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더 최선을 다해야지, 더 열심히 살아야지, 더 기도해야지, 더 사랑해야지...
늘 이렇게 다짐하곤 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삶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결심보다 지금 이 순간 말씀 가까이에 머물려고 애쓴 평범한 오늘이었어요.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마지막 고백도 수많은 평범한 오늘이 차곡차곡 쌓여 자라 온 믿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늘도 말씀 가까이에 머무는 하루를 선물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7월 5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미사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7월 5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2역대 24,18-22

너희는 성소와 제단 사이에서 즈카르야를 살해하였다.
그 무렵 요아스 임금과 유다의 대신들은
18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19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0 그때에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백성 앞에 나서서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될 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21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슬러 음모를 꾸미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주님의 집 뜰에서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다.
22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 즈카르야는 죽으면서, “주님께서 보고 갚으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제2독서
로마 5,1-5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3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4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0,17-22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7월 5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소개 00:06
✚ 미사 시작 02:32
✚ 제1독서 09:59
✚ 제2독서 15:10
✚ 복음 17:29
✚ 강론 19:06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무엇이 그를 죽음 앞에 이토록 의연하고도 당당하게 만들었을까요?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는 죽음으로 위협받으면서도 당당하게 자신이 천주교인임을 밝힙니다. 이 짧은 한 문장으로도 그의 기백과 담대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합니다. 청년 김대건은 배교를 강요하는 관장에게 오히려 천주교가 참된 종교인 까닭을 분명히 밝힙니다.
그는 단순히 하나의 종교를 옹호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발견한 신앙의 진리를 굳게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배교하지 않으면 곤장으로 때려죽이겠다.’는 엄포와 고문도 김대건 신부를 쓰러뜨리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성인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잡혀가 고초를 겪는 것을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무엇이 그를 죽음 앞에 이토록 의연하고도 당당하게 만들었을까요?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9-20).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처럼, 그것은 김대건이라는 한 개인에게서 나오는 인간적인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성인이 죽음의 순간까지 굳게 믿고 따르던 아버지 하느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마지막 순간만이 아니라 김대건 신부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앙을 키워 가는 모든 과정에 이미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언해야 하는 상황에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불가지론적 태도와 내면의 위안만을 찾는 영지주의적 사고로 신앙의 본질이 위협받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께 마음을 열고 늘 복음 말씀을 가까이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순교는 믿고 있는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분을 증거 하는 일이다.
오늘은 우리나라의 첫 사제요, 한국 사제들의 수호자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 대축일입니다.
김 대건 안드레아 성인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십니다. 그 어떤 어려움에서도,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선물입니다. 그것은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신 “내 이름 때문에”(마태 10,22) 발생됩니다. 곧 성인께서는 살아있을 이유도, 핍박을 받고 고통을 받을 이유도, 죽을 이유도, 오직 “예수님 때문”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성인께서는 하느님을 “임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성인께서는 ‘임자’를, 오로지 한 분 주인님으로 섬기고, 사랑하셨습니다. 오롯한 한 마음으로 ‘임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 모진 핍박과 수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사랑으로 기뻐하고 감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그 사랑을 증거 하셨습니다. 이러한 그분의 사랑은 <옥중편지>에서 이렇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관장께서 내가 천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시니, 관장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천주님이 이런 은공을 갚고자 당신을 더 높은 관직에 올려주기를 바랍니다.”
성인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고문을 달게 그리고 기쁘게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고문하는 관장에게 감사를 드렸으며, 나아가 오히려 그를 더 높은 관직에 올려달라고까지 기도하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랑입니다.
이 유쾌함, 이 놀라운 사랑!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오히려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듯이, 스테파노가 죽어가면서도 자신에게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셨듯이, 성인께서는 매질하는 관장에게 오히려 감사를 드렸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더 높은 관직에 올려 지기를 희망하고 기도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처럼, “순교”란 단지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며 스스로 자신의 전부를 내어놓으면서, 마침내 자신이 믿고 사랑하는 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며 기뻐하는 일! 이것이야말로 그분의 죽음이 ‘순교’임을 드러내는 진정한 표시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도 성인과 함께 <제2독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로마 5,2-3).
