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바로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있어요.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왜 지금인지 알 수 없는 순간들도 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고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에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6월 13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6월 13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이사 61,9-11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내 백성의
9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 내 백성의 자손은 겨레들 가운데에 널리 알려져 그들을 보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주님께 복 받은 종족임을 알게 되리라.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오늘 복음 성경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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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2,41-51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6월 13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모 성심 기념일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18
✚ 강론 시작 07:29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예수님은 평범한 하루 속에 숨어 계신다.
해마다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성가정의 발걸음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동사 “가곤 하였다.”(루카 2,41)가 암시하듯 되풀이되는 경건한 습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이 익숙한 리듬은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됩니다.
유다 전통에서 ‘성인의 책임’을 묻는 나이에 가까운 열두 살에 예수님께서는 유다 전통의 익숙함을 끊고 성전에 머물기를 ‘선택’하십니다. 이는 부모의 실수라기보다는, 성년의 문턱에서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시고자 하신 예수님의 결단이지요.
부모가 예수님을 찾아 헤맨 ‘사흘’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이의 시간인 ‘사흘’을 미리 보여 줍니다. 성전의 율법 교사들 사이에 앉아 계신 소년 예수님의 모습은 뒷날 수난 직전 성전에서 펼쳐질 율법 교사들과의 논쟁을 미리 보여 주며, 주님 수난의 큰 슬픔을 마주하게 될 독자들을 미리 준비시키는 듯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 슬픔이나 고통 너머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 이 질문은 애타게 아들을 찾던 부모에게는 차갑지만, 믿는 모든 이에게는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혈연을 넘어 신성한 하느님의 자리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선언하십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를 마음속에 간직함으로써 신앙의 원형을 보여 줍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그 ‘사흘’의 시간을 통하여 저만치 멀리 계신 하느님께서 우리 삶 한가운데로 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는지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나자렛으로 내려가시어 부모에게 순종하시며 일상을 보내십니다. 가장 신성한 순간과 가장 평범한 순종이 교차하는 지점, 그곳이 바로 우리의 삶이고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하느님 현존의 자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간직하는 마음
우리 교회는 주님의 거룩한 마음을 기리고 난 다음 날에 성모님의 깨끗한 마음도 기리는데 오늘 저는 깨끗하심에 대해 다른 때와 조금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통 깨끗한 마음이라고 하면 마음 안에 지저분한 것들, 예를 들면 욕심 같은 것이 깨끗이 치워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달라질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이렇게 얘기해도 충분하겠지만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복음의 다른 곳에서 주님께서 이런 비유를 드신 적이 있지요. 어느 집에 죽치고 있던 악령이 떠났다 다시 돌아오니 집이 깨끗이 치워진 채로 비어있었고 그래서 그 악령이 다른 악령들을 더 많이 데리고 오자 그 비어있던 집은 복마전으로 바뀐다는 얘깁니다.
이 비유에서 주님께서 명시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만 악령이 나가고 깨끗이 비어졌다면 성령을 모셔 들임으로써 성전이 되어야 하는데 더 많은 악령이 들끓는 복마전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도 같은 뜻일 것입니다. 마음 안에 잡동사니나 티가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자나 깨나 하느님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마리아가 자나 깨나 하느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은 성령의 정배였기 때문이고 그래서 삼종 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오니 성령으로 잉태하셨도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말을 지금 우리는 하느님 말씀이라고 믿고, 그 말의 뜻이 뭔지도 알지만, 당시의 마리아는 믿기도 알아듣기도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그 말을 바로 마음에서 밀어내지 않았고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아들 예수의 알아들을 수 없는 행동과 말을 마음 안에 간직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깨끗한 마음일 뿐 아니라 간직하는 마음입니다. 사실 다른 수많은 말을 비어내고 하느님 말씀만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들은 말씀을 마음속에 계속 잘 간직하여 완성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도 이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는 순간 깨끗한 마음으로 있다가 냉큼 모셔 들이는 것도 본받아야 하지만 들은 말씀을 영원히 간직하는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순간의 선택이 영원히 가야 하기에, 다시 말해서 먹었다가 바로 뱉어내는 것이 아니어야 하기에 우리에게는 순간도 중요하지만, ‘영원히’가 더 중요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믿음으로 가득 찬 마음
우리는 어제 ‘예수님의 성심’을 기린 데 이어,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 성심’을 기립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 성심”은 두 가지 의미로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소명’과 관련하여, 성모님께서는 특별한 은총과 특권으로 티 없이 깨끗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교회헌장>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온전히 거룩하신 분, 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신 분”(56항)
교황 비오 9세께서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원죄 없으신 잉태).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잉태되시는 첫 순간부터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권으로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
또한, 이를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493항).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일생 동안 어떤 죄도 범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믿음’과 관련하여, 성모님께서는 티 없이 깨끗하십니다. 곧 성모님께서는 ‘믿음’에 있어서 한 점 의혹이 없는 갈림이 없는 마음, 온전한 마음으로 티 없이 깨끗하신 성심을 지니셨습니다.
