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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5.3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5. 30.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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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 앞에서는 마음을 열기보다 이유를 찾고, 설명을 요구하며, 제 생각을 지키려 할 때가 있어서일까요.

 

예수님께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의 질문에서, 진리를 알고 싶은 마음보다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져요.

 

생각과 계산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마음 깊은 곳의 소리를 들으라고 초대해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5월 3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5월 3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8주간 토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3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유다서 17.20ㄴ-25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하느님은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당신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나서도록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17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예고한 말을 기억하십시오.

20 여러분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십시오.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21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22 의심하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23 어떤 이들은 불에서 끌어내어 구해 주십시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살에 닿아 더러워진 속옷까지 미워하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십시오.

24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 주시고 당신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기쁘게 나서도록 해 주실 수 있는 분,

25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 하느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위엄과 권능과 권세가 창조 이전부터, 그리고 이제와 앞으로 영원히 있기를 빕니다. 아멘.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마르코복음 11,27-33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 무렵 예수님과 제자들은

27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예수님께서 성전 뜰을 거닐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28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에게 한 가지 물을 터이니 대답해 보아라. 그러면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

31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말할 터이니,

32 ‘사람에게서 왔다.’ 할까?” 그러나 군중이 모두 요한을 참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군중을 두려워하여,

33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5월 30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07:2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우리는 무엇에 끌리고 있나요?

오늘 복음에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마르 11,28)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문제 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라는 시골 출신으로 아무 직함도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권위에 약합니다. 2007년 1월,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바이올린 연주가 조슈아 벨이 미국 워싱턴 D.C.의 지하철역에서 남루한 차림으로 40분가량 연주하였습니다. 350만 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잠시라도 서서 음악을 들은 사람은 일곱 명뿐이었고, 스무 명 남짓만이 동전을 던졌습니다. 며칠 전 그가 보스턴 심포니 홀에서 같은 곡을 연주하였고, 표는 매진되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이 실험은 사람들이 음악 자체보다 외부적인 권위에 먼저 이끌림을 보여 줍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을까요? 바로 진리 자체로 하느님을 알아보기를 바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적인 권위가 아닌 말씀, 행위, 사랑 그 자체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사시며,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지만, 온 생애로 진리를 증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에는 무관심하지 않는지 돌아봅시다. 성경을 집에 두기만 하고 읽지는 않고, 미사에서도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리사이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들으려고 미사에 왔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자체에 귀 기울입시다. 화려한 포장이 아니라 그 안의 진리를, 외적 권위가 아니라 말씀 자체를 들읍시다. 그 진리의 선율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자비를 받고 자비를 베풀려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부끄러운 얘기인데 저는 30대 중반까지 몇 가지 말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주님’이라는 말과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과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주님’이라고 부를라치면 닭살이 돋고 몸이 오글거리고, 불쌍히 여기시라는 말과 자비를 베푸시라는 말을 할라치면 속에서 왜 내가 불쌍해? 자비는 다른 사람에게 베푸세요! 라고 중얼거렸지요.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저를 불쌍히 여겨주기를 바라거나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주기를 청하는 것은 여전히 싫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바라고 청하는 정도는 되었으며, 자비야말로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청해야 할 것이고 베풀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실 자비를 청할 정도가 되어야 진정 겸손하고, 자비를 베풀 정도가 되어야 진정 사랑하는 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저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30 중반에야 주님께 자비를 청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나이가 되어서야 오늘 유다서의 말씀처럼 주님의 자비를 기다리다가 겨울에 햇볕 쬐듯이 은총의 창가에서 주님께서 내리시는 자비를 쬡니다.

그래도 자비를 받는 것은 이 정도 되었는데 자비 실천은 어떤가요? 제가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 처지는 못 되지만 나누는 것은 잘해야 할 텐데 그러고 있을까요?

