 이름과 힘으로 불구자를 다시 건강하게 한 것이라고 오늘 시비조의 사두가이들 질문에 답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지만 실은 베드로의 믿음 고백이요 자기 체험의 간증입니다. 베드로에게 하느님과 예수님은 ‘Revival God’이십니다.
되살리시는 하느님이시고, 되살아나신 하느님이십니다. 되살리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들 성자도 되살리시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도 되살리신 분이셨음을 베드로는 체험한 것이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자기 믿음을 고백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신 바로 그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러분 앞에 온전한 몸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먼저 하느님의 힘으로 되살아났고, 이제 예수님의 힘으로 불구자를 되살린 것이며, 그것을 믿지 못하는 사두가이들에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두가이가 아니라 베드로라면 하느님께서 되살리실 때 베드로처럼 되살아나고, 주님의 힘과 이름으로 되살리는 사람들이 될 차례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 예루살렘에 갔다가 헛꿈이 깨지고, 갈릴래아로 돌아와 고기잡이한 것이 다시 헛짓이 되어 힘이 다 빠지고 절망에 빠졌을 때 다시 살리시는 주님, 다시 힘주시고 다시 일으키시는 주님을 체험한 것처럼 이제 우리가 되살아나고 일어나 다른 사람을 되살리고 일으킬 차례입니다. 사두가이가 아니라 베드로여야 함을 깨닫고, 베드로처럼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우리가 할 일은 먼저 그분께서 차려주신 밥상을 받아먹는 일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주셨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주제파악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그물을 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번씩이나 발현하셨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절망에 빠져, 과거의 생업으로 돌아가 고기를 잡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절망과 실의에 빠져 엉뚱한 곳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제자들의 삶의 현장으로 찾아오시어 말씀을 건네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져라.”(요한 21,6)
그들이 그렇게 하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자들이 되기 전 밤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을 때에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하신 주님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주님을 먼저 알아본 이는 요한이었지만, 그분께 먼저 달려간 이는 베드로였습니다. 요한은 관조적이었고 베드로는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한은 사랑을 받은 이가 되고, 베드로는 일을 맡은 이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날 아침을 열치고 오시어,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식사를 준비하고 부르십니다. 어디서 났는지, 숯불 위에는 이미 ‘물고기’도 있고 ‘빵’도 있었습니다.
‘숯불에 구운 물고기’는 수난 받으신 당신의 몸을, ‘빵’은 십자가에서 찢어지고 바수어진 당신의 몸을, 곧 이는 모두 당신 자신을 드러내줍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요한 21,10)고 하시며,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른 것은 ‘와서 시중들라’는 것이 아니라, ‘와서 시중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곧 ‘와서 사랑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게 하고 깨우쳐주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비록 제자들은 당신을 버리고 도망치고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지만, 당신께서는 그들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이토록, 당신께서는 부활하신 생명을 담은 사랑의 아침 밥상을 차려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먼저 당신의 밥상을 받아먹는 일입니다. 곧 먼저 베풀어진 당신의 시중을 받는 일이요, 먼저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먹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숯불에 구운 물고기’가 되고, ‘찢어지고 바수어진 빵’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당신의 향기를 뿜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으로 당신께 상을 차려 올려야 할 일입니다. 곧 말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섬김으로 생선을 마련하고, 희망과 믿음과 사랑으로 국을 끓여, 상을 차려 올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21장 12절
와서 아침을 먹어라.
주님! 이 아름다운 아침, 당신이 차려주신 생명의 밥을 먹고 새로워지게 하소서.
당신 생명과 사랑을 먹었으니, 종일토록 당신의 색깔을 내고, 당신의 향기를 품게 하소서.
오늘 저의 삶이 당신께 차려 올리는 밥상이 되게 하소서.
말씀으로 생명의 밥을 짓고, 섬김으로 반찬을 마련하게 하소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의 국을 끓이고, 의탁의 생선을 굽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변덕이 부활 신앙의 증거라고?
"시몬 베드로는 ‘주님이시다!’라는 말을 듣자, 겉옷을 걸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요한 21,7)
부활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오늘은 부활 팔일 축제의 금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참으로 기묘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밤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요한이 "주님이시다!"라고 외치자, 베드로는 갑자기 겉옷을 입습니다.
상식적으로 수영을 하려면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입고 바다로 뛰어듭니다. 일을 마쳤는데도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말에 그물을 치고, 갑자기 물에 뛰어드는데, 심지어 겉옷을 입고 뛰어듭니다. 도대체 예측을 할 수 없는 행위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늘 복음은 어쩌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축제에 올라가시지 않겠다고 형제들에게 말씀하셨지만, 나중엔 올라가신 것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올라가실 것이었는데 올라가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러실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변덕을 부리신 것입니다. 이는 성령의 사람이셨고, 영으로 태어난 사람은 바람이 부는 대로 갑니다.
