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생각이 달라도 같은 주님을 바라보며 마음을 모을 때,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마음도 조금씩 풀릴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복음을 읽으며 화해는 같은 생각을 갖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마음 그대로 함께 주님 앞에 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옳은지를 따지기보다 서로를 잃지 않는 길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8월 1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연중 제19주간 수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여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8월 1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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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제 9,1-7; 10,18-22

예루살렘의 역거운 짓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주님께서는
1 내가 듣는 앞에서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도성의 징벌이 다가왔다. 저마다 파멸의 무기를 손에 들고 나와라.”
2 그러자 북쪽으로 난 윗대문 쪽에서 여섯 사람이 오는데, 저마다 파괴의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는 서기관 필갑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와서 구리 제단 곁에 섰다.
3 그러자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때까지 자리 잡고 있던 커룹들 위에서 떠올라 주님의 집 문지방으로 옮겨 갔다. 주님께서는 아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 필갑을 찬 사람을 부르셨다.
4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 도성 가운데로, 예루살렘 가운데로 돌아다니면서, 그 안에서 저질러지는 그 모든 역겨운 짓 때문에 탄식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해 놓아라.”
5 그분께서는 또 내가 듣는 앞에서 다른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저 사람의 뒤를 따라 도성을 돌아다니며 쳐 죽여라. 동정하지도 말고 불쌍히 여기지도 마라.
6 늙은이도 젊은이도, 처녀도 어린아이도 아낙네도 다 죽여 없애라. 그러나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건드리지 마라. 내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여라.” 그러자 그들은 주님의 집 앞에 있는 원로들부터 죽이기 시작하였다.
7 그분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집을 부정하게 만들어라. 그 뜰들을 살해된 자들로 채워라. 가거라.” 그러자 그들은 도성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쳐 죽였다.
10,18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 문지방에서 나와 커룹들 위에 멈추었다.
19 그러자 커룹들은 날개를 펴고, 내가 보는 앞에서 땅에서 치솟았다. 그들이 나갈 때에 바퀴들도 옆에서 함께 나갔다. 그들이 주님의 집 동쪽 대문 어귀에 멈추는데,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20 나는 크바르 강 가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떠받들고 있는 생물들을 보았다. 나는 그들이 커룹임을 알 수 있었다.
21 그들은 저마다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넷인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같은 형상이 있었다.
22 또 그들의 얼굴 형상은 내가 크바르 강 가에서 보았던 모습,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복음 말씀 전체 보기
마태 18,15-20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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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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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2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37
✚ 제1독서 03:21
✚ 복음 08:24
✚ 강론 10:11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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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유청 안셀모 신부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
본당에서 좋은 뜻으로 함께 일하다가도 때로는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오해가 생겨 불화를 겪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도들의 열정이 강하였던 때에도 의견 차이와 다툼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형제가 자기에게 죄를 지었을 때, 단둘이 만나 이야기하라고 이르십니다. 그 일을 사람들에게 먼저 알려 내 편을 만들거나 편을 가르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두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며 문제를 깊이 바라보면 뜻밖에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해가 깊으면 아무리 솔직하게 대화해도 좀처럼 화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혹시라도 있을 상대에 대한 편견을 고쳐 나가거나, 더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대화의 여정이 필요합니다.
