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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6.1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6. 11.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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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려고 짐을 챙기다 보면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가방은 점점 무거워지고, 결국은 짐을 빼게 됩니다.

 

주님은 빈손으로 길을 떠나라고 하시는데, 저는 먼저 가방부터 확인하고 있어요. 아직도 이것저것 더 챙기고 싶거든요. 사실 제가 챙기고 싶은 것은 짐이 아니라 안심할 이유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빈손이어도 괜찮다고 말씀하시며 길을 떠나게 하시는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2026년 6월 1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6월 1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6월 1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 11,21ㄴ-26; 13,1-3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 무렵

21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0,7-13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6월 11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 바르나바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02

✚ 강론 시작 08:0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거저 받은 사랑은 흘러가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보내시며,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마태 10,7)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치유와 자비의 손길이 이제 제자들의 손으로 이어집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은 이성적 설명이나 설득보다 구체적 치유와 자비의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제자들이 행하는 기적은 하늘 나라의 선물이므로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10,8)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데 빠른 인간 세상의 논리와는 확연히 다른 것이지요. 복음의 논리는 값이 없기에 값진 것이고, 그 기쁨은 대가가 없기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기쁜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제자들은 가난하게 파견됩니다. 금, 은, 돈, 자루, 두 벌 옷, 신발,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는 것은, 파견된 이를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제자들은 기꺼이 약한 모습으로 길 위에 서며, 그 자체가 하느님만을 신뢰한다는 예언자적 표지입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10,10)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이에게 의지하고 대가를 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늘 나라의 일꾼에게 필요한 것을 책임지신다는 충실함을 드러냅니다(6,25-26 참조).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면 “마땅한”(10,11) 사람을 찾아내 한 집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기준은 도덕적 완전함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보고 응답하는 능동적이고 열린 마음입니다.

‘마땅한 사람’의 열린 태도는 하늘 나라를 선포하는 가난한 제자가 먹거리와 머물 곳을 찾을 수 있는 하나뿐인 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서로 열려 있고 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당신 나라의 부유함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파견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힘이 있고 힘이 되는 위로와 격려

오늘 축일을 지내는 바르나바 사도의 원명은 요셉이었는데 사람들이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름을 불러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말로 하면 별명을 붙여 준 것입니다.

저 스스로는 당쇠란 별명을 제게 붙여 주었지만 여러분은 제게 어떤 별명을 붙여 주실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 사도행전을 보면 그에 대해 이렇게 전하기도 합니다.

“바르나바는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이것을 볼 때 바르나바에 관해서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수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한 사람이라는 관점에서도 얘기할 수 있지만 오늘 저는 위로와 격려의 바르나바라는 관점에서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기로 한 이유는 그저께 한 자매님으로부터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가정에 관해서 얘기 듣고 어떻게 위로와 격려를 할지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그 가정은 몇 년 전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할 때 배고픈 저희를 먹여 주시고 잠자리도 제공해 주신 분들인데 며칠 전에 불이 나 벌통과 창고가 소실되었다는 거였습니다. 그래도 사는 집에는 불이 옮겨붙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씀인데 아무튼 이분들에게 어떤 위로와 격려를 드릴지 생각게 되었고, 오늘 그것을 마침 나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먼저 이런 경우 늘 제게는 같은 고민이 있습니다. 위로받기보다 위로하라는 말이 있지만 이럴 때 저는 제가 위로받을 처지에 있어야 하는데 위로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 미안하고 더 나아가 같이 있어 드리거나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죄송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위로를 드리면서도 쭈뼛쭈뼛 위로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먼저 위로는 그의 슬픔과 고통을 같이 느끼는 것 곧 공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위로가 진실하기 위해서는 말로만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공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너와 함께할게, 기도로 함께할게 하며 어떻게든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괜찮아질 거야, 나아질 거야 하며 희망적인 얘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인에겐 말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위로는 하느님의 위로를 전달하는 위로여야겠지요. 주님도 같이 아파하시고, 주님께서 함께 계시고, 주님께서 낫게 해주실 거라고. 그런 다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격려입니다. 물론 어떤 경우 격려는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위로만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도 된다면 힘들지만 일어서라고, 용기를 한번 내보라고 격려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은 물론 주님께서 힘주실 것이라는 말과 함께 격려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르나바가 위로와 격려를 잘할 수 있게 된 것이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제가 위로와 격려에 쭈뼛쭈뼛하는 것이 바로 이것, 곧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의 위로와 격려가 나에게서 나오지 않고 성령에게서 나오기에 그 위로는 힘이 있고 받는 이에게는 힘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내가 받은 것을 정말 나누고 있는가

오늘은 ‘사도 바르나바 기념일’입니다. 오늘 <말씀 전례>의 주제는 “파견”입니다.

<독서>에서는 바르나바 사도가 교회로부터 파견 받았음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줍니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 11,24)

오늘 <복음>은 바로 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그러니 그들이 “가진 것”, 그것은 그들이 만들거나 획득해서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받아서 가지게 된 것들’이었습니다. 곧 하느님의 자애로, ‘거저’ 주어진 선물이었습니다.

