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세례명 마르첼로는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마르첼로 15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마르첼로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마르첼로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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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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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인 목록
마르첼로 남자세례명 목록
- 마르첼로 1세 (1월 16일)
- 마르첼로 스피놀라 (1월 19일)
- 마르첼로 (2월 19일)
- 마르첼로 (4월 9일)
- 마르첼로 (8월 14일)
- 마르첼로 (9월 4일)
- 마르첼로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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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첼로 (11월 16일)
- 마르첼로 (11월 26일)
- 마르첼로 (12월 2일)
- 마르첼로 (12월 29일)
- 마르첼로 (12월 30일)
1. 마르첼로 1세
- 세례명 축일
1월 16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I - 신분과 직업
교황,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8/9년?
마르첼로 1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1세 이야기
304년에 순교한 교황 성 마르첼리누스(Marcellinus, 4월 26일) 밑에서 사제로 활동하며 지도자적 임무를 수행한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가 308년에 교황좌를 계승함으로써 비로소 약 3년 반 동안 비어 있던 베드로(Petrus)의 주교좌가 주인을 맞게 되었다.
자료에 따라 1년 6개월 또는 채 8개월이 안 되는 재위 기간 중 그는 혼란과 분열에 빠진 교회의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박해로 인해 집회 장소와 묘지가 압수되고, 배교자들이 정해진 속죄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다시 신자 생활에 참여하길 요구하는 등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다.
“연대 교황표”(Liber Pontificialis)에 따르면, 그는 로마 교회를 각각 한 명의 사제가 파견되는 25개의 본당으로 재조직하고, 본당 사제를 중심으로 예비신자의 세례를 준비시키고 배교자들에게 규정된 속죄 행위를 실행하도록 했다.
또 새 주교를 서품하고, 성녀 프리스킬라(Priscilla) 카타콤바 반대편인 살라리아 가도(Via Salaria)에 새 묘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교회를 재정비하려는 그의 노력은 배교자들을 교회에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로 큰 혼란과 장벽에 부딪혔다.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쓴 비문에 의하면, 그는 배교자의 처리 문제에 있어서 엄격한 속죄 행위를 요구한 엄격주의자였다.
그로 인해 헤라클리우스를 중심으로 한 배교자들과 신자들 사이에 심각한 다툼이 유혈 충돌로까지 번졌다. 결국 막센티우스 황제는 배교자들의 고발에 따라 성 마르첼루스 교황을 체포해서 평화의 파괴자란 죄목으로 유배를 보냈다.
그는 장소가 알려지지 않은 유배지에서 얼마 뒤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로마로 옮겨져 박해 기간에 징수되지 않았던 개인 묘지인 성녀 프리스킬라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교황의 최후에 대한 이런 내용은 “리베리우스 교황표”(Catalogus Liberianus)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순교에 관한 전설적 이야기를 기록한 5세기의 “마르첼루스의 수난”(Passio Marcelli)과 “연대 교황표”는 다른 전승을 전해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 마르첼루스 교황은 교회를 재조직하고 주교 직분을 지키면서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격분한 막센티우스 황제는 루치나(Lucina)라는 후원자가 자신의 집을 봉헌해 세운 ‘마르첼루스 성당’을 마구간으로 개조하고, 교황을 그곳에서 마부로 일하게 했다고 한다. 결국 교황은 신앙을 지키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르첼로 스피놀라
- 세례명 축일
1월 19일 - 호칭 구분
복자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o Spinola - 신분과 직업
대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835-1906년 세비야
마르첼로 스피놀라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스피놀라 이야기
마르첼루스 스피놀라(Marcellus Spinola, 또는 마르첼로 스피놀라)는 1835년 1월 14일 에스파냐 카디즈(Cadiz) 교구의 산 페르난도(San Fernando) 섬에서 스피놀라의 후작 후안 스피놀라 이 오소르노(Juan Spinola y Osorno)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그라나다(Granada), 발렌시아(Valencia), 세비야 대학에서 수학한 후 1856년 민법과 교회법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에스파냐의 헬바(Helva)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변호사로서 활동하다가 성직에 입문하여 1864년 세비야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주교좌 성당 참사위원과 본당신부 등 다양한 사목활동을 하던 그는 1880년 12월 16일 세비야 교구의 보좌주교가 되었고, 이어 1884년 코리아(Coria) 교구의 주교가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성심의 종(the Order of Slaves of the Divine Heart)이라는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1886년 말라가(Malaga)의 주교 그리고 에스파냐 왕국의 원로원 의원 등을 역임한 그는 1895년 12월 2일 세비야의 대주교가 되었다. 활발한 사목활동을 하던 그는 1906년 세비야에서 선종하여 주교좌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는 1987년 3월 29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2월 1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성 푸블리우스(Publi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와 동료들은 로마제국의 아프리카 총독령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4월 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74년 아비뇽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는 프랑스 아비뇽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의 형으로 디에(Die)의 주교인 성 페트로니우스(Petronius, 1월 10일)에게 교육을 받고 후에 주교좌를 계승하였다.
