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질문 하나가 떠올라요.
"나는 왜 살고 있지?"
세금 이야기를 읽으며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사실 저는 삶의 이유를 잃어버려서 힘든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서 힘들어요. 하느님보다 걱정에 더 오래 머물고, 사랑보다 결과를 더 붙들고, 평화보다 불안을 더 붙들고 살고 있으니까요.
동전에 황제의 이름이 새겨져 있듯 제 안에도 당신의 숨결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시는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9주간 화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6월 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2베드 3,12-15ㄱ.17-18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2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이 오면 하늘은 불길에 싸여 스러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언약에 따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
15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구원의 기회로 생각하십시오.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18 그리고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 이제와 영원히 그분께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오늘 복음 성경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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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 12,13-17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때에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13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고,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 몇 사람을 보냈다.
14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다 보여 다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자 예수님께서,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황제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그들은 예수님께 매우 감탄하였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6월 2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교황님 6월 기도지향 00:20
✚ 미사 시작 00:36
✚ 강론 시작 07:0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논쟁에서 밀린 채 포도밭 비유가 자기들을 겨냥하였다는 것도 알고 있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 올무를 씌우려고(마르 12,13 참조)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을 끌어들입니다.
헤로데 당원들은 로마 제국에 기대어 권력을 누리는 이들이어서 황제 쪽으로 기울기 쉬웠지만, 이와 달리 바리사이들은 황제에게 납세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서로 섞이지 않을 것 같던 이들이, 한 사람을 넘어뜨리고자 잠시 손을 맞잡습니다.
목표는 분명합니다. “말로 올무를 씌우려”(마르 12,13)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 칭찬으로 덫을 윤나게 합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지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대답해 보십시오.’
질문은 하나입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허락됩니까?’ ‘그렇다.’라고 하면 이스라엘 민중을 잃고, ‘아니다.’라고 하면 황제의 반역자로 몰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질문이 쓴 가면, 곧 ‘위선’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은화에는 아마 티베리우스 황제의 얼굴과, 신성을 암시하는 칭호가 새겨져 있었을 것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12,17).
제국의 화폐를 쓰려면, 그 체계가 요구하는 의무도 짊어진다는 뜻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더 깊은 차원을 여십니다. 동전에는 황제가 새겨졌지만,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의 삶 전체, 몸과 마음과 정신 모두입니다(신명 6,4 이하 참조).
신앙은 이해관계에 따라 요령을 부리는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전인적 응답’입니다. 신앙은 삶 자체의 근원을 묻는 마지막 물음이어야 합니다.
나는, 우리는 왜 사는 것일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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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주님, 참으로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 12,17)
이는 말 그대로 하면, ‘은화’는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어 황제의 것이니 황제에게 돌려주고,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초상이 새겨져 있어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께 돌려드리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황제가 자신의 초상을 요구하니, 황제의 것을 황제에게 돌려주어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초상을 요구하시니,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사실, 동전에는 흐리멍텅한 육체적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동전은 자신이 누구의 초상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을 인간에게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누구의 초상을 지니고 있는지를 압니다. 곧 하느님의 초상을 지니고 있음을 압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이며 ‘하느님의 은화’입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을 세상의 황제에게 팔아넘겨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니 팔려 넘겨지지도 않는 일인 것입니다. 그분께 영원토록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소유, 그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황제에게는 돈을 돌려주고 하느님께는 여러분 자신을 돌려드려라. 그러면 우리 안에 진리가 다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진리’가 자라나야 할 일입니다. ‘진리가 자라게 하는 일’, 그것은 곧 ‘진리를 밝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에 따라 행동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진리에 속한 이들’이 됩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진리’에 속해 있기에 ‘진리’를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곧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이 진리에 속하도록’ 빛을 밝혀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은 새겨진 이의 것이 아니라 가진 이에게 잠시 맡겨지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 새겨진 그분의 것입니다. ‘돈’에는 인간이 새겨져 있어 인간에게 돌아가지만, ‘우리’에게는 그분의 형상이 새겨져 있기에 그분께 돌아가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는 그분의 생명이 흐르며, 그분의 말씀이 새겨져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이 하느님의 것이고, 무엇이 하느님의 것이 아닌지’를 묻기에 앞서, ‘자신이 누구의 것인지’, ‘자신을 누구에게 돌려드려야 할지’를 먼저 물어야 할 일입니다.
주님, 참으로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코복음 12장 17절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주님! 제 안에는 당신의 초상이 새겨져 있고, 당신의 생명이 흐릅니다.
그러기에, 진정 당신의 것입니다.
하오니, 언제나 당신께 돌아가게 하소서.
제 안에 새겨진 당신 진리의 말씀 따라 살게 하소서.
그 어떤 힘에도 휘둘림 당하지 않는 당신 생명이 차오르게 하소서.
