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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7.1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7. 1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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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한 마리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떠올리니, "제가 있지 않습니까?"라는 고백이 새롭게 다가와요. 혼자 걸어가는 길이었다면 선뜻 대답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먼저 함께해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오늘도 "제가 있습니다."라고 응답할 작은 용기를 내어 봅니다. 그 작은 용기를 마음에 심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7월 1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7월 1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7월 1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이사 6,1-8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인데,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1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3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4 그 외치는 소리에 문지방 바닥이 뒤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5 나는 말하였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8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내가 아뢰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0,24-33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육신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7월 11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 베네딕토 아빠스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25

✚ 제1독서 04:18

✚ 복음 08:01

✚ 강론 10:31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하느님을 기억하는 삶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 생활의 영적인 토대를 설명하는 『수도 규칙』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수도 규칙』 제7장에는 겸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성인은 겸손의 첫 번째 단계를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늘 눈앞에 두고 잠시도 잊지 않는 것’이라 밝힙니다.

또한 이를 위하여 모든 순간 생각과 말과 행동, 그리고 자기 뜻에서 비롯된 모든 악습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늘 우리를 보고 계시며, 어디서나 우리의 행동을 살피신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말라는 엄중한 권고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감시와 처벌의 시선에 가두시고 통제하시는 매정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행여 우리 발이 돌에 차일세라 천사들을 시켜 지켜 주시는 사랑의 손길이시며(시편 91[90],11-12 참조),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우리를 가장 먼저 살펴보시는 돌봄의 눈길이십니다(139[138],1-5 참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토록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분을 두려움이 아닌 진정한 ‘경외’로 모셔야 하는 까닭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을 늘 의식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잠시도 그분을 잊지 않습니다. 또한 그분의 존재를 언제나 변함없이 기억하는 이들은 결코 하느님보다 높아지려 하거나 그분의 자리를 탐내는 교만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잊고, 그분을 “모른다”(마태 10,33)라고 말하며 제 잘난 맛에 취하여 살아가는 이들이 넘쳐 나는 세상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겸손하게 그분의 뜻을 따르고, 그 사랑 안에서 주님을 “안다”(10,32)라고 자신 있게 증언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좋은 두려움, 나쁜 두려움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오늘 독서와 복음은 모두 두려움과 관련한 말씀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복음 선포를 위해 파견하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이사야서도 두려움 중에 하느님 체험과 파견 체험하는 것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또는 무조건 두려움은 나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론처럼 말하면 모든 두려움이 나쁜 것이 아니고, 나쁜 두려움이 나쁜 것이고 좋은 두려움은 좋은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 특히 많은 젊은이가 나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나쁜 두려움이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고, 모든 정상적인 관계를 불가능하게 하는 두려움이며, 은둔형 외톨이처럼 자기 안에 갇혀 살게 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두려움이란 그 반대이겠지요. 그러나 오늘 저는 이런 구분보다는 다른 구분을 하려고 합니다. 거룩한 두려움. 이것이 좋은 두려움이고 이것이 없으면 나쁜 두려움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진정 좋은 두려움이라고 할 수 없겠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두려움은 하느님의 두려움입니다. 하느님께도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이 잘 못 될까 봐 걱정하고 두려워하듯 하느님은 부모보다 더 우리가 잘 못 될까 봐 두려워하시는데 우리는 이것을 하느님의 두려움이요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거룩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체험케 하는 거룩한 두려움 말입니다. 오늘 이사야가 이런 거룩한 두려움을 보여줍니다. 이사야는 오늘 거룩하신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것을 외칩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우리가 하느님을 체험할 때 그 하느님을 다르게 설명할 수 없고, 오직 거룩하시다는 말 그 하나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서 나 인간은 더럽다고 죄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이사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사실 우리의 죄책감 또는 죄의식은 이런 것이어야 합니다. 시시하게 도둑질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히는 그런 죄의식에서는 벗어나고 하느님을 체험하게 하는 죄의식이거나 하느님을 체험할 때의 죄의식이어야 합니다. 이런 거룩한 두려움이 있을 때 하느님께선 우릴 깨끗하게 또 거룩하게 해주십니다.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와,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그런 다음에야 이사야는 하느님의 예언자로서의 파견에 용감하게 응답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두려워하지 말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신 이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제자들을 격려해 주십니다. 그것은 세 번 반복되고 있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도 함께 설명해주십니다.

동시에, 진정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신지를 밝히십니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이는 하느님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주님만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처벌에 대한 노예적 두려움이 아니라, 희망과 믿음을 지닌 ‘사랑의 두려움’을 말합니다. 곧 ‘자녀로서의 두려움’을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베네딕도에게 있어서도 ‘하느님을 두려워함’(Timor Dei)은 공포나 무서움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출발점이자 ‘거룩한 경외심’, 곧 ‘사랑의 두려워함’으로 제시됩니다.

