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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남자세례명 7가지

피어나네 2023. 6.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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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루치아노, 안토니오, 제라르도, 트리필리오, 판딜라, 페레그리노, 포르투나토, 총 7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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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3일 여자세례명 아퀼리나, 펠리쿨라,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6월 1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7가지

 

 

 

 

6월 13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루치아노

  2. 안토니오

  3. 제라르도

  4. 트리필리오

  5. 판딜라

  6. 페레그리노

  7. 포르투나토

 

6월 1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7가지

 

 

1. 루치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Luc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루치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시안, 루치아누스, 루키아노, 루키아누스.

 

 

루치아노 자료

성 포르투나투스(Fortunatus)와 성 루키아누스(Lucianus, 또는 루치아노)는 아프리카의 순교자로 그들의 순교 행전은 망실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교록들은 그들과 함께 순교한 적어도 6명의 다른 순교자들을 기록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안토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nthon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교회학자, 설교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195-1231 파도바

 

 

안토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안토니오 자료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페르난도(Fernandus)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포르투갈 국왕 알폰소 2세의 궁중 기사의 아들이었다. 성 안토니우스는 신앙심 깊은 부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고, 리스본 주교좌성당 부속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15세 되는 해에 집 근처에 있던 아우구스티누스 참사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1212년에는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와 친척들을 피하고자 다시 코임브라(Coimbra)에 있는 성 십자가 참사 수도회로 옮겨 8년 동안 공부와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후 1219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1220년 1월 16일 모로코에서 순교한 다섯 명의 작은 형제회 순교자들의 유해가 성 십자가 성당으로 옮겨져 왔는데, 이때 자신도 순교자가 되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힌 그는 그해 코임브라의 작은 형제회로 옮겨 안토니우스라는 수도명을 받고 곧바로 아프리카 선교사를 지원하였다. 그의 소망대로 무어인들에게 설교하기 위하여 모로코로 파견되었으나, 도착 직후 병으로 인하여 되돌아와야만 했다.

그 후 1221년의 아시시(Assisi)의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에서 개최된 작은 형제회 총회에 참석했다가 코임브라에서 조용히 은둔하며 고행 생활을 하던 그는 포를리(Forli) 근처의 몬테파올로(Montepaolo) 운둔소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코임브라 관구장인 그란치아노(Granziano) 신부와 함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하기 위해 포를리로 갔는데, 마침 미사에서 강론할 마땅한 사람이 없어 성 안토니우스가 맡게 되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설교가로서의 큰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래서 그는 카타리파(Cathari)가 성행하던 북부 이탈리아 지방과 알비파(Albigenses)가 성행하던 남부 프랑스에서 설교하라는 명을 받고 활발한 활동을 시작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뛰어난 설교와 화술은 불같았고, 설득력이 있었으며 모여든 군중들을 매료시켰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군중들은 구름처럼 운집하였다. 그는 작은 형제회의 첫 번째 신학 교수로 임명되었으나, 설교직에 더욱 헌신하기 위하여 공식적인 직책에서 면제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고 한다.

사람들을 개종시키고 고해성사를 주는 신부로서의 그의 성공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중 1226년 10월 3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 성인이 사망하자 이탈리아로 돌아와 이듬해 에밀리아(Emilia) 관구의 관구장 대리로 선출되었으나, 설교에 전념하기 위해 1230년에 사임한 뒤 파도바 수도원에 정착하면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파도바 전체를 완전히 개종시킨 그의 설교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또한 그는 채무자, 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하는 일을 비롯하여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단자를 개종시키는 등 끊임없이 활동하였다.

1231년 그는 수종 등을 겸한 열병으로 잠시 요양할 목적으로 캄포 산 피에로(Campo San Piero)로 갔으나, 병이 심해져 파도바로 되돌아오는 길에 베로나(Verona)의 아르첼라(Arcella)에 있는 클라라 수녀회에서 선종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36세였다. 

그의 유해는 현재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스 성당에 모셔져 있다. 그는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 해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1946년에는 비오 12세(Pius XII)로부터 교회학자, 복음적인 박사로 선언되었다.