그것은 고통 중에도 오로지 하느님께 희망을 두며,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 하느님의 희망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우리 자신을 허용할 때 가능해지는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바로 이렇게 십자가에서 아버지를 증거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증거는 단지 십자가에서만 있었던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공생활을 통한 일상적인 삶 전부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일상적인 증거의 삶이,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의 성인의 삶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순교” 역시 우리의 삶의 현장과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연속되는 죽음 속에 자리 잡아야 할 일입니다. 곧 일상의 삶 안에서, 나 자신의 뜻에는 스스로 죽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순교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는 비록 목숨 바쳐 순교할 기회는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향하여 나아가는 일이 바로 ‘순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교”는 믿고 있는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분’을 증거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곧 자신의 죽음으로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의 죽음을 몸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2고린 4,10-11).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0장 22절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 제 안에 새겨 두신 당신 이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으로 부어 주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에 희망을 두오니, 당신 이름에서 구원을 주소서.
당신 이름 때문에,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이름을 증거 하는 순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충전하는 시간, 소진하는 시간
찬미 예수님. 오늘 우리는 이 땅의 첫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기립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조금은 사적인 고백으로 강론을 시작하려 합니다. 저는 얼마 전 안식년에 들어갔고, 그 보름을 지내며 한 가지를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소진시키는 시간과, 나를 충전시키는 시간입니다. 오늘 김대건 신부님의 삶이 바로 이 두 시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밭에도 안식년이 있습니다. 먼저 밭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상한 명령을 하나 내리셨습니다.
"여섯 해 동안 밭에 씨를 뿌리고 소출을 거두어라. 그러나 일곱째 해에는 땅을 놀리고 묵혀 두어라."(탈출 23,10-11 참조)
일곱째 해에는 씨도 뿌리지 말고 밭을 통째로 쉬게 하라는 것입니다. 농부의 상식으로 보면 미친 소리입니다. 일 년을 통째로 노는데 무엇을 먹고 살라는 말입니까.
그러나 여기에 창조주의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땅은 쉬지 않고 소출만 뽑아내면 반드시 메마릅니다. 지력이 고갈되어,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텅 빈 흙이 됩니다. 실제로 현대 농학이 이를 증명합니다. 같은 밭에 같은 작물을 쉼 없이 심으면 수확이 해마다 줄어드는데, 이를 연작 장해라 부릅니다. 반대로 한 철 밭을 묵히거나 콩과 식물을 심어 쉬게 하면, 흙 속에 질소가 다시 채워지고 미생물이 살아나 이듬해 수확이 도리어 늘어납니다. 쉬는 것이 게으름이 아니라 다음 열매를 위한 투자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강론의 열쇠를 얻습니다. 열매를 맺는 것은 소진입니다. 밭이 자기 안의 양분을 내어 주어 곡식을 맺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소진이 계속되려면 반드시 충전이 있어야 합니다. 안식년이란, 소출을 멈추고 땅 자체를 비옥하게 채우는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밭에게도 이 충전의 시간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물며 사람에게, 사제에게, 영혼에게 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저의 이야기를 조금 더 솔직하게 나누겠습니다. 안식년에 들어와서도 저는 처음에 매일 강론을 써서 올렸습니다. 신자분들이 원하시니, 숙소에 있는 동안이라도 계속 말씀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보름을 그렇게 지내고 나니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것 역시 소진하는 시간이 아닌가. 