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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6.1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6. 19.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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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 해결되면 괜찮아질 것 같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해결되어도 마음은 곧이어 또 다른 곳으로 흩어지곤 합니다. 의탁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분께 마음을 맡기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분주한 마음을 당신께 맡길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2026년 6월 1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6월 1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6월 1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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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2열왕 11,1-4.9-18.20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사람들은 요아스에게 기름을 부은 다음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그 무렵 아하즈야 임금의

1 어머니 아탈야는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서는, 왕족을 다 죽이기 시작하였다.

2 그러자 요람 임금의 딸이며 아하즈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살해될 왕자들 가운데에서, 아하즈야의 아들 요아스를 아탈야 몰래 빼내어 유모와 함께 침실에 숨겨 두었으므로, 요아스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3 아탈야가 나라를 다스리는 여섯 해 동안, 요아스는 유모와 함께 주님의 집에서 숨어 지냈다.

4 칠 년째 되던 해에 여호야다가 사람을 보내어 카리 사람 백인대장들과 호위병 백인대장들을 데려다가, 자기가 있는 주님의 집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는 그들과 계약을 맺고 주님의 집에서 맹세하게 한 다음, 왕자를 보여 주었다.

9 백인대장들은 여호야다 사제가 명령한 대로 다 하였다. 그들은 저마다 안식일 당번인 부하들뿐만 아니라 안식일 비번인 부하들까지 데리고 여호야다 사제에게 갔다.

10 사제는 주님의 집에 보관된 다윗 임금의 창과 방패들을 백인대장들에게 내주었다.

11 호위병들은 모두 무기를 손에 들고 주님의 집 남쪽에서 북쪽까지 제단과 주님의 집에 서서 임금을 에워쌌다.

12 그때에 여호야다가 왕자를 데리고 나와, 왕관을 씌우고 증언서를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세우고 기름을 부은 다음, 손뼉을 치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

13 아탈야가 호위병들과 백성의 소리를 듣고 백성이 모인 주님의 집으로 가서

14 보니, 임금이 관례에 따라 기둥 곁에 서 있고 대신들과 나팔수들이 임금을 모시고 서 있었다. 온 나라 백성이 기뻐하는 가운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아탈야는 옷을 찢으며, “반역이다, 반역!” 하고 외쳤다.

15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가 군대를 거느린 백인대장들에게 명령하였다. “저 여자를 대열 밖으로 끌어내시오. 그를 따르는 자가 있거든 칼로 쳐 죽이시오.” 여호야다 사제는 이미 “주님의 집에서 그 여자를 죽이지 마라.” 하고 말해 두었던 것이다.

16 그들은 그 여자를 체포하였다. 그러고 나서 아탈야가 왕궁의 ‘말 문’으로 난 길에 들어서자, 거기에서 그 여자를 죽였다.

17 여호야다는 주님과 임금과 백성 사이에, 그들이 주님의 백성이 되는 계약을 맺게 하였다. 또한 임금과 백성 사이에도 계약을 맺게 하였다.

18 그 땅의 모든 백성이 바알 신전에 몰려가 그것을 허물고, 바알의 제단들과 그 상들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었다. 그들은 또 바알의 사제 마탄을 제단 앞에서 죽였다. 여호야다 사제는 주님의 집에 감독을 세웠다.

20 온 나라 백성이 기뻐하였다. 아탈야가 왕궁에서 칼에 맞아 죽은 뒤로 도성은 평온해졌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6,19-23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과 녹이 망가뜨리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20 그러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거기에서는 좀도 녹도 망가뜨리지 못하고,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며 훔쳐 가지도 못한다.

21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23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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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9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3:26

✚ 복음 09:37

✚ 강론 10:5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마음은 보물을 따라간다.

오늘 복음은 재물에 대한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방향을 묻는 말씀입니다. “좀과 녹”(마태 6,19)은 당시 현실적으로 가장 파괴적인 이미지였지요. ‘좀’은 값비싼 옷감을 갉아먹고, 그리스 말에서 ‘먹어 치우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녹’은, 곡식이나 금속이 썩고 변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 당시에는 흙벽돌로 집을 지었는데 도둑이 쉽게 뚫고 들어올 수 있었다는 사실도 덧붙여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표현에서 땅의 보화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드러내십니다. 쌓아 두는 행위 자체가 언젠가는 잃어버릴 운명을 지녔다는 것이 예수님의 판단입니다.

