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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6.1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6. 1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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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는 어린 아이를 보았어요. 저도 그랬겠지요.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나니 믿기보다 의심을 먼저 하게 됩니다.

 

어쩌면 믿음은 모든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손을 붙잡고 걸어갈지 아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어린아이처럼 다시 손을 내밀어 보고 싶어요.

 

2026년 6월 1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6월 1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6월 1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신명 7,6-11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를 선택하셨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6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시어 땅 위에 있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를 당신 소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7 주님께서 너희에게 마음을 주시고 너희를 선택하신 것은, 너희가 어느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니다. 사실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수가 가장 적다.

8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시어, 너희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시려고, 강한 손으로 너희를 이끌어 내셔서, 종살이하던 집,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내셨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참하느님이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는, 천대에 이르기까지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진실하신 하느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10 또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그를 멸망시키시어 직접 갚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 없이 직접 갚으신다.

11 그러므로 내가 오늘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명령하는 계명과 규정들과 법규들을 너희는 지켜야 한다.”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1요한 4,7-16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1,25-30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6월 12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예수 성심 대축일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43

✚ 강론 시작 19:03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믿음은 채우는 일이 아니라 비워 내는 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리십니다. 이 감사의 내용은 역설적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이들에게는 “이것을”(마태 11,25) 감추시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활 안에서 이미 시작된 하늘 나라, 곧 치유와 자비,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 세상을 맞이하는 것은 분명 낯선 일일 것입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11,25), 곧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새로운 세상을 읽어 내지 못합니다. 켜켜이 쌓아 온 삶의 방식과 그에 따라 이미 몸에 밴 자기만의 논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철부지들”(11,25)이 그 세상과 가깝습니다. 어린아이는 약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받아들이는 법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해가 아니라 신뢰가 먼저 일어나는 자리, 그곳이 철부지의 자리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11,27).

이는 단순히 권력 선언이 아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깊은 친교를 드러내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친교는 아들이 계시해 주려는 이에게만 열립니다. 25절에 나오는 ‘드러내다’는 그리스 말에서 ‘계시’의 동사형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계시하시고자 하는 대상은 “철부지들”입니다. 이들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서 밝히 드러나십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믿는 것은 더 많은 지식을 가졌다거나 더 많이 노력한다고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는다는 것은 관계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아는 것은, 나아가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으로 가능합니다. 내 눈의 들보를 들어내 사람을, 세상을, 그 고유함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무겁지만 고통스럽지 않은 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예수 성심 대축일에 우리는 오늘 복음을 듣습니다. 예수 성심이 곧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라는 뜻이고, 이 축일을 지내며 이 마음을 배우라는 뜻이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부담감을 많이 느끼고 갈수록 부담감을 못 견뎌 하며, 그래서 조그만 부담도 감수하고 감당하려고 하지 않는데 그것은 미성숙할수록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서 더욱 그러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성심은 답을 줍니다. 어떻게 부담스러운 짐들을 잘 져서 사랑을 이룰 수 있을지를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이 부담이 아니라 사랑이 될 수 있는 법을 알게 해주고, 일과 책임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될 수 있는 법을 알게 해줄 것입니다. 무엇이? 예수 성심이.

그렇다면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 어찌 그렇게 해주는지 이제 보겠습니다. 짐 지는 것이 부담이 되고 고통이 되는 것은 그 근본적인 이유가 우리가 싫어하고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임은 많은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결코, 부담스럽지 않고 전혀, 고통스럽지 않지요. 그렇다고 짐이 무겁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무겁지만 고통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똑같이 무거운 짐을 지는데도 좋아하는 사람의 짐을 질 때는 고통스럽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짐을 질 때는 더 고통스럽지 않고 심지어 기쁘기까지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무거운 것을 들어줬다는 것이 오히려 기쁘게 합니다.

