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놓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함께 걸어간다는 것,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된다는 말씀이 깊고 따뜻하게 마음에 스며들어요.
오늘 복음은 제 안으로만 향해 있던 시선을 조용히 바깥으로 돌려놓습니다. 힘들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때로는 귀찮아서, 혹은 손해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제 마음을 자꾸만 안으로 접어두고 있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작은 시간 하나, 작은 관심 하나를 내어주는 그 순간마다 서로 이어져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부족한 모습 그대로, 그분의 목소리를 따라 같은 길 위에 서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4월 2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4주간 월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4월 2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11장 1-18절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 무렵
1 사도들과 유다 지방에 있는 형제들이 다른 민족들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문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받은 신자들이 그에게 따지며,
3 “당신이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다니요?” 하고 말하였다.
4 그러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5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
6 내가 그 안을 유심히 바라보며 살피니, 이 세상의 네발 달린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보였습니다.
7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8 나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제 입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러자 하늘에서 두 번째로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10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것들은 모두 하늘로 다시 끌려 올라갔습니다.
11 바로 그때에 세 사람이 우리가 있는 집에 다가와 섰습니다. 카이사리아에서 나에게 심부름 온 이들이었습니다.
12 성령께서는 나에게 주저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고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갔습니다. 우리가 그 사람 집에 들어가자,
13 그는 천사가 자기 집 안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야포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데려오게 하여라.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15 그리하여 내가 말하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16 그때에 나는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7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을 때에 우리에게 주신 것과 똑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18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잠잠해졌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의 길을 열어 주셨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요한복음 10장 11-18절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1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13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14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15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16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17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18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4월 27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08:24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오늘 나는 어디를 향하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요한 10,11)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은 이처럼 ‘내주는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내어놓으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 사랑을 가장 분명히 보게 됩니다.
그러나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둘 다 양 떼를 돌보는데 위험이 닥쳤을 때 한쪽은 자신을 내주고 희생하지만, 다른 한쪽은 자기를 지키는 데에만 급급합니다. 결국 차이는 ‘방향성’에 있습니다. 착한 목자의 눈길과 마음은 언제나 양들을 향합니다. 그 반면 삯꾼의 관심은 자기 자신, 자기 몫과 손해 여부에 머무릅니다.
우리 안에서도 삯꾼의 마음이 불쑥불쑥 고개를 듭니다. 신앙마저 나의 평안과 이익을 지키는 수단이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지금 내 선택과 관심은 다른 사람들과 공동체,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열려 있습니까? 아니면 나 자신만을 향하고 있는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혼자 힘으로 완벽하게 되기를 요구하시지 않고 부족하더라도 ‘내주는 사랑’으로 한 걸음씩 옮기기를 바라십니다. 내 편의를 조금 양보하는 것, 내 시간을 조금 나누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내 것을 공동선을 위하여 기꺼이 내어놓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희생입니다.
이제 그분을 ‘안다’고 고백하는 우리도 그분을 닮아 ‘내줌과 희생의 가치’를 삶 안에서 조금씩 실천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나만을 생각하는 삯꾼의 마음을 내려놓고, 착한 목자를 따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을 진정으로 ‘아는’ 제자의 모습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분별하는 마음이 불행이다
제가 불교에 아주 큰 매력을 과거에 느꼈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그들의 넓은 포용력입니다. 그런데 그 포용력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그들이 분별심을 지극히 경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의 사상은 나누는 것을 아주 좋아하지요. 가장 대표적으로 선과 악을 나누고, 성과 속을 나누고,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나눕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대뜸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다시 말해서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고 합니다. 정반대되는 것이고 생각되는 색과 공이 다른 것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고(不二) 합니다.
그래서 웃자고 하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인도에서 식당에 갔더니 직원이 바닥을 닦던 걸레로 식탁을 닦더랍니다.
그래서 도를 닦고 있었지만 더러운 것을 극히 싫어하던 사람이 직원에게 그것을 따지니 그 직원이 하는 말이 당신은 아직도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을 구별하느냐고 하더랍니다.
자기는 도를 닦는다고 하는데도 여전히 분별심을 가지고 있는데 인도에서는 식당 직원조차도 분별을 하지 않는 경지에 있더라는 얘기입니다.