반대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6,20)라는 표현은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성전을 재건한, 이른바 제2성전기 유다 문헌에서 자주 나타나는 사상입니다(토빗 4,8-9 참조). 선행은 하느님께 드리는 보화이며, 마지막 때에 그 보화가 우리에게 드러날 것이라는 사상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시선은 미래의 시간을 향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마음이 어디에 묶여 있는지 물으십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보물은 다만 소유물을 뜻하기보다 삶의 중심, 곧 욕망의 방향을 뜻합니다. 마음은 자기가 쌓아 둔 것을 향하여 기울어지기 마련이니까요.

이어지는 눈의 비유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눈이 건강하면 온몸이 밝다는 말은 도덕적 은유이기도 합니다. 유다 전통에서 ‘좋은 눈’은 관대함을, ‘악한 눈’은 인색함과 시기를 뜻하였습니다. 결국 빛과 어둠의 문제 또한 시선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존재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재물을 향하여 고정된 눈은 어두워지고, 하느님을 향하여 열린 눈은 밝아집니다.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있다가 없어질 것들에 우리 삶을 송두리째 맡길 수는 없지요. 사라질 것들을 너머 마지막까지 붙들 수 있는 가치에 우리 삶을 맡겨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재물인가? 보물인가? 필요한 것인가? 중요한 것인가?

“너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라.”

오늘 주님께서는 보물에 관한 가르침을 주시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보물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물을 보물로 삼음을 경계하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재물은 재물로만 여겨야 하는데 참으로 많은 사람이 재물을 보물로 여기며 일생을 삽니다. 그런데 이는 마치 요강이나 돈지갑을 국보 1호라고 하는 것과 같고, 잠시 보물로 여겼다가도 웬만큼 나이를 먹고 나면 깨달아야 하는데 재물을 계속 보물로 여기며 사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러니 이것은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어리석음이고, 일생을 깡그리 망치는 안타까운 어리석음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겠습니까? 돈이나 재물이 우리 삶에 있어서 너무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돈은 필요한 것이지 중요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설사 중요하다고 해도 사람이나 사랑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런데 보물로 여기는 사람은 돈의 비중이 사람과 사랑보다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재물을 재물 정도로 여길 줄도 알아야 하고, 지상 재물을 천상 보물로 바꿀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성인들은 이것을 안 분들인데 그 대표적인 성인들이 프란치스코와 클라라이며 가난 면에서는 클라라가 프란치스코보다 더 천착한 분입니다.

그래서 클라라는 지상 재물을 천상 보물로 바꾸는 아주 훌륭한 말을 남겼습니다. 클라라는 하느님과 재물을 둘 다 섬김 수 없음과 복된 가난을 얘기한 다음 “이 얼마나 크고 찬양할 만한 교환인가! 영원한 것을 위해 현세적인 것을 버리고 지상의 것 대신에 천상의 것을 받으며, 하나 대신 백배를 받고 복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나니!”라고 얘기합니다.

그렇습니다. 복된 가난은 교환이고 위대하고 찬양할 만한 교환입니다. 썩어 없어질 재물과 천국이라는 보물을 바꾸는 교환이고, 모든 것을 팔아 보물이 묻힌 밭을 사는 복된 교환입니다. 클라라가 말한 Magnum laudabile commercium(위대하고 찬양할 만한 교환)에서 Commercium은 옛날 물물교환을 뜻하는 것이었는데 이 상업적인 말이 점차 뜻이 풍부해지고 교회 안에서는 마침내 영적 의미도 담게 됐지요.

