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이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아요. 마리아는 예수님이 눈앞에 계셨는데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누구보다 사랑했고, 간절히 찾고 있던 분이었는데도요.
문득 지금의 제 모습과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늘 주님이 없는 세상을 전제로 살아가며, 멀리서만 주님을 찾고 있으니까요.
돌아보면 이미 곁에 계셨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던 순간이 참 많아요. 그럼에도 가장 필요한 순간에 이름을 불러 주시고, 다시 당신 곁으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7월 2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7월 2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아가 3,1-4ㄴ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신부가 이렇게 말한다.
1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2 ‘나 일어나 성읍을 돌아다니리라.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으리라.’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였다네.
3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았네. ‘내가 사랑하는 이를 보셨나요?’
4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았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요한 20,1-2.11-18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7월 22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마리아 막달레나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13
✚ 제1독서 08:42
✚ 복음 12:08
✚ 강론 15:0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랑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요한 20,1)
한 여인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합니다. 구원에 대한 열망은 차가운 주검보다 더 빠르게 식어 버렸고, 이제 아무도 그 곁을 지키지 않습니다.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다른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음을 발견하고는, 누군가 그분을 모셔 갔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울고 있는 마리아 곁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가오십니다. 마리아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분께서 눈앞에 계신데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마리아야!”(20,16)
그제야 마리아의 눈이 열립니다. 죽은 사람과 다름없이 살아가던 자신을 살아 있는 인격체로 대해 주신 오직 한 분,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고 삶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바로 그 ‘스승님’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이 제아무리 ‘신은 죽었다.’라고 하거나 ‘예수는 없다.’라고 외치며 주님을 무덤에 묻으려 해도, 그분께서는 틀림없이 살아 계십니다. 모두 그분을 외면하고 떠나갈지라도 오직 한 사람, 무덤으로 달려가 눈물 흘리며 그분께서 베푸신 사랑을 기억하려는 그 ‘한 사람’이 존재하는 한,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생생한 사건이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만나는 그 ‘한 사람’이 되어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20,18).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붙잡으려 하지 말고 믿으십시오.
오늘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뵌 분일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첫 번째로 전한 사도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가리켜 ‘사도 중의 사도’라고 일컬었습니다. 이는 여성의 활동을 사도적 수준으로 재평가한 것으로, 이러한 관점은 교회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예수의 동등한 제자로서 활동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사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 선포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왔다”는 것을 ‘복음’으로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파견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복음’이 선포된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복음”이 선포된 것입니다. 바로 이로부터 사도들의 시대의 “복음”은 ‘십자가에 처형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 그리스도이시다.’가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사도들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요한 20,17)
이는 당신께서 가시는 곳이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밝혀 주신 것입니다. 곧 당신이 가시는 곳은 ‘아버지’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당신의 아버지’이시면서 동시에, 바로 ‘제자들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이 증언하는 진리요, 부활이 가져온 선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자의 반열에 들게 되었고, 아빠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물으셨습니다.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요한 20,15)
그러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자신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도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습니다.”(요한 20,14 참조). 그런데 “마리아야!”(요한 20,16) 하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이 마리아를 자신의 생각과 편견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했고 주님을 알아보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요한 20,17)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손으로 붙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손으로가 아닌 ‘믿음으로 만지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이 아니라 ‘모르는 낮선 분’으로 살아계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20장 17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주님! 이제는 당신을 놓게 하소서.
제가 붙들면 속박이 되지만 당신이 붙드시면 자유이오니, 이제는 제가 붙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붙들리게 하소서.
붙들고 있는 것은 제 마음일 뿐, 당신은 붙들 수도 붙들려지지도 않으시는 분이오니, 제가 만들어 놓은, 제가 원하는 당신이 아니라 주님이신 당신께 붙들리게 하소서.
당신 사랑은 늘 멈춤이 없사오니, 사랑하는 일에 붙들리어 늘 사랑하는 일에 멈춤이 없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마리아야!
어느 회사의 계약서에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랍스터를 주지 말 것.’
이 회사에서는 매일 랍스터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매일 나오면 더 좋지 않을까요? 그 비싼 고급 음식을 매일 준다고 이런 조항까지 굳이 넣는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현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17세기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인들은 매우 가난했는데, 이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이 랍스터였다고 합니다. 미국 동부 연안에 풍부하게 서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 흔하고 생김새도 이상하다면서 가장 맛없고 피해야 할 음식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 랍스터는 당시에 주로 밭에 비료로 썼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 천대받던 랍스터가 최고의 고급 요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 입맛이 바뀐 것일까요? 아닙니다. 사회적 이미지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부유층의 소비가 늘어나면서 고급 식자재가 된 것이지요. 당시의 사람들이 이런 예측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판단은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계속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변하지 않는 것은 주님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신 ‘사랑’에 따라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성녀께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뵌 분이었습니다. 그토록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처음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요한 20,15)라고 말합니다.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살아 움직이시리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리아야!”(요한 20,16)라고 부르셨고, 곧바로 예수님을 알아뵙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이끌어 낸다.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에 그를 따라간다.”(요한 10,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각을 통해서는 주님을 알아챌 수 없지만,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을 때 비로소 알아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만큼 마리아 막달레나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굳게 믿고 따르는 양과 같은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는 판단만으로는 주님을 알아뵈지 못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분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가장 큰 불행은 만족을 모르는 것이니, 더 얻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다. 만족함을 아는 자는 언제나 만족하며 살게 된다(도덕경).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예수님을 찾는 발걸음은 헛되지 않습니다. 부활은 먼 곳에서 만나는 기적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건네시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부활하신 예수님의 만남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나 세상에 희망을 전한 사랑의 증인이십니다. 하느님을 찾는 갈망이 부활의 문을 엽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십니다.
존재를 새롭게 하는 만남이 시작됩니다. 죽음의 무덤을 찾았던 그녀는 생명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을 찾는 사람은 결국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의 참된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절망의 자리도 은총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절망의 무덤에서도 생명의 희망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삶을 통해 십자가 아래에서도 빈 무덤 앞에서도 떠나지 않는 한결같은 사랑을 배웁니다.
신앙은 주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삶입니다. 주님을 만나 삶이 변화되는 은총을 증언하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는 축일 되십시오. 우리의 삶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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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해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