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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여자세례명 6가지

피어나네 2023. 4. 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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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가타리나 토마스, 그라체,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 에텔부르가, 율리아나, 이레네, 총 6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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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남자세례명 데르펠 가다른, 빈첸시오 페레르, 알베르토, 제노, 제랄도, 프로보, 총 6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4월 5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6가지

 

 

 

 

4월 5일 여자세례명 목록

 

  1. 가타리나 토마스

  2. 그라체

  3.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

  4. 에텔부르가

  5. 율리아나

  6. 이레네

 

4월 5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6가지

 

 

1. 가타리나 토마스

 

  • 가톨릭 성인 이름
    Catherine Thomas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수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574년 팔마

 

 

가타리나 토마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까따리나, 카타리나, 캐서린.

 

 

가타리나 토마스 자료

성녀 카타리나 토마스(Catharina Thomas, 또는 가타리나)는 일생동안 에스파냐 발레아레스 제도 마요르카(Mallorca) 섬에서 지냈다.

그녀의 양친은 막내딸인 카타리나가 일곱 살 되던 해에 모두 운명하여 어려서부터 슬픈 나날을 보내며 삼촌 집에서 자랐다. 그런데 그녀는 어려서부터 소량이지만 약물 상용 복용자였다. 이를 극복하라고 주위에서 야단이었지만 그녀는 이를 아예 무시해 버렸다. 그러므로 그녀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였다.

15세 되던 해에 그녀는 성 안토니우스(Antonius)와 자신의 수호성인인 성녀 카타리나의 환시를 보게 되었는데, 이때 그녀는 수도생활에 대한 열망이 치솟았고, 이 사실을 은수자로 지내던 안토니우스 카스타네다 신부에게 말씀드리고 판단을 기다렸다.

얼마 후에 그녀의 성소를 시험한 안토니우스 신부는 이를 허락하고 수도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팔마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회를 선택하고 입회하였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는 20세였다.

입회 초부터 그녀의 탁월한 성덕과 겸손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봉사가 돋보이기 시작하여 장상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연간 13-15일 동안은 탈혼 상태에서 지냈으며, 어떤 때는 하루 종일 그런 상태에서 보내기도 하였다.

때때로 간경증 환자처럼 전혀 생기 없는 상태가 되었고, 또 예언의 은사도 받았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수녀원 내에서 맡은 소임을 게을리 한 적은 없다고 한다. 성녀 카타리나 토마스는 자신이 예언한 해(41세)에 운명하였으며, 1792년에 시복되고, 1930년에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그라체

 

  • 가톨릭 성인 이름
    Grace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그라체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그라케, 그레이스.

 

 

그라체 자료

성 프로부스(Probus)와 성녀 그라체는 전통적으로 웨일스(Wales) 출신의 남편과 아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콘월(Cornwall) 지방에 있는 트레실리아누스(Tressilianus) 또는 프로부스 성당은 이 부부에게 봉헌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

 

  • 가톨릭 성인 이름
    Mary Crescentia Hoss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682-1744년 카우프보이렌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리, 미르얌, 미리암, 크레센씨아, 크레센티아, 크레셴시아, 크레스켄티아, 크레쎈씨아, 헤스, 헤쓰, 호스.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 자료

성녀 마리아 크레스켄티아 회스(Maria Crescentia Hoss, 마리아 크레센시아 회스)는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Bayern)의 카우프보이렌에서 가난한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양친의 신앙생활이 매우 열심하였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단순함의 표양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 자녀들은 모두 세례를 받고 자주 성당에 가서 기도하곤 하였다.

성녀 마리아 크레스켄티아 회스는 집주위에 있는 프란치스코 수녀회 성당으로 자주 성체조배를 하러 다녔는데, 어느 날 그녀는 십자가로부터 신비스런 목소리를 들었다.

“이곳이 네가 거처할 집이니라.”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께 간청하여 수녀원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집안이 너무 어려우니 21세까지만 기다리라는 말씀을 듣고 열심히 가사를 도왔다.

드디어 이 약속은 지켜졌다. 그녀의 수녀원 생활은 겸손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지참금을 전혀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아주 조그마한 방이 마련되었으나 지참금을 지불한 새 입회자에게 넘겨주어야 했고 자신은 그녀의 방 마루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이 모든 수모를 아주 겸손하게 받아들였고, 그럼으로써 높은 성덕을 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장상이 임명되었을 때에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그녀의 높은 덕을 보고 살아있는 성녀로 높이 평가한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수련장과 원장직까지 역임하였다.

그녀는 수많은 환시를 보았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특히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한 신비적 체험이 많았다. 이 체험은 매주 금요일마다 일어났다. 그러므로 그녀의 영향은 수녀회 뿐만 아니라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참 지혜와 겸손으로부터 큰 감명을 받고 돌아갔으며, 교회의 지도자들도 가난한 이 수녀의 의견을 듣고자 애썼다. 성녀 마리아 크레스켄티아 회스는 190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11월 25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에텔부르가

 

  • 가톨릭 성인 이름
    Ethelburg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47년 켄트

 

 

에텔부르가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딜부르가, 에딜브루가, 에뗄부르가, 에텔브루가.

