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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5.2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5. 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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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는 말씀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어요. 저 역시 두려우면 마음부터 닫아버리니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문을 열고 나오라고 하지 않으시고, 닫힌 그 자리 한가운데로 오셔서 평화를 건네십니다.

 

숨어 있는 마음에도 먼저 찾아와 숨을 불어넣어 주시는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2026년 5월 2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5월 2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성령 강림 대축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24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2,1-11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1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6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7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9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10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11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코린토1서 12,3ㄷ-7.12-13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3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요한복음 20,19-23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5월 24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령강림대축일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12

✚ 강론 시작 17:34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닫힌 마음에도 성령은 오십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오순절에 사도들이 모여 있을 때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그들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가득 차 여러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람은 그 형체가 보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어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며 문을 잠가 놓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그리고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20,22)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창조 때에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살아 있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창세 2,7 참조).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숨, 성령을 불어넣으십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문을 잠그고 숨지 않습니다. 용기를 내어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선포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차가운 지하 감옥에서도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사랑으로 위로하셨던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성인과 같이, 성령과 함께하면 사랑이 생겨나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로 만드십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1코린 12,13).

같은 언어를 써도 마음이 통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성령의 언어는 분열을 넘어 일치로, 두려움을 넘어 사랑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오늘 우리 모두 성령의 손길을 느낍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시기를 기도하며, 하나 되는 공동체를 이룹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는 성령의 사람인가?

나는 성령의 사람인가? 성령을 거부하는 사람인가? 성령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받지 못한 사람은 아닌가? 악령의 사람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저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을 거부하지 않고 오시기를 원한다는 면에서도 성령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뭔가 자신이 없습니다. 성령에 완전히 사로잡힌 사람 같지 않고 적당히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악령의 사람은 아니지만 더러운 영에 이끌리는 면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가면서도 세상에 안주하기도 하고 가더라도 세상을 곁눈질하느라 전속력으로 가지 못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정신이 온전히 기도와 헌신의 정신이지 못한 것입니다.

금으로 치면 불순물이 얼마간 있어서 순금이 되지 못하는 것이고, 기도와 헌신의 정신이 있다가도 육의 정신이 제 안에 있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헌신의 정신을 차렸을 때는 성령을 모셔 들였다가도 육의 정신이 내 안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땐 온전히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성령과 악령은 우리 안을 들락날락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고 프란치스코는 기도와 헌신의 영을 끄지 말라고 하였지요. 복음을 보면 어떤 집에 더러운 영이 머물다가 나갔는데 그 영이 다시 와 보니 말끔히 치워진 채로 있어서 일곱 영을 더 데리고 온다고 주님 말씀하셨더랬지요.

이는 더러운 영이 나갔을 때 얼른 성령을 모셔 들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말씀이고 성령과 악령이 우리 안에 들락날락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을 모셔 들이기 위해 할 것은 정신을 차리는 것인데 더 정확히 얘기하면 한편으로는 우리 안에서 육의 정신을 몰아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듭거듭 기도와 헌신의 정신을 차리는 것이며 그런 다음에는 불을 끄지 않기 위해 이 정신을 계속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를 반성하면 적당주의입니다. 영의 움직임과 나의 정신 상태에 민감하거나 깨어있지 못하고 육의 만족을 얼마간 눈감아주고 적당히 타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주님께 된통 혼날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성령께서는 소란 속에도, 고요함 속에도 오신다.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갖가지 모습으로 저희에게 오시어 동행하십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 전례>에서는 성령께서 오시는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놀라운 모습’, 곧 하늘에서 세찬 바람의 소리와 불과 혀의 모양으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고요한 모습’, 곧 ‘닫혀 진 문’을 뚫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부드러운 숨결로 들어오십니다.

