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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남자세례명 13가지

피어나네 2023. 5.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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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바우델리오, 베르나르디노, 아나스타시오, 아스테리오, 아우스트레지실로, 아퀼라, 알렉산데르, 알베르토, 에텔베르트, 오를란도, 탈렐레오, 테오도로, 힐라리오, 총 13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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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여자세례명 골룸바, 리디아, 바실라, 플라우틸라, 총 4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5월 20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3가지

 

 

 

 

5월 20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바우델리오

  2. 베르나르디노

  3. 아나스타시오

  4. 아스테리오

  5. 아우스트레지실로

  6. 아퀼라

  7. 알렉산데르

  8. 알베르토

  9. 에텔베르트

  10. 오를란도

  11. 탈렐레오

  12. 테오도로

  13. 힐라리오

 

5월 20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3가지

 

 

1. 바우델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Baude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3세기? 님

 

 

바우델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우델리우스, 보델리오, 보델리우스.

 

 

바우델리오 자료

프랑스 남동부의 옛 지방명인 프로방스(Provence)의 최대 성지는 성 바우델리우스(또는 바우델리오)의 무덤이다. 오를레앙(Orleans) 태생의 성 바우델리우스는 결혼한 후에 남부 프랑스 지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왔다고 한다.

그가 어느 날 님(Nimes)에 도착했을 때 마침 유피테르(Jupiter) 축제일을 맞아 수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다. 그는 대중 앞에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열렬히 선포하고 이교 신앙의 그릇됨을 용감하게 질타하였다. 성 바우델리우스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어 도끼로 목이 잘리는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님 지방의 수호성인이 된 성 바우델리우스에 대한 공경은 프랑스와 북부 에스파냐로 널리 퍼졌다. 그래서 그 지역에 약 4백 개 이상의 성당들이 성인에게 봉헌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베르나르디노

 

  • 가톨릭 성인 이름
    Bernardin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신학자, 설교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380-1444년 시에나

 

 

베르나르디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르나르디누스, 베르나르딘.

 

 

베르나르디노 자료

성 베르나르디누스(Bernardinus, 또는 베르나르디노)는 1380년 9월 8일 이탈리아 시에나 근방 마사 마리티마(Massa Marittima)에서 정치가였던 아버지 톨로 델리 알비체스키(Tollo degli Albizzeschi)와 어머니 네라 델리 아베두티(Nera degli Avveduti)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3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다시 3년 뒤 아버지마저 여의고 고아가 되어 친척에게 맡겨져 양육되었다.

1391부터 1397년까지 시에나에서 인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그곳 대학에서 3년간 교회법을 배운 그는 라틴어 고전뿐만 아니라 성경과 신학에도 심취하였고 신심의 실천에도 열의를 보였다.

1400년 흑사병으로 온 나라가 공포의 도가니에 빠졌을 때, 그는 약 4개월 동안 시에나의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Santa Maria della Scala) 병원에서 흑사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병에 걸리기도 하였다.

1402년 작은 형제회에 입회한 그는 이듬해 9월 8일 시에나 외곽 콜룸바이오(Columbaio)에 있는 수도원에서 서원을 하고, 1404년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처음으로 세지아노(Seggiano)에서 설교를 시작한 이래 죽기까지 설교 활동을 계속하였다.

성 베르나르디누스는 1408년부터 다음 해까지 페라라(Ferrara)에서, 1410년에는 시에나와 파비아(Pavia)에서 설교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예수 성명(聖名)에 대한 설교를 시작함으로써 롬바르디아(Lombardia) 지역의 복음화에 이바지하였다.

1417년부터 그는 밀라노(Milano)에서 대중 설교가로서 활동하면서 뛰어난 웅변술과 정열적인 설교로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걸어서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 지방을 순회하며 정열적으로 설교하였는데, 그의 주된 설교 주제는 예수 성명에 대한 공경과 참회와 사랑의 실천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특별히 도박, 고리대금업, 마술, 미신 등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한편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의 정치적 권력 투쟁을 그 시대의 근본적인 악이라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대중에 대한 그의 설교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그의 거룩한 생활 때문이었다.

