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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7.2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7. 29.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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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생명을 다시 일으키고, 누군가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인 것 같아요. 오늘도 어김없이 저희 안에 머무르시며 당신 사랑을 완성해 가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7월 2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7월 2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7월 2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제1독서

1요한 4,7-16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10 그 사랑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요한 11,19-27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때에

19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지금 바로 보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말씀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7월 29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소개 00:06

✚ 미사 시작 01:09

✚ 제1독서 04:15

✚ 복음 09:05

✚ 강론 10:5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말씀 묵상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백재욱 스테파노 신부

사랑은 다시 살게 한다.

라자로가 죽었습니다. 그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였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요한 11,5 참조).

요한 복음사가는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고자 그리스 말 ‘아가파오’를 씁니다. 이는 요한이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를 가리킬 때 쓴 낱말로(13,23; 19,26 참조) 예수님과 이들의 사이가 인간적 우정을 넘어선 인격적이고 영적인 사랑의 관계였음을 드러냅니다.

이탈리아의 신학자이기도 한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는 요한 1서 4장을 풀이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좀 더 인격적으로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반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알게 되고 관계를 가짐으로써, 서로 공감하고 서로에게 호의를 가지며 서로를 기꺼이 도와주게 됩니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 사이에는 항상 벽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 벽은 다음과 같이 표현됩니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은 나와 달라.’ …… 하지만 인간이 진심 어린 사랑으로 다른 사람에게 돌아서자마자, 그들 사이에 있는 벽은 희미해지며, 벽이 희미해질수록, 진심은 더욱 순수해집니다”(『하느님의 진리와 사랑』, 197면).

마르타는 라자로의 죽음에 슬퍼하였지만 예수님을 만나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인간이 가장 무력함을 느끼게 되는 죽음이라는 벽을 마주하고서도 절망하지 않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희망을 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라자로의 무덤을 막고 있던 죽음의 벽을 허무시고 그를 다시 생명으로 걸어 나오게 하십니다.

이것은 오직 사랑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랑은 죽음 앞에 무력하지 않습니다. 진심 어린 사랑은 우리 안의 벽을 허물고 우리를 다시 살게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주거니 받거니를 잘하는 사랑

이 축일이 전에는 성녀 마르타의 축일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을 우리 교회는 세 성인의 축일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꼭 이렇게 바꿔야 했습니까? 왜 바꿔야 했습니까? 바꾼 이유가 뭡니까? 한 가족이 함께 주님을 믿고 사랑했다는 것을 본보기 세우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요즘같이 가족이 전부 뿔뿔이이고 형제간에도 서로 경쟁인 시대에 마르타 가족은 실로 모범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가족이 모두 이렇게 된 데는 마르타의 영향이 컸고 그래서 옛날에는 마르타 축일만 지냈던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오실 때 마중 나간 것은 마르타뿐이었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있었다고 복음은 전해 줍니다 이것은 루카복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동적인 마리아이고 주동적인 마르타입니다.

사랑과 믿음도 마르타에게서 동생들에게 전해졌을 것이고, 특히 마리아는 언니의 사랑을 잘 받아들이는 동생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주거니 받거니’를 잘한 형제간이었을 겁니다.

이런 마르타와 마리아를 보면서 우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인가? 사랑하긴 하는데 사랑을 잘하는 사람인가? 종종 사랑을 무기로 지배하려는 사랑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받는 이를 졸아들게 하는 사랑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받는 이가 약해지게 하는 사랑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랑받을 줄만 알고 할 줄 모르며 자존심만 크고 진정한 자존감은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사랑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말로 잘하는 사랑은 이 정도를 넘는 것입니다. 물과 같은 사랑이 최고로 잘하는 사랑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내리사랑의 일종인데 우리는 주님의 내리사랑을 받아 자녀들과 이웃들에게 내리사랑을 하는 것이고, 그것이 신앙적인 사랑이요 최고의 사랑입니다. 반대로 나는 마리아처럼 사랑을 잘 받는 사람인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랑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인가?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지 싫어하는 사람의 사랑은 받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잘 받는 것은 그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을 귀히 여기고 고맙게 여기며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사랑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귀히 여기며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 사람을 내게 보내주셨고, 하느님께서 그 사랑을 통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라고 여기며 받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Give and take를 잘해야 합니다. 하느님 사랑이든 이웃 사랑이든 주거니 받거니 잘하는 우리가 되기로 마음먹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아는 것에서 믿는 것으로