솔직히 얘기해서 가련한 이가 자신을 낮추며 도와달라고 하면 기꺼이 그리고 우러나서 하느님의 자비를 나눌 마음이 제게 있지만 나쁜 짓 하면서도 잘났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서는 제가 겸손하게 청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웃의 죄에 대해서는 아직도 제가 교만하기에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런 자는 오히려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이며 그래도 수도자인 내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억지로 회개의 자비를 베풀어주십사고 기도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유다서는 이런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의 살이 닿은 것 때문에 속옷까지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두려운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라고 말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들의 살에 닿아 더러워진 속옷까지 미워하더라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십시오.”

그런데 얼마나 미우면 그의 속옷까지 미워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토록 미운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려면 그 미움보다 큰 사랑이 있어야겠고 오늘 말씀처럼 두려운 마음도 있어야겠지요.

그러면 자비 실천에 있어서 두려운 마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더 큰 죄 용서받은 내가 더 작은 죄 지은 남을 용서하지 않으면 벌 받을 거라는, 받은 자비를 자기만 가지고 이웃과 나누지 않으면 벌 받을 거라는 두려움입니다.

주님께서 비유를 드신 바 있습니다. 만 탈렌트를 임금께 빚지고 탕감받은 종이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감옥에 처넣자 임금이 대노하여 그 신하를 다시 감옥에 처넣은 비유 말입니다.

그러니 겸손해야지만 하느님 자비를 청해 받고, 사랑해야지만 그리고 자비에 대한 두려운 마음도 있어야지만 자비를 나눌 수 있음을 깨닫고 실천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타인을 저울질하다가 정작 드러나는 것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권한에 대한 논쟁을 전해줍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후 성전 뜰을 거닐고 계셨는데,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요?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마르 11,28)

원래 ‘권한’ 혹은 ‘권위’를 말할 때, “권”은 저울을 말한다고 합니다. 저울의 눈금은 어느 것이 딱 들어맞고, 어느 것이 딱 들어맞지 않는 것인지를 판가름해 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저울은 ‘하늘’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의 저울은 사람의 저울과는 사뭇 다릅니다. 사람의 저울은 물건의 경중을 가려서 판가름해 내지만, 하늘의 저울은 “하늘의 뜻”을 따르고 있는지를 판가름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이 주님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반문하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마르 11,30)

역시,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저울’을 들이댑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대답이 가져올 위험을 생각하며 망설였습니다. 그리고는 결국,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르겠소.”라는 이 말마디가 나의 가슴을 쿵 내리칩니다. 이는 평소의 나의 말이기 때문입니다. 비겁하고, 진실하거나 솔직하지 못하고, 위선적이고 눈치 보며 하는 계산적인 이 말마디가 바로 내가 자주 내뱉는 말마디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에 가린 제 마음을 질책하십니다. 가려진 거짓을 들추시고 제 오만함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죄를 일깨워주십니다. 제가 저 자신의 저울로 예수님을 저울질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제 자신의 저울로 다른 이들을 저울질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봅니다. 타인을 저울질 하다가, 자칫 제 자신이 저울질 당하고 있지는 않는지를 봅니다. 오만함으로 쌓여 있는 제 자신의 속셈을 들여다봅니다. 은밀히 감추어진 속내를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남을 저울질하기보다, 주님의 저울인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처신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하오니, 주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게 하소서. 타인의 권한을 따지기보다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을 따지게 하소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그에게 나의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 지를 가리게 해 하소서. 타인을 저울질 하다가, 제 자신이 저울질 당하지 말게 하소서. 오만함으로 쌓여 있는 제 자신의 속셈을 들여다보게 하시고 거짓과 위선으로 치장하고 있는 제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소서. 저울 위에 타인을 올려놓기보다 저 자신을 올려놓게 하시고 저울질하는 바로 그 순간, 막상 저울에 올려 진 것은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가려진 제 자신의 위선의 무게임을 깨우쳐 주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코복음 11장28 절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주님! 타인에 대한 나의 권한을 따지기보다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을 따지게 하소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 지를 가리게 하소서.