그는 [수도규칙] “머리말”에서 말합니다.

“아이들아 와서 내 말을 듣거라. 주님을 두려워함을 너에게 가르쳐주겠노라.”(머리말 12)

이를 <집회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두려워함이 주님을 사랑함의 시작이며, 주님에 대한 사랑의 시작은 믿음이다.”(집회 25,12)

그래서 그는 [수도규칙] 제7장 “겸손에 대하여”라는 장에서, “겸손의 첫째 단계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늘 눈앞에 두어 잠시도 있지 않으며”(규칙서 7,10)라고 하시면서, ‘하느님을 두려워함’을 수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초적이고도 중요한 태도로 제시합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현존을 매 순간 의식하는 것으로부터 ‘하느님을 두려워함’은 ‘겸손’을 불러오며, ‘오로지 하느님만을 찾게 하며’(규칙서 58,7 참조), ‘수도원을 주님을 섬기는 학원’(머리말 45 참조)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아무 것도 그리스도보다 낫게 여기지 않게’(규칙서 4,21; 72,11 참조) 됩니다. 그리하여 72장 “수도승들이 가져야 할 좋은 열정에 대하여”라는 장에서는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며”(규칙서 72,9)라고 말합니다.

이는 하느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거나 그분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녀로서의 두려워함’, 곧 ‘사랑하여 두려워함’을 지니게 된 것을 말해줍니다.

이를 <집회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집회 2,15)

이러한 두려움을 두고 <시편> 작가는 말합니다.

“순수한 두려움은 영원합니다.”(시편 19,10)

사실, 이러한 ‘사랑의 두려움’으로 하느님 아닌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성모님께서는 이들에 대해서 노래합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루카 1,50).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0장 31절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박해를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게 하소서.

그 속에서 동행하시는 당신을 만나게 하소서.

진리이신 당신께 희망을 두고, 주님이신 당신께 믿음을 두게 하소서.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신 당신의 사랑으로 제 두려움을 몰아내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무엇을 어떻게 희망해야 하는가

군대에서 단기 하사 교육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박격포 부대에서는 분대장이 되려면 단기 하사 교육을 무조건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신병 훈련소와 같은 교육을 또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지만, 훈련을 마치면 하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사가 되면 월급도 오르고(당시 병장은 만 원, 하사는 3만 5천 원이었습니다), 또 초록색 분대장 견장도 달기 때문입니다.

모든 훈련을 마치고 부대로 돌아와서 교육 마침 신고를 중대장에게 했습니다. 그런데 중대장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단기 하사 제도가 이번 기수부터 없어졌다. 따라서 너희는 하사 견장을 달 수 없다.”

하사 계급장을 달고서 중대장님께 신고하고 떠났는데, 훈련을 마치자 다시 병장으로 강등되었습니다. 월급도 다시 만 원으로 깎였고, 따라서 고생만 했다는 생각에 모든 의욕이 사라졌습니다.

희망은 의욕을 불타오르게 합니다. 절망만 보였던 나치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희망은 있었습니다. 인간은 희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희망할 만한 가치를 찾지 못하더라도 희망할 능력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래서 진짜 희망을 따라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희망이란 일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일이 기대대로 되지 않더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바출라프 하벨)

희망은 막연한 낙관주의도, 잘 안될 것이라는 비관주의 모두 아닙니다. 희망할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희망해야 하는가를 늘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두려워하지 마라.”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주님을 따름으로 인해 모든 어려움이 다 극복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배척을 당하기도 했고, 따라서 권력자들의 박해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어려움으로 끝이 아님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하찮아 보이는 참새도 함부로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자비로운 분이시고,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다 세어 두시는 사랑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안다고 증언하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주님께서도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서서 우리의 변호인이 되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안다고 고백하는 것은 단순히 교리를 지식으로 동의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자기 삶의 우선순위, 불이익을 감수하는 선택, 이웃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는 사실을 삶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진정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프레드 로저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절제와 균형이 중요합니다. 멈추어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 베네딕토는 완벽한 사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상처와 한계를 정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을 참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면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참된 평화는 진실한 사람이 되는 데서 옵니다. 기도와 노동은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일하는 삶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기도와 노동이 하나될 때, 우리의 평범한 하루는 하느님께 드리는 봉헌이 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생활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오늘 해야 할 일을 사랑으로 하며, 매일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참된 삶의 길입니다.

자기 성찰은 자기비난이 아니라 자기 진실성의 출발점입니다. 속도를 늦추고,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며, 맡겨진 오늘의 일을 사랑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하느님 안에 머물라고 권합니다.

기도로 마음을 세우고, 노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침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가장 아름다운 삶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성 베네딕토의 삶은 한마디로, 평범한 일상을 거룩하게 살아낸 삶입니다 매일의 작은 충실함으로 하느님을 드러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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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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