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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남자세례명 15가지

피어나네 2023. 2.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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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가비노, 마르첼로, 만수에토, 메스로프, 바르바토, 발레리오, 베아토, 보니파시오, 아욱시비오, 알바레스, 율리아노, 잠브다, 제오르지오, 콘라도, 푸블리오, 총 15분 목록이에요.

 

2월 19일이 영명축일인 남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2월 19일 여자세례명 벨리나, 엘리사벳 피체나르디,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2월 19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5가지

 

 

 

 

2월 19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가비노

  2. 마르첼로

  3. 만수에토

  4. 메스로프

  5. 바르바토

  6. 발레리오

  7. 베아토

  8. 보니파시오

  9. 아욱시비오

  10. 알바레스

  11. 율리아노

  12. 잠브다

  13. 제오르지오

  14. 콘라도

  15. 푸블리오

 

2월 19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5가지

 

 

1. 가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Gab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5년 로마

 

 

가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비누스.

 

 

가비노 자료

성 가비누스(또는 가비노)는 로마 출신 그리스도인으로 교황 성 카이우스(Caius, 4월 22일)의 형제이며 성녀 수산나(Susanna, 8월 11일)의 아버지이다. 그는 또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친척으로 보인다. 성 가비누스는 사제로 서품되었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기아형 또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순교록은 그다지 신뢰할만하지는 않다. 성 가비누스는 교회미술에서 문이 열린 감옥 안에 있는 죄수로서 표현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르첼로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르첼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자료

성 푸블리우스(Publi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와 동료들은 로마제국의 아프리카 총독령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만수에토

 

  • 가톨릭 성인 이름
    Mansue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90년 밀라노

 

 

만수에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만수에또, 만수에뚜스, 만수에투스.

 

 

만수에토 자료

로마에서 태어난 성 만수에투스(또는 만수에토)는 672년경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열성와 지혜로써 교구를 사목했으며, 그리스도 단의론(Monotheletism)에 대항하는 논문을 작성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메스로프

 

  • 가톨릭 성인 이름
    Mesrop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41년경 아르메니아

 

 

메스로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쇼츠, 마쇼토, 메스로브, 메스롭, 메쓰로프, 메쓰로프, 메쓰롭.

 

 

메스로프 자료

아르메니아의 타론(Taron)에서 태어난 성 메스로프 마쇼츠(Mesrop Mashtots)는 장성한 후 아르메니아의 정부 관리가 되었으나 마음을 바꾸어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성 대 나르세스(Narses, 11월 19일)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그리스어, 시리아어 그리고 페르시아어를 공부하는데 전념하여 그 분야의 권위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성 대 이사악(Isaac, 9월 9일)과 합류하여 아르메니아 선교활동의 선봉장이 되었음은 물론 아르메니아어의 알파벳 구성에 크게 기여하였고, 신약성서와 잠언서를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하였다.

또한 그는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야(Georgia)에 학교를 세웠으며, 그루지야 알파벳을 창제하였고, 죽을 때까지 발라르샤파트(Valarshapat)에서 설교하였다.

그는 80세를 넘기고 선종하였는데 '선생님'이 그의 별명이었다. 이는 그의 탁월한 교육 활동 때문이었다. 주교였던 것으로 전해지는 그는 때때로 메스로브(Mesrob)로도 불린다. 그의 예전 축일은 11월 25일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바르바토

 

  • 가톨릭 성인 이름
    Barb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82년 베네벤토

 

 

바르바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르바또, 바르바뚜스, 바르바투스.

 

 

바르바토 자료

성 바르바투스(또는 바르바토)는 이탈리아의 베네벤토 출신으로서 인근 모르코나(Morcona)의 성 바실리우스(Basilius)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하였다. 그는 특히 이교 신앙 타파에 주력했는데, 로무알드 공작을 비롯하여 수많은 귀족들을 미신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

그 당시 베네벤토 인근의 도시 국가들은 콘스탄스 2세 황제군으로부터 큰 곤경에 처해 있었는데, 성 바르바투스가 미신을 타파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주민들이 공경하던 큰 나무를 베어내고 황금 독사를 녹여버렸다. 이로써 주민들의 미신은 사라졌고 그리스도교가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이즈음에 베네벤토의 일데브란드(Ildebrand)를 계승하여 주교로 착좌하였다.

680년 그는 교황 성 아가토(Agatho, 1월 10일)의 요청으로 로마(Roma)로 가서 공의회 중에 교황을 보좌하였고, 다음해에는 그리스도단의론(monotheletism)에 대항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열린 공의회에 참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발레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Vale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50년경 앙티브

 

 

발레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발레리우스.