성 안토니우스의 수많은 기적 이야기와 설교 능력은 가톨릭교회의 대표적인 전설 중 하나가 되었고, 그를 능가할 만한 설교가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당시 사람들은 성 안토니우스를 일컬어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 ‘살아있는 계약의 궤’라고 했으며,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17세기부터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안토니우스 성인에게 기도하면 곧바로 찾는다는 전설이 생겼다. 이는 어느 수련자가 허락 없이 성인의 시편집을 가져갔다가 성인이 발현하여 돌려달라고 해서 그 시편집을 돌려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가난한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일생 그들을 위해 헌신했던 성인의 이름을 따서 19세기에 ‘안토니우스 성인의 빵’이라는 구호단체가 설립되어 오늘날까지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주로 팔에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그 이유는 한 방문자가 안토니우스 성인이 탈혼 중에 일어난 이 일을 기록했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제라르도

 

  • 가톨릭 성인 이름
    Gerard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38년 클레르보

 

 

제라르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라르도, 게라르두스, 제라드, 제라르두스, 제라르드.

 

 

제라르도 자료

성 게라르두스(Gerardus, 또는 제라르도)는 테셸랭 소렐(Tescelin Sorrel)과 몽바르(Montbard) 영주의 딸인 복녀 알레타(Aletha, 4월 4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흔히 시토회의 설립자로 불리는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8월 20일)는 그의 동생이다.

그는 1112년에 성 베르나르두스가 다른 형제들과 친척 · 친구들과 함께 성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엄격히 따르는 시토회에 들어갈 때 함께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군대에 들어가 군인이 되었다.

성 게라르두스는 그랑시(Grancy)를 포위 공격하던 중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혔다. 포로 생활 중에 그는 수도 생활로 나아갈 것을 결심했고, 석방되자마자 동생이 있는 클레르보로 가서 시토회에 입회했다.

그는 클레르보에서 성 베르나르두스의 모범을 따르며 수도원 관리를 담당했다. 그는 성 베르나르두스의 충실한 협력자로서 최선을 다했고, 특히 열성과 성덕에서 뛰어났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트리필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Triphyl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70년 니코시아

 

 

트리필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뜨리삘리오, 뜨리삘리우스, 뜨리필리오, 뜨리필리우스, 트리필리우스.

 

 

트리필리오 자료

 4세기의 키프로스(Cyprus) 교회에는 테르미투스(Termithus)의 성 스피리디온(Spiridion, 12월 14일)과 성 트리필리우스(또는 트리필리오)가 가장 유명하다. 성 스피리디온은 원래 키프로스 출신의 목동으로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수도원에 들어가 나중에 테르미투스의 주교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태어난 성 트리필리우스는 법률가를 지망하여 시리아의 베이루트(Beirut)에서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던 중 성 트리필리우스는 나이가 많은 성 스피리디온의 매력에 이끌려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함께 지내기로 했다. 

그들은 아리우스(Arius) 이단을 격퇴하겠다는 일념으로 343년에 열린 세르디카(Serdica) 공의회에 참석했다. 세르디카는 오늘날 불가리아의 소피아(Sofia)에 속한 지역이다.

확실한 연대는 모르지만, 성 트리필리우스는 키프로스의 중심 도시인 니코시아의 주교가 되었다. 박식하던 그는 곧 능력 있는 설교가이자 뛰어난 저술가로 교계에 등장하였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도 그의 높은 성경 지식을 칭송했을 정도였다. 또한 착한 목자였던 그는 아름다운 시를 썼으며 자기 스승인 성 스피리디온의 기적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의 유해는 니코시아의 호데게트리아(Hodegetria, 길의 성모)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판딜라

 

  • 가톨릭 성인 이름
    Fandil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수도승,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53년 페냐멜라리아

 

 

판딜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판딜라스.

 

 

판딜라 자료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Andalusia)에서 태어난 성 판딜라 신부는 코르도바(Cordoba) 근처 페냐멜라리아 수도원의 원장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무어인들의 통치자에 의해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페레그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Peregrin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00년 라퀼라

 

 

페레그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뻬레그리노, 뻬레그리누스, 페레그리누스, 페레그린.

 

 

페레그리노 자료

성 페레그리누스(Peregrinus, 또는 페레그리노)는 이탈리아 남동부 라퀼라의 주교였다. 그는 아리우스파의 롬바르드족에게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을 요구하다가 그들에 의해 아테르노 강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포르투나토

 

  • 가톨릭 성인 이름
    Fortun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포르투나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포르투나또, 포르투나뚜스, 포르투나투스.

 

 

포르투나토 자료

성 포르투나투스(또는 포르투나토)와 성 루키아누스(Lucianus)는 아프리카의 순교자로 그들의 순교 행전은 망실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교록들은 그들과 함께 순교한 적어도 6명의 다른 순교자들을 기록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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