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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7.1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7. 1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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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말씀이 낯설고 어려웠어요. 그런데 오늘은 그 말씀이 사람을 덜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사랑이 제자리를 찾게 하라는 초대처럼 들립니다. 사랑의 중심을 바로 세워 주시고, 주님 안에서 사람을 더 자유롭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7월 13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7월 13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7월 13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이사 1,10-17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너희 자신을 씻어라. 내 눈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1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굳기름에는 물렸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도 나는 싫다.

12 너희가 나의 얼굴을 보러 올 때 내 뜰을 짓밟으라고 누가 너희에게 시키더냐?

13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분향 연기도 나에게는 역겹다. 초하룻날과 안식일과 축제 소집, 불의에 찬 축제 모임을 나는 견딜 수가 없다.

14 나의 영은 너희의 초하룻날 행사들과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그것들은 나에게 짐이 되어 짊어지기에 나는 지쳤다.

15 너희가 팔을 벌려 기도할지라도 나는 너희 앞에서 내 눈을 가려 버리리라. 너희가 기도를 아무리 많이 한다 할지라도 나는 들어 주지 않으리라. 너희의 손은 피로 가득하다.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0,34─11,1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7월 13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제1독서 03:35

✚ 복음 07:37

✚ 강론 09:5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사랑이 제자리를 찾을 때

오늘은 마태오 복음서 10장의 이른바 ‘제자 훈련’이 마무리되는 대목입니다. 앞선 내용이 파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오늘 복음은 그보다 본질적인 스승과 이루는 ‘관계성’을 다룹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꽤나 충격적인 말씀을 건네십니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마태 10,35).

이는 집안 식구들과 정말로 갈라서게 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구속하며 상대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어긋난 애착’의 오류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를 내 곁에 묶어 두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하느님의 계획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왜곡된 사랑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습니다. 상대를 위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또는 나의 안전과 생존을 위하여 이기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첫자리에 둘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왜곡된 사랑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보여 주신 무조건적 사랑(아가페)입니다. 자기를 비우고 제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는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바라보고 그분의 사랑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가닿을 수 없는 경지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선포하는 제자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그 사랑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용기는 무모한 객기가 될 것이고, 우리의 열정은 잠깐 타오르다 이내 꺼져 버리는 불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복음 선포가 쉼 없이 울림을 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나 우리 사랑의 첫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잔정 때문에 큰 사랑을 놓치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오늘 주님께서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고, 일치가 아니라 분열을 주러 왔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껏 알고 있는 것과 당연히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우리가 평화롭기를 바라시고, 우리가 일치를 살아가기를 물론 바라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빼놓고 우리끼리만 평화롭고 일치되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과도 일치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에 일치하는 일치를 바라십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일치하지 않는 일치는 신앙인에게는 일치가 아닙니다.

같은 맥락에서 주님을 따르지 않는 일치는 칼같이 끊어야 하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칼을 주러 왔다 하십니다. 사실 칼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끊어버리는 기능과 찌르는 기능입니다. 찌르는 칼은 죽일 때 쓰는 것이고 당연히 이 칼은 주님께서 주시는 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칼은 끊어버리라는 칼입니다. 욕심을 끊어버리는 것부터 온갖 인연을 끊어버리는 것까지,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에 어긋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끊어버리는 칼입니다. 프란치스코도 그래서 아버지를 끊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프란치스코는 주님의 가르침 대로 가진 걸 다 나눠주려고 했고 아버지는 그것을 반대하여 그에게서 상속권을 뺏으려고 재판을 걸었습니다. 그때 주교님 앞에서 프란치스코가 속옷까지 다 벗어 아버지에게 돌려주며 이제부터 자기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자유롭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선언하였고 그는 그렇게 아버지와의 관계를 칼같이 끊어버립니다.

요즘 아들의 살인 범죄를 조금이나마 줄이려고 한 경찰 아버지와 경찰들의 조직적인 조작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너무나도 잘못된 것이고 잘못한 것이지만 자기가 뒤집어쓰면서 자식에게 최악은 면하게 하려고 한 아비의 사랑과 희생은 제가 보기에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강하고 질긴 것이 부모 자식 간 사랑이기에 칼로 끊어야 하고 칼처럼 끊어야 하는 것이고, 이것이 자기에게도 아들에게도 더 참되고 완전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것을 주님께 가르침 받고 있고 머리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들 하실 텐데 그게 그 아비에게서 볼 수 있듯이 너무 힘들고 괴로운 노릇입니다.