오늘 우리는 성녀 마르타와 마리아와 성 라자로를 기념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요한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1요한 4,9).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신 것입니다(4,10). ...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4,13)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1요한 4,9-16)

그리고 그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이 하느님 안에 머무르게 되는 것임을 밝혀줍니다(1요한 4,16 참조).

오늘 <복음>을 통해서는 우리를 ‘부활의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나는 안다”에서, “나는 믿는다.”로의 초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빠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마르타와 마리아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러자 마르타가 집 밖으로 뛰쳐나와 예수님께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2)

그러나 마르타는 하느님의 사랑과 권능을 ‘알고 있다’고 고백할 뿐, ‘믿는다.’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그렇게 청해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압니다.”(οιδα)라고 고백하지만, 그렇게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πιστιω, emunah)라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녀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3) 하고, 또 다시 “압니다.”라고 고백할 뿐, 여전히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부활에 대한 믿음’을 일깨우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6)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부활과 생명을 준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는 이것을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믿을 때라야, 그 ‘믿음 안’에서 부활과 생명이 부여된다는 말씀입니다. 곧 ‘부활과 생명은 믿는 이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그러자 마침내, 마르타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그리하여, 마르타는 ‘믿음’을 고백하지만, 여전히 ‘부활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중에 라자로의 무덤 앞에서 다시 ‘믿음에 대한 확증’을 일깨워줍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 11,40).

하오니, 주님! 제가 믿게 하소서. 알고 있는 바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1장 26절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주님! 제 생명이 죽고, 당신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안에 살아계신 당신 생명을 보게 하소서.

제가 사라지고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당신의 생명을 살게 하소서.

제가 믿음으로 당신의 영광을 보리이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누구에게나 행복의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행복의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습니까? 많은 이가 재산의 비약적 증가, 주가의 급상승, 승진, 가족의 건강, 자녀의 진학 등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일인 사소한 것도 행복의 카테고리 안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유럽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성지 순례에서 받은 은총으로 충만한 마음이었지만, 돌아와서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바로 시차 적응 문제였습니다. 잠자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바로 이때, 잠을 잘 자는 것도 충분히 행복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또 그 누구도 한가로운 시간 갖는 것을 행복의 카테고리 안에 넣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신없이 바빠서 책 한 자 읽을 시간이 없으면, 한가로운 시간이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커다란 통증을 느꼈습니다. 제대로 걸을 수 없었습니다. 잘 걷는 것도 행복이었습니다.

사소한 것도 ‘행복해’라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어떨까요? 더 많은 행복이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부족한 인간이 완벽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일상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행복을 찾게 됩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입니다. 복음에서는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깊은 절망 앞에서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희망이 되는지 장엄하게 보여줍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슬픔에 잠겨 집에 앉아 있었지만,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밖으로 맞으러 나갑니다. 이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역동적인 믿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주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아 오빠를 잃었다는 아쉬움과 슬픔이 있지만, 곧바로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2)라는 믿음을 표시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라자로를 살라는 기적을 보기 전에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신앙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친히 찾아와 눈물을 흘려주시며 우리의 슬픔을 부활의 희망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사소한 일상 안에서도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라는 주님의 질문에 “예, 주님!”하고 힘차게 응답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의미있는 일만 해야 한다면 인생은 삭막해진다. 일기장에 ‘특별한 일이 없었음’이라고 적은 오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일 수 있을테니(피터 빅셀).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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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요한 4,12) 피어나네 오늘 말씀카드 성경구절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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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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