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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남자세례명 15가지

피어나네 2023. 9. 2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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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니코데모, 도미니코 델 발, 라이문도 논나토, 로부스티아노, 마르코, 바울리노, 빌리암, 아리스티데, 아마토, 아이다노, 옵타토, 요셉, 요한 뒤 로, 체시디오, 테오도토, 총 15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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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여자세례명 루피나, 마르가리타, 암미아, 총 3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8월 3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5가지

 

 

 

 

8월 31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니코데모

  2. 도미니코 델 발

  3. 라이문도 논나토

  4. 로부스티아노

  5. 마르코

  6. 바울리노

  7. 빌리암

  8. 아리스티데

  9. 아마토

  10. 아이다노

  11. 옵타토

  12. 요셉

  13. 요한 뒤 로

  14. 체시디오

  15. 테오도토

 

8월 3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5가지

 

 

1. 니코데모

 

  • 가톨릭 성인 이름
    Nicode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니코데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니고데모, 니고데무스, 니꼬데모, 니꼬데무스, 니코데무스.

 

 

니코데모 자료

성 니코데무스(또는 니코데모)는 바리사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다.

그는 어느 날 밤에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와서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며 예수님과 영원한 생명과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성사에 대한 담화를 나누었다(요한 3,1-21).

그는 또한 백성의 지도자인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비하하며 논쟁할 때 예수님을 두둔하는 말을 했다가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하는 핀잔을 들었다(요한 7,45-52).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을 때, 성 니코데무스는 몰약과 침향을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와서 아리마태아 출신의 성 요셉(Josephus)과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싼 뒤에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에 예수님을 모셨다(요한 19,38-42).

신약성경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요한 복음은 성 니코데무스를 예수님의 제자 중 한 명으로 보는 듯하다. 또한 그가 가져온 향료의 양으로 보아 상당히 부유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일부 외경에서 성 니코데무스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 외에 그에 대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거의 없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동방교회와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인으로 공경을 받아 왔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3일 목록에서 호노리우스 황제 때에 그리스도교의 첫 순교자인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12월 26일) 부제와 율법 교사이자 바리사이로 백성의 존경을 받던 성 가말리엘(Gamalielis) · 성 니코데무스 · 성 가말리엘의 둘째 아들이자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의 제자가 된 성 아비보(Abibo)의 유해가 발견된 것을 예루살렘에서 기념한다고 언급하였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 니코데무스는 아리마태아 출신의 성 요셉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8월 31일에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도미니코 델 발

 

  • 가톨릭 성인 이름
    Dominic del Va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소년, 복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50년

 

 

도미니코 델 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미니꼬, 도미니꾸스, 도미니쿠스, 도미니크, 도미닉, 도밍고.

 

 

도미니코 델 발 자료

성 도미니코 델 발(Dominicus del Val)의 축일은 에스파냐 북동부 아라곤(Aragon) 지방 전역에서 기념되고 있다. 그는 7살의 어린 나이로 사라고사(Zaragoza) 주교좌 성당의 복사였는데, 유대인들에 의해 납치되어 벽에 못 박혀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라이문도 논나토

 

  • 가톨릭 성인 이름
    Raymund Nonn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추기경,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04-1240년

 

 

라이문도 논나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논나투스, 라이문두스, 레이먼드.

 

 

라이문도 논나토 자료

성 라이문두스 논나투스(Raymundus Nonnatus, 또는 라이문도 논나토)는 1204년 에스파냐 카탈루냐(Cataluna) 지방의 포르텔라(Portella)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출산 중에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성 라이문두스는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비로소 태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름 뒤에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논나투스’(Non-natus)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성장하면서 남몰래 수도자가 되려는 꿈을 키워갔다. 가난한 귀족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이 자기 농장을 물려받아 세속적으로 성공하기를 바랐고, 성 라이문두스는 아버지의 뜻을 어길 수 없어 집안일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산에 있는 농장에서 일하면서 매일 조용히 기도와 묵상을 할 수 있음에 매우 행복해했다. 그는 시간만 나면 인근의 성 니콜라우스 성당을 찾아 성모상 앞에서 주님을 뜻을 찾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주시길 간청했다.

마침내 기도의 응답으로 어렵게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그는 기도 중에 받은 성모님의 권고대로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그리스도인 노예들의 해방을 위해 활동하던 성 베드로 놀라스코(Petrus Nolasco, 1월 28일)가 설립한 메르체다리오회(Mercedarian Order)에 입회하였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의 지도를 받아 1222년에 사제품을 받은 그는 북아프리카 알제리(Algeria) 지방에서 모슬렘에게 팔려 노예 생활을 하던 신자들을 구출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는 가능한 많은 그리스도인 노예들을 해방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이슬람교도에게도 복음을 전했다.