그리스도의 육화로 인해 주님의 신성과 우리의 인성이 교환되는 뜻으로도 쓰였고 미사의 물과 포도주를 섞는 예식을 할 때는 사제가 “이 술과 물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케 하소서”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클라라도 같은 맥락에서 지상 것과 천상의 것의 Commercium(교환)이 복되고 찬양할 만한 가난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고 어떤 교환을 하며 삽니까? 재물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까? 중요한 것입니까? 머리로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임을 아는데 마음과 실제는 어떻습니까? 이런 성찰과 함께 욕심을 채우는 데 쓰이던 재물이 이웃 사랑을 위해 쓰이게 되면 이것도 재물이 보물로 바뀌는 복된 교환이 됨을 묵상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내 보물이 드러내는 내 마음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의 경건생활,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해 말씀하신 다음, ‘보물’과 ‘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보물’은 보석을 나타내는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 ‘주님을 경외할 줄 아는 지혜’(이사 33,6)를 상징하기도 하고, ‘이스라엘’에 견주기도 합니다(탈출 19,5; 신명 7,6). 또한, ‘보물’은 획득하여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와 있는 것으로, 찾은 이에게 발견됩니다. 그런데 발견하기만 하고 차지하지 못한 이가 있고, 아예 찾아 나서지도 않은 이도 있고, 찾았으나 악용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마라.”(마태 6,19)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마태 6,20)

그렇습니다. 우리는 땅에 보물을 쌓아둘 수도 있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둘 수도 있습니다. ‘땅에 쌓아둔 보물’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위해 쌓아올린 보물이지만, 좀 먹고 녹슬고 도둑맞을 수 있는 보물입니다. ‘하늘에 쌓는 보물’은 하느님 앞에서 쌓아올린 보물이고, 영원히 남는 ‘의로움의 보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을 보면, 자신이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 곧 값진 보물이라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눈이 어디를 ‘향하여’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지금 나의 눈이 나 자신을 ‘향하여’ 있는지, 하느님을 ‘향하여’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주님의 마음은 ‘여기 우리 안’에 와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보물이 있는 곳에 당신 마음이 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당신의 보물’인지라 당신의 눈은 우리에게 와 있을 것입니다. 당신 목숨을 내어주고 얻은 소중한 보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의 눈은 나를 ‘향하여’ 있는데, 내 마음의 눈은 어디를 ‘향하여’ 있는지도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와 있는 주님의 눈동자를 관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몸의 등불”인 “눈”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마태 6,22-23)

그렇습니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해질 것입니다” 곧 편견과 고정관념이 없는 깨끗하고 순수한 눈이면, 환하고 투명하게 볼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깨끗하면 하느님을 볼 것”(마태 5,8 참조)이라고 했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이 맑아져야 할 일입니다. 여기에서, “눈이 성하지 못하면”(πονηροσ)은 직역하면 ‘악하면’으로, 곧 ‘악한 눈’을 뜻합니다. 그러니 보물의 처신이나 사용이 ‘악’하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리 보물이라 할지라도 악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자신을 어둠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6장 21절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주님! 제게는 당신이 보물이오니, 제 마음이 당신께 사로잡히게 하소서.

항상 당신을 첫 자리에 두고, 그 어느 것도 당신 사랑보다 낫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제 눈이 항상 당신을 향하여 있고, 제 마음이 당신께 다다라 있게 하소서.

제 마음은 당신의 것이오니, 당신 안에 저를 가두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칭찬이 독이 되는 사람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신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마음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빛이 눈을 통해 새어 나온다고 하시며 이렇게 물으신다.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깊겠느냐?"(마태 6,23)

그런데 빛이 어둠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빛이 어떻게 어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마음의 빛이란 내가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곧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은 자기가 바라보는 것을 닮아 간다. 그래서 무엇을 빛으로 삼아 바라보느냐가 그 사람의 전부를 결정한다. 하늘을 빛으로 삼으면 그 사람 안이 환해지고, 세상 것을 빛으로 삼으면 빛이라 여기던 그것이 도리어 어둠이 된다. 빛이 어둠이라는 것은, 내가 빛인 줄 알고 좇는 그것이 실은 나를 삼키는 탐욕이라는 뜻이다. 옛 영성가들은 이를 세속과 육신과 마귀라 불렀고, 풀어 말하면 소유욕과 육욕과 지배욕이다.

이 어둠이 얼마나 교묘한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 있다. 어느 반려견 훈련 프로그램에 순하기로 소문난 레트리버 한 마리가 나왔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겁을 먹고 드러누워 배를 보일 만큼 소심한 개였다. 그런데 그 착한 개가 유독 가족만은 물었다. 물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릎에 올라 재롱을 떨었다. 가족은 이 개가 본래 착한데 어떤 상처 때문에 그런다고 믿으며, 개가 화내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했다. 심지어 개가 좋아하는 화분은 개가 없을 때만 몰래 닦았다. 보다 못한 훈련사가 말했다. 그것은 아이가 담배를 피우는데 "얼마나 힘들면 그러겠어" 하며 내버려 두는 것과 같다고.