생각해보면 이렇습니다. 깨끗하다고 하는 것도 더 깨끗한 것에 비교하면 더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것을 극도로 추구하면 깨끗한데도 더럽다고 할 것이고, 그 더러운 것 때문에 괴로울 것이고 괴로워하는 자신 때문에 또 번뇌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초월하는 사람이 돼야 행복하고 초월한 사람이 되어야 초월이신 하느님도 만납니다. 성령은 각기 다른 은사와 다름의 은사를 주시지만 동시에 각기 다른 것을 하나로 만드시는 분이시고 사랑도 그렇습니다.
너와 나 다르지만 달라도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너와 나는 하나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한 분이시지만 삼위이시고, 삼위를 가지고 계시나 한 분이신데 성부와 성자 사이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더럽고 속된 음식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런 음식을 먹는 이방인들과는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는 유대인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성령께서 처음에 우리에게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내리셨습니다.” 응대하는 것을 보고 오늘 저는 이런 묵상을 하였고 나눔도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불교 얘기를 하다 보니 이런 선문답 같은 나눔을 하였는데 불쾌하지 않았기를 바라고 잘 이해해주시기를 바라는 오늘 저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착한 목자의 특성 세 가지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착한 목자”(요한 10,11)로 선포하십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당신 백성의 “목자”로 언급됩니다. 그리고 유배를 겪으면서 예언자들은 하느님을 당신 백성을 모아들일 미래의 “착한 목자”로 소개하면서(에제 34,11-16;스바 3,19;미카 2,12 등), 미래에 나타나 백성의 목자가 될 다윗 가문의 한 인물로 언급합니다(예레 3,15;23,4-6;에제 34,23-24;37,24;미카 5,1-4).
오늘 <복음>에서 “착한 목자”는 하느님과 하나 됨에 그 바탕이 있습니다. 곧 그는 하느님이 보낸 목자인 동시에, 보낸 분의 마음에 드는 목자입니다. 그것은 삯꾼과는 달리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일로 드러납니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요한 10,14-16)
여기에는 “착한 목자”의 특성이 세 가지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착한 목자”의 <첫째> 특성은 양들과 서로 압니다. 목자는 항상 양들과 관계하여 있고, 양 없는 목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곧 목자는 항상 양과 함께 있어야 목자입니다. 그렇게 함께 있기에 서로 압니다. 이는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알 듯, 밤낮 같이 지내면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을 말합니다. 곧 양들을 “안다”(γινωσκω)는 것은 사랑으로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착한 목자”의 <둘째> 특성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있는 존재, 곧 목자가 양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양이 목자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들을 위하여 있는 존재’, 이것이 바로 목자의 존재 근거요 신원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목자는 양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양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내놓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바칩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1요한 3,16)
“착한 목자”의 <셋째> 특성은 ‘양 우리 밖’에 있는 양들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요한 10,16)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기 위해, 스스로 자유로이 목숨을 내놓으심으로 목숨을 다시 얻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요한 10,17)
바로 이 사랑의 죽음과 부활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요한 10,18)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를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일, 바로 이 일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우리 주님에게서 받은 명령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0장 15절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주님! 당신의 눈은 항상 저를 향하여 계십니다.
저를 살리기 위해 당신을 내놓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보십니다.
주인이면서도 군림하지 않으시고 시중들기 위하심입니다.
이 지고한 당신의 사랑 앞에, 황송함으로 무릎 꿇어 경배합니다.
오늘 제 마음이 형제를 향하여 있게 하소서.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놓기 위해서 그러하게 하소서.
섬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그러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이런 목자들은 조심해야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러 올 뿐이다. 하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풍성히 얻게 하려고 왔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요한 10,10-11)
찬미 예수님! 부활 제4주간 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양들의 문'이자 '착한 목자'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이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본질적인 값어치, 즉 '정체성'과 '자존감'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 자존감을 도둑질하는 가짜 목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은 세 부류의 지도자를 통해, 왜 우리는 우리를 위해 '피를 쏟으며' 우리를 하느님이라 불러주는 목자만을 따라야 하는지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 유형: 자존감을 짓밟아 영혼을 멸망시키는 교사
도둑의 특징은 양들의 자존감을 깎아내려 자신에게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너는 부족해, 너는 문제가 많아, 그러니 나만 믿고 따라와"라고 말하며 상대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이들이 바로 가짜 목자입니다.