예수 성심은 이런 마음입니다. 사랑하기에 무겁고 싫어하는 일 곧 십자가를 기꺼이 지려는 마음가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마음가짐에서 겸손과 온유한 마음도 나오고, 반대로 겸손한 마음에서 사랑의 마음과 온유한 마음도 나옵니다. 사랑할 때 ‘이것이 왜 내게’를 따지지 않듯이 겸손할 때도 따지지 않습니다.

하인에게는 주인의 짐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이 되듯 겸손한 사람은 ‘내가 왜?’를 생각지 않고 온유한 마음으로 주어진 짐을 집니다. 사랑의 마음만큼 기쁨은 없어도 거부감에서 오는 부담감이나 고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쁘게 짐을 지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에 이르러야 하고 이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겸손만 가지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매달려 당신 심장에서 피와 물을 흘리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으로 그리고 그중에서도 수난의 사랑(Passion)으로 그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수난의 사랑을 지닌 마음을 우리는 오늘 성심이라고 칭송하며 우리의 마음이 이 주님의 마음과 같아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

오늘은 ‘예수성심 대축일’이요, ‘사제성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곧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사제들이 ‘예수성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성화를 촉구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짧지만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루가복음>의 병렬 구문에 따르면,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루카 10,21) 노래하는 예수님의 ‘마니피캇’(mangificat)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 장면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바치는 감사와 찬양의 노래요, 뒤 장면은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이들에게 주는 ‘쉼’(안식)으로 초대입니다.

오늘은 이 <복음>을 ‘예수성심’과 관련하여 알아들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아버지”(마태 11,25)를 우주의 주권자시라는 고백하면서, ‘아들의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니 ‘예수성심’은 무엇보다도 우선 ‘아들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 보이시는”(마태 11,25) 아버지의 주권적인 배려에 “찬양과 감사”의 감격적인 고백을 드립니다.

또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께서 원하신 뜻이었습니다.”(마태 11,26)라고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동의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성원합니다.

그리고 아들로서, 아버지와 본질적인 동질성 안에서 인격적인 일치를 이루고 있음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마태 11,27)

그래서 아버지께서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듯이, 당신께서도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에게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1,28)하시며 구원과 안식으로의 초대합니다. 이는 ‘예수성심’이 ‘아버지를 닮은 마음’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바로 “온유하고 겸손하신 마음”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마음”이란 그저 화를 내지 않고 온순하다는 뜻이라기보다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 순종하는 마음이요, 아버지의 ‘종’으로서 아버지의 자녀들을 위해 고난을 당하며 그들의 아픔을 아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라 하시면서 ‘멍에’를 함께 메시는 ‘스승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멍에를 멘다.”는 것은 당시의 유대인 사회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를 말해줄 뿐만 아니라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멍에’가 혼자가 아니라 항상 짝을 이루어 두 노역자가 함께 메게 되어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멍에’를 함께 메어주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과 함께 지는 ‘멍에’에 올려 진 짐은 가볍습니다(마태 11,27).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사제들은 바로 그렇게 신자들의 ‘멍에’를 함께 지고 가는 이들일 것입니다. 바로 착한 목자의 마음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평화를 주십니다.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 11,28).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 마침내는 당신의 심장을 내어주셨습니다.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들의 짐을 짊어지시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셨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이사 53,5)

바로 이 지고한 사랑의 마음이 ‘예수성심’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당신 심장에 거부와 배신의 창을 꼬았건만 당신은 오히려 생명의 심장을 열어 주셨고, 우리는 당신에게 고통과 죄를 쏟아 부었건만 당신은 우리에게 은총의 피와 생명의 물을 쏟으셨습니다. 그 지극한 사랑으로 당신 심장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우리의 불신과 불순명으로 피 흘리셨고, 저희는 당신 사랑의 심장으로 새 살이 돋았습니다. 저희 안에 당신의 피가 흐르게 하고, 은혜로운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오니, 오 사랑하올 예수 성심이여! 당신의 피를 흘리는 능력 외에는, 아무 능력도 없게 하소서. 당신 사랑의 피를 흘리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을 모르게 하소서. 오로지 사랑만을 할 줄 알게 하시고, 임의 사랑, 임의 성심만을 알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1장 26절
아버지의 선하신 뜻

 

그렇습니다. 주님!