사실, 주시는 분이 있기에 받아들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주신 그분을 만나야 하고, ‘먼저’ 그분의 사랑을 만나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그 사랑으로 우리도 ‘거저 줄’ 수가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거나 ‘주라’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거저 받은 것, 바로 그것을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받은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주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만약 받지도 않은 것을 선포하고 증거 한다면, 그것은 거짓 선포요, 거짓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저 받은 것,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 10,7)

놀라운 일입니다. 제자들은 유례없는 위대한 직무를 받았습니다. 전혀 새롭고 놀라운 직무와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감히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직무입니다. 그것은 모세와 예언자들이 받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기껏해야 지상에서의 일시적 약속에 대한 것들을 선포할 직무가 주어졌지만, 제자들에게는 “하늘나라”를 선포하라는 직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하늘나라’는 ‘이미 와 있는 나라’, 곧 거저 주어진 나라임을 말합니다. 곧 하늘나라는 우리가 가야하는 나라가 아니라, ‘이미 와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가 선포해야 할 나라는 우리 자신의 나라가 아니라, 거저 주신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그 직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그 어떤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특별한 능력이 있던 이들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사실, 모세와 예언자들은 지상의 약속에 대한 직무를 받았을 때마저도 망설이고 꺼려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위험이나 박해가 없었던 것도 아닌 데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고 있는 바르나바 사도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해서 그들은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에게 그러할 권능이 함께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곧 하늘나라가 주어졌고, 하늘나라를 선포할 힘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거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파견 받은 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자세를 이렇게 제시하십니다.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마태 10,9)

이는 그 어떤 안전장치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에 빠지지 말고, 오로지 주님께만 의탁하여 신뢰로 사명을 수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곧 자신의 신발이 아니라 ‘주님의 신발’을 신고 걸으며, 자기의 옷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다니며, 자신의 능력을 담은 보따리가 아니라 ‘하늘나라의 보물을 담은 보따리’를 짊어지고서 자기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지팡이’에 의탁하고, 언제나 주님의 평화를 몸에 달고 다니며, 먼저 축복의 인사를 하라고 하십니다.

“집에 들어가면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마태 10,12)

그러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고, 축복을 빌어주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0장 7절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주님! 어디를 가더라도 저의 길동무가 되어 주시고, 저의 길이 되어 주소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저의 파트너가 되어 주시고, 저의 언어가 되어 주소서.

무엇을 하더라도 저의 동료가 되어 주시고, 저의 일이 되어 주소서.

제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나라를 선포하며, 당신과 함께 있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가 모은 참모는 대부분 대통령 자리를 놓고 싸우던 라이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내각을 사람들이 ‘적수들이 모인 팀’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뛰어난 정치가들이지만, 링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을 모아 링컨은 하나의 팀이 되게 했습니다. 그 방법을 역사학자들은 그의 유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겸손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상원의원 선거를 위한 공개 토론에서 상대 후보가 링컨을 향해 ‘이중인격자’라며 비난했습니다. 이 말에 링컨은 웃으면서 “솔직히 제가 두 얼굴의 이중인격자라면 이따위 얼굴을 내놓고 다니겠습니까?”라면서 스스로 자기 비하를 합니다.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유머로 풀어나갔습니다. 그래서 적대자들과도 함께 최고의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화내는 것이 먼저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화합의 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이를 위해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 겸손이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모두를 포용하시고 이로써 하나의 팀을 만드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님의 모습을 우리 역시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철저히 자기를 낮추는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오늘은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입니다. 성인께서는 자기 재산을 모두 팔아 초대 교회 공동체에 바치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선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철저히 주님의 말씀을 따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마태 10,7)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메시지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사상이나 철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명을 그대로 이어받아 수행하는 대리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돈, 여행 보따리, 여벌의 옷, 심지어 신발과 지팡이조차 지니지 말라고 하시지요. 이는 물질적 준비에 의존하지 말고, 선교 여정을 온전히 하느님의 섭리와 돌보심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마태 5,12)라고 말씀하십니다.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말씀을 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를 낮추는 사랑을 갖추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바르나바 사도는 이를 철저하게 지킵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가요? 주님의 말씀을 세상에 잘 전하고 있을까요? 자기를 낮추는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무신자들이 거부하는 하느님은 감사하게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왜곡된 하느님 상이다(카를 라너).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물이 고이면 썩고, 흐를 때 비로소 맑아집니다. 우리의 삶 또한 철저히 거저 받음에서 시작됩니다. 맑은 하늘도 거저이고, 시원한 바람도 거저이며, 빛나는 유월의 햇살도 거저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주신 선물입니다.

나눔은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길입니다. 하느님께 거저 받은 사랑을 세상에 거저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사랑받을 때 성장하고, 사랑을 나눌 때 성숙해집니다.

은총은 움켜쥘수록 줄어들고, 나눌수록 더욱 풍성해지는 신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은총은 소유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누라고 주어진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계산과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손해와 이익의 경계를 넘어서는 참된 자유로 이끄십니다.

받은 은총을 기억하는 사람은 감사하며 살고, 감사하는 사람은 기쁘게 나누며 살아갑니다.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참된 사명입니다. 참된 신앙은 거저 받은 하느님의 사랑을 거저 나누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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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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