그는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의 모범을 본받고자 노력했고, 수도회의 회칙을 충실히 준수하며 도덕적 회개와 삶의 개선을 촉구했다. 그럼으로써 이탈리아 전역에서 많은 개종자와 냉담자들을 교회로 인도하였다.

그는 특별히 예수 성명(Jesu Nomen Sanctum)의 신심을 전파했는데, 이 신심은 교회에서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사람들이 그 신심의 깊은 신학적 기초를 깨닫도록 그리스어 예수(ΙΗΣΟΥΣ)의 첫 세 글자를 로마자로 표시한 ‘IHS’를 고안하였다.

그가 만들어 낸 이 모노그람마(Monogramma)는 ‘이 표징 안에서’(in hoc signo),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표징으로’ 혹은 ‘인간의 구원자 예수’(Iesus Hominum Salvator)라는 뜻을 지닌다.

그는 빛나는 태양의 중앙에 이 글자를 새긴 문장(紋章)을 사용하여 설교를 마무리할 때마다 공경 예절을 거행했다. 그는 이 문장으로 어떤 미신적인 상징이나 특정 파벌의 훈장 등을 대체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는 예수의 성명을 성경의 요약이요 일치의 상징으로 생각하였다.

그 후 성 베르나르디누스와 그의 제자들의 사도직을 통해서 예수 성명에 대한 공경은 널리 확산하였고, 이 문장은 교회와 가정, 공적인 건물 등에서도 사용되게 되었다.

반면에 당시 일부 인문주의자들과 신학자들은 이러한 그의 활동을 불신하고, 그러한 신심과 기도를 위험한 혁신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1424년 볼로냐(Bologna) 대학에서 예수 성명 신심에 대한 공식적인 반박이 시작되었다.

무려 8년 동안 그는 교도권과 신학계로부터 숱한 고발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지만 1432년 1월 7일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Eugenius IV)의 칙서 “아포스톨리캐 세디스”(Apostolicae Sedis)를 통해 논쟁의 종지부를 찍고 그의 활동이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마르티누스 5세(Martinus V) 교황으로부터 시에나의 주교로 임명받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설교 활동에 전념하였다.

또한 1430년부터 12년 동안 프란치스코회 엄률회의 총대리로 활동하면서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더 엄격한 규칙을 회복하자는 수도회 내부의 개혁 운동에서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1439년에는 피렌체(Firenze) 공의회에 참석하여 그리스 정교회와의 일치를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1444년 고향에서 설교를 마친 성 베르나르디누스는 고령으로 쇠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나폴리(Napoli) 왕국을 복음화하기 위해 출발했다. 그러나 아브르초(Abruzzo)의 라퀼라(L’Aquila) 부근에서 열병에 걸려 라퀼라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 머무르다가 5월 20일 선종하여 그곳 성당에 묻혔다.

그 뒤 그의 무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자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는 시성을 위한 조사를 시작했고, 1450년 5월 24일 교황 니콜라우스 5세(Nicolaus V)에 의해 사후 6년 만에 성인품에 올랐다. 그리고 그의 유해를 모시기 위해 1454~72년 사이에 라퀼라에 성 베르나르디누스 대성당이 건립되었다.

성 베르나르디누스는 예수 성명 신심을 확산시킨 것 외에도 높은 성덕으로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개혁하고 그리스도교의 설교 형식과 내용을 쇄신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 베르나르디누스는 주로 사방으로 빛이 퍼져나가는 태양 한가운데 ‘I.H.S’가 새겨진 명판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 외에도 그의 발밑에 세 개의 주교관(主敎冠)을 그려 넣기도 하는데, 이는 그가 거부했던 세 곳(시에나, 페라라, 우르비노)의 주교직을 의미한다. 그는 설교가, 광고업자, 홍보 담당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아나스타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nasta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10년 브레시아

 

 

아나스타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나스따시오, 아나스따시우스, 아나스타시우스.