 

 

에텔부르가 자료

켄트의 왕이며 캔터베리(Canterbury)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에 의해 그리스도 교회로 개종했던 성왕 에텔베르트(Ethelbert, 2월 26일)의 딸인 성녀 에텔부르가는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외교인 왕 성 에드윈(Edwin, 10월 12일)과 결혼하였다.

그녀와 그녀의 전속사제 성 바울리누스(Paulinus, 10월 10일)는 국왕을 설득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 때문에 국왕 성 에드윈은 국내에 그리스도교의 증가를 권장하였으나, 633년에 왕이 죽자 이교도들의 여러 종교가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이 때문에 성녀 에텔부르가와 성 바울리누스는 켄트로 되돌아가야만 하였다. 그녀는 리밍게(Liminge)에 수도원을 세우고 죽을 때까지 그곳의 원장으로 살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율리아나

 

  • 가톨릭 성인 이름
    Julia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신비가, 수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191/2-1258년 코르닐롱산

 

 

율리아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율리안나, 줄리아나, 쥴리아나.

 

 

율리아나 자료

성녀 율리아나와 그녀의 쌍둥이 자매인 아녜스(Agnes)는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지방 리에주(Liege) 교외의 레틴느(Retinnes)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다섯 살 때 고아가 되어 고향 인근 코르닐롱산에 새로 설립된 시설에서 수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기도와 봉헌 생활을 접하고 수녀들의 봉사활동을 거들며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던 성녀 율리아나는 13살에 수녀원에 입회하였다.

또한 일찍이 성체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이미 10대 때에 여러 차례 기도 중에 성체 환시를 경험했다. 반복되는 환시를 통해 성녀 율리아나는 전례 중에 교회의 생명과도 같은 성체를 공경하고 현양하는 축일이 없음을 일깨워주셨음을 깨닫고 성체 축일 제정을 원했으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1225년에 수녀원장으로 선출된 후 성녀 율리아나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환시 내용을 기초로 성체 축일을 만들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먼저 자신의 고해 사제에게 환시 사실을 고백했고, 이어 여러 신학자와 주교들과 접촉하며 환시의 진실성을 확인해 갔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오해도 받고 제재를 당하기도 했지만, 마침내 리에주의 주교가 1246년 교구 내에서 처음으로 ‘주님의 성체 성혈 축일’을 제정해서 전례 중에 기념했다. 그런데 리에주의 주교가 그해 말에 선종하면서 성녀 율리아나의 사도직 활동도 순탄하지 않았다.

그녀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수도 규칙을 도입해 엄격한 규율을 되살리려고 했지만, 성직매매로 사제가 된 한 성직자의 모함으로 수녀원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당시 성녀 율리아나가 살던 리에주 지역은 교황파와 황제파로 나뉘어 종교적 · 정치적으로 갈등이 극심했었다. 성녀 율리아나는 일단 다른 지역으로 피신해 지내면서 모든 상황을 기도로 용서하고 참아냈다.

그 후 지인의 도움으로 나무르(Namur) 지역의 시토회 수도원에 피난처를 마련해 은수자로 살면서 여생을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축일 제정과 보급을 위해 애쓰며 성체 신심을 현양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1258년 4월 5일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포세스라빌(Fosses-la-Ville)에서 평화로이 선종하였다.

성녀 율리아나가 선종한 후 1261년에 교황으로 선출된 우르바누스 4세(Urbanus IV)는 성녀 율리아나와 같은 성체 환시를 체험한 후 당시 몇몇 나라에서 지켜오던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축일을 보편교회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자 했다.

그래서 당대 석학들에게 성무일도와 미사 전례문에서 사용할 성체 찬미가 작성을 맡겼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월 28일)의 성체 찬미가를 선택해 1264년 보편교회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축일’을 지내도록 선포하였다.

성녀 율리아나는 1869년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리고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1996년 5월 28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제정 750주년을 기념하는 서한에서 그녀에 대해 언급하였고,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 또한 2010년 11월 17일 일반알현에서 성녀 율리아나의 삶과 성체 성혈 축일 제정에 이바지한 공로에 대해 칭송하였다.

리에주의 성녀 율리아나(St. Juliana of Liege)로도 불리는 그녀의 축일은 4월 6일에 기념하기도 하고, 리에주 교구에서는 8월 7일에 더 성대히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이레네

 

  • 가톨릭 성인 이름
    Irene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이레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이레나, 이레네아.

 

 

이레네 자료

성녀 아가페(Agape)와 그녀의 동생 성녀 키오니아(Chionia)와 성녀 이레네는 마케도니아 테살로니카(Thessalonica)의 신자였는데, 이들은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성서 소지 금지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가지고 있다가 체포되었다.

그들은 마케도니아의 둘케티우스(Dulcetius) 총독 앞에 끌려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이교의 신에게 바친 희생물을 먹으라는 고문을 물리치고 마침내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로써 성녀 아가페와 성녀 키오니아는 화형에 처해졌으나, 총독은 성녀 이레네를 살려두고 다시금 신앙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였다.

성녀 이레네가 끝내 굽히지 않자 총독은 그녀를 매음굴로 보내도록 명하였다. 여기서 그녀의 옷이 벗겨지고 매음을 강요당하였을 때에도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할 수 없이 총독은 사형을 언도하였다. 화형에 처했다는 설도 있으나 그녀의 목에 화살을 쏘았다는 전설도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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