노예들을 해방하기 위해 준비해온 대속금이 모두 바닥나자 그는 본국에서 돈이 올 때까지 자신이 볼모가 되어 인질로 잡히는 선택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노예를 구출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하는 그의 헌신과 희생을 보고 모슬렘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신앙의 길로 들어섰다.

반면 노예 상인들은 그를 점점 눈엣가시로 여겼고, 인질로 잡힌 그에게 온갖 형벌과 고문을 가했다. 배상금을 받기 위해 차마 죽이지는 않고, 더는 선교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불에 달군 꼬챙이로 입술을 뚫어 그 입에 자물쇠를 채워놓았다.

이렇게 8개월을 고통 속에서 보낸 성 라이문두스 논나투스는 성 베드로 놀라스코의 도움으로 석방되어 에스파냐로 돌아올 수 있었다.

1239년 바르셀로나로 돌아온 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모진 형벌과 노동으로 건강을 해친 그는 귀국 후 바로 열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교황의 초청으로 로마로 가던 중 1240년 8월 31일 바르셀로나 근교 카르도나(Cardona) 성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은 그가 어렸을 때 기도하러 즐겨 찾았던 고향의 성 니콜라우스 성당에 안치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여러 곳에서 서로 그의 시신을 모시겠다고 주장하면서 논쟁이 생겼을 때, 신자들의 노새의 눈을 가리고 그의 시신을 실어 보냈더니 그가 어려서부터 기도하기 위해 즐겨 찾던 성 니콜라우스 성당 근처에서 노새가 멈춰 섰다고 한다.

그에 대한 공식적 공경은 1626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허용되었고, 1657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Alexander V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임산부와 신생아, 산부인과 의사와 조산사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로부스티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Robus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밀라노

 

 

로부스티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부스띠아노, 로부스띠아누스, 로부스띠안, 로부스티아누스, 로부스티안.

 

 

로부스티아노 자료

성 로부스티아누스(Robustianus, 또는 로부스티아노)와 성 마르코(Marcus)는 매우 오래전부터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르코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밀라노

 

 

마르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자료

성 로부스티아누스(Robustianus)와 성 마르코(Marcus)는 매우 오래전부터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바울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58년 트리어

 

 

바울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리누스, 빠울리노, 빠울리누스, 파울리노, 파울리누스.

 

 

바울리노 자료

알렉산드리아의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는 성 바울리누스(또는 바울리노)를 ‘참으로 사도적인 사람’이라 하였고,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신앙을 위하여 고통을 즐겨 받은 사람’으로 격찬하였다.

그는 300년경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Aquitaine)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푸아티에(Poitiers) 주교좌성당 신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트리어의 성 막시미누스(Maximinus, 5월 29일)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347년경 스승을 계승하여 트리어의 제6대 주교가 되었다.

335년 성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주의를 지지하던 멜레티우스(Meletius) 이단과 맞서다가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로 1차 유배를 왔을 때, 성 바울리누스는 그의 최고 지지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트리어의 주교가 된 후에도 아리우스파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아리우스주의자인 동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가 350년 동로마와 서로마의 유일한 황제가 된 후 353년 아를(Arles)과 355년 밀라노(Milano)에서 교회회의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황제는 성 아타나시우스를 단죄하는 초안에 주교들의 서명을 강요하며, 이에 응하지 않는 주교를 추방하겠다는 칙서를 발표했다.

결국 성 바울리누스는 밀라노(Milano)의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5월 25일), 베르첼리(Vercelli)의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8월 2일) 그리고 칼리아리(Cagliari)의 루치페르(Lucifer)와 함께 유배형을 선고받고 추방되었다.

그는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로 추방된 지 5년 만에 그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395년 트리어로 모셔와 그에게 봉헌된 성 바울리누스 성당 묘지에 안치되었다. 가톨릭교회와 동방교회 모두에서 성인으로 공경받는 그의 죽음에 대해 “로마 순교록”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땅에서 멀리 떨어진 유배지 프리지아에서, 그는 주님에게 복된 순교의 월계관을 받고 운명하였다.”

그는 신앙의 증거자이자 순교자로서도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빌리암

 

  • 가톨릭 성인 이름
    William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070년경 로스킬레

 

 

빌리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굴리엘모, 빌헬름, 윌리암, 윌리엄.

 

 

빌리암 자료

성 빌리암은 영국 출신이지만 덴마크의 카누투스(Canutus) 왕의 전속사제였다.

영국의 왕자가 덴마크를 여행할 때 빌리암이 수행했는데, 이때 그는 그 지방 주민들의 무지와 우상숭배 등을 보고 자신이 혼자 남아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후일 그의 선교 본부는 젤란트(Zeeland) 섬의 로스킬레 주교좌로 발전하였다.