영화 '위플래쉬' (2014) 속 플렛처 교수는 최고의 드럼 연주자를 만든다는 명목하에 제자 앤드류를 혹독하게 몰아세웁니다. 그는 제자의 뺨을 때리고 부모를 욕하며, 그의 자존감을 바닥까지 짓밟습니다. 플렛처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말은 '그만하면 잘했어'라는 말이다."
그는 인간의 한계와 열등감을 자극하여 예술적 성취를 이뤄내려 하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제자의 인격과 영혼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이것이 도둑의 모습입니다. "너는 하느님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며 인간의 한계 속에 가두고 지배하려는 자는 목자가 아니라 강도입니다. (출처: 데이미언 셔젤 감독, 영화 '위플래쉬' 2014)
두 번째 유형: 말로만 높여주고 피는 쏟지 않는 거짓 교사
가장 교묘한 가짜 목자는 '달콤한 말'로 자존감을 세워주는 척하지만, 정작 그 자존감의 값을 치르기 위한 희생은 전혀 하지 않는 '삯꾼'입니다.
영화 '미스 진 브로디의 전성기' (1969)에서 에든버러의 여학교 교사인 진 브로디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의 정예 부대다, 너희는 최고(Creme de la creme)다"라며 환상적인 자존감을 불어넣습니다. 아이들은 그녀를 숭배하며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게 됩니다.
하지만 브로디 선생은 아이들에게 그에 걸맞은 '실력'이나 '고결한 인격'을 심어주기 위해 자신의 땀을 흘리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로맨틱한 환상과 정치적 선동을 아이들의 머릿속에 집어넣습니다.
결국 그녀가 키워낸 자존감은 모래성과 같았습니다. 한 제자는 그녀의 부추김에 넘어가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가 허무하게 전사하고, 다른 제자들은 스승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증오자로 변합니다.
브로디는 제자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눈에 비친 '위대한 스승'이라는 자기 영광을 사랑했습니다. 자기가 피 흘려 제자를 지키지 않고 말로만 추켜세우는 지도자는 양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비겁한 거짓 목자일 뿐입니다. (출처: 로널드 님 감독, 영화 '미스 진 브로디의 전성기' 1969)
오늘 복음의 바로 앞 장인 요한복음 9장에는 태생 소경의 치유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바르십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인간을 빚으실 때의 그 재료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소경의 망가진 눈을 '재창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눈을 뜬 그에게 사람들이 누구냐고 묻자 그는 기상천외한 대답을 합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요한 9,9).
이 문장의 그리스어 원문은 "Ego Eimi", 즉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실 때 쓰시는 성호인 "나는 나다"입니다. 소경은 예수님에 의해 눈이 만들어지는 순간, 자신이 단순히 눈먼 거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본성을 지닌 고귀한 존재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바로 이런 분입니다. 우리에게 오셔서 "너는 죄인이고, 너는 흙에 불과하며, 너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벌레다"라고 말하는 분이 아니라,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 눈에 발라주시며 "너는 나다. 너는 하느님이다"라고 선언해주시는 분입니다. 이 정체성을 주는 분만이 우리의 참된 목자입니다.
세 번째 유형: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자신의 피를 쏟는 참된 목자
참된 목자는 양이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기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쏟아부어 그 가치를 증명해내는 분입니다. 「예화 3: 교육의 목자 마리아 몬테소리 - "너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신적 존재란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첫 여성 의사였던 마리아 몬테소리는 로마의 빈민가 산 로렌초에 『어린이의 집』을 세웠습니다. 그녀는 당대 사회가 '교육 불능'이라고 낙인찍은 아이들에게 "너는 스스로를 완성할 수 있는 하느님의 작품이다"라는 자존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단순히 말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아이들의 신성을 증명하기 위해 의사로서의 부귀영화와 명예를 모두 내던졌습니다. 무릎 관절이 닳도록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기어 다녔고, 아이들의 작은 손 근육 하나가 발달하도록 밤을 새워 교구를 직접 깎아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그녀를 미쳤다고 비웃을 때, 그녀는 자신의 모든 시간과 열정(피)을 쏟아부어 아이들의 자존감을 실재하는 능력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스승의 피를 먹고 자란 아이들은 마침내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천재들로 부활했습니다. (출처: 마리아 몬테소리 저, 『인간 마음의 흡수』)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요한 10,11).
