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무언가를 얻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마음을 하느님께 내어 맡기는 시간임을 배웁니다. 기도할 때면 여전히 이런저런 요구가 불쑥 튀어나오곤 하지만 주님의 기도는 제 바람보다 먼저 하느님의 뜻을 바라보게 해요. 오늘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2026년 6월 18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6월 18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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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집회 48,1-14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2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3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4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5 당신은 죽은 자를 죽음에서 일으키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말씀에 따라 그를 저승에서 건져 냈습니다.
6 당신은 여러 임금들을 멸망으로 몰아넣고 명사들도 침상에서 멸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7 당신은 시나이 산에서 꾸지람을 듣고 호렙 산에서 징벌의 판결을 들었습니다.
8 당신은 임금들에게 기름을 부어 복수하게 하고 예언자들에게도 기름을 부어 당신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9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12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엘리사는 일생 동안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13 그에게는 어떤 일도 어렵지 않았으며 잠든 후에도 그의 주검은 예언을 하였다.
14 살아생전에 엘리사는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6,7-15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6월 18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3:45
✚ 복음 08:26
✚ 강론 10:14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이미 알고 계신다는 위로
마태오 복음서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6,8)라는 선언에 이어 주님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그러니 이는 불안이나 부족함을 달래고 채우려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의 선하심을 바탕으로 한 신뢰의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6,9)는 하느님의 초월성과 아버지로서 친밀함을 동시에 붙드는 고백이자 외침입니다. 이러한 친밀함은 개인에서 시작되지만 “저희”라는 복수형 표현 안에서 공동체로 확장됩니다.
그다음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 중심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6,9)는 하느님 스스로 당신 이름을 거룩하게 드러내시는 종말론적 장면을 떠올리게 하면서도(에제 36,23 참조), 백성이 현재의 삶에서 그분의 이름을 존중하는 자세를 포함합니다(이사 29,23 참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마태 6,10)는 구약의 야훼 통치 사상을 재해석한 종말론적 청원으로, 이미 예수님의 공생활 안에서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가리킵니다. “아버지의 뜻이 …… 이루어지게 하소서.”(6,10)는 순종의 윤리로, 앞선 두 청원을 더욱 간절히 요청하는 백성의 호소가 됩니다.
이어지는 청원들은 인간의 삶을 다룹니다. “일용할 양식”(6,11)은 모호한 내일의 잔치가 아닌, 오늘 하루 생존에 필요한 것을 가리킵니다. 잘못의 용서는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조건이 됨을 강조합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6,13)는 삶의 시련에 주저앉지 않게 해 달라는 호소입니다. 그리하여 악에서 구해 달라는 마지막 청원이 이어지지요.
결국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의 주권과 자비 앞에 인간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조용히 봉헌하며 내맡기는 기도가 됩니다. 우리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주님의 기도가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아버지의 나라가 오고, 뜻이 이루어지는 나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번 주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 독서로 우리는 치프리아노 성인의 ‘주님의 기도’ 묵상을 내내 읽습니다. 어제 성인은 이렇게 주님의 기도 한 부분을 묵상하고 나눕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시기를 청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다스리지 아니하시는 때가 있습니까? 과거에 항상 있었고 또 미래에도 중단이 없으실 하느님의 나라에 시작이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이 말씀처럼 하느님 나라에 시작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늘 있었고 나는 늘 하느님 나라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내 나라가 있다고 고집할 때부터 나는 내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내 나라가 없으면 하느님 나라가 제 안에서 자동 시작되는 겁니다. 내 나라가 없으면 나는 자동 하느님 나라에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 나라가 있는 것이 좋을 것만 같지만 내 나라가 있으면 나는 하느님 나라에 있으면서도 내 나라에 갇히는 꼴이 됩니다. 이는 은둔형 외톨이가 자기 방에 갇히는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한집에 있으면서도 그는 자기 방의 문을 닫고 거기에 갇힙니다. 종종 Privacy(사적 공간)를 과하게 고집하면 이렇게 되곤 하지요. 허약하기 이를 데 없는 자기 자유가 침범당할까 너무 두려워하여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다가 오히려 자기가 그 안에 갇히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방과 자기 세계에 갇히는 것이 하느님 나라가 내게 오심을 막는 것이기에 주님께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실 때 문을 여는 것이 이미 와 계신 하느님 나라를 내 안에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치프리아노 성인은 아버지의 뜻을 이룸에 관해서도 얘기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그것입니다. 즉 사람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의 겸손, 행동에 있어서의 정의, 활동에 있어서의 자비심,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받는 해를 잘 참아 내는 것, 형제들과 화목을 유지하는 것, 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것, 그리스도께서 우리보다 더 사랑하신 것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는 것, 이 모든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하느님의 계명을 실천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행하신 것이기도 하지만 이 말은 그리스도의 뜻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고 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잘 따르기만 하면 우리도 우리의 뜻이 곧 하느님의 뜻이 되는 경지에 도달할 터인데, 프란치스코는 말년에 이렇게 되도록 다음과 같이 형제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가련한 저희로 하여금 당신이 원하신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바로 당신 때문에 실천케 하시고,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늘 원하게 하시어 내적으로 깨끗해지고 내적으로 빛을 받고 성령의 불에 타올라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게 하소서.”