그가 이처럼 성공하게 된 계기는 순교를 각오한 그의 믿음 때문이었다. 한번은 덴마크의 왕자가 재판도 없이 사람들을 무고하게 죽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마침내 자기 성당 밖에서 왕자를 만났는데, 이때에도 그는 여러 사람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중이었다.

빌리암은 분을 참지 못하여 왕자에게 달려가서 주민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목을 왕자의 칼 밑에 밀어 넣었다. 이 사건으로 크게 뉘우친 왕은 공적으로 자신의 죄과를 고백하고 뉘우쳤다.

이렇게 그는 덴마크의 국왕 스벤 에스트리드센(Sven Estridsen)을 개종시켰다. 그 뒤 덴마크 사람들의 개종이 수없이 이루어졌다. 윌리엄으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아리스티데

 

  • 가톨릭 성인 이름
    Aristid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증거자, 철학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33년경 아테네

 

 

아리스티데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리스띠데스, 아리스티데스.

 

 

아리스티데 자료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성 아리스티데는 그리스의 철학자로 12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하는 호교론을 써서 보낸 인물이다.

그가 쓴 호교론적인 글은 전해지지 않으나 시리아, 아르메니아, 그리스의 여러 학자와 성인들의 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아마토

 

  • 가톨릭 성인 이름
    Am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093/1193 누스코

 

 

아마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마또, 아마뚜스, 아마투스.

 

 

아마토 자료

이탈리아의 누스코에서 태어난 성 아마투스(또는 아마토)의 사망 일자에 관해서는 서로 상충하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사제이자 폰티글리아노(Fontigliano) 또는 몬테베르지네(Montevergine)의 베네딕토회 수도승이었으며, 그 후 누스코의 주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90세까지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아이다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id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51년 린디스판

 

 

아이다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이다누스, 에단, 에이단.

 

 

아이다노 자료

아일랜드 태생인 성 아이다누스(Aidanus, 또는 아이다노)는 이오나(Iona)의 수도자가 되기 전에 성 세난(Senan, 3월 8일)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왕 성 오스왈두스(Oswaldus, 8월 5일)의 요청에 따라 성 아이다누스는 린디스판의 주교로 서임되었다. 그의 해박한 성서 지식과 뛰어난 설교, 성덕,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수많은 기적 이야기는 왕국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유명하였다.

그는 린디스판섬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곳은 점차 영국의 이오나로 알려졌고, 북잉글랜드(England) 지역을 위한 선교의 중심지요 배움의 전당이 되었다.

그는 계속되는 선교 여행 중에 병에 걸려 린디스판 인근 노섬벌랜드(Northumberland) 연안에 있는 뱀버러(Bamburgh)의 성당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 후 그의 유해는 린디스판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옵타토

 

  • 가톨릭 성인 이름
    Opt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30년 오세르

 

 

옵타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옵따또, 옵따뚜스, 옵타투스.

 

 

옵타토 자료

성 옵타투스(또는 옵타토)는 529년에 프랑스 오세르의 주교가 되었고, 그 다음 해에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요셉

 

  • 가톨릭 성인 이름
    Joseph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아리마태아

 

 

요셉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요셉 자료

네 복음서에서 모두 언급하고 있는 아리마태아 출신 성 요셉(Josephus)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자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해 아마포로 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새 무덤에 모신 인물이다(마르 15,43-46; 마태 27,57-60; 루카 23,50-53; 요한 19,38-42). 

그는 복음서에서 이 장면 외에 더는 등장하지 않는데, 복음서마다 그에 대해 전해주는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마르코 복음은 성 요셉이 명망 있는 의회 의원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열심히 기다리던 사람이었고, 빌라도에게 당당히 들어가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해 미리 사 가지고 온 아마포로 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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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복음은 성 요셉이 부유한 사람으로 예수님의 제자였으며,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해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셨다고 했다.

루카 복음은 성 요셉이 의회 의원이며 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서 의회의 결정과 처사에 동의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시신을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바위를 깎아 만든 무덤에 모셨다고 했다.

요한 복음은 성 요셉이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성 니코데무스(Nicodemus)와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새 무덤에 모셨다고 전해주었다.

위경인 “베드로 복음서”에 따르면 성 요셉은 예수님과 빌라도 총독의 친구였다고 하고, 다른 위경인 “니코데모 복음서”에 따르면, 성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매장하자 유다인들이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를 풀어주어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셨고, 성 요셉은 릿다(Lydda, 오늘날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도시, 로드 Lod)에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세웠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오늘날의 프랑스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여 가는 성 필립보(Philippus, 5월 3일) 사도를 수행했고, 12명의 제자와 함께 영국으로 파견되는 선교단의 책임자였다고 한다. 