이 두 가지 모두 하늘 문을 열거나, 땅의 문을 열거나 모두 ‘닫힌 문’을 열면서 벌어집니다. 곧 성령의 활동은 ‘문을 여는 일’을 통해 드러납니다. 성령께서는 하늘을 가르고, 닫혀 진 문을 부수고, 가려진 장막의 휘장을 찢고, 죽음에 갇힌 무덤을 풀고, 우리의 굳은 마음의 문을 여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이 문을 열고 땅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묘한 것은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열리고, 닫힌 문은 마음에서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열리는 자리는 바로 우리네 삶의 자리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고, 그러기에 우리는 다른 먼 곳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로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께서는 바로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성령이 베풀어졌고,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

<제2독서>에서는 이를 잘 말해줍니다. ‘신비체’는 지체로 이루어진 ‘한 몸’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몸은 바로 성령에 의해 지탱되고 존속됩니다. 그 지체를 서로 결합시키고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평화를 주시는 장면’과 성령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는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새 백성이 탄생되고, 새 시대인 ‘성령의 시대’가 열리고, 그리스도 몸의 신비체인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닫혀 진 문’을 열고 들어 와 시작됩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닫혀 진 문’ 뒤에 숨어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문을 잠가 놓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닫혀 진 문’을 뚫고 들어오시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니다. 팔레스티나에서 보통으로 표현하던 이 인사는 이제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시는 인사가 됩니다. 이제 이 ‘평화’는 주님의 축복이요, 선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재가 방황이요 두려움이라면, ‘예수님의 현존’이 곧 ‘기쁨’이요 ‘평화’입니다. 이제 공포는 기쁨으로 바뀌고, 혼란은 질서를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의 숨결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요한 20,21-22)

예수님께서는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라고 하실 때,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말의 원어의 번역은 ‘숨을 건네주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생명을 건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제자들에게 건네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성령을 받아라.”는 말씀은 너희는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주며, 그러니 ‘너희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용서’를 통해, 평화를 이루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용서’할 때, ‘평화’는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먼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새롭게 하십니다.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가 용서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현존하시고,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십니다.

하오니, 아버지! 오늘, 이 감격스런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승복하고, 주님의 현존에 푹 젖은 성령강림절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숨결로 저희 사이에, 저희 안에 있는 장벽을 허무소서. 바로 오늘이 ‘용서와 평화의 축제’가 되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20장 22절
성령을 받아라.

 

성령이시여! 제 안에 흐르소서.

흐르는 골골에 찌든 떼를 벗기시고,
반역과 죄를 몰아내소서.

아픔과 상처 어루만지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소서.

멍들고 굳어진 마음 문지르시고,
접히고 구겨진 마음 펼치소서.

막히고 닫힌 마음 열치시어,
당신의 숨결이 흐르게 하소서.

새로워지고, 새롭게 살게 하소서.

용서받았으니,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율법의 “해야 해”, 그리스도의 “할 수 있어”, 성령의 “어 되네?”

찬미 예수님! 부활의 기쁨과 성령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벽에 부딪힙니다. 성경은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 "일곱 번씩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 마음속에서는 '어떻게 그게 가능해?'라는 비명이 터져 나옵니다.

오늘 요한 복음의 첫머리는 이 답답한 한계를 시원하게 뚫어주는 놀라운 구원 공식을 선포합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다그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그 명령을 들을수록 우리는 더 작아지고, '나는 할 수 없어'라며 기가 죽습니다. 율법은 길을 알려주지만, 그 길을 갈 힘은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진리'와 '은총'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차원 이동의 4단계 공식과 같습니다.

첫째, 율법의 "해야 한다"는 강박을 만납니다.

둘째,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나는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정체성을 입습니다.

셋째, 내 힘으로는 안 됨을 고백하고 성령의 '은총'을 청하여 마침내 "어, 되네?"라는 기적을 체험합니다.

넷째, 그때 내 영혼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이 원리는 우리가 어릴 적 '두 발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의 경험 속에 아주 선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처음 두 발 자전거를 타면 쓰러질 것 같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넘어지지 말고 똑바로 타야 한다!"

이것이 율법의 "해야 한다"입니다. 아무리 머리로 알아도 내 힘으로는 자꾸만 옆으로 쓰러집니다. 할 수 없다는 절망이 밀려옵니다.

그때 아빠가 뒤에서 자전거 안장을 꽉 잡아줍니다. 그리고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아빠가 잡고 있어. 너는 아빠 아들이니까 혼자서도 달릴 수 있어. 앞만 보고 페달을 밟아봐!"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할 수 있다"는 '진리(정체성)'입니다. 아빠의 말(진리)을 믿고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기 시작합니다.