타인을 저울질하기보다
차라리 제 자신을 올려놓고
오만함으로 쌓여 있는
숨은 속셈을 들여다보게 하소서.

저울질하는 바로 그 순간,
막상 저울에 올려 진 것은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가려진
제 자신의 위선의 무게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내가 청하는 것을 내가 존중하는지 먼저 물어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마르 11,33)

찬미 예수님! 연중 제8주간 토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논쟁을 벌이는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오?"라며 아주 예리한 질문을 던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진리를 알고 싶어 하는 진지한 구도자들의 모습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답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례자 요한의 권한이 하늘에서 온 것인지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되물으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속으로 얄팍한 계산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왜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군중이 두렵고.' 결국 그들은 진실을 외면한 채 "모르겠소"라고 거짓말을 해버립니다. 그러자 예수님도 단호하게 선언하십니다.

"나도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주님은 왜 진리를 묻는 이들에게 침묵하셨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진리에 대한 '존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진리를 이용하려 했을 뿐입니다. 하느님은 스스로 정직하지 않으면서 진리를 훔쳐 가려는 자들에게는 결코 하늘의 신비를 내어주지 않으십니다.

어느 마을에 허풍이 심하고 체면을 중시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몸이 자꾸 아파서 아주 용하고 신통하다는 명의를 찾아갔습니다. 의사는 남자의 진맥을 짚어보더니 차트를 들고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환자분, 정확한 진단을 위해 묻겠습니다. 평소 식습관은 어떠시며, 술과 담배는 얼마나 하십니까?"

남자는 의사 앞에서 자신이 게으르고 방탕하게 산다는 것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습니다.

"아, 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조깅을 하고요. 술과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식사도 철저하게 유기농 채소 위주로 소식하며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지요."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처방전을 써주었습니다. 남자는 비싼 돈을 주고 지어온 약을 매일 정성껏 챙겨 먹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병이 낫기는커녕 증세가 악화되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남자는 화가 잔뜩 나서 의사를 찾아가 멱살을 잡았습니다.

"당신 명의라더니 다 사기꾼 아니오! 당신이 준 약을 먹고 내 몸이 더 망가졌소!"

그러자 의사가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싸늘하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지어드린 그 약은 완벽한 명약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약을 '새벽마다 조깅을 하고 술 담배를 안 하는 건강한 사람'을 위해 지어주었지, 매일 밤 술을 퍼마시고 기름진 고기만 먹는 선생님 같은 분을 위해 지어준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당신의 진짜 모습을 속였는데, 어떻게 내 처방이 당신 몸에서 진리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진리를 대하는 우리의 영적 태도가 얼마나 완벽한 무결점을 요구하는지, 현대 첨단 공학의 법칙 하나를 통해 명확히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Clean Room) 법칙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들어가는 초정밀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반 공기가 아닌 완벽하게 통제된 '클린룸'이라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 방은 먼지 한 톨, 머리카락 한 가닥도 허용되지 않는 우주에서 가장 깨끗한 공간입니다. 작업자들은 온몸을 방진복으로 꽁꽁 싸매고, 에어 샤워를 거쳐야만 그 방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까요? 반도체 웨이퍼 위에 그려지는 회로는 나노미터(10억 분의 1미터) 단위의 초미세 설계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작업자가 귀찮다고 방진복을 대충 입고 들어가서, 아주 미세한 각질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 한 톨이라도 그 웨이퍼 위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나노미터의 정밀한 회로는 즉시 끊어지고 쇼트가 나서, 수백억 원어치의 반도체가 전부 불량품이 되어 폐기 처분되고 맙니다.