 

 

아나스타시오 자료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 브레시아의 주교였던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는 아리우스(Arius) 이단으로부터 롬바르디아 사람들을 개종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11월 4일)는 1581년에 그의 유해를 장엄하게 이장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아스테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ste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4년

 

 

아스테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스떼리오, 아스떼리우스, 아스테리우스.

 

 

아스테리오 자료

로마군 장군의 아들로 레바논(Lebanon)에서 태어난 성 탈렐레우스(Thalelaeus)는 소아시아 지방 실리시아(Cilicia)의 아나자르부스(Anazarbus)에서 살던 의사였다.

그는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술을 베풀었기에 ‘자비로운 사람’이란 칭호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누메리아누스(Numerianus)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극심해지자 몸을 피하지 않을 수 없어 아무도 몰래 숨었으나, 이내 체포되어 실리시아의 아이게아(Aegea)로 압송되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 로마군 사형집행인이거나 구경꾼이었던 성 알렉산데르(Alexander)와 성 아스테리우스(또는 아스테리오)도 함께 순교했는데, 그 이유는 성 탈렐레우스의 죽음에 대해 동정을 표했기 때문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아우스트레지실로

 

  • 가톨릭 성인 이름
    Austregisi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24년 부르주

 

 

아우스트레지실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우스뜨레지실로, 아우스뜨레지실루스, 아우스트레지실루스, 우뜨릴, 우트릴.

 

 

아우스트레지실로 자료

프랑스 부르주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서 국왕 군트람누스(Guntramnus)의 샬롱쉬르손(Chalon-sur-Saone) 궁에서 지내던 성 아우스트레지실루스(또는 아우스트레지실로)는 중대한 문제로 결투를 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상대자가 말에서 떨어져 죽어버렸다. 이때 그는 이 사건을 세속에서 자신을 빼내려는 주님의 섭리로 생각하여 왕에게 궁을 떠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평소 수도생활에 대한 성소를 느끼고 있던 그는 친구인 성 아이테리우스(Aetherius)로부터 사제품을 받고 마침내 리옹(Lyon)의 생 니지에(Saint Nizier)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후에 그곳의 원장이 되었다.

영적인 지혜로 유명했던 그는 612년에 고향인 부르주의 주교로 선출되어 12년 동안 봉사하다가 선종하였다. 그의 제자 중에는 성 아만두스(Amandus)가 유명하다. 그는 우트릴(Outril)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아퀼라

 

  • 가톨릭 성인 이름
    Aquil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11년

 

 

아퀼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귈라, 아뀔라, 아킬라.

 

 

아퀼라 자료

성 아퀼라는 이집트인으로서 막시미누스 다자(Maximinus Daza) 황제 때 쇠빗 같은 형구로 온 몸이 찢겨지는 고문을 당해 순교하였다. 당시 고문을 명령했던 지방장관 아리아누스(Arianus)는 성 아퀼라의 죽음을 목격한 후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같은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알렉산데르

 

  • 가톨릭 성인 이름
    Alexand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4년

 

 

알렉산데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레산드로,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알렉산데르 자료

로마군 장군의 아들로 레바논(Lebanon)에서 태어난 성 탈렐레우스(Thalelaeus)는 소아시아 지방 실리시아(Cilicia)의 아나자르부스(Anazarbus)에서 살던 의사였다.