어쨌거나 괴롭고 힘들어도 끊어야 합니다. 스스로 끊든지 그렇지 못하면 하느님께서 끊어주시든지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를 포함해서 잔정 때문에 큰 사랑을 놓치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는 오늘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평화로운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하신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분명,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일진데, 어째서 평화에 칼이 필요한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의 평화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병든 환자에게는 수술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사실, 중병에 걸린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금은보석의 값비싼 선물더미가 아니라, 그를 수술할 수 있는 칼인 것입니다. 병든 몸에다 금은보석으로 치장했다 해서 결코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듯, 병자는 칼로 병을 도려내는 수술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 던지신 칼이야말로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칼입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한 칼이요, ‘말씀’을 이루기 위한 쌍날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내 칼을 받아라.’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의 칼’을 선사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내 목에 칼을 견주시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심장에 꽂혀 우리의 안주와 이기심을 도려내고, 세상에 꽂혀 세상의 불의와 부정을 절단하는 칼입니다.

그렇습니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우리 가슴에 꽂혀 우리를 살리는 칼이요, 이 세상에 던져져 이 세상을 살리는 칼입니다. 죽이기 위한 칼(살인검)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칼(활인검)입니다.

그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십니다.

평화로운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마태 5,9) 곧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칼을 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서>는 한 권의 혁명서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뒤집혀진 혁명가들입니다. 그리고 “참 행복선언”을 선언하는 진복팔단은 혁명선언서입니다. 그것은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혁명입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혁명가가 아니라면, 그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은총의 혁명가가 되어야 합니다. 참으로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은총은 우리를 혁명가가 되게 만듭니다.”(강론, 2013.11.15)

오늘 당신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 아멘.

하오니, 주님! 저희에게는 금은보석의 값비싼 선물더미가 아니라, 수술을 할 수 있는 예리한 칼이 필요합니다. 오늘 제 심장에 당신의 칼을 꽂으시어 저희를 살리소서!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0장 34절
나는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주님! 칼을 주소서, 진리의 말씀인 쌍날칼을 주소서.

제게는 값비싼 선물더미가 아니라, 수술을 할 수 있는 예리한 칼이 필요합니다.

어떤 칼날보다 날카로운 당신 말씀의 칼을 주소서.

제 영혼이 꿰찔리게 하소서.

제 속을 꿰찔러 관절과 골수를 가르고, 마음의 속셈과 생각을 가르소서.

굳은살이 되어 박인 제 완고함을 도려내소서.

오늘 제 심장에 당신의 칼을 꽂으시어 저를 살리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신약이 개발되었다고 합니다. 이 약의 특징은 이러합니다.

1) 기억력과 창의력을 높여 줌.

2) 암과 치매 예방.

3) 식탐을 줄이고 피부를 매끈하게, 몸매는 날씬하게 함.

4) 면역력을 높여서 감기, 독감을 막아 줌.

5) 심장마비, 당뇨병을 줄임.

6) 스트레스를 줄이고, 기분 좋게 함.

이런 약이라면 구매하시겠습니까? 아, 모든 약이 그렇지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본인이 게으른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고, 너무 많이 복용하면 오히려 몸이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복용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복용하면 무조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짜입니다. 어떨까요? 금세 동날 것 같아서 구할 수 없을 것 같지만,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잠’입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은 6시간 27분을 잔다고 합니다. 조사 나라 57개국 중에서 54위를 차지했습니다. 가장 좋은 약을 두고도 제대로 복용하지 못하는 우리인 것 같습니다. 할 일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세상 것에 대한 걱정이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 것보다 주님 것에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고, 잠도 잘 잘 수 있게 됩니다. 건강해지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다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적 평화는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난 정치적, 군사적 평화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져오신 평화는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는 거짓 평화가 아니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참된 평화를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당연히 부모나 자녀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최우선 순위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중심에 둘 때, 비로소 인간적인 가족 사랑도 집착을 넘어 참된 사랑으로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시는 칼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칼로 우리의 부당한 집착과 걱정 등을 잘라내서 주님만을 온전히 따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영적으로도 또 육체적으로도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관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애의 소유이다. 우리는 모두 악함과 과오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는 어리석음을 서로 용서한다. 이것이 자연의 제일 법칙이다(볼테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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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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