성 마르첼루스는 비엔(Vienne)의 주교인 성 마메르투스(Mamertus, 5월 11일)에게 주교품을 받았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에 의해 많은 고통을 받으며 오랫동안 주교좌를 지키다가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8월 1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90년경 아파메아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전승에 따르면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는 키프로스 섬의 저명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한 후 결혼하여 성실하고 정의로우며 자비로운 사람으로 높은 명성과 지위를 얻었다고 한다.
아내와 사별한 후 375년경 수도승으로 헌신하고자 시리아로 갔는데, 그의 탁월한 성덕을 인정받아 아파메아(오늘날 시리아의 오론테스강[Orontes R.] 오른쪽 기슭에 있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한편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379~395년 재위)는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화를 지향하며 380년에 모든 신하와 백성들이 로마(Roma)와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주교들이 가르친 아타나시오 신경과 정통 교리를 고백하도록 하는 칙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8년 후에는 관리들을 각 지방으로 파견하여 이교도의 신전을 몰수하여 파괴하도록 했고, 마침내 392년에 그리스도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교 백성들의 원성과 반발도 많았다. 황제의 관리가 시리아의 아파메아에 도착했을 때 성 마르첼로 주교의 도움을 받아 그곳의 유피테르(Jupiter) 신전을 파괴하였다.
그로 인해 분노한 이교도들에 의해 성 마르첼로 주교가 무참히 살해당했는데, 전승에 따르면 불타는 신전에 던져져 순교했다고 한다.
나중에 성 마르첼로의 자녀와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 복수를 하고자 했으나 복수가 아닌 주교의 희생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면서 성 마르첼로는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모두 8월 14일 목록에서 시리아의 아파메아에서 유피테르 신전을 철거했다는 이유로 분노한 이교도에 의해 성 마르첼로 주교가 살해당해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9월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8년 리옹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177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 때 리옹에서는 성 포티누스(Pothinus, 6월 2일) 주교와 수많은 신자들이 대량으로 학살되었는데, 이때 리옹의 사제이던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샬롱쉬르손(Chalon-sur-Saone)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를 숨겨준 이는 이교인이었다. 그 이교인이 마르스(Mars), 메르쿠리우스(Mercurius) 그리고 미네르바(Minerva) 신상 앞에 향을 피우고 기도하자 성 마르첼루스는 그를 설득하여 개종시켰다.
한 번은 성 마르첼루스가 여행하던 중에 집정관 프리스쿠스를 만났는데, 그가 자기 집에 와서 기도해 주기를 청하자 그를 따라갔다. 그런데 프리스쿠스가 예식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구경꾼들이 갑자기 폭도로 변하여 성 마르첼루스를 나무 위에 묶었다.
그리고 집정관은 사투르누스(Saturnus) 신상 앞에 제사를 드리라고 강요하였다. 성 마르첼루스가 이를 거절하자 형리들은 그를 손(Saone) 강변의 땅에다 목만 나오게 하여 묻어두었다. 그는 3일 동안 갈증과 뜨거운 태양으로 말미암아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9월 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트리어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0세기로, 그는 아마도 독일 트리어나 오늘날의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에 속한 림뷔르흐(Limburg) 지방의 통에런(Tongeren)의 주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10월 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4세기 카푸아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7일 목록에서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와 성 아풀레이오(Apuleius) 순교자에 대해 전해주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마술사 시몬(Simon, 사도 8,9)의 제자로 그를 따랐지만, 주님께서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를 통해 성령을 내려주시는 표징을 보고 시몬을 떠나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사도 성 베드로가 순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집정관인 아우렐리아누스 치하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얻고 로마 근처에 묻혔다고 전해주었다. 성 마르첼로와 성 아풀레이오에 대한 공경은 오래전부터 이루어졌고, 교황 성 젤라시오 1세(Gelasius I, +496, 11월 21일) 때 이미 그들을 기념하는 미사가 봉헌되었다. 하지만 그들에 관한 순교 행전은 완전히 전설에 기반한 내용으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그들은 4세기 초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 지방의 카푸아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여겨지며, 실제로 카푸아에서 공경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6일 목록에서 카푸아에서 순교한 성 마르첼로와 성 카스토(Castus), 성 에밀리오(Aemilius), 성 사투르니노(Saturninus)의 이름을 전해주었는데, 그 마르첼로와 10월 7일 기념하는 성 마르첼로는 같은 인물로 보고 있다.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은 카푸아의 순교자로 성 마르첼로만 10월 6일과 7일에서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성 마르첼로와 성 아풀레이오가 사도들의 제자라는 것은 허구의 전설이고, 오히려 4세기 초 카푸아에서 성 마르첼로가 순교한 것만 사실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10월 7일 목록에서 캄파니아 지방 카푸아에서 성 마르첼로 순교자를 기념한다고 기록하며 다른 동료 순교자들의 이름을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10월 3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백인대장,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8년 탕헤르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0월 30일 목록에서 백인대장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의 순교에 대해 전해주었다.