두세 사람이 문제를 깨닫고 대화를 하였음에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때는 교회에 알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공동체 전체가 그 사람의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기도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대화를 거부하는 사람은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십니다. 이는 공동체가 하느님을 중심으로 마음을 모아 일치를 이루는 일이 교회 공동체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분쟁과 갈등을 이겨 내려는 초대 교회의 노력은 공동체가 마음을 모아 하느님을 향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마다의 지향으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공동체와 함께하는 기도, 주님께서 필요한 은총을 주시도록 공동체를 위하는 기도도 꼭 바쳐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모을 수 있는 기도이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형제를 얻으려면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저는 오늘 주님 말씀을 묵상하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라는 말씀이 특별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누구입니까? 나에게 죄를 지은 형제입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나의 형제라는 말이고, 나에게 죄를 지은 원수를 형제로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게 죄를 지었더라도 그를 원수가 아니라 형제라고 생각해야지만 개인적으로나 둘이나 셋과 함께 타이르고 더 나아가 공동체와 함께 타이르는 수고도 마다치 않을 겁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단 한 번의 잘못으로도 여지없이 원수 삼기에 타이르기는커녕 화를 낼 것이고, 화를 내기 싫으면 뒷담화나 하고, 그것조차도 싫으면 사랑도 미움도 다 포기하고 무관심해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잘못한 사람을 타이를까 말까 망설이거나 고민하기 전에 그가 내 형제인지를 또는 그를 형제 삼을지 원수 삼을지를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원수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 방식에 대해 보겠습니다.
큰 인물들의 공통점을 보면 원수까지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큰 능력이 있다고 했지만 실은 능력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나에게 저지른 그의 죄와 잘못을 크게 보지 않는 큰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죄와 잘못이 크게 보이면 내 사랑이 작은 겁니다.
그리고 큰 사랑은 형제를 잃지 않으려는 마음이 진심입니다. 주님께서 한 마리 양을 잃지 않기 위해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서까지 찾아 나서지 않겠냐고 하실 때의 그 진심입니다. 이때의 진심(眞心)은 어쩌면 전심(全心)입니다. 그리고 큰 사랑은 바다같이 큰 사랑이고 그것은 바다처럼 가장 낮기에 큰 겸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다든 호수든 낮기에 크고 넓고, 낮은 만큼 크고 낮을수록 넓지요. 이렇게 큰 사랑과 겸손으로 타이르면 우리는 내게 죄지은 원수까지 형제로 얻게 되고, 원수를 내 사람으로까지 만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시 타이를 것인가? 그만큼 사랑하는가? 형제로 생각하는가? 돌아보고 자문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오늘 <복음>의 앞부분은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형제간의 교정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잘못한 형제를 어떻게 혹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고쳐주어야 하는가?”라는 교정절차와 방법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것을 네 단계로 제시해 줍니다.
먼저 혼자 단독으로 하는 교정이요, 다음은 두세 사람이 함께 하는 교정, 교회를 통한 교정,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는 것을 통한 교정입니다.
이는 단지 잘못한 형제에 대한 형식적인 교정방법이나 절차를 말씀하시는 것을 넘어, 오히려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사랑’과 ‘배려하는 마음’이 그 정신입니다. 곧 서로를 형제요,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마음이요, 타인을 ‘남’이라 여기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의 지체라는 사실에서 옵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어제 복음인 “작은이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나라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라는 말씀을 먼저 전제로 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교정’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이거나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형제적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그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 ‘그가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그의 [규칙서](4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잘못한 형제를 고쳐주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은 영혼을 죽이는 살인행위와 같다. 왜냐하면, 잘못한 형제는 마치 독 있는 뱀에 물린 상태와 같은데, 그 독을 빼내어주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것은 잔인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잘못한 형제의 교정’이 지극한 형제적 사랑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말해줍니다. 곧 자신의 불편을 제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적 사랑 때문에 교정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형제를 꾸짖거나 교정할 때는 ‘사랑이 아니면 차라리 말아야 할 일’입니다. 오직 ‘그를 위하는 마음과 사랑과 신뢰’, 그리고 ‘하느님께 의탁해서 할 일’입니다.
그래서 비록 그가 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여전히 그 형제를 위해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사랑으로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마태 18,19)입니다. ‘땅에서 풀어야 하늘에서 풀릴 것이기 때문’(마태 18,18)입니다.
그러니 먼저 ‘마음을 모으는 일’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로 청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곧 스스로가 해결사가 되려고 하지 않고, 아버지께 신뢰로 의탁하는 일입니다.