이를 <교회 헌장>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교회 헌장 56항 참조).
‘성모님께서는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당신 아드님의 인격과 활동에도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치셨습니다.’
이처럼, 성모님의 마음 안에는 ‘믿음’이 가득 차서 희망을 노래하셨습니다. 언제나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신명나셨습니다. 언제나 주 하느님께 대한 갈망이 가득 차 있었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희망하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하느님 뜻’ 안에 가두시고, 말씀이 당신 안에서 이루어지기만을 고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비록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할 때마저도,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습니다.”(루가 2,51). 이토록, 믿음을 품으셨습니다. 말씀을 품고 간직하셨습니다. 가슴 속 품은 하느님의 뜻에서 희망을 길러 올리셨습니다. 참으로, 믿음과 희망에 있어서 티 없이 깨끗하신 성심이셨습니다.
우리의 마음 역시 성모님의 ‘티 없으신 성심’으로 채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품으셨던 그 주물의 틀’에 우리가 가두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오로지 말씀께 희망을 둘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간직하며, 신명나기를 바랍니다.
티 없으신 성모성심이여! 믿으셨으니 참으로 복되십니다.
당신께서는 오로지 당신 아드님께만 믿음과 희망을 두셨듯이, 저희 또한 오로지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만 믿음과 희망을 두게 하소서.
당신 아들 예수님을 품었던 그 주물의 틀에 저를 받아들이시어 저희 또한 당신 아들의 성심 안에 흠뻑 젖어들게 하소서.
그 사랑의 성심으로 제 형제들을 가슴에 끌어안을 수 있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복음 2장 51절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티 없으신 성모성심이여!
믿으셨으니 참으로 복되십니다.
당신께서 오로지 당신 아드님께만 믿음과 희망을 두셨듯이, 저희도 오로지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만 믿음과 희망을 두게 하소서.
오 어머니시여, 당신 아들 예수님을 품었던 그 주물의 틀에 저희를 받아들이시어 저희도 당신 아들의 성심 안에 흠뻑 젖어들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인간은 평생 자기 뇌의 10%도 쓰지 못한다.”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맞는 말일까요? 학창 시절에 선생님께서 이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인슈타인은 자기 뇌의 15%를 써서 위대한 물리학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뇌의 1%만 더 써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지요.
아마 지금도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알츠하이머의 경우 손상하는 뇌가 10~20%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뇌의 부분이 80~90%나 되는데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것일까요?
사실 모든 사람은 자기 뇌의 100%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만약 뇌의 10% 정도만 사용하게 된다면 생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말은 잘못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잠재력입니다. 자기가 가진 잠재력의 10%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뇌를 100% 활용하고 있습니다.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잠재력은 뇌의 활동량과 상관없습니다.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잠재력은 얼마나 쓰고 있을까요? 한 10%는 쓰고 있을까요?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뜻을 실천하는 것이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잠재력일 것입니다.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고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철저히 동참하신 성모님의 순결하고 거룩한 마음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발견합니다.
소년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다가 사흘 만에 다시 찾습니다. 성모님께서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8)라고 말씀하시자, 예수님께서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부모보다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그분의 뜻이 우선임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해도 순명하십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라고 복음은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성모님처럼 이해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 앞에서도 하느님을 애타게 찾고, 그분의 신비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며, 삶의 모든 사건을 기도로 마음속에 간직하는 거룩한 마음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완벽한 협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슬픔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며, 행복은 하느님을 향해 열린 시선입니다. 회개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옮기는 일, 눈길을 살짝 들어 올리는 일이면 충분합니다(성 카를로 아쿠티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성모 성심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간직하는 믿음의 자리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마음이 나뉘지 않은 오로지 깨끗한 마음입니다. 참된 지혜는 깨끗한 마음 안에 깊이 간직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성모 성심을 공경하는 이유는 성모님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닮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깊이 품고 세상에 전해 준 마음이 바로 성모 성심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성모 성심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을 향해 온전히 열려 있는 인간 마음의 완성된 모습입니다. 그 어떤 순간에도 절망에 머물지 않고 고통을 사랑과 희망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원망보다 감사로, 조급함보다 기다림으로, 집착보다 내어맡김으로 살아가는 삶어 성모 성심의 삶입니다.
사랑으로 실천하는 맑은 마음이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마음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이나 욕심을 결코 앞세우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함으로써 가장 큰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으로 상처를 품으시는 하느님으로 가득 찬 마음이십니다. 하느님 안에 머무는 마음에서 모든 관계는 새로워집니다. 성모 성심은 하느님의 말씀을 익혀 가는 믿음의 밭입니다. 성모 성심과 함께 신뢰와 희망의 길을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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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