당신 빛으로 인도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내 영혼에 찍을 인장은 내가 선택한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주어라." (마르 12,17)
찬미 예수님! 연중 제9주간 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겉으로는 정중하지만 속으로는 날카로운 비수를 감춘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옭아매기 위해 세금 문제를 들고나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황제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면 매국노로 몰릴 것이고,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자가 되는 진퇴양난의 함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얄팍한 속내를 꿰뚫어 보시고는 데나리온 은전 한 닢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그리고 물으십니다.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
그들이 황제의 것이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명언으로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주어라."
우리는 이 복음을 읽으며 예수님의 지혜에 감탄하고 끝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단순히 세금은 국가에 잘 내고 헌금은 성당에 잘 내라는 윤리적 지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 영혼의 밑바닥을 향해 가장 두렵고도 실존적인 질문을 던지고 계신 것입니다.
저희 사제들은 검은 수단이나 목에 하얀 띠를 두른 '로만칼라' 셔츠를 입고 다닙니다. 이 옷은 단순한 유니폼이 아닙니다. 내 목을 하느님께 묶어두었다는 뜻이며, 나는 온전히 하느님께 바쳐진 '하느님의 소유물'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움직이는 간판입니다.
그런데 이 옷을 입고 거리를 나가면 참으로 피곤할 때가 많습니다.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켜져 있고 차가 한 대도 안 지나가도, 감히 무단횡단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식당에서 밥이 늦게 나와도 짜증을 낼 수 없고, 운전하다가 누가 끼어들어도 욕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목에 둘린 로만칼라를 보고 사람들이 "아, 저 사람은 하느님의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 행동 하나가 하느님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있기에, 저는 꼼짝없이 거룩한 척이라도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편안하게 술집에 가서 눈치 보지 않고 맥주 한잔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어떻게 할까요?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용히 목에서 로만칼라를 빼서 주머니에 집어넣습니다.
왜 로만칼라를 뺄까요? 그 순간만큼은 '하느님께 바쳐진 존재'라는 그 거룩하고 무거운 인장(Seal)을 지워버리고, 잠시나마 세상에 속한 평범한 사람, 세상의 소유물이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신자들이 제가 사제인 것을 다 아는 성당 안에서 사제복을 입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고 쉬운 일입니다. 오히려 저를 모르는 비신자들 앞인 세상 한복판에서 사제복을 입고 있는 것이야말로 "나는 언제 어느 때나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진짜 신앙일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는 분들을 보면 그렇게 멋있고 존경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길을 걷거나 등산을 하면서도 손에 묵주를 쥐고 당당히 기도하며 가시는 교우분들, 대중교통을 탈 때도 꼿꼿하게 사제복과 수도복을 입고 계신 분들을 보면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저도 요즘은 작은 결심을 하나 실천하고 있습니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거나 술을 한잔하러 갈 때, 비록 자리에 앉아 먹을 때는 답답해서 옷을 갈아입거나 칼라를 뺄지언정,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만큼은 반드시 사제복을 온전히 입고 들어가려 노력합니다.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사제가 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하고, 저 스스로에게도 '너는 하느님의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부끄러움과 불편함을 무릅쓰고 이 옷을 세상 앞에 드러내는 그 짧은 순간이, 바로 내 이마에 '하느님의 것'이라는 인장을 쾅 하고 찍기 시작하는 위대한 출발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아주 뼈아픈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결국 내 정체성은 '내'가 정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내 자녀다, 너는 나와 같은 거룩한 신(神)이다"라는 영광스러운 인장을 선물로 내미십니다. 반면, 우리 안의 얄팍한 자아는 "너는 그저 쾌락과 돈이 필요한 연약한 인간일 뿐이야. 그냥 네 욕망대로 편하게 살아"라며 세속의 인장을 내밉니다. 이 두 인장 중에서 지금 내 이마에 어떤 것을 찍을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주어라"라고 명령하신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억지로 빼앗아 가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너희에게는 너희 자신을 스스로 선택해서 바칠 수 있는 위대한 자유가 있다. 그러니 짐승 같은 자아의 인장을 거부하고, 네 영혼에 하느님의 인장을 찍어 스스로를 하느님께 바쳐라!"라는 주권적 결단의 촉구인 것입니다. 제가 사제임을 자주 기억하고 그 옷의 무게를 견디려 애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나를 하느님의 것이라고 선택하고 선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세상의 인장이 내 이마에 쾅 하고 찍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 미사에 나와 거룩하게 앉아 있을 때는 누구나 다 하느님의 소유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영혼을 고난과 억울함이라는 십자가의 강렬한 '불빛'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내가 내 이마에 스스로 어떤 워터마크를 찍었는지가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원수를 향해 분노와 복수심을 뿜어낸다면 그는 스스로 짐승을 선택한 가짜입니다. 반면, 억울하게 손해를 보고 고통받는 순간에도 스스로 "나는 하느님의 자녀다"라는 정체성을 꽉 붙잡고 이웃을 용서한다면, 불빛에 비친 그의 영혼에는 가장 선명하고 찬란한 '예수 그리스도'의 워터마크가 떠오릅니다.