이 개의 정체는 무엇인가. 사랑도 받고 싶고 지배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물어서 가족을 두렵게 만들어 지배하고, 다시 애교로 사랑을 받아 냈다. 화분을 제 것으로 여겨 손대지 못하게 으르렁대다가, 자기 뜻대로 따라 주면 다시 예뻐했다. 이만큼만 받들어 주면 착한 개가 되어 주겠다는 것이다. 가족은 개를 키운 것이 아니라 개를 섬기고 있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훈련사가 이런 개에게는 순종하기 전까지 결코 잘해 주지 말라고 한 까닭이 여기 있다. 어설픈 애정이 도리어 독이 되기 때문이다. 그 개에게 "앉아"를 시키면 한참을 버틴다. 자기보다 낮다고 여기는 사람 앞에 앉아 칭찬을 들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칭찬이란 자기보다 높은 이에게 들어야 기분 좋은 법이니까.

성경은 이 어둠을 일찍부터 고발한다. 여호수아 시대에 아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느님께서 봉헌물로 바치라 명하신 전리품 가운데, 그는 값진 외투 한 벌과 은과 금덩이를 보고 탐이 나 몰래 자기 천막 땅속에 묻어 두었다. "탐이 나서 가졌습니다"(여호 7,21 참조)라는 그의 고백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그 작은 어둠 하나 때문에 온 이스라엘이 아이 성 앞에서 무너졌다. 빛인 줄 알고 끌어안은 금덩이가, 실은 그를 삼킨 어둠이었던 것이다. 게하지도 그러하다. 스승 엘리사가 한사코 거절한 나아만의 선물을, 게하지는 몰래 뒤쫓아 가 받아 챙겼다. 그러자 나아만에게서 떠난 나병이 게하지에게 옮겨붙었다(2열왕 5장 참조). 소유욕이라는 어둠은 결국 제 몸에 병을 새긴다.

삼구의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은 절대 칭찬하면 안 된다. 예수님도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의 진주를 돼지들 앞에 던지지 마라."(마태 7,6)라고 하셨다. 세속과 육신과 마귀를 끝내 빛으로 고집하는 사람에게는 거룩한 진주가 들어가도 짓밟힐 뿐이다. 그런 이를 어설피 잘해 주어 성당으로 끌어들이면, 그는 하느님까지 가스라이팅한다. 자기가 잘나서 받는 줄 알지, 결코 순종하지 않는다. 세례를 받아도 합당하지 않게 성체를 모시는 자리에 머물고 만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에게까지 당신을 내어 주셨다는 사실이다. 돈주머니를 쥐고 있던 유다에게도 당신 살과 피를 떼어 주시고 그 발을 씻어 주셨다. 그 유다는 끝내 스승을 발로 짓밟았다. 예수님께서는 왜 그러셨는가. 그가 원하였기 때문이다. 원하는 자에게 주지 않을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마지막 한 조각까지 다 내어 주셨기에, 이제 그의 멸망은 온전히 그의 몫이 되었다. 우리가 본받을 자리도 여기다. 어둠을 빛이라 우기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와 잘해 줄 필요는 없으되, 그가 진정 원할 때는 끝까지 내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칭찬해야 하는가. 한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이 자기를 두고 평하는 말을 엿듣게 했다. 한 사람은 줄곧 헐뜯기만 했고, 한 사람은 줄곧 칭찬만 했다. 또 한 사람은 헐뜯다가 끝에 가서 칭찬으로 맺었고, 마지막 사람은 칭찬하다가 끝에 가서 헐뜯음으로 맺었다. 사람들이 가장 호감을 느낀 상대는 누구였겠는가. 줄곧 칭찬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엔 헐뜯다가 마지막에 칭찬해 준 사람이었다. 가장 미운 사람은 누구였는가. 줄곧 헐뜯은 사람이 아니라, 좋게 말하다가 마지막에 헐뜯은 사람이었다.