아이는 여전히 자기가 페달을 밟아 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밀어주고 중심을 잡아주는 아빠의 헌신적인 힘이 있습니다. 이 보이지 않는 아빠의 밀어주는 힘이 바로 성령의 '은총'입니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페달을 밟다가,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아빠는 저 멀리 서서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아빠가 손을 놓았는데도 자전거가 쌩쌩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기막힌 탄성이 무엇입니까?

"어? 되네! 내가 혼자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있네!" 이 "어, 되네?"의 순간, 걷기만 하던 아이의 세상은 두 바퀴로 세상을 가르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합니다. 쓰러질까 두려웠던 공포는 사라지고, 바람을 가르는 짜릿한 '평화와 기쁨'만이 남습니다. 자전거 타기라는 율법(해야 한다)이 아빠의 진리(할 수 있다)와 은총(밀어주는 힘)을 만나 기쁨의 춤이 된 것입니다.

이 놀라운 신앙의 퀀텀 점프(Quantum Leap)를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지옥 속에서 생생하게 겪어낸 한 여인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레지스탕스였던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과 그녀의 언니 벳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코리는 언니 벳시가 잔인한 간수들의 학대로 끔찍하게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1947년, 코리는 뮌헨의 한 예배당에서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에 대해 강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났을 때, 그녀는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언니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바로 그 옛 나치 간수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당신의 메시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이 제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당신의 입으로 직접 용서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성경은 원수를 용서해야 한다(율법)고 명령합니다. 코리는 자신이 예수님의 진리 안에 있어 용서할 수 있는 존재(진리)임을 굳게 믿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정체성은 가졌지만, 원수가 손을 내민 순간 그녀의 핏속은 차갑게 얼어붙었고 도저히 손을 내밀 수 없었습니다. 율법과 진리만으로는 도저히 내 뜻대로 안 되는 인간의 한계에 부딪힌 것입니다.

그때 그녀는 침묵 속에서 간절히 성령의 힘을 청했습니다.

"주님, 저는 용서할 힘이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없으니, 당신의 성령을 부어주시어 당신의 사랑으로 용서하게 해주십시오!"

코리가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성령의 도움(은총)을 청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내 어깨에서부터 팔을 타고 알 수 없는 따뜻한 전류 같은 것이 흘러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내 손이 기계처럼 움직여 간수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때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나의 형제여,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녀의 입에서 "어, 이게 되네? 내가 원수의 손을 잡고 있네!"라는 영적인 탄성이 터져 나온 순간입니다. 두 손이 맞잡힌 순간, 내 영혼을 짓누르던 증오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압도적인 평화가 밀려왔습니다. (출처: 코리 텐 붐, 『주는 나의 피난처』).

용서할 수 없다고 느끼면 아직 예수님(진리)을 온전히 만나지 못한 것이고, 용서해야 함을 알면서도 용서하지 못해 괴롭다면 아직 성령님(은총)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코리는 진리와 은총이 결합되어 차원을 이동하는 기쁨을 온몸으로 증명했습니다.

구약성경 예레미야서 38장에는 이 위대한 차원 이동과 구원의 원리를 보여주는 기막힌 알레고리가 등장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깊은 진흙 우물 속에 던져집니다. 물은 없고 진창만 있는 그 깊고 어두운 똥통 같은 구덩이에서 예레미야는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에벳멜렉이라는 내시가 임금의 허락을 받고 우물 위로 나타납니다. 에벳멜렉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하지만 구원자가 나를 찾아왔다고 해서 저절로 똥통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습니다. 차원 이동을 위한 절대적인 두 가지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에벳멜렉은 예레미야에게 밧줄을 던져줍니다. 그리고 낡은 헝겊과 헌 옷 조각들을 밧줄에 묶어 던지며 이렇게 외칩니다.

"이 낡은 헝겊과 옷 조각들을 겨드랑이와 밧줄 사이에 대십시오." (예레 38,12).

왜 헝겊을 먼저 대라고 했을까요? 예레미야는 진흙탕 속에서 무거운 뻘을 잔뜩 뒤집어쓴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까끌까끌한 밧줄만 겨드랑이에 끼우고 위에서 당기면, 피부가 다 찢어져 고통스러워 밧줄을 놓치고 맙니다.