이 경지를 얘기할 때 저는 공자의 그 유명한 나이론을 얘기합니다. 공자는 나이 서른에 입지, 마흔에 불혹, 오십에 지천명, 육십에 이순을 얘기한 다음 칠십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를 얘기합니다.
나이 칠십이 되면 욕심대로 해도 법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가 돼야 한다는 말인데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으로 바꿔 말하면 내가 원하는 것이 하느님이 원하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내가 원하는 경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 올라 있는가?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경지로 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주님의 기도를 묵상하며 자문하는 오늘 우리입니다./p>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올바르게 사는 것은 우리의 올바른 기도에 달려 있다.
‘기도’는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를 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줍니다. 곧 그래서 그의 기도를 보면, 그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고, 무엇을 목표로 살고 있으며,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도를 “욕망의 해석자”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 기도에 담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기도 안에는 그 사람이 담겨있다.”
그러니, “주님의 기도”에는 예수님이 담겨 있습니다. 곧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당신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담기기를 바라시는 것들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가르치시려는 모든 말씀이 이 기도문 안에 수정처럼 농축되어 있습니다. 비록 이 기도는 짧지만,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근본과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참으로 복음 전체를 요약한 것이다.”
사실, “이 기도”는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준 기도’로서, ‘예수님의 기도’라는 사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릴 때,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께 기도드리게 됩니다.
“주님의 기도”(Oratio Domini)라는 전통적인 표현에 대해서 [가톨릭교회교리서]에서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전해 주신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라는 뜻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765)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기도의 배후에는 언제나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함께 동행 하십니다.
이 기도에 대해서, 중세시대로부터 이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십계명’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며,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원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주님의 기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가장 완전한 기도이다.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올바르게 바랄 수 있는 것을 모두 청할 뿐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청해야 할 것을 순서대로 청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기도는 청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정서까지도 형성시켜준다.”
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드림으로써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를 알고, 욕망을 훈련시켜 하느님의 목적과 조화를 향하도록 변화한다.”
사실, 올바르게 사는 것은 우리의 올바른 기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를 올바르게 바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6장 8절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아빠, 아버지!
무엇을 청해야 할지를 알게 하소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소서.
진정 바라야 할 것을 바라게 하소서.
알아야 할 바를 알게 하시고, 사랑해야 할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서나 무슨 일에서나 아버지를 향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주님의 기도로 모든 것을 얻어내는 방법
찬미 예수님! 하루도 또 잘 지내셨죠? 오늘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함께 나누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시면서 아주 뼈 있는 경고를 덧붙이시죠.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기도 생활은 어떻습니까? 솔직히 말해, 우리는 하느님 앞에 끊임없이 청구서만 들이밀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 애 대학 붙게 해주세요. 이번 사업 꼭 대박 나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마치 자판기에 동전을 넣듯 기도를 기계적으로 돌리고, 주님의 기도를 주문 외우듯 수백 번 반복합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내 편의와 목적을 위해 기도의 본질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왜곡하는 행위입니다. 하느님을 내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 지니로 전락시키는 무서운 교만이죠.
누군가에게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마음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된 『이솝 우화』 중에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 놓고 자기가 먹기 편한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내옵니다. 두루미는 긴 부리 때문에 한 입도 먹지 못하죠. 여우는 속으로 '내가 이렇게 훌륭한 식사를 대접했는데 왜 안 먹지?' 하고 섭섭해합니다. 상대를 향한 묵상이 빠진 일방적인 베풂은 이토록 폭력적입니다.
이 우화가 현실로 나타난 것을 텔레비전 프로그램 '개는 훌륭하다' (2019)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알래스칸 말라뮤트 샐리라는 덩치 큰 개의 이야기입니다. 이 샐리는 주인이 손만 대면 이빨을 드러내고 물어뜯으려 하며, 밤낮없이 늑대처럼 하울링을 해대서 이웃들의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억울해 죽습니다. 자기는 샐리에게 사람이 살 만큼 훌륭한 집을 지어주고, 손수 고기를 입에 넣어주고, 매일 예쁘게 털을 빗겨주며 지극정성으로 사랑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강형욱 훈련사가 와서 내린 진단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보호자님이 문제입니다." 샐리는 어릴 적 파양된 상처와 의지하던 동료 개를 잃은 극심한 외로움과 트라우마가 있었습니다. 샐리가 진짜 원했던 것은 주인이 그저 조용히 자기 곁에 머물러 주는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자기가 해주고 싶은 방식대로 털을 빗기고, 억지로 밥을 먹이려 들었습니다. 샐리에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끔찍한 괴롭힘이었던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서 얻어내려면, 내 방식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이 어떤지 먼저 읽어야 합니다.
