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저를 먼저 믿어 주시고, 부족함보다 가능성을 바라보시며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 깊은 사랑 안에 이미 둘러싸여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도 먼저 믿어 주시고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으시는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2026년 6월 2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6월 2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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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사도 12,1-11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헤로데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그 무렵
1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쳤다.
2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3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다.
4 그는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가두고 네 명씩 짠 네 개의 경비조에 맡겨 지키게 하였다.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그를 백성 앞으로 끌어낼 작정이었던 것이다.
5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6 헤로데가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던 그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인 채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다.
7 그런데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더니 감방에 빛이 비치는 것이었다. 천사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려 깨우면서, “빨리 일어나라.”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갔다.
8 천사가 베드로에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 하고 이르니 베드로가 그렇게 하였다. 천사가 또 베드로에게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따라 나가면서도, 천사가 일으키는 그 일이 실제인 줄 모르고 환시를 보는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10 그들이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를 지나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 앞에 다다르자, 문이 앞에서 저절로 열렸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어떤 거리를 따라 내려갔는데, 천사가 갑자기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11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제2독서
2티모 4,6-8.17-1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6,13-19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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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9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57
✚ 제1독서 08:54
✚ 제2독서 15:32
✚ 복음 18:16
✚ 강론 20:29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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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예수님은 왜 베드로를 선택하셨을까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 목동과 자연, 들판과 산림의 신인 ‘판’의 신전이 서 있던 자리, 제국의 이름이 새겨진 도시.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 16,13)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이름을 꺼냅니다.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마지막 구원의 시대에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예언자들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예레미야의 이름에는 슬픔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성전을 향하여 심판을 외치다 거절당한 사람(예레 7,27 참조).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렇게 이해합니다. 고통받는 예언자 예레미야와 예수님은 닮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16,16).
그 말은 용기라기보다, 갑자기 터져 나온 설익은 외침처럼 들립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말이 ‘살과 피’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인간적 계산이나 전통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의 계시가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나온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완전하신 하느님께서 어설픈 인간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16,18).
이름이 곧 사명이 됩니다. ‘반석’, 단단해 보이는 말이지만 우리는 압니다, 곧 흔들릴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을요.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그 연약함 위에 공동체를 세우십니다. 저승의 세력도 이기지 못할 교회를 세우십니다.
교회는 완벽한 사람 위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고백하는 사람 위에 세워집니다. 설익고 어설픈 고백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즐겨 받아들이십니다. 그래서 또 외칠 따름입니다.
‘스승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도 작은 반석이 될 수 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내 주변의 베드로는 누구일까? 내 주변의 바오로는 누구일까? 오늘은 강론을 준비하다 문득 이런 나눔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고 살펴봐도 베드로 사도 같은 사람과 바오로 사도 같은 사람이 퍼뜩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왜 떠오르지 않을까? 내가 베드로와 바오로 같지 않아서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면서 나는 그렇지 못해도 다른 사람 중에는 분명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며 더 생각해봤더니 두 사도만큼은 아니어도 그런 유의 사람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높이를 낮추면 우리 가운데 그런 유의 사람이 많습니다. 바오로처럼 명석하진 않아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 곧 베드로가 많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생각하면 즉시 떠오르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는 호수를 건너다 난파당할 뻔했을 때 물 위를 걸으시는 주님께 자기도 걸어서 다가가다가 빠진 모습과 주님께서 수난당하실 때 자기도 같이 죽겠다고 했지만 배반한 모습입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또 머리로 이것저것 재지 않고 무턱대고 나서고, 주님께서 질문하시면 항상 제일 먼저 대답하는 베드로 사도입니다. 예수님 정체와 관련하여 오늘처럼 맞는 대답을 하여 칭찬받다가도 인간적인 사랑에 치우쳐 주님의 길을 막다가 사탄 소리도 듣습니다.
이런 베드로 사도를 주님께서는 반석 삼아 당신 교회를 세우시겠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교회를 이끌 사람이니 당신이 그의 부족함을 메꾸시고, 당신이 지켜주시고 당신이 위험에서 구출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런 베드로 사도와 주님을 보고 우리는 희망을 걸고 용기를 냅니다.
우리도 부족하긴 마찬가지이고 베드로 사도보다 더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처럼 온 교회의 반석은 될 수 없지만 우리의 작은 공동체 안에서 작은 반석은 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전 세계를 찾아다니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는 없어도 우리나라 우리 동네에서는 복음을 열정적으로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하고도 중요한 것은 열정입니다. 베드로 바오로 사도만큼 열정적이지는 못해도 작은 열정이라도 있으면 주님께서 메꿔주시고 키워주시고 완성해주실 겁니다. 그런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첫발자국만 떼면 됩니다. 베드로 바오로 사도에게 하셨던 것을 우리게도 하실 겁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늘나라의 열쇠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이 두 분은 예수님께서 특별한 직무를 맡기신 으뜸 사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베드로는 ‘교회의 주춧돌’로 삼으셨고,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주님께서 감옥에 갇혀있는 베드로를 빼내주시고 보호해주시며, <제2독서>에서는 주님께서 바오로를 사자의 굴에서 구출해주시고 굳세게 해 주십니다.