강론이란 결국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어 내보내는 일입니다. 밭이 곡식을 내놓듯, 내 안의 양분을 퍼내는 일입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안식년까지 이렇게 퍼내기만 한다면, 저는 안식년을 안식년으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밭을 쉬게 하라는 그 명령을 저 혼자 어기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방향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제부터 이 안식년 동안은 내보내는 강론이 아니라, 모아들이는 성경 통독을 하려 합니다. 올해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마카베오기 하권까지, 구약의 역사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며 짧은 해설을 붙여 올릴 생각입니다. 하루에 세 장씩 천천히 읽어 나가려 합니다. 속도가 붙으면 구약 전체로, 나아가 신약까지도 욕심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통독을 올리는 것도 겉으로는 무언가를 내보내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강론은 내가 이미 가진 것을 꺼내는 일이지만, 통독은 내가 새로 받아들이며 그 넘치는 것을 나누는 일입니다. 앞엣것은 내 곳간을 비우고, 뒤엣것은 내 곳간을 채우면서 그 채워지는 향기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공부는 남에게 무언가를 주는 동시에,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거름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한 해, 강론을 쉬려 합니다. 이 충전의 시간을 오롯이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원하시는 분들은 매일 이 성경 통독 해설을 함께 들으셔도 좋을 것입니다. 어쩌면 잘 다듬은 강론 한 편보다, 날것 그대로의 말씀을 함께 씹어 삼키는 그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더 깊은 거름이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결심을 하면서 바로 오늘의 주인공, 김대건 신부님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분의 삶이야말로 이 축적과 소진의 신비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김대건 신부님을 '한국 최초의 사제'로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숫자만 보면 뜻밖의 사실과 마주칩니다. 그분이 사제로 사신 시간은 겨우 일 년 남짓이었습니다. 1845년 8월에 사제가 되어, 1846년 9월에 순교하셨으니 말입니다. 신학생으로 뽑혀 마카오로 떠난 것이 1836년, 열다섯 살 때였습니다. 그러니 사제가 되기까지 약 십 년을 준비하고, 정작 사제로 일한 것은 단 일 년입니다. 십 년을 쌓아 일 년을 쓰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이 듭니다. 하느님께서는 왜 그토록 아까운 분을 이렇게 일찍 데려가셨을까. 십 년을 공들여 길러 낸 사제를 겨우 일 년 쓰시다니, 이보다 비효율적인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토록 한국인 사제를 목말라하던 교우들을 생각하면, 십 년, 이십 년을 더 사목하셨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이 의문 앞에서 도리어 오늘 강론의 진실을 확인합니다. 그분의 그 십 년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십시오. 열다섯 소년이 압록강을 건너 만주와 요동을 지나, 무려 구천리 길을 걸어 마카오에 이르렀습니다. 낯선 라틴어와 프랑스어와 신학과 철학을 밑바닥부터 익혔습니다. 마카오에 민란이 일자 필리핀으로 피난을 갔고, 병약한 몸으로 온갖 질병과 싸웠습니다. 함께 떠난 동무 최방제는 열여섯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국에서는 기해박해가 터져 아버지와 스승과 주교가 순교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사제가 되어 돌아올 때는 상해에서 배를 타고 오다 서해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러고도 그분은 선교사들이 들어올 뱃길을 뚫으려 지도를 그리고 바닷길을 살피다 붙잡히셨습니다.
보십시오. 이 십 년은 허비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이 십 년이야말로 밭을 비옥하게 채운 충전의 시간이었습니다. 걸음마다, 피난마다, 죽을 고비마다, 그분의 영혼에는 무언가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쌓이고, 인내가 쌓이고,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쌓였습니다. 그렇게 십 년을 응축한 영혼이었기에, 그분은 단 일 년의 사목에서, 아니 마지막 순교의 그 한순간에서, 백 년 사목보다 더 큰 열매를 맺으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한 해, 강론을 멈추고 말씀으로 저를 채우려 합니다. 이것은 물러섬이 아니라, 더 큰 열매를 위한 휴경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십 년을 채워 일 년을 위대하게 사셨듯이, 안토니오가 이십 년을 채워 사막에서 걸어 나왔듯이, 베네딕토가 숨은 삼 년으로 유럽을 바꾸었듯이, 저도 이 한 해를 채워 남은 사목을 더 비옥하게 살고 싶습니다. 성냥이 인화물질을 머금듯, 저도 이 안식년에 하느님의 말씀을 가득 머금어, 언젠가 다시 강단에 설 때 여러분의 촛불에 더 뜨거운 불을 옮겨붙이고 싶습니다.