주님은 입으로만 "너는 소중하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피를 쏟으심으로써, 우리의 몸값이 하느님의 아들의 생명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온 우주에 공포하셨습니다.
성체를 모시는 것은 주님이 피로 보증해주신 나의 자존감을 먹는 것입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희생은 하지 않는 세상의 가짜 목자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자존감을 깎아내려 지배하려는 도둑들을 떠나십시오. 오직 여러분을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만을 목자로 삼으십시오.
"너는 나다. 그러니 나를 따라오너라!"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심리학자 마크 셀리그먼이 고안한 ‘감사의 방문’이라는 이름이 붙은 우울증 치료법이 있습니다. 먼저 눈을 감고,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제대로 감사 인사를 건네지 못한 사람을 떠올려 보라고 합니다. 단, 생존해 있는 사람 중에 고르게 했습니다. 한 사람을 떠올렸다면, 그 사람에게 약 삼백 단어 분량의 감사 편지를 쓰라고 한 뒤에 찾아가 편지를 읽어주라고 했습니다. 몇 달 뒤, 감사를 표시한 사람과 감사를 받은 사람의 행복도를 알아보았습니다. 모두 전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감사와 행복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치료법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기를 참 힘들어합니다. 자존심 상한다는 이유를 들지만, 자기에게 올 행복을 걷어차는 것입니다. 특히 욕심 등의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게 되면 감사의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린 삼 남매를 둔 과부가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호떡을 팔고 있었습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호떡 파는 과부에게 한 노신사가 다가와 “아주머니, 호떡 하나에 얼마죠?”라고 물었습니다. 천 원이라고 말하자, 노신사는 천 원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그냥 가버리는 것입니다. 아주머니가 “아니, 호떡 가져가셔야지요.”라고 말하자, 노신사는 “아니오. 괜찮습니다. 먹는 셈 치겠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1년 동안 계속 노신사는 방문했습니다.
흰 눈이 내리는 겨울날, 노신사는 전과 마찬가지로 천 원을 테이블에 놓고 가려는데, 아주머니가 황급히 말했습니다.
“손님, 호떡값이 올랐는데요?”
우리도 이처럼 감사할 대상과 감사한 이유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요한 10,11.12)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참된 목자인 당신의 모습과 삯꾼의 모습을 날카롭게 대조하십니다. 삯꾼은 돈(삯)을 위해 일합니다. 양들과의 관계는 철저히 ‘계약’과 ‘이해관계’에 묶여 있습니다. 이런 관계에서는 이리(위기)가 나타나면 그는 자신의 생명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게 됩니다. 그에게 양은 쓰고 버릴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당신의 ‘소유’이자 ‘가족’으로 여기십니다. 이리가 올 때 도망치는 대신 양들을 대신해 이리에게 찢기는 길을 택하십니다. 조건 없이 자신의 가장 귀한 것(생명)을 내어주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식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착한 목자이신 주님입니까? 아니면 삯꾼인 세상입니까? 나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신 참된 목자의 맹목적인 사랑에 감사하면서 우리 역시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시간이란 무엇일까? 그건 한 순간의 일이 오랫동안 기억되는 과정이다(김연수).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한 마리 양을 위해 온 생명을 거시는 분입니다. 이와 같이 착한 목자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습니다. 그것은 빼앗기는 죽음이 아니라 스스로 내어주는사랑입니다.
착한 목자의 삶은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삶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바로 그 내어줌으로 완성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아픔을 아시며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착한 목자는 위험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양들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양들은 때로 길을 잃고 방황합니다. 그러나 목자의 음성을 들을 때 다시 길을 찾습니다. 착한 목자의 길은 자기 중심을 내려놓고 우리를 살리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양들을 끝까지 사랑하며 돌보시는 분,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분입니다. 끝까지 떠나지 않고 사랑으로 함께하는 존재입니다. 착한 목자 착한 양이 그리운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요한복음 10장 16절 말씀 카드 저장하기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