<복음>에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베드로에게 부여되는 권한을 통해서는 ‘교회의 신비’를 드러내줍니다.
먼저,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이렇습니다.
“스승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으로 ‘그리스도의 신비’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예언자들이 보증해 왔던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인 것만이 아니라, 성부와 절대적이고 유일한 관계를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신비입니다. 그리고 이 신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것을 베드로에게 알려주셨습니다.”(마태 16,17). 바로 이 신앙의 반석 위에 교회가 세워집니다. 곧 교회는 “하느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세워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이는 그리스도께서 “반석 위에” 직접 세우신 이 교회가 이 세상 끝 날까지 지탱해 나갈 것임을 말해줍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권한을 부여’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여기에 또 하나의 놀라운 신비가 있으니, 베드로에게 부여된 권한을 통해 드러난 ‘교회의 신비’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특별한 권한이 그에게 부여되었다는 사실을 넘어, 그가 행한 것을 “하늘에서” 그대로 인정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곧 “매고 푸는” 권한을 하늘에서 보증하고 인정해 준다는 어마어마한 사실입니다. 이토록, 베드로 안에서 ‘하늘’이 활동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제 우리 모두가 용서를 하면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하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벌어지고, 우리 안에서 ‘하늘’이 열리게 됩니다. 곧 내 안에 하느님 나라가 열리는 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하늘에 두지 않으셨습니다. 땅에 있는 저희에게 주시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게 하셨습니다. 곧 형제를 받아들임이 당신을 받아들임이라 하시고, ‘형제와의 사랑’을 당신 나라를 여는 ‘열쇠’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묶인 것을 푸는 일이 하늘나라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제 손에 쥐어준 사랑의 열쇠로 자물쇠를 풀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6장 19절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주님! 당신께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땅에 있는 저희에게 주시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게 하셨습니다.
형제를 받아들임이 당신을 받아들임이라 하시고 형제와 사랑을 당신 나라를 여는 열쇠로 주셨습니다.
하오니, 주님! 묶인 것, 막힌 것을 풀고 이 땅에서 당신의 나라를 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부끄러운 자신을 숨기지 않은 두 사도
누구나 과거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움을 경험했던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래 전의 그 부끄러움이 지금도 계속될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날의 일을 그냥 웃어넘기게 됩니다. 결국 지금 당황스럽고 부끄러우며 수치스러운 일도 별것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면 됩니다.
예전에 특강하던 중에 한 수녀님께서 손을 들고 특강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조용히 말해 줄 수도 있는 것을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공격적으로 말씀하시니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수녀님 말씀대로 저의 착각으로 잘못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순순히 인정했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말씀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를 지적해 주신 수녀님께 감사의 박수 부탁합니다.”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제가 AI도 아닌데 어떻게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인정하니 사람들이 더 신뢰해 주시는 것입니다. 인정하면 망신이 더 오래갈까요? 아닙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씀해 주시더군요.
“잘못을 인정하면 더 유능하게 보여요. 그리고 잘못을 인정하면 더 섹시하게 보여요.”
오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입니다. 교회의 두 축이라 할 수 있는 두 분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신앙 고백의 모범을 보여주셨고, 바오로 사도는 신앙의 내용을 밝히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기초를 탄탄하게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훌륭한 두 사도가 전혀 결점이 없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교회의 반석으로 임명받았음에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었습니다. 또 바오로는 예수님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기의 부끄러운 과거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도 모두 그런 부끄러운 자신을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를 인정하면서 겸손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베드로와 바오로는 성향도 다르고 출신도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도가 예수님을 향한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주님을 드러내는 데 온 힘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교회의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되고, 바오로는 그 반석 위에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기둥이 되셨습니다.
주님 앞에 자기를 온전히 내려놓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 유능하고, 더 섹시하게 보입니다.
오늘의 명언
희망이 파괴될 자리에서 희망하는 것을 만들어 낼 때까지 희망하라(비시 셸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느님의 은총을 더 신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흠 없는 사람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은총으로 변화될 사람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되어 가는 여정이 신앙의 여정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하시며 전개됩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두 사도 모두 자신의 과거를 넘어 하느님의 은총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는 용기를 배웁니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회심의 희망을 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의 약함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언제나 새로워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장 가치있는 삶은 자신을 내어주는 삶입니다. 자신을 내려놓을수록 더 넓은 세상을 품을 수 있습니다. 가장 좋으신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의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마저 구원의 이야기로 바꾸십니다.
실패와 죄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변화는 자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 더 참된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이렇듯 은총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변화된 사람들로 세워집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 은총에 응답하는 사랑과 감사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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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