먼저 베드로가 겉옷을 입은 행위의 영적 의미를 구약의 야곱과 연결해 보아야 합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은 형 에사우를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지만,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며 죽음의 공포를 느낍니다. 야곱은 에사우에게 줄 자신의 모든 열매, 곧 아내와 자녀들, 재산을 먼저 보낸 뒤 혼자 남아 밤새 천사와 씨름합니다. 이 씨름은 자신의 자아를 꺾는 '기도'의 상징입니다.
날이 밝자 야곱은 형 앞에 서서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하며 나아갑니다. 야곱은 에사우의 복을 가로챘는데, 그 방법은 에사우의 옷을 입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입습니다. 아담이 가죽옷을 입어야 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옷의 능력이 발휘되려면 본래의 자아는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와 결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의 수영도 이와 결을 같이 합니다. 베드로가 겉옷을 입은 것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발을 씻겨주시며 나누어 주신 그분의 정체성, 즉 '의로움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수영법은 오늘날처럼 물 위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땅에 엎드려 기어가는 모습과 흡사했습니다.
즉, 베드로는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 바다 위에서 야곱처럼 '엎드려 절하며'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밤새 잡은 153마리의 물고기, 곧 자신이 구한 하느님의 자녀들을 선물로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베드로는 속으로 이렇게 고백했을 것입니다.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루카 17,10).
이처럼 부활을 믿는 이들은 하느님 앞에서 엎드리는 유연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변덕’이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인들은 ‘자유’라고 말할 것입니다. 영으로 난 사람들은 바람처럼 자유롭습니다. 언제든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떤 방법으로든 명령할 것을 알고 들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계획을 세우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믿는 것이고 이는 하느님 눈에는 그저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중국에서 일어난 '참새 소탕 작전'입니다.
1958년 중국의 마오쩌둥은 농촌을 시찰하다 참새가 곡식을 까먹는 것을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새는 해로운 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지도자의 한 마디는 즉각 '원대한 계획'이 되었습니다. 전 국민이 동원되어 냄비를 두드리고 깃발을 휘둘러 참새가 땅에 내려앉지 못하게 했고, 지쳐서 떨어지는 참새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1년 만에 2억 마리가 넘는 참새가 사라졌습니다.
중국 정부는 곡식 수확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라며 자축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의 섭리는 인간의 얄팍한 계획보다 훨씬 깊었습니다. 참새가 사라지자 참새의 주식이었던 해충과 메뚜기 떼가 천적 없이 창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국 전역에는 전무후무한 대기근이 닥쳤고, 무려 3,000만 명에서 4,0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인간의 '완벽해 보이던 계획'이 하느님의 '거대한 생명 시스템'을 무시했을 때, 그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농담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처럼 고정된 인간의 내비게이션을 비웃으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올라가지 않겠다" 하시고는 몰래 올라가시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으러 가자"는 베드로의 계획을 헛수고로 만드신 뒤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물을 던지라고 명하십니다. 성령의 사람은 이 거룩한 변덕에 즉시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거룩한 유연성의 정점을 우리는 콜카타의 성녀 마더 테레사에게서 봅니다.
테레사 수녀님은 1928년 로레토 수녀회에 입회하여 20년 동안 안정적인 교사 생활을 했습니다. 지리학 교사로서, 나중에는 성 마리아 학교의 교장직까지 맡으며 그녀의 앞날은 보장된 계획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1946년 9월 10일, 다질링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 속으로 가라"는 '두 번째 부르심'을 듣습니다.