오늘도 미처 알아듣지도 못한 채 당신의 ‘선하신 뜻’을 부둥켜안고 살아갑니다.

그 드러내신 사랑에서 당신의 얼굴을 뵈오며 그 감추신 신비에서 당신 심장의 소리를 듣게 하소서.

그 모든 것 안에서 믿음과 사랑이 자라게 하시고 그 안에서 신비를 살게 하소서.

당신의 선하신 뜻 그 안에 제가 매달려 있으니 당신 뜻에 응답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중학생 때, 부모님께서는 전축을 사 오셨습니다. 전축은 ‘전기축음기(電氣蓄音機)’의 줄임말로, LP(레코드판)를 재생하는 턴테이블, 라디오, 앰프, 스피커 등이 하나로 통합된 오디오 시스템을 가리키는 옛 표현입니다. 음악을 듣기 위해 엘피판을 턴테이블에 올려야만 했습니다. A면을 다 들으면 B면으로 뒤집어서 세심한 손길로 바늘을 얹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고, 또 내구성이 약하고 먼지에 대한 취약함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CD(compact disc)가 등장했습니다. 간편한 데다 음질도 깨끗하고 선명했습니다. 이 CD가 음악시장을 완전히 평정할 줄 알았습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CD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음원의 등장과 인터넷을 이용한 음원 스트리밍으로 전체 음반 시장이 급격한 속도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오히려 예전의 엘피판이 자연스럽고 풍부한 소리를 낸다며 더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님만이 또 주님의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히 주님께서는 사랑 그 자체인 분이시기에 그분께 집중함으로 인해 사랑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 바로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또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 직무를 더 훌륭히 수행하는 가운데 완전한 성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사제 성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9.30)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세상을 윽박지르는 힘이 아니라, 상처받는 이를 어루만지는 온유함과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는 겸손이라고 하시지요. 그러면서 ‘멍에’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지역의 농경 문화에서 ‘멍에’는 보통 두 마리의 소가 함께 끌었습니다. 어린 소가 멍에 메는 법을 배울 때, 힘센 어미 소와 한 멍에를 매게 하여 어미 소가 사실상 모든 짐을 감당하게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내 멍에를 메라’는 것은 새로운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한 멍에를 매시고 내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시겠다는 사랑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그 멍에는 편하고 가볍습니다.

삶 안에서 자기의 힘만으로 결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때 거룩하신 예수님 성심 안에서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편하고 내 짐은 분명 가벼워집니다. 특별히 사제 성화의 날인 오늘, 사제직이라는 멍에도 인간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에 무척 무겁습니다. 그래서 사제들의 성화를 위한 여러분의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명언

고통을 동정하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신과 같은 일입니다(호러스 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예수 성심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 살아 움직이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지혜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가장 복음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불안과 갈등 속에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깊은 갈증에 대한 참된 해답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마음을 지니시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곧 하느님의 마음이며, 예수님의 사랑은 곧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 성심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언제나 열려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예수 성심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 용서와 사랑을 만납니다. 사제 성화의 원천 또한 바로 예수 성심에 있습니다. 예수 성심은 사제의 마음이 머물러야 할 자리이며, 사목의 출발점이자 성화의 샘입니다.

사제 성화는 신앙 공동체를 살리는 힘이며, 교회 쇄신은 무엇보다도 사제의 성화에서 시작됩니다. 온유와 겸손은 만물을 살리는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유함으로 사람들을 품으셨고, 겸손함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또한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셨고, 십자가는 그 사랑이 이룬 완성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사제는 예수님의 마음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사제 성화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듣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삶입니다. 예수 성심을 닮아 갈수록 교회는 새로워지고, 세상은 더욱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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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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