개정 “로마 순교록”과 전승에 따르면, 성 마르첼로는 오늘날 북아프리카의 모로코(Morocco)에 속한 항구도시 탕헤르에 주둔하던 로마군의 백인대장이었다.
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생일 축하식이 열렸고, 모든 병사가 로마의 신상 앞에서 절을 하며 희생제물을 봉헌하고 있었다.
이때 성 마르첼로는 몸에 두르고 있던 군용 허리띠와 무기 그리고 백인대장을 상징하는 휘장 등을 던지며 자기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큰 소리로 고백하며 희생제물 봉헌을 거부하였다.
그는 “나는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깁니다. 나는 더는 황제를 신으로 섬길 수 없고, 또 나무와 돌로 만든 당신의 신들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귀머거리 우상들입니다.”라고 외쳤다.
현장에서 체포된 성 마르첼로는 바로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축제가 끝난 후 그 지역의 부총독인 아우렐리우스 아그리콜라누스 앞으로 끌려가 재판을 받았다. 관리들은 그의 용맹함을 아껴 배교하도록 회유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나는 전능하신 천주 성부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섬깁니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동료들이 휘두른 칼 아래 쓰러져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이때 재판 기록관으로 참여한 성 카시아노(Cassianus, 12월 3일)도 부당한 사형선고에 반대하며 펜을 내려놓고 자신도 그리스도인임을 선언하여 투옥되었다가 순교하였다.
성 마르첼로의 유해는 나중에 에스파냐의 레온(Leon)으로 옮겨져 그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11월 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36년경? 파리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는 파리의 어느 보잘것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뛰어난 성덕으로 말미암아 만인의 공경을 받는다.
그는 파리의 주교인 프루덴티우스(Prudentius)의 격려와 추천으로 공부를 마치고 사제품을 받았는데, 이때 그에게서 놀라운 은혜가 수없이 나타났다.
프루덴티우스를 계승해 파리의 주교가 되었을 때는 그의 기도와 권위 덕분에 야만인들의 침략을 손쉽게 격퇴할 수 있었다. 그와 관련된 기적 중에는 생전에 남편에게 불충실했던 한 여인의 무덤에 사는 큰 뱀(용)을 쫓아내 친척과 마을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준 이야기도 있다.
친척들의 부탁으로 무덤을 찾은 성 마르첼루스는 자신의 목장(牧杖)으로 큰 뱀의 머리를 세 번 내리치고 망토 끝으로 눈을 가리며 사막이나 바다로 떠나라고 명령하자 큰 뱀이 겁을 먹고 떠났다고 한다.
그의 유해는 센(Seine) 강변에 있는 마르첼루스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11월 16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62년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성 엘피디우스(Elpidius)는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 황실의 고관이었으나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졌으며,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와 성 에우스토키우스(Eustochius) 등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사나운 말에 매달려 거리를 끌려 다니다가 결국은 화형대 위에서 불태워져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11월 26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49년 니코메디아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소아시아 지방 니코메디아의 사제인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는 콘스탄티우스 황제의 통치 중에 아리우스파(Arianism)에게 붙잡혀 높은 바위에서 바닥으로 던져져 살해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12월 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6년경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신부와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 부제, 그리고 성 히폴리투스(Hippolytus), 성 막시무스(Maximus), 성 아드리아(Adria), 성녀 바울리나(Paulina), 성 네온(Neon), 성녀 마리아(Maria), 성녀 마르타나(Martana), 성녀 아우렐리아(Aurelia)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세쿤디아누스(Secundianus) 재판관에게 죽기까지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성 에우세비우스, 성 마르첼루스, 성 네온, 성녀 마리아는 참수형을, 성녀 아드리아와 성 히폴리투스는 채찍형을, 성녀 바울리나는 고문실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성 막시무스는 티베르(Tiber) 강으로 던져지는 익사형을 받아 순교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12월 2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485년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시리아의 아파메아(Apamea) 출신인 성 마르첼루스 아키메테스(Marcellus Akimetes, 또는 정의로운 사람 마르첼로)는 양친을 잃고서부터 세속 일에 흥미를 잃고,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가서 전심전력으로 성서를 공부하였다.