 

 

발레리오 자료

성 발레리우스(또는 발레리오)는 프랑스 남부 앙티브의 주교로서 그 지방의 복음화를 위해 주력하였고 수도원의 확산에 기여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베아토

 

  • 가톨릭 성인 이름
    Be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신학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98년 리에바나

 

 

베아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아또, 베아뚜스, 베아투스.

 

 

베아토 자료

성 베아투스(또는 베아토)는 730년경 오늘날의 에스파냐 북부에 위치한 아스투리아스(Asturias) 왕국의 리에바나 지역(오늘날의 칸타브리아, Cantabria)에서 태어났다.

엘리판두스(Elipandus)라는 톨레도(Toledo)의 대주교가 그리스도가 천주 성부의 양자일 뿐이라는 주장(그리스도 양자론, adoptionism)을 공공연하게 가르치고 있을 때, 하느님은 성 베아투스를 보내시어 그를 치게 하셨다.

리에바나의 성 마르티누스(Martinus)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던 그는 톨레도 대주교의 오류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즉시 글과 설교를 통해 그의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였다.

일개 수도사제인 그가 톨레도의 대주교를 상대한 이 논쟁은 당시 사람들의 흥밋거리였다. 그러나 승리는 수도사제의 것이었다.

신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그는 776년에 가장 주목할 만한 책인 “요한 묵시록 주해서”를 발간했고 이어서 두 차례의 개정판을 냈다. 이 책은 중세 때 널리 알려졌고 모자라빅 전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비록 원본은 소실되었으나 10세기부터 16세기 중에 필사된 사본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를 보통 베아투스본(本)이라 부른다. 그 안에는 적어도 26개의 삽화가 포함되어 있는데, 용, 악마, 화재 등으로 인간의 고통을 표현하고 하늘의 군대나 천상 예루살렘과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다양한 전통이 융합된 삽화들은 모자라빅 뿐만 아니라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으로도 꾸며져 있다. 그리고 주해서에는 세비야(Sevilla)의 성 이시도루스(Isidorus, 4월 4일)의 “어원학”에 기술된 내용을 묘사한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의 세계지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 지도 또한 원본은 소실되었지만 몇몇 사본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그는 모자라빅 전례에서 사용한 여러 찬미가의 저자이기도 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보니파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Bonifac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265년 로잔

 

 

보니파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보니파시우스, 보니파키오, 보니파키우스, 보니파티오, 보니파티우스, 보니페이스.

 

 

보니파시오 자료

벨기에 브뤼셀(Brussel)에서 출생한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또는 보니파시오)는 17세 때에 프랑스 파리(Paris)로 유학을 떠났다가 파리 대학교의 유명한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과 성 보니파티우스 사이에 야기된 분쟁 때문에 고통을 당했는데, 결국은 학생들이 그의 강의를 듣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그는 파리를 떠나 쾰른(Koln)으로 갔고, 그곳에서 단지 2년을 지내다가 스위스 로잔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정성을 다하여 교구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였지만 거의 8년 동안이나 자신이 큰 불신을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파리 대학교의 사건이 와전된 것이 주요 이유였다. 그는 마침내 프레데릭 황제군에 의하여 심한 부상까지 입었다. 그래서 그는 교구장직을 떠나야겠다고 판단하여 교황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교황은 그를 브뤼셀의 시토회 수녀원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는 실제 시토회 회원으로 서원하지는 않았지만 수도원 경내에서 엄격한 보속생활을 하며 여생을 지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02년에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아욱시비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uxib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키프로스

 

 

아욱시비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욱시비우스, 아욱씨비오, 아욱씨비우스.

 

 

아욱시비오 자료

성 아욱시비우스(또는 아욱시비오)는 복음사가 성 마르코(Marcus, 4월 25일)에 의해 개종한 후 세례를 받았고,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에 의해 키프로스 솔리(Soli)의 초대주교로 축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알바레스

 

  • 가톨릭 성인 이름
    Alvarez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사, 설교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430년경 코르도바

 

 

알바레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바레즈, 알바로, 앨버레즈.

 

 

알바레스 자료

알바레스의 출생지는 포르투갈의 리스본(Lisbon) 또는 에스파냐의 코르도바라는 주장이 있는데 코르도바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는 1368년에 그곳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하여 놀라운 설교가가 되었고, 초기에는 에스파냐의 안달루시아(Andalucia)에서, 그 후에는 이탈리아에서 높은 명성을 얻었다.

