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네

말씀으로 피어나는 집

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7.0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7. 6. 05:06
반응형

 

 

오늘은 '소녀가 일어났다.'보다 '예수님께서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는 말씀에 마음이 오래 머물러요. 일어설 힘은 사랑에서 온다는 것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먼저 다가오시는 사랑, 먼저 건네시는 주님의 손을 놓지 않고 살아가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7월 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7월 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7월 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호세 2,16.17ㄷ-18.21-22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6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17 거기에서 그 여자는 젊을 때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올 때처럼 응답하리라.

18 주님의 말씀이다. 그날에는 네가 더 이상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21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22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9,18-26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18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7월 6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3:04

✚ 복음 06:13

✚ 강론 07:5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용기는 아주 작은 걸음에서 시작된다.

“어떤 여자가 …… 불결한 기간이 끝났는데도 피를 흘리면, 피를 흘리는 동안 내내 그 여자는 부정하다”(레위 15,25).

유다인들은 이 규정 때문에 하혈하는 여인을 부정한 존재로 여겼고 그와 닿는 사람조차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이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겪었을 사회적 단절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내면의 고통은 그가 겪은 육체적 고통을 훨씬 뛰어넘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고통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은 죽음과 같은 고독한 삶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인은 아주 소심한 용기를 냅니다. 아니, 사실은 엄청난 용기였을지도 모릅니다. 여인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뒤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스럽게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댑니다. 질끈 감은 눈을 떴을 때,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자신을 바라보고 계심을 느낍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예수님의 말씀처럼 여인을 구원으로 이끈 결정적 요인은 그분께서 입고 계시던 ‘겉옷’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여인의 용기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삶에서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을 때, ‘겉옷’에 초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참된 구원을 맛볼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믿어버릇하는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오늘 마태오복음에서 회당장의 딸이 방금 죽었다고 하는데 마르코 복음과 루카 복음에서는 죽어가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죽어가는 딸을 살려달라는 두 복음과 달리 마태오복음에서는 이미 죽은 딸을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무리한 청을 주님께 하는 것이 아닙니까? 마태오복음은 어쩌자고 죽은 딸을 살려달라고 하는 것일까요? 이런 인간적인 생각을 하는 저를 보면서 ‘이 신앙 없는 인간아!’하고 저는 준엄하게 저를 꾸짖었습니다. 우리 대다수 인간은 그래도 숨이 붙어 있어야 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죽은 다음에는 다시 살리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숨이 붙어 있을 때는 살려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리다가도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하고 의사가 선언하면 더 이상 매달리지 않지요.

그런데 오늘 회당장은 이런 저와 달리 이미 죽었는데도 살려달라고 하지요. 정말 살리실 수 있다고 믿고 그런 무리한 청을 하는 건가요? 아니면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무작정 매달리는 건가요? 그것도 아니면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살려달라고 하는 건가요?

제 생각에 회당장은 진실로 믿은 사람이라고 마태오복음은 얘기하고 싶은 것이고, 하느님은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또한 얘기하고 싶은 겁니다. 사실 하느님께는 죽어가거나 죽었거나 다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죽었다고 못 살리실 분이 결코 아니고,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 죽은 사람도 살리실 수 있는 분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나를 돌아봐야 합니다. 나는 얼마만큼 믿는지, 또 얼마만큼 믿을 것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인간만큼만 믿을 것인지 하느님만큼 믿을 것인지. 하느님을 믿는다면서 인간만큼만 믿어서 되겠습니까? 제가 자주 얘기하는 것이지만 어쩌면 믿음은 도박이고 선택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안 믿기로 하면 내 믿음은 점점 쪼그라들어 내 안에 믿음이란 하나도 없을 수 있고, 그래서 내 안의 무신(無信)이 하느님께서 안 계신 무신(無神)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믿기로 선택하고 거기에 나를 다 걸어 버릇을 하면 믿는 만큼, 싹이 나고 자라듯, 믿음이 자라 하느님만큼 내 믿음은 자랄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의 수련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저절로 자라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이라면 주시길 청하는 동시에 믿어버릇하고 걸어버릇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지금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해 동안 하혈병을 앓던 여인 치유 장면’과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신 장면’입니다.

두 이야기에는 모두 이미 절망의 상태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병을 앓고 있던 여인’은 이 불결한 병 때문에 이미 삶이 포기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을 받겠지.”(9,20)라고 믿었습니다.

‘회당장’은 딸이 죽어 이미 생명이 끝나버린 상태에서,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이다.”(9,18)라고 믿었습니다.

앞의 이야기에서는 ‘하혈병을 앓던 여인의 손’이 예수님의 치유의 권능을 끌어들였으며, 뒤의 이야기에서는 ‘예수님의 손’이 회당장의 딸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래서 이 앞 이야기에만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9,22)라는 말씀이 덧붙여졌습니다.