이 영광스러운 소유권의 법칙은 이미 구약 성경 탈출기에 완벽한 알레고리로 숨겨져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대사제인 아론이 입을 거룩한 예복을 짓게 하십니다. 그중에서도 대사제의 머리에 두르는 터번 앞쪽에는 순금으로 만든 아주 특별한 패를 매달게 하셨습니다.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장을 새기듯이 그 위에 ‘주님께 성별된 이’라고 새겨라. 아론은 그것을 이마에 달아라. 그 패가 늘 그의 이마에 달려 있어, 그 예물들이 주님 앞에서 호의로 받아들여지게 하여라." (탈출 28,36.38).
이마에 붙인 이 순금 패는 "이 사람은 하느님의 소유물이다"라고 선언하는 절대적인 인장이었습니다. 아론이 제단에 오를 때 수많은 죄와 부족함이 있었지만, 그가 스스로 이 인장을 이마에 매달고 나아갔을 때 하느님은 아론의 죄를 보지 않으시고 그 이마에 빛나는 황금 인장을 보시며 이스라엘 전체를 용서하고 품어 안으셨습니다. (출처: 『주석 성경』 탈출기 28장).
우리도 일상 속에서 이 아론의 금패를 이마에 달고, 하느님의 인장을 세상 앞에 쾅쾅 찍어대야 합니다. 식당에서 밥이 나오면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성호를 크게 그으며 자랑스럽게 식사 전 기도를 바치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영혼에 인장을 찍는 일입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늘 복음을 두고 이렇게 명쾌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카이사르는 은전에서 자신의 잃어버린 초상화를 찾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혼에서 당신의 잃어버린 초상화를 찾으신다. 은전을 카이사르에게 돌려주었듯, 하느님의 모습이 새겨진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요한 복음 강해』).
오늘 하루, 나를 옭아매는 세상의 두려움을 십자가 앞에 모두 던져 버리십시오. 내 정체성은 내가 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내려다보실 때, "그래, 너는 내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나의 귀한 자녀다!"라고 흐뭇하게 말씀하실 수 있도록, 세상 한복판에서 여러분의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십시오. 오직 내가 하느님의 소유물이라는 그 압도적인 자존감의 인장을 꽉 쥐고, 세상을 향해 양팔을 벌리고 당당하게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한국 아동 문학을 대표하는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강아지똥, 몽실언니로 유명한 선생님께서는 외롭고 가난한 삶을 사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난한 삶인데도 불구하고 인세를 모두 기부했고, 인세가 굶주린 어린이들에게 쓰이길 바란다는 유언을 남기시고 2011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남기신 재산이 약 10억 원 정도 있었고, 매년 들어오는 인세가 약 1억 정도 되셨다고 하지요. 적지 않은 재산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본인은 아주 가난하게 사셨고 심지어 그렇게 아픈데도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너무 아파하는 모습에 아는 신부님이 억지로 데리고 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그런데 며칠 못 가서 퇴원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꾸 약을 먹으라잖아. 내 몸도 몸이라고 들어앉아 먹고 사는 목숨인데, 약을 쳐서 병균을 죽일 수는 없지. 그 대신 밥 잘 먹으면 돼. 그래야 나도 살고 병균도 먹을 게 있지 않겠어?”
이런 마음이 있기에 좋은 동화를 쓰실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자기에게 아픔을 주는 것은 모두 부정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하느님의 창조물이고,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은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이기적인 판단으로 하느님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닐까요?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이 예수님께 옵니다. 당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은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바리사이는 로마의 지배에 반대하며, 로마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하느님에 대한 배신으로 여겼었고, 헤로데 당원은 로마 제국의 권력에 기생하여 기득권을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 상극인 두 집단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손을 잡습니다. 그리고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세금을 내라고 하면 로마의 앞잡이로 몰릴 수 있고,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 제국에 대한 반역죄로 몰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마음을 합했던 것입니다. 이에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마르 12,17)
그리스도인이라도 세상에 살아가기에 국가의 질서와 시민의 의무를 존중해야 함을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리라고 하십니다. 창세기를 보면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과 생명에는 하느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으므로 우리 존재 전체는 온전히 하느님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돈이나 지위, 세상의 권력 등의 세상 뜻을 하느님 뜻보다 더 위에 두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픔과 상처를 나의 이웃들에게 주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철저히 하느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판단, 미움, 단죄의 모습인 하느님을 부정하는 모습보다 함께하는 사랑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병은 인간이 자기 자신과 대화하게 만드는 가장 깊은 방식이다(토마스 만).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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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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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