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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6. 15.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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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천 걸음"에 마음이 붙들려 있어요.

 

누군가 저를 힘들게 하면 저는 금세 마음속에서 선을 긋습니다. 저 사람은 이렇고, 나는 옳다고 여기며 이미 결론 지어 버릴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이천 걸음은 단순히 더 많이 희생하는 거리가 아니라, 다 안다고 생각하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겸손의 거리처럼 느껴집니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마음,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마음,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을 배우며 사랑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6월 15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6월 15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6월 15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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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열왕 21,1ㄴ-16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그때에

1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 곁에 있었다.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밭을 나에게 넘겨주게. 그 포도밭이 나의 궁전 곁에 있으니, 그것을 내 정원으로 삼았으면 하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밭을 주지.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돈으로 셈하여 줄 수도 있네.”

3 그러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4 아합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자기에게, “제 조상님들의 상속 재산을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한 말에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궁전으로 돌아갔다. 아합은 자리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을 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5 그의 아내 이제벨이 들어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속이 상하시어 음식조차 들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6 임금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실은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에게 ‘그대의 포도밭을 돈을 받고 주게. 원한다면 그 포도밭 대신 다른 포도밭을 줄 수도 있네.’ 하였소. 그런데 그자가 ‘저는 포도밭을 임금님께 넘겨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는 것이오.”

7 그러자 그의 아내 이제벨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일어나 음식을 드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제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당신께 넘겨드리겠습니다.”

8 그 여자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그의 인장으로 봉인하고, 그 편지를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9 이제벨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시오.

10 그런 다음, 불량배 두 사람을 그 맞은쪽에 앉히고 나봇에게, ‘너는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 하며 그를 고발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시오.”

11 그 성읍 사람들, 곧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은 이제벨이 보낸 전갈 그대로, 그 여자가 편지에 써 보낸 그대로 하였다.

12 그들이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자,

13 불량배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맞은쪽에 앉았다. 불량배들은 나봇을 두고 백성에게, “나봇은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습니다.” 하고 말하며 그를 고발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인 다음,

14 이제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고 전하였다.

15 이제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 임금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돈을 받고 넘겨주기를 거절하던 그 포도밭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16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마태5,38-42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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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6월 15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09:41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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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상처를 돌려주지 않는 용기

예수님께서는 이른바 ‘동태 복수법’을 다시 이야기하십니다. 이 율법은 받은 상처를 똑같이 되돌려주려는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복수가 점점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울타리였지요. 범죄와 형벌 사이의 균형을 지키고, 폭력이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최소한의 정의였습니다.

법은 대체로 잘못한 만큼 벌을 받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나아가 법정의 논리를 넘어, 인간 마음의 깊은 자리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

이는 악에 저항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악인’은 일상에서 우리를 모욕하고 상처 주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굳이 “오른뺨”(5,39)을 이야기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폭행이 아니라 남을 모욕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오른손잡이가 상대의 오른뺨을 때리는 것은 손등으로 치는 것으로, 당시 노예나 하인을 향한 모욕과 하대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순간에도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5,39)라고 하십니다.

이는 굴욕을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라, 모욕이 우리 안에서 증오가 되어 커지지 못하게 하라는 초대입니다. 모욕을 사랑이나 선의로 꺾어 버리겠다는 결심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라는 말씀도, 천 걸음을 가자는 이에게 이천 걸음을 가 주라는 말씀도, 굴복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와 선의를 끊임없이 드러내라는 말씀입니다. 억압의 한 걸음을, 사랑의 두 걸음으로 지워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은 그러합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용서받고 위로받으며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우리 신앙인은 그런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처럼 삽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 대인(大人)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오늘 주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악인이란 어떤 악인인지 맞선다는 것도 무슨 뜻인지 정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서 말하는 악인이 내게 악한 짓을 하는 악인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인이요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악한 짓을 하는 악인이라면 그런 악인도 맞서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뜻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면 주님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고 하신 다음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네 왼뺨마저 돌려대라고 하셨지, 다른 사람의 뺨을 칠 때 내버려 두라고 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신 것도 남이 아니라 내게 재판을 거는 사람에게, 내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갑절로 해주라고 하신 것이지요. 이것은 보통의 우리와 다른 태도입니다.

우리는 보통 남에게 악한 짓을 할 때는 눈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내게 악한 짓을 하면 길길이 날뛰며 맞대응하는데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악행은 끔찍한 짓인데도 내 일이 아니니까 모르는 체하고 지나가면서 내게 한 것은 악행도 아니고 그저 내가 싫어하는 행위를 할 뿐인데도 우리는 그 사람을 싫어하고, 싫어하기에 나쁜 놈이라고 하고 악인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그러므로 내게 악한 짓을 하거나 내가 악한 짓이라고 생각하는 짓을 할 때 맞서지 말라는 것은 그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라는 것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을 정도로 대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대인(大人)은 사랑의 대인입니다. 싫은 것도 사랑하는 대인이요, 그러니 싫은 사람도 사랑하는 대인이요, 정말로 악행을 내게 저질러도 사랑하는 대인이요, 악행도 보통 악행이 아니라 보통 사람은 그로 인해 불행케 되는, 그 정도의 악행을 내게 저질러도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랑하는 대인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게 대한 악행에 대해서는 보통 사람이 아니고, 악인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는 보통 사람 이상으로 대인입니다. 엄마는 자식과 맞서지 않고, 엄마의 사랑은 자식의 어떤 악행도 능가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는 것이요, 적어도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지 말라는 것임을 깨닫고 실천하려는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악을 이기는 현명한 방법은 오히려 선을 행하는 일이다.