하느님의 진리는 이 반도체 회로보다 수억 배 더 정교하고 거룩한 우주의 설계도입니다. 이 거룩한 진리가 우리 영혼의 웨이퍼에 새겨지려면, 우리 마음은 반드시 정직이라는 완벽한 클린룸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겉으로는 기도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자기 합리화와 거짓말이라는 미세먼지를 풀풀 풍기고 다닌다면, 하느님의 진리는 우리 영혼 안에서 즉시 쇼트를 일으키고 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쏟아부어 주시기 위해 가장 먼저 요구하시는 조건은 똑똑한 머리가 아닙니다. 내 죄와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잔인할 정도의 '솔직함'입니다. 진리를 청할 때는 솔직해야 하고, 은총을 청할 때는 죄를 짓지 않을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청하는 것을 존중한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얼마나 자주 유다인들처럼 속을 감추고 하느님 앞에 섭니까? 교회의 위대한 학자인 성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님은 『고백록』에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진리는 빛과 같아서, 거짓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가린 자에게는 맹인의 흑암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비참함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는 자는, 영원히 진리의 문고리조차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어떤 물건을 살 때, 우리는 용도를 계획해서 구매합니다. 만약 노트를 산다면 무엇인가를 적기 위해서이고, 가위를 산다면 무엇인가를 자르기 위해서입니다. 화장품을 산다면 화장하기 위해서이고, 옷을 산다면 입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이 물건들은 원래의 계획대로 사용되어야 그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요? 처음부터 어떤 용도로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졌을까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쓰고자 하는 용도를 미리 정하셨다면, 공부할 필요도 없고 무엇인가를 익힐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셨다는 믿음으로 이제 막 태어난 아기에게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육 안 시키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먹는 것, 입는 것 등을 알아서 하라고 한다면 아마 인간으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에 맞습니다. 계속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따르지 않는 순간, 하느님의 뜻도 우리 안에서 펼쳐질 수 없습니다. 나를 만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소?”(마르 11,28)라고 묻습니다. 오늘 복음의 바로 앞서 일어난 사건이 예수님께서 환전상들의 상을 엎으시며 성전을 정화하신 것입니다. 당시 성전의 관리와 치안은 최고 의회 대표들에게 있었는데, 자신들의 허락 없이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셨기에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인 성전을 관리하면서도, 정작 그 성전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 눈멂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아니면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대답해 보아라.”(마르 11,30)라고 오히려 물으십니다. 하늘에서 왔다고 하면, 세례자 요한과 그가 증언한 예수님을 믿지 않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하면, 요한을 참예언자로 믿고 있는 군중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고 의회 대표들은 “모르겠소.”(마르 11,33)라고 답합니다.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자기의 생각을 바꿔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사려고 변화하려고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저 지금의 상황만 벗어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 뜻에 맞춰 살지 않으려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도 말하지 않겠다.”(마르 11,33)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그 자리에서 멈춰 설 뿐입니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 뜻에 맞춰서 자기를 만들고 있나요? 그냥 지금의 편안함과 안위만을 생각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을 멈춘 것이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인간은 본질을 지닌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본질을 만들어 간다(장 폴 샤르트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예수님의 권한은 일치에서 나오는 사랑의 권한이고, 생명을 살리는 존재의 진실성에서 나오는 권한입니다. 이와 같이 참된 권위는 생명을 살리고 희망을 일으키는 힘입니다.

가장 낮아지셨기에 가장 좋은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소외된 이들을 품으신 예수님의 권한은 인간의 존엄을 회복시키는 은총의 가치였습니다. 예수님의 권한은 끝까지 섬기는 섬김의 가치입니다.

죄와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참된 생명으로 이끄셨습니다. 사람 위에 서는 힘이 아니라, 사람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을 살려내는 사랑의 가치입니다. 권한이 사랑을 잃으면 억압이 되고, 겸손을 잃으면 폭력이 됩니다.

권한이 하느님 안에서 참되게 사용될 때는 생명을 살리는 은총의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사랑의 힘이 참된 권한입니다. 사람은 사랑받을 때 가장 아름다워지고 가장 사람다워집니다. 예수님의 봉사는 사랑의 권한으로 하시는 사랑의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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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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