소진하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만 충전하는 시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하느님 앞에서 낭비되는 축적이란 없습니다. 걸어온 모든 길, 견뎌 낸 모든 고비, 조용히 채운 모든 시간이, 언젠가 단 한 순간에 위대한 열매로 타오를 것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그러하셨듯, 우리도 그러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서 마셨는데, 신선하고 담백한 맛이 아니라 시큼하고 상한 맛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곧바로 뱉어내면서 격렬한 반응을 일으킬 것입니다. 자기가 예상했던 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입을 헹구고, ‘혹시 배탈 나는 것 아니야?’라면서 걱정도 합니다. 실제로 배가 살살 아파져 오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상한 우유가 위와 장으로 아직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곧바로 반응하는 이유는 ‘시원하고 담백할 것’이라는 뇌의 예측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신호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리 뇌는 예측과 전혀 다른 신호가 들어오면 혼란스러워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이런 예측을 곧바로 수정합니다. 그래서 우유를 마실 때 어떻게 할까요? 살짝 맛을 보기도 하고, 아니면 유통기한부터 확인합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그냥 받아들입니다.
예전에 전혀 냄새를 맡지 못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콧속 안에 혹이 나서 냄새를 맡는 부분을 이 혹이 완전히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배 아플 때가 많았습니다. 냄새를 맡지 못하니, 상한 것인지를 제대로 구분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커다란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육체적인 건강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죄를 대하는 데 커다란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죄를 단호하게 끊어버리고 하느님을 향합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죄짓는 것에 담담하면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오늘은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신부님께서는 체포된 후 수많은 매질을 당하며 신문을 받았습니다. 권력자들은 그를 반국가적인 범죄자로 몰아세웠지만, 신부님은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 앞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명확히 선포하셨습니다. 새남터 형장에서 망나니의 칼을 받기 직전에 군중을 향해 이렇게 외치셨지요.
“나의 영원한 생명이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여러분도 사후에 영원한 행복을 얻으려면 천주를 믿으십시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순교로 주님을 세상에 증거하신 김대건 신부님이십니다. 우리도 그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 시대에 그런 피의 순교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상의 순교라 할 수 있는 백색 순교를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으로 세상에 사랑을 넓게 펼칠 수 있어야 구원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은 늘 늦게 깨닫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늦은 것은 아니다(클로츠).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한 성직자의 순교는 한 시대의 끝이 아니라 수많은 신앙의 뜨거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복음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자기봉헌이었습니다. 박해와 죽음 앞에서도 신앙과 양심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매순간 그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순교는 목숨을 바치는 순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만을 내려놓는 것이며 미움을 용서로 바꾸는 것이며 이기심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며 절망보다 희망을 붙드는 것 또한 매일의 순교입니다. 생명보다 더 깊은 진리와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충실함을 기억하십니다. 하느님의 진리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삶으로 증언해야 할 길입니다. 한 사람의 삶이 역사를 바꿉니다. 그의 사제직은 한국인 성직자의 길을 열었고, 그의 순교는 수많은 신앙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 땅의 성직자는 세상의 성공이 아닌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땅의 성직자들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를 닮아 한 시대를 밝히는 복음의 삶이길 기도드립니다. 그리스도의 희망을 세상에 전하신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의 삶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하느님 사랑을 끝까지 살아낸 삶이 바로 성직자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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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