그 후 에페수스(Ephesus)로 가서 하루 종일 쉼 없이 성무일도를 외는 수도 공동체에 입회하여 주로 성서 필사본을 만들고 기도하며 지냈다.
그런 그의 높은 성덕과 고독 그리고 엄격한 생활이 크게 돋보이기 시작했으므로 그는 그 공동체의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 공동체는 테오도시우스 2세의 압박으로 고난을 받던 중, 그의 뛰어난 지혜와 관리 덕분으로 날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그는 청빈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극성을 부리던 이단 퇴치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사람도 성 마르첼루스였다. 그는 45년 동안 수도원 원장을 지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마르첼로
- 세례명 축일
12월 3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cellus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0년경 스폴레토
마르첼로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셀로, 마르셀루스, 마르첼루스, 마르켈로, 마르켈루스.
마르첼로 이야기
성 사비노(Sabinus)는 이탈리아 스폴레토 지방 아시시(Assisi)의 주교로 교외 안팎에서 큰 존경을 받던 인물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하자 에트루리아(Etruria)와 움브리아(Umbria)의 총독인 성 베누스티아노(Venustianus)는 아시시에서 성 사비노 주교와 그의 부제인 성 마르첼루스(또는 마르첼로)와 성 엑스수페란시오(Exsuperantius)를 체포했다.
당시 황제의 명령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로마의 신상 앞에 희생 제사를 바치도록 강요당했고, 그렇지 않으면 결과는 죽음뿐이었다. 총독은 죽은 자를 숭배한다며 성 사비노의 신앙을 조롱하고 작은 유피테르(Jupiter) 신상을 건네주었다.
성 사비노는 신상을 받자마자 그가 보는 앞에서 땅에 내동댕이쳐서 깨뜨려 버렸다. 이 사건으로 큰 모욕을 받은 성 베누스티아노 총독은 성 사비노 주교의 두 손을 잘라버린 후 감옥에 가두었다.
이때 그의 부제이던 성 마르첼로와 성 엑스수페란시오도 굳은 신앙을 고백하고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들은 고문대에 묶여 심한 매를 맞고, 쇠 갈고리로 온몸이 찢기고, 뜨거운 불로 지지는 고통을 받은 후 순교하여 아시시에 묻혔다.
감옥에 갇힌 성 사비노는 세레나(Serena)라는 경건한 과부의 도움을 받았는데, 어느 날 그녀가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아들을 데려와 축복을 간청했다.
이때 성 사비노 주교의 기도와 축복으로 아이의 눈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평소 눈병을 앓고 있던 성 베누스티아노 총독은 이 말을 듣고 주교의 도움으로 자신의 눈이 치유되자 온 가족과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성 사비노는 잘린 손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황제는 이 사실을 알고 호민관을 보내어 성 베누스티아노 총독과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아시시에서 참수형에 처했다.
그리고 성 사비노는 재판을 위해 스폴레토로 데려갔다. 성 사비노는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채찍질을 맞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감옥에서 그를 돌봐주었던 세레나가 그의 시신을 도시 외곽에 묻어주었다.
성 사비노 주교는 그 후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 가장 큰 공경을 받는 성인 중 한 명이 되었다. 5세기에 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스폴레토 외곽에 성당이 세워졌고, 곧이어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 중부의 주요 도시인 스폴레토, 아시시, 시에나(Siena), 페르모(Fermo) 등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시에나에서 성 사비노 주교는 그 도시의 네 명의 수호성인 중 한 명으로 큰 공경을 받았다.
시에나 출신 화가인 두초 디 부오닌세냐(Duccio di Buoninsegna)는 14세기 초에 시에나 주교좌성당에 설치할 마에스타(Maesta)를 제작했다.
성모자를 중심으로 좌우에 수많은 성인이 자리하고 있고, 그중에서 시에나의 네 명의 수호성인이 가장 앞줄에 무릎 꿇은 자세로 성모자를 경배하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왼쪽부터 성 안사노(Ansanus, 12월 1일) 순교자, 성 사비노 주교 순교자, 성 크레센시오(Crescentius, 9월 14일) 순교자, 성 빅토르(Victor, 5월 14일) 순교자 순으로 그렸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30일 목록에서 성 사비노 주교와 그의 두 부제인 성 마르첼로와 성 엑스수페란시오 그리고 총독인 성 베누스티아노와 그의 가족이 신앙을 증거하고 모진 고문을 당한 후 순교했음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순교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날에 스폴레토에서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 스폴레토에서 성 사비노 주교 순교자를 공경한다고 기록하면서 전례적 기념일을 순교한 날로 알려진 12월 7일로 옮겼다.
그리고 성 사비노 외에 다른 동료 순교자들에 대해서 더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스폴레토의 성 사비노는 아시시의 성 사비노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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