성 베네딕도는 [수도규칙]에서 “(잘못한 형제들에게) 사랑을 더 베풀 것이며, 또 모든 이는 그를 위해 기도할 것”(규칙서 27,4)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있는 공동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고, 또한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마태 18,20)
하오니, 주님! 오늘 제가 형제를 결코 포기하거나 무관심하지는 말게 하소서. 혹 사랑이 없어서 그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들여다보게 하소서. 작은이 하나라도 잃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뜻이 저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오복음 18장 15절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주님!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형제의 잘못을 앞세우기에 앞서 그가 잘 되기를 위해 기도할 줄을 알게 하소서.
그의 잘못이 드러나거든 그에게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함을 알고 힘을 모아 사랑하게 하소서.
그를 돕는 길이 죄를 찾아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데 있음을 알게 하소서.
제 사랑만으로는 안 될 때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이신 당신께 의탁할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휴일에 공원을 가볍게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나와 웃으며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생각해 보니 사람을 보면 웃을 일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남을 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일, 힘든 일 등 자기 안의 고민으로 심각해질 때는 남을 보지 않습니다. 당연히 웃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 분명 웃을 일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직접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 보이는 인간을 통해 더 쉽게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따라서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 힘듦에만 몰입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웃는 기쁨 안에 머무는 나를 원한다면, 남을 바라봐야 새로운 것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상처받을 것을 생각하고, 또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쩌면 기쁨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하는 ‘죄와 갈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을 전해주십니다. 첫째는 단둘이 만나 타이르라고 하십니다. 철저한 비밀 유지와 인격적 존중입니다. 스스로 깨우치고 돌아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고 하십니다. 이는 죄를 지은 사람을 압박하기 위함이 아니라,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개인적인 감정이나 오해를 배제하고 공정하게 문제를 분별하기 위함입니다.
그래도 듣지 않을 때 비로소 교회에 알리라고 하십니다. 교회 전체의 권위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시지요. 당시 교회가 이방인이나 죄인을 향해 있었던 것을 기억하면, 그를 영원히 저주하고 포기하라는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회개가 필요한 사람임을 인식하고 새로운 선교와 기도의 대상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정은 시시비비를 가려 죄인을 격리하는 데 목적을 두지만, 예수님과 함께하는 우리는 끝까지 사람을 얻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그들 가운데 함께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이웃을 향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사람만이 웃을 수 있습니다. 비록 나와 다름으로 인해 어렵고 힘든 관계가 될 수도 있지만, 함께 기도할 때 주님께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진정한 기쁨의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집단을 이루어야 한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집단을 이루어 협력해야 한다(알랭 드 보통).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계절도 하느님을 만나고 아침도 하느님을 만나고 가을같은 하늘도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치유는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보다 더 큰 나를 하느님 안에서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관계의 자리이며 공동체의 시간입니다. 묶인 것을 풀어 관계를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을 여는 길입니다. 논쟁의 승리보다 형제를 얻는 길을 보여 줍니다.
자세히 보면 상대를 붙잡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내 판단으로 가득 차 있으면 상대가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움켜쥐면 매듭이 되고, 놓아주면 길이 됩니다. 마음의 매듭을 푸는 것이 복음입니다.
사람을 되찾는 기쁨입니다. 풀어주면 내가 풀립니다. 상대방을 위한 용서가 어느 순간 나 자신의 해방이 됩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입니다. 과거의 잘못이 그 사람의 미래까지 완전히 결정하도록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가 우리의 전부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자신을 과거에 묶어 두지 마십시오. 현재를 어떻게 대하는가가 곧 우리가 하느님을 어떻게 만나는가와 연결됩니다.
사람을 묶는 것은 판단이지만, 사람을 풀어 하늘을 여는 것은 복음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은 서로의 매듭을 풀어 주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사랑의 손길이 향할 곳은 관계이며 과거의 매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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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 6가지
마음에 머무른 한 말씀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지금 이 순간을 빚어 갑니다. 오늘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의 모든 순간에 천천히 스며들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