당시 수녀회의 반대는 처절할 정도였습니다. 장상들은 20년이나 헌신한 유능한 수녀를 잃고 싶지 않았고, 고독한 거리로 나가는 것은 수녀회의 규칙과 맞지 않는 미친 짓이라며 가로막았습니다. 그녀는 장장 2년 동안이나 교회의 엄격한 심사와 의구심 섞인 눈초리, 그리고 동료들의 비난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계획은 하느님의 것일 뿐"이라며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교회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철저히 순명했습니다. 마침내 1948년 4월, 비오 12세 교황의 특별 허락을 받고 수녀원 담장을 넘었을 때, 그녀는 어제의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말씀하시는데 어제의 계획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령의 바람은 이처럼 20년의 안락함을 한순간에 뒤엎는 거룩한 변덕을 요구합니다. (출처: 캐서린 스핑크, 『마더 테레사 전기』)
우리 삶에는 '깃발'과 '돛'이라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자기 계획을 믿는 사람은 바람 앞에 선 '깃발'과 같습니다. 깃발은 한쪽 끝이 고정되어 있어 바람이 불면 요란하게 펄럭이지만, 바람이 조금만 강해지면 찢어져 버립니다. 내 고집과 계획에 묶여 있는 사람은 시련이 닥치면 금방 절망하고 원망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돛'과 같습니다. 돛은 돛대에 연결되어 있지만 바람의 방향에 따라 언제든 자신을 조절합니다. 바람이 불면 돛은 찢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을 타고 힘차게 나아갑니다. 교부 성 베르나르두스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영혼은 흐르는 물과 같다.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절벽을 만나면 뛰어내리며, 태양을 만나면 증발하여 하늘로 올라간다. 고여있는 물은 썩지만, 변덕스럽게 흐르는 물은 생명을 낳는다. 그리스도를 입은 이들이여, 그대들의 변덕을 두려워 마라. 그것은 살아계신 주님의 심장 박동에 맞추어 춤추는 것이다." (성 베르나르두스, 『하느님을 사랑함에 관하여』 12, 1).
세상의 계획이라는 배 위에 깃발처럼 펄럭이며 앉아 있지 마십시오. 주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돛을 올리고, 계획을 수정하고,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헤엄치십시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항상 여러분 주위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우리가 존경하는 성인·성녀를 보면 분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단순히 하느님을 향한 믿음이 크다는 것일까요? 그보다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너무 크다는 것을 체험하셨고, 이를 굳게 믿었다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마음을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이 먼저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소서.”라고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셨고, 돌아가시기 전날 범에도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성인·성녀들의 위대함은 그들의 특별한 재주,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철저히 하느님의 뜻을 따랐고,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성인 성녀들의 삶을 따라야 하는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 분명히 찾을 수 있게 됩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미 만났습니다. 그러나 고향 갈릴래아로 돌아가 다시 예전 직업인 어부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자기에 대한 실망감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하고 숨었던 죄책감 때문에 자기에게 익숙한 과거의 삶으로 퇴행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하게 됩니다. 요한복음에서 밤은 예수님이 안 계신 어둠의 시간입니다. 따라서 주님 없이 인간적인 경험과 노력만으로 살아가면 텅 빈 그물처럼 공허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빛이 비치는 아침이 밝아올 때 주님께서 물가에 서 계십니다. 우리의 실패와 절망의 끝자락이 곧 주님께서 일하는 시간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요한 21,6)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잔뼈 굵은 어부였지만, 자기들의 고집을 꺾고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물고기를 잡습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할 때만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엄청난 성과를 얻은 그들이 뭍으로 나옵니다. 그곳에는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있고 빵도 있었습니다. 이 숯불은 요한복음에 이미 한 번 나왔었습니다. 베드로가 대사제의 뜰에서 숯불을 쬐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이 숯불은 트라우마와 같은 실패의 기억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숯불을 다시 피워 놓으시고 베드로를 기다리십니다. 단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상처를 직면하게 하고 완전히 치유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와서 아침을 먹어라.”(요한 21,12)라면서 친히 요리사가 되어 주십니다. 따뜻한 밥을 먹이면서 다시 시작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부끄러운 실패를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따뜻한 밥을 먹이고 다시 시작할 힘을 주시기 위해 부르십니다. 그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영혼은 자신의 ‘생각’이라는 색깔에 물든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방향을 잃고 다시 옛 삶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애쓰지만 얻지 못하고, 채우려 하지만 채우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주님께서는 실패의 자리에 오셔서 새로운 시도를 요청하십니다.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오는 시간,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뜨겁게 만납니다. “왜 실패했느냐” 묻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부족했다” 꾸짖지 않으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는 이 말씀은 삶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밤새 애쓴 노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말씀에 맡긴 순간 그물은 가득 찹니다. 묻지 않아도 알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분의 현존입니다. 책망도 없이 설명도 없이 그저 주어지는 소중한 한 끼, 이 아침은 가장 좋은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어제의 실패를 묻지 않는 오늘의 은총입니다. 오늘의 아침은 다시 시작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초대는 대단한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함께 앉아 함께 먹고 나누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갑니다.
일상의 단순한 행위인 함께 먹고 함께 나누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부활은 서로를 초대하고 함께 앉아 삶을 나누는 따뜻한 식탁에서 시작됩니다. 부활은 실패한 우리의 삶을 다시 초대하여 함께 살아가게 하는 가장 좋은 사랑의 식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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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