여기서 우리를 위로 끌어올려 주는 이 밧줄이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너는 똥통에 있을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처럼 용서하며 하늘로 올라갈 존재다"라는 정체성의 믿음, 즉 "할 수 있다"는 자존감을 줍니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진리(밧줄)만으로는 찢어지는 고통(분노와 억울함) 때문에 원수를 끝까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낡은 헝겊입니다. 헝겊은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너덜너덜하게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즉 성령을 통해 부어지는 '은총'입니다. 은총은 내 마음에 부드러운 보호막이 되어 끝까지 밧줄을 놓지 않게 만들고 마침내 "어, 되네?" 하며 위로 솟구치게 만듭니다. 예수님(에벳멜렉)을 만났어도, 진리의 밧줄(내가 하느님이라는 믿음)과 은총의 헝겊(성령의 평화)을 만나지 못하면 결코 차원 이동은 완료되지 않습니다. (출처: 『주석 성경』 예레미야서 38장)

저 육중한 비행기가 하늘로 날 수 있을까요? 비행기니까 날아야만 합니다. 우리도 용서해야만 합니다. 할 수 있다고 믿어야 조종간을 잡을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달리게 되고 정말 그 큰 쇳덩어리가 뜨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는 연료가 없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 연료가 성령님입니다. 하늘을 날 때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어, 되네?!” 이 기쁨으로 사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저는 책을 많이 읽기는 하지만, 2번 이상 읽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나면 아무리 좋은 내용을 가지고 있더라도 보관하지 않고 성당 도서관에 기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읽는 감정에 지루함이 들어가고, 또 세상에는 새롭게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계속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책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읽을수록 주님께서 빛을 비춰주심을 깨닫습니다. 성령께서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도 같은 내용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됩니다. 여기에 주님께서 직접 제게 말씀해 주시는 생생함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집을 방문해서 성경을 보면 반갑습니다.

언젠가 어느 집에서 거실 한가운데에 자그만 책상이 있고 그 위에 펼쳐져 있는 성경을 보았습니다. 경건함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책 앞에 갔다가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펼쳐 놓는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신앙인의 삶은 자기 편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계속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펼쳐 놓은 성경책처럼 말로만 신앙인이라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신앙의 기쁨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신앙인의 삶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움으로 또 커다란 의미로 매 순간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교회가 탄생한 날이자,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 제자들을 통해 세상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거룩한 날입니다. 성령을 받지 못했던 제자들의 모습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지요.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0,19)

십자가 사건 이후 제자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 또 스승을 버렸다는 죄책감으로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닫혀 있는 인간의 영적 상태를 보여줍니다. 제자들이 받은 성령은 두려움으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십자가의 참된 평화를 가져다주는 영입니다.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 장면과 일치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는 행위는 십자가의 은총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제2의 창조를 의미합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낡은 자아를 벗고 하느님의 생명을 품은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주님의 뜻을 세상에 펼치게 됩니다. 우리 역시 성령의 숨결을 받아들일 때 새롭게 창조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세상은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훨씬 더 나아진다(빅 페어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성령을 받아라.

눈부시게 푸른 이 아름다운 오월에 성령의 바람 또한 우리 삶 안에 새롭게 불어오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령께서 내려오심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오늘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현재의 은총이 되었습니다.

성령 강림은 이미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 안에 머무르시는 하느님의 살아 있는 현존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생명이시며, 사랑의 영이고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께서는 단순히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 되도록 우리 존재를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바벨탑이 인간의 교만으로 인한 분열이었다면, 성령 강림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참된 일치와 친교의 회복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본질은 지배와 분열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이어 주는 사랑의 힘입니다.

성령께서는 타인의 존재를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게 하시는 참된 관계의 숨결이십니다. 굳어진 우리의 마음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시고, 존재 자체로 살아가는 평화와 참된 자유를 가르쳐 주십니다. 닫혀 있던 제자들이 성령 안에서 두려움을 넘어 세상으로 나아갔듯이, 우리 또한 성령 안에서 더 큰 사랑과 생명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의 빛과 진리를 비추시며, 희망의 숨결을 불어넣고 계십니다. 그리고 참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세상을 따뜻하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하느님의 숨결 안에서 서로를 살리고 이어 주는 성령의 삶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성령을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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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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