이철환 작가의 글 중에 눈만 오면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며칠씩 내려오지 않는 판다 이야기가 있습니다. 숲속 동물들은 모두 판다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하지만 오직 토끼만이 그 이유를 알고 있었죠. "판다의 새끼들이 사냥꾼에게 잡혀갔어. 눈밭에 찍힌 자기 발자국을 사냥꾼이 따라왔기 때문이지. 판다는 눈 위에 자기 발자국이 찍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두려운 거야." 토끼는 어떻게 판다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판다의 입장이 되어 그 아픔을 깊이 묵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내 소원을 뜯어내기 위한 주문이 아닙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이 지금 어디로 향해 있는지,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어 하시는지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먼저 청하는 묵상입니다.
구약 성경 『사무엘기 상권』 13장을 보면, 기도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었다가 파국을 맞은 사울 임금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필리스티아 대군이 쳐들어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포에 질려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다급해진 사울 임금은 사무엘 예언자가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가 직접 나서서 하느님께 번제물을 바쳐버립니다.
사울은 하느님의 뜻이나 그분이 정하신 율법의 질서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당장 전쟁에서 이기게 해 줄 하느님의 권능이라는 결과물만 뜯어내고 싶었죠. 하느님의 뜻을 묻는 묵상은 생략한 채 자기 소원부터 들이민 결과가 어땠습니까? 사무엘은 사울에게 "임금님은 어리석은 짓을 하셨소.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제 임금님의 왕권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할 것이오."라고 선언합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읽지 않고 내 뜻만 강요하는 기도는 사울의 번제물처럼 결국 하느님과의 단절을 가져올 뿐입니다.
반대로 하느님의 뜻에 내 마음을 완전히 맞추었을 때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요? 13세기 독일의 위대한 신비가 대 제르트루다 성녀의 일화가 이를 잘 증명합니다. 어느 날 성녀가 예수님께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주님, 어찌하여 제가 청하지 않은 것조차 이토록 넘치게 다 들어주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너의 뜻을 버리고 온전히 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나 역시 내 뜻을 버리고 온전히 너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단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은 참으로 단순합니다. 내 청구서를 찢어버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먼저 여쭙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지 마십시오. 한 구절 한 구절 입에 올릴 때마다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애타는 마음을 깊이 묵상하십시오. 저는 성체조배 할 때 주님의 기도만 호흡으로 숫자를 세며 그것만 묵상합니다. 두 시간 동안 주님의 기도를 한 번만 바칠 때도 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그분 마음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드리기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십니다.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완벽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인간과 쥐, 누가 더 똑똑할까요?
미국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교의 파크리사누 교수 연구팀이 진행한 ‘제비 뽑기 실험’이 있습니다. 실험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가자는 A와 B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뽑기를 총 200번 진행합니다. A를 뽑으면 75%의 확률로 1,000원을 벌고, B를 뽑으면 25%의 확률로 1,000원을 법니다. 물론 참가자는 이 확률을 모른 채로 실험에 참여합니다.
참가자는 A와 B를 선택하며 시행착오를 거치고, 100번쯤 했을 때 A를 뽑으면 B를 뽑았을 때보다 훨씬 더 높은 확률로 보상받는다는 규칙을 눈치챕니다. 그런데도 대다수가 A와 B를 왔다 갔다 하며 수익률을 떨어뜨렸습니다. 반면 쥐는 눈치를 채자마자 계속 A만 선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쥐가 사람보다 1만 2,000원을 더 벌었습니다. 왜 쥐보다 어리석은 판단을 할까요?
눈치를 채고서도 자기의 첫 판단을 함부로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판단이 신중한 사고 체계를 갖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도 자기 판단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표징과 말씀만으로 예수님을 향한 이유가 충분한데도, 자기 안의 고정관념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자기 판단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겸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특별히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이 주님의 기도는 단순히 미사 때 암송하기 위한 주문이 아닙니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십니다. 즉, 하느님의 뜻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양식의 나눔과 용서를 실천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함을 가르쳐주십니다.
이런 가르침을 주신 이유는 그렇게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우선순위에 두지 못하면서, 대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마음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용서에 관한 부분이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이미 우리에게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웃에 대한 용서는 부족하기만 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한 용서, 상대의 보상에 따른 용서를 외치곤 합니다. 그래서 이런 잘못된 판단으로 이웃을 향해 마음을 닫고 용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올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판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대신 주님의 기도에 나오듯이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기 삶을 하느님 뜻에 맞추는 영적인 조율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기도를 마치면서 우리는 ‘아멘’이라고 말합니다. 이 기도대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입니다. 그 결단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명언
평소에 흔들림 없는 삶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인생의 갖가지 어려움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길이다(앤드류 카네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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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