성 요셉은 가브리엘 천사의 도움으로 잉글랜드(England) 왕이 하사한 땅에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을 세웠는데, 그곳이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대수도원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그곳에서 선종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성 요셉은 위경인 “빌라도 행전”의 이야기를 확장한 영국의 문학 작품에도 등장하는데, 특히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사용하신 성작(성배)을 지킬 책임을 맡은 인물로 나중에 글래스턴베리 성문 곁에 성배를 묻었다는 등 성배와 관련된 영국의 전설과 종종 연결되어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모신 이유로 아리마태아의 성 요셉은 연령회와 장의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그의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에 따라 그동안 3월 17일에 지내왔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아리마태아 출신의 성 요셉은 바리사이 가운데 한 사람으로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인 성 니코데무스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8월 31일에 축일을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아리마태아의 성 요셉의 축일을 7월 31일에, 영국 성공회에서는 8월 1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요한 뒤 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du Lau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92년

 

 

요한 뒤 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뒤 로 자료

요한 마리아 뒤 로(Joannes Maria de Lau)는 프랑스 혁명 때의 순교자이다. 1792년 9월 2일과 3일 사이에 성직자를 비롯하여 평신도 등 191명이 함께 순교하였다. 이때 그는 아를(Arles)의 주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체시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Caesid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

 

 

체시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체시디우스, 카에시디오, 카에시디우스, 카이시디오, 카이시디우스.

 

 

체시디오 자료

성 카이시디우스(또는 체시디오)는 성 루피누스(Rufinus) 주교 순교자의 아들로서, 사제품을 받은 후 일단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로마(Roma)에서 동쪽으로 60마일 정도 떨어진 푸치노(Fucino) 호숫가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테오도토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o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0년

 

 

테오도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오도또, 데오도뚜스, 테오도또, 테오도뚜스, 테오도투스.

 

 

테오도토 자료

로마 순교록과 전승에 의하면, 성 마마(Mamas, 8월 17일)는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카이사레아에서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 부모인 성 테오도투스(또는 테오도토)와 성녀 루피나(Rufina, 8월 31일)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로마 제국 내의 모든 시민은 로마의 신상 앞에서 희생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포고령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카이사레아의 총독 파우스투스(Faustus)에게 모진 고문을 받고 감옥에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 

당시 그의 아내인 성녀 루피나는 임신 중이었다. 남편과 함께 감옥에서 고통받던 성녀 루피나는 성 마마를 낳고 숨을 거두었다. 갓난아기를 두고 떠나야 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셔서, 성 마마는 신심 깊고 부유한 미망인인 성녀 암미아(Ammia, 8월 31일)에게 맡겨져 양육되었다. 

성녀 암미아는 성 마마를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했다. 새어머니의 도움으로 좋은 학교에 들어가 교육을 받고 모범적으로 성장한 성 마마는 주변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데도 열성적이었다. 성녀 암미아는 성 마마가 15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다.

아직 어린 소년이었지만 성 마마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퍼뜨린 죄로 카이사레아의 총독 앞으로 끌려갔다. 하지만 총독은 성 마마를 차마 고문하지 못하고 로마 황제 아우렐리아누스에게 보냈다. 

황제는 일단 어린 성 마마를 회유해 배교시키려고 했지만, 두려움 없이 신앙을 고백하고 우상숭배의 부당함을 역설하는 소년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분노한 황제는 그에게 잔인한 고문을 가하고 익사시키려 했지만, 천사의 도움으로 그는 카이사레아에서 멀지 않은 사막의 높은 산으로 가서 살았다. 

그는 그곳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기도와 금식을 실천하며 엄격한 생활을 했다. 그는 산속에서 야생동물들과 평화롭게 사는 놀라운 능력도 발휘했다. 꿀과 염소의 젖으로 생활하며 가난한 이웃들에게도 나누어주었다.

그의 존재 때문에 불편했던 지방 행정관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군인들을 보냈다. 군인들은 산 위에서 성 마마를 만났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단지 양치기 정도로만 생각했다.

성 마마는 군인들을 오두막에 초대해 마실 우유를 제공하고, 그들이 체포하러 온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당당히 이름을 밝혔다. 그는 오랫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맹수에게 먹이로 던져지기도 했지만, 짐승들은 그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

그러자 한 이교도의 사제가 삼지창으로 그를 때려 심각한 상처를 입혔고, 피를 흘리며 마을 밖으로 걸어 나온 그는 작은 동굴에 들어가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그는 신자들에 의해 마지막 숨을 거둔 곳에 묻혔다. 그는 맘마(Mammas) 또는 마만스(Maman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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