그는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술을 베풀었기에 '자비로운 사람'이란 칭호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누메리아누스(Numerianus)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극심해지자 몸을 피하지 않을 수 없어 아무도 몰래 숨었으나, 이내 체포되어 실리시아의 아이게아(Aegea)로 압송되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 로마군 사형집행인이거나 구경꾼이었던 성 알렉산데르와 성 아스테리우스(Asterius)도 함께 순교했는데, 그 이유는 성 탈렐레우스의 죽음에 대해 동정을 표했기 때문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알베르토

 

  • 가톨릭 성인 이름
    Albert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245년 볼로냐

 

 

알베르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알베르토 자료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파리시(Parisi) 가문의 일원으로 태어난 알베르투스(Albertus, 또는 알베르토)는 고향 마을 인근에 있는 발롬브로사(Vallombrosa) 연합회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사가 되었고 후에 원장이 되었다. 그곳은 알베르투스 사후 산 알베르토(San Alberto)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에텔베르트

 

  • 가톨릭 성인 이름
    Ethelber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93년경 이스트앵글리아

 

 

에텔베르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뗄베르또, 에뗄베르뚜스, 에텔베르또, 에텔베르뚜스, 에텔베르토, 에텔베르투스, 에텔베르트.

 

 

에텔베르트 자료

영국의 헤리퍼드(Hereford) 주교좌대성당은 성모 마리아와 성 에텔베르트에게 봉헌되었다. 그는 이스트앵글리아의 국왕 에텔레드(Ethelred)의 아들로 왕위 계승자였다. 그런데 그가 아직 어린 나이에 에텔레드 왕이 살해되었다.

역사가인 성 알바누스(Albanus)는 인접 국가인 머시아(Mercia)의 황녀 알프레다(Alfreda)가 이 학살에 책임이 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부친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그리스도교 신앙에 입각하여 나라를 다스렸고, 스스로 매우 엄격한 생활을 하였다.

그는 왕으로서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동맹을 맺기 위해 머시아의 오파(Offa) 왕에게 갔다가 오파 왕의 신하인 그림베르트(Grimbert)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래서 그는 종종 순교자로 기록되고 있고 온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 시신은 마치 쓰레기처럼 버려졌으나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헤리퍼드 주교좌대성당에 모셔졌다. 오늘날 카디프(Cardiff)와 노샘프턴(Northampton) 교구에서 그의 축일을 성대히 지내고 있다. 그는 에텔베르투스(Ethelbert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오를란도

 

  • 가톨릭 성인 이름
    Orlando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사,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42년

 

 

오를란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올란도, 올랜도.

 

 

오를란도 자료

오를란도는 발롬브로사(Vallombrosa) 연합회의 평수사로 악령을 쫓아내는 사람으로 유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탈렐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Thalelae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284년

 

 

탈렐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탈랠래오, 탈랠래우스, 탈렐래오, 탈렐래우스, 탈렐레우스.

 

 

탈렐레오 자료

로마군 장군의 아들로 레바논(Lebanon)에서 태어난 성 탈렐레우스(또는 탈렐레오)는 소아시아 지방 실리시아(Cilicia)의 아나자르부스(Anazarbus)에서 살던 의사였다.

그는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의술을 베풀었기에 '자비로운 사람'이란 칭호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누메리아누스(Numerianus)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극심해지자 몸을 피하지 않을 수 없어 아무도 몰래 숨었으나, 이내 체포되어 실리시아의 아이게아(Aegea)로 압송되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 로마군 사형집행인이거나 구경꾼이었던 성 알렉산데르(Alexander)와 성 아스테리우스(Asterius)도 함께 순교했는데, 그 이유는 성 탈렐레우스의 죽음에 대해 동정을 표했기 때문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테오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778년 파비아

 

 

테오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루스.

 

 

테오도로 자료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는 743년부터 778년까지 이탈리아 파비아의 주교였다. 그는 아리우스 이단에 속한 롬바르드족(Lombards) 왕에 의해 수차례의 추방을 당하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힐라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Hilar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툴루즈

 

 

힐라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힐라리우스, 힐러리.

 

 

힐라리오 자료

성 힐라리우스(Hilarius, 또는 힐라리오)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가 프랑스 툴루즈의 주교였다는 사실 뿐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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