사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의 믿음’은 언뜻 보기에는 미신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믿음’, 그것은 어찌 보면 주술적이거나 마술적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회당장의 믿음’ 역시 언뜻 보기에는 억지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이미 죽은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면 다시 살아나리라는 믿음’, 그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짓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거나, 예수님이 손을 얹어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단순히 상황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그렇게 상황을 바꾸실 수 있는 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곧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요,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과 ‘예수님의 자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이야기는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 곧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시고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줍니다. 그러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에 빠지는 일이 없이, ‘끝까지 믿어라’는 말씀이요, 오로지 예수님께만 희망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으로 이끄시는 그분의 전능한 손길에 우리의 손을 맡겨드려야 할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믿음의 손으로 그분의 옷을 부여잡고 그분의 권능과 자비가 우리들 안에 흘러들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 나의 손은 대체,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하느님인가? 자기 자신인가?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9장 18절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지문을 새기셨습니다.

선악과를 붙잡았던 제 손을 대신하여, 당신 손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 손을 얹으시어, 저를 축복하소서.

제 안에 새긴 당신 얼을 새롭게 하소서.

제 온몸에 사랑의 전류가 흐르게 하고, 제 손을 잡는 이마다 사랑의 전등이 켜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가장 친한 신부가 다이어트에 성공했습니다. 직접 그 신부를 보고서는 초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살이 쪘다고 해도, 이 친구를 바라보면서 많이 위안받았었거든요. 이제 제가 더 무거운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남들의 말에 신경이 쓰입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신부님! 배가 많이 나왔어요. 다이어트하셔야겠어요.”

그 뒤로 사람만 나타나면 저절로 배에 힘이 들어갑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다 보니 음식을 먹는 것도 죄스럽습니다. 밥도 절반만 먹으면서 식욕을 억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도 체중이 줄지 않습니다.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식욕이 더 좋아져서 체중이 더 느는 것 같습니다.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것 같다고 말하니, 다른 신부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디 특별히 아픈 것도 아닌데, 굳이 살은 왜 빼? 나이 들면 살점이 있는 것이 더 보기 좋아!”

생각해 보니 그렇습니다. 저를 봐줄 연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몸에 이상이 있어서 병원에서 체중 조절해야 한다고 한 것도 아닌데…. 굳이 남의 말에 신경 쓰고 힘들어했습니다. 이제 살이 많이 쪘다는 말을 들으면, “이 배 만들기 위해 돈을 얼마나 썼는데요?”라고 말합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불행한 사람은 스스로 불행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행복한 사람도 또 반대로 불행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십니까?

오늘 복음은 유다 사회에서 가장 양극단에 서 있는 사람을 만납니다. 즉, 회당장과 혈루병을 앓는 여인입니다. 회당장은 유다교 공동체에서 높은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가진 사람이고,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 소외된 여성이었습니다. 그리고 회당장의 어린 딸은 방금 죽어버린 끔찍함 급박함 속에 처했고, 혈루증을 앓는 여인은 하루하루 피가 빠져나가며 서서히 죽어가는 만성적인 죽음의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열두 해 동안 긴 시간의 고통 속에 있는 경우나, 방금 숨이 끊어진 것처럼 갑작스럽고 캄캄한 절망에 빠졌을 때나 주님께 늦은 때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라는 예수님 말씀에 비웃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손을 잡아 일으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여인이라서 다가설 수 없지만 용기를 내어 옷자락을 붙잡자마자 치유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결국 지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고통과 절망의 순간에서도 주님께 희망을 두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만 주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베풀어주십니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오늘의 명언

여러분이 되고자 하는 그것을 사랑하십시오(성 아우구스티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참된 우리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 삶입니다. 성급함과 조바심을 돌아보게 됩니다. 죽음의 반대는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깨어 있음입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가능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죽음의 자리에서도 생명을 창조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우리의 판단이 멈춘 곳에서 하느님의 자비는 오히려 더 깊이 일하십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살아 있으나 안으로는 지쳐 잠들어 있습니다.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사랑과 이해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단정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믿어 줄 때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같은 현실을 두고도 해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깨어날 수 있는 존재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모든 생명 안에서 하느님의 새로운 시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끝이라고 말하는 곳에서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열어 주십니다. 믿음은 죽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바라보는 것임을 믿습니다. 깨어남은 과거에 머무는 삶이 아니라, 오늘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그 삶에 감사의 생명이 있습니다.

 

 


말씀 카드 다운로드

마태오복음 9장 25절 말씀 카드 저장하기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말씀카드-성경구절-마태오복음9장25절-20260706-한글.jpg
0.24MB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