오늘 <복음>은 다섯 번째의 ‘새로운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구약의 복수동태법의 율법에 대하여, ‘새로운 의로움’을 제시하십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

이는 ‘악인에게 무관심 하라’, ‘악인을 피하라’, ‘악인에게 대처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곧 악에 대한 무저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단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도피요, 자기기만이요, 비겁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맞서다”는 말의 원어의 뜻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든,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응수이든, 일일이 ‘맞대응’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 ‘맞서지 말라’라기보다 ‘맞대응하지 말라’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곧 ‘똑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하지 말라’, ‘폭력으로 맞대응하지 말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악과 ‘맞대응’ 하다보면, 자신도 악에 물들어버리기 일수 입니다. 그렇지만, 피한다고 해서 치유되거나 보복심이 사라지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억울하고 원망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악을 진정한 방법으로 맞서는 일, 곧 하느님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악을 진정으로 맞서는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악을 도피하거나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사실, 악을 악으로 맞서는 것은 악을 이기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불을 불로 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불은 불이 아니라 물로 꺼야하듯, 악을 이기는 현명한 방법은 오히려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사실, ‘오른 뺨을 치거든 다른 뺨을 돌려 대는’(마태 5,39) 일은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복수심을 몰아내는 일이 됩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고 선을 행하는 것’이 진정 이기게 되는 길입니다. ‘사랑’이 악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진정한 자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이는 악이나 악인에게 맞서기보다, 악 가운데서도 ‘주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신뢰를 두고 의탁하라는 말씀이요, 악을 오히려 선의 통로로 대처하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비폭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폭력에 사랑을 담으라.’는 말씀입니다. 곧 ‘사랑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말씀하십니다.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40-42).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5장 39절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주님! 맞서지 않게 하소서.

대적하거나 앙갚음하지 않게 하소서.

한쪽 뺨을 치면, 다른 쪽 뺨을 돌려 대게 하소서.

당신께서는 처벌할 권한이 아니라 사랑할 권한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고 선을 행하는 것이 이기는 길인 까닭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행복해 보이려고 살다가 행복을 잃고 있지는 않습니까?

과거는 학벌 위주의 사회였습니다. 서울대 나온 판검사, 의사, 대학교수가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직업, 지위, 성실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졌습니다. 그보다 서울의 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이 성공의 척도이고 명함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명문대를 나오고 대기업을 다니며 전문직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어느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화에서 부의 열등감은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보이는가?’

다수가 인정해 주어야 안심합니다. 이렇게 다수에 신경 쓰니 불안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남의 눈을 신경 써서는 안 됩니다. 특히 세상의 척도를 진실로 믿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보다 주님의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에는 터무니없이 미치지 않지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준을 따르게 되면,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서 주님께서 워낙 사랑을 강조하셨기 때문에, 세상의 악에 대해 무조건적인 참음과 굴종을 요구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니냐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약자의 비굴한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는 폭력으로, 억압에는 분노로 대응하는 세상의 공식을 깨뜨리시며 자신 있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39)라고 하십니다. 오른손잡이가 마주 선 사람의 ‘오른뺨’을 치려면 손바닥이 아닌 손등으로 때려야 합니다. 이는 힘 있는 자가 약자에게 가하는 모욕과 멸시였습니다. 이때 ‘다른 뺨’을 돌려 대는 것은 도망가거나 움츠러드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나는 네가 함부로 모욕할 수 없다. 칠 테면 손바닥으로 제대로 쳐라.’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당당히 주장하는 능동적 행위입니다.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 5,40) 역시 당당한 모습을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내주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알몸이 되고 맙니다. 가난한 이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채권자의 탐욕과 부조리한 법정의 민낯을 벌거벗겨 고발하는 것입니다.

“천 걸음을 가지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마태 5,41)

이 구절은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 상황이 배경입니다. 로마 군인은 유다인에게 무거운 짐을 천 걸음 동안 강제로 지고 가게 할 수 있는 징발권이 있었습니다. 억지로 짐을 지고 가면서 속으로 분노를 삭이는 대신, 자발적으로 이천 걸음을 가 주라는 것입니다. 징발의 한계치를 넘어서서 짐을 져줌으로써, 피해자는 힘없는 노예의 자리에서 벗어나 상황의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약자의 비굴한 처세술이 아닌, 능동적인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됩니다. 세상 기준이 아닌 주님 기준으로 힘차게 세상을 살게 됩니다. 진정한 행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과거를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일수록 미래도 멀리 볼 수 있다(윈스턴 처칠).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새벽은 밤과 싸우지 않고도 어둠을 물러가게 합니다. 어둠과 싸우는 삶이기보다, 먼저 빛이 되어가는 삶입니다. 선으로 악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악의 방식으로 악을 이기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러한 삶의 모범입니다. 악에 악으로 대응하지 않으셨고, 미움에 미움으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으로 악을 이기셨습니다. 참된 사랑은 악의 뿌리까지 변화시킵니다. 지독한 악의 늪인 분노와 복수의 논리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악순환의 끈을 끊는 것이 중요합니다. 악순환을 멈추게 하는 사람이 복음을 실천하는 복음의 사람입니다. 악인은 우리 마음을 비추어 주는 좋은 거울입니다. 악에 맞서는 증오의 방식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조차 미움 대신 용서를 선택하셨습니다.

악순환을 끊고 새로운 길을 여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악에 맞서지 않는 사랑,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진정한 힘입니다. 악을 이기는 그 힘을 진정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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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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