그는 또 황녀 카타리나(Catharina)의 고해신부 겸 고문이 되어 어린 왕 요한 2세의 초기 교육을 담당하였다. 그와 그의 동료 수도자들은 낮에는 설교 일을 하고 밤에는 거의 온밤을 지새우면서 기도에 전념하였다.

그들의 식사는 애긍에 의존하였는데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코르도바의 시장에 나가 구걸하였다. 그의 회개생활은 날이 갈수록 엄격해졌다. 그는 자비의 성모께 봉헌된 성당까지 무릎으로 걸어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41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승인되었다. 그는 알바로(Albaro)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율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Jul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율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율리아누스, 줄리안, 줄리언.

 

 

율리아노 자료

성 푸블리우스(Publi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또는 율리아노), 성 마르첼루스(Marcellus)와 동료들은 로마제국의 아프리카 총독령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잠브다

 

  • 가톨릭 성인 이름
    Zambd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예루살렘

 

 

잠브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잠브다스.

 

 

잠브다 자료

성 잠브다(Zambda)는 예루살렘의 37번째 주교로 전해진다. 그는 테반(Tehban) 군단의 전설과 연관되어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제오르지오

 

  • 가톨릭 성인 이름
    Georg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884년경 로데브

 

 

제오르지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오르그, 게오르기오, 게오르기우스, 제오르지우스, 조지, 호르헤.

 

 

제오르지오 자료

프랑스 남부 로데즈(Rodez)에서 태어난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또는 제오르지오)는 루에르그(Rouergue)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다.

그런데 862년 노르웨이인들에 의해 수도원이 파괴되자 로데즈 교구의 바브르(Vabres)로 이동하였다. 그는 상당히 연만한 나이에 로데브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콘라도

 

  • 가톨릭 성인 이름
    Conra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자선가, 3회원

  • 활동 연도와 지역
    1290-1351년 피아첸차

 

 

콘라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콘라두스, 콘라드, 콘래드.

 

 

콘라도 자료

성 콘라두스(Conradus, 또는 콘라도)는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 귀족의 딸과 결혼했다. 평소 사냥을 즐기는 그는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감이 덤불 속에 숨자 하인들에게 덤불을 태우라고 명했다.

그때 갑자기 강풍이 휘몰아쳐서 옥수수밭을 비롯해 숲 전체를 태우고 인근 마을까지 불태우는 불상사로 번졌다. 거센 불길에 당황한 그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고, 근처에 있던 한 가난한 농부가 방화범으로 오해받아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었다.

뒤늦게 한 소작농이 누명을 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고심 끝에 재판관 앞에 가서 자신의 실수로 불이 났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으로 그 피해를 보상하기로 약속하고 이를 실행했다.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 성 콘라두스와 그의 아내는 재물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이 모든 일이 다 하느님의 섭리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성 콘라두스는 수하 사람들을 모두 자유로운 신분으로 해방해주고, 아내는 클라라회에 입회하도록 주선한 후 자신은 작은 형제회의 재속 3회원이 되어 순례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로마와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시칠리아(Sicilia)의 팔레르모(Palermo)를 거쳐 섬의 남쪽 끝에 있는 노토(Noto) 계곡의 어느 한적한 곳의 동굴에서 30년 이상을 살았다.

만년에 그의 영성은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했고, 예언과 기적의 은사도 받았다. 성 콘라두스는 사람들로부터 숨은 은둔생활을 원했지만, 그의 뛰어난 성덕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의 도움과 지도를 받고자 몰려들었다.

임종하기 얼마 전, 그는 주교를 방문해 고해성사를 본 후 다시 노토 계곡으로 돌아와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처럼 새들과 야생동물들을 벗 삼아 살다가 1351년 2월 19일, 자신이 예언한 날에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장례식은 그의 유언대로 노토 지역의 성 니콜라우스(Nicolaus) 성당에서 거행되었고, 그곳에 묻혔다. 그 후 그의 무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면서 그곳은 순례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머물던 동굴이 있는 산은 훗날 콘라드 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1515년 교황 레오 10세(Leo X)는 노토 지역에서 그의 축일을 지내도록 허락했고, 후에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그에 대한 공경이 프란치스코회 전체로 확대되었다. 그는 비록 공식적으로 시성되지는 않았지만, 프란치스코회에서 2월 19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푸블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ub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푸블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뿌블리오, 뿌블리우스, 푸블리우스.

 

 

푸블리오 자료

성 푸블리우스(또는 푸블리오),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마르첼루스(Marcellus)와 동료들은 로마제국의 아프리카 총독령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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