까닭은 이렇다. 마지막 말은 그 사람을 향한 기대를 담는다. 시종 좋은 말만 하거나 나쁜 말만 하는 사람은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부족함을 짚은 뒤에 건네는 칭찬은 "너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안겨 준다. 다만 여기에도 분별이 필요하다. 소유욕과 육욕과 지배욕을 살찌우는 칭찬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칭찬은 상대를 나를 부리는 가스라이터로 키울 뿐이다. 우리가 칭찬해야 할 것은 오직 하나, 그 사람이 참 빛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그 모습이다.

여기 합당한 칭찬의 본보기가 있다.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한 장면이다. 까다롭고 오만한 강박증 환자가 한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려다 칭찬을 한 가지 해 보라는 청을 받는다. 그가 머뭇거리다 꺼낸 말은 뜻밖이었다. 의사 말도 듣지 않던 자기가 약을 먹기로 했다는 것이다. 여인이 그게 무슨 칭찬이냐 되묻자 그가 답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여인은 그것이 생애 최고의 칭찬이라 한다. 돈과 교만에 갇혀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탐욕에서 끌어내 주었다는 그 한마디에 마음을 연 것이다. 누군가를 소유욕과 지배욕에서 벗어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것, 그보다 큰 칭찬은 없다.

그러니 공부를 잘한다, 돈을 잘 번다, 얼굴이 곱다,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조심하여라. 그런 말은 나를 길들이려는 계략이거나, 나를 세속과 육신과 마귀에 더 깊이 빠뜨려 어둠으로 끌고 가려는 속삭임일 때가 많다. 우리가 주고받아야 할 참된 칭찬은, 어둠을 빛이라 여기던 사람이 참 빛을 향하도록 돌이켜 세우는 칭찬이다. 그러할 때 비로소 우리 안의 빛은 어둠이 아니라 빛으로 빛나고, 그 빛이 눈을 통해 흘러나와 또 다른 누군가의 어둠을 밝히게 될 것이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20대 청년과 70대 노인이 있습니다. 누가 더 행복할까요? 아무래도 젊음과 힘이 있는 20대 청년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70대 노인의 행복도가 더 높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일반적으로 행복도는 20대부터 하락하다가 40대에 최저점을 찍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50대가 되면서 행복도가 회복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찾기 위해 한 연구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20대는 연예인, 기업가, 정치인, 운동선수 등 유명인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70대는 가족이나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결과를 통해 삶의 우선순위가 행복과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즉, 20대의 젊을 때는 성취가 우선순위에 있었고, 나이가 든 70대는 관계가 우선순위에 있었습니다.

행복하기를 원하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는가가 중요합니다. 성취를 위해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집중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관계를 위한 사랑의 삶 속에 행복의 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마태 6,21)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가장 가치 있다고 여기는 궁극적인 대상의 상태에 묶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단순히 ‘가난하게 살아라’, ‘저축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신 우리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마라.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마태 6,19.20)

땅의 소유를, 이웃을 향한 자선과 사랑, 무엇보다 하느님 뜻을 이루는 데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우선순위를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에 두고 있을 때, 사라질 세상의 부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결정적인 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마태 6,22.23)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의 어둠에 눈이 멀지 않고,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가치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명언

100권의 책보다 한 가지 성실한 마음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더 크다(벤저민 프랭클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심 가치인 보물은 금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곳을 향해 흘러갑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고, 마음이 있는 곳에 삶의 방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 전체를 통해 참된 보물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보물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었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사랑이었으며,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무엇을 보물로 삼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한 보물을 닮아가고, 그 보물이 우리 삶의 방향과 의미를 결정합니다.

사라지는 것에 마음을 두면 불안이 따르고,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면 평화가 찾아옵니다. 참된 보물은 하느님을 향해 머무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머무는 곳이 인격을 만들고, 인격이 결국 그 사람의 삶을 완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이 하느님께 머물 때, 우리의 삶은 은총과 축복으로 빛나게 됩니다.

마음의 방향이 곧 인생의 방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길을 비추시는 빛이시며, 우리 삶의 가장 귀한 보물이십니다. 오늘도 하느님이라는 가장 큰 보물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며, 감사와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복되고 아름다운 날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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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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