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세례명 이름 찾기

마르코 남자세례명 25인 목록

피어나네 2024. 10. 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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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세례명 마르코는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마르코 24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마르코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마르코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본받고 싶은 남자 세례명 찾기

마르코
천주교 남자세례명
24인 목록

 

 

 

 

마르코 남자세례명 목록

 

  1. 마르코 바크워스 (2월 27일)

  2. 마르코 (3월 13일)

  3. 마르코 (3월 19일)

  4. 마르코 (3월 20일)

  5. 마르코 (3월 24일)

  6. 마르코 (3월 29일)

  7. 마르코 판투치 (4월 10일)

  8. 마르코 (4월 25일)

  9. 마르코 (4월 28일)

  10. 신석복 마르코 (5월 29일)

  11. 마르코 (6월 18일 )

  12. 마르코 (7월 3일)

  13. 마르코 (8월 31일)

  14. 마르코 (9월 1일)

  15. 마르코 크리진 (9월 7일)

  16. 정의배 마르코 (9월 20일)

  17. 요한 마르코 (9월 27일)

  18. 마르코 (9월 28일)

  19. 마르코 (10월 4일 )

  20. 마르코 (10월 7일)

  21. 마르코 (10월 22일)

  22. 마르코 (10월 25일)

  23. 마르코 (11월 16일)

  24. 마르코 (11월 22일)

 

마르코 천주교 남자세례명 25인 목록

 

 

1. 마르코 바크워스

 

  • 세례명 축일
    2월 27일

  • 호칭 구분
    복자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Barkworth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72?-1601년 영국

 

 

마르코 바크워스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바크워스 이야기

복자 마르쿠스 바크워스(Marcus Barkworth, 또는 마르코 바크워스)는 1572년경 영국 잉글랜드 링컨셔(Lincolnshire)의 시어비(Searby)에서 태어나 프로테스탄트 신자로 성장했다. 

그는 옥스퍼드(Oxford) 대학에서 공부한 후 프랑스 북부 두에(Douai)를 방문하던 중 예수회의 조지(George) 신부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사제가 되길 원한 그는 1594년 10월 5일 입학 허가를 받고 두에의 영국 대학에서 본격적인 사제직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1596년 페스트가 발병해 그는 이탈리아 로마의 영국 대학으로 다시 에스파냐 바야돌리드(Valladolid)의 성 알바노(Albanus) 왕실 대학의 영국 신학교로 이동해 공부를 마치고 1599년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이전에 에스파냐로 가는 도중에 성 베네딕토(Benedictus)의 환시를 보았는데, 성인이 이르기를 그가 베네딕토회 수도자가 되어 순교할 것이라고 하였다.

사제품을 받은 그는 그해 7월 성 토마스 가넷(Thomas Garnet, 6월 23일) 신부와 함께 영국 선교단의 일원이 되어 선교 길에 올랐다. 영국으로 가는 도중 그는 나바라(Navarra)의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찾아가서 수련자로 인정받았고, 순교하기 4개월 전에 비로소 서원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잉글랜드에 도착해 이제 막 선교활동을 시작하려던 중 체포되어 뉴게이트(Newgate) 감옥에 갇혔다. 그는 해외에서 가톨릭 사제품을 받은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고통받은 후 1601년 2월 27일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 그와 함께 순교한 이로는 예수회의 복자 로제로 필콕(Rogerus Filcock) 신부와 성녀 안나 린(Anna Line, 8월 30일)이 있었다.

영국에서 첫 번째로 순교한 베네딕토회 수도자인 복자 마르코 바크워스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2월 27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복자 마르코 바크워스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27일 목록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자인 복자 마르코 바크워스가 칼에 찢기는 고통을 겪고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르코

 

  • 세례명 축일
    3월 13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초기 순교록들은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 지방의 니케아(Nicaea)에서 순교한 성 테우세타(Theusetas), 성 호레(Horres), 성녀 테오도라(Theodora), 성녀 님포도라(Nymphodora), 성 마르코(Marcus), 성녀 아라비아(Arabia)와 함께 더 많은 순교자들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다. 성 호레는 성 테우세타의 어린 아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마르코

 

  • 세례명 축일
    3월 1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성 퀸투스(Quinctus), 성녀 퀸틸라(Quinctilla), 성녀 콰르틸라(Quartilla), 성 마르코(Marcus)와 동료 순교자들은 이탈리아 소렌토(Sorrento)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퀸투스, 성녀 퀸틸라 그리고 성녀 콰르틸라는 형제자매 사이로 추정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마르코

 

  • 세례명 축일
    3월 20일

  • 호칭 구분
    복자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설교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426?-1497년경 몬테갈로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이탈리아 아스콜리피체노(Ascoli Piceno) 교구의 산타 마리아 디 몬테갈로 출신인 마르코(Marcus)는 페루자(Perugia)와 볼로냐(Bologna)에서 수학한 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 얼마 후부터 이들 부부는 각각 수도 성소를 감지하고는 합의하여 아내는 클라라회, 남편은 프란치스코회로 들어갔다.

그는 뛰어난 순회 설교가로 곧 명성을 얻었는데, 거의 40년 동안 놀라운 정렬로 활동하였다. 한번은 그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중에 “마르코 형제여, 사랑을 설교하여라.”는 말씀을 듣고 나서 그의 설교 주제는 거의 항상 사랑이 되었다.

그는 늘 새벽에 일어나 편태하였고, 한밤중에는 고행을 함으로써 자신을 단련시켰다. 또 카메리노에서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사람들이 회개하면 즉시 극복된다는 예언을 하여 그대로 적중시킨 이후 그는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그는 비첸차(Vicenza)에서 운명했는데, 임종하는 바로 그날 그는 수난 복음을 읽어달라고 한 뒤에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이제는 다 끝났다”는 말을 남기고 영면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그를 흔히 ‘사랑의 샛별’이라고 부른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39년에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르코

 

  • 세례명 축일
    3월 2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0년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성 마르코(Marcus)와 성 티모테우스(Timotheus)는 사도 후 시대 로마의 순교자들이다. 교황 성 비오 1세(Pius I)는 갈리아 지방 비엔(Vienne)의 주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들을 언급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마르코

 

  • 세례명 축일
    3월 2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아레투사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자료는 희박하지만 이몰라(Imola)에는 카시아누스(Cassianus, 8월 13일)라는 순교자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전해오는데, 사실 여부를 밝히기는 어렵다. 

그는 원래 그리스도인 교사였는데, 이방신에 대한 희생제물 봉헌을 거부함으로써 학생들에 의하여 경원시 당하였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의 철 펜에 찔려 순교하였다고 한다. 

이런 형태의 죽음은 다른 순교자들에게도 일어났다 하는데, 그 대표적인 성인이 아레투사의 성 마르코(Marcus)이다. 성 마르코는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마르코 판투치

 

  • 세례명 축일
    4월 10일

  • 호칭 구분
    복자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Fantucci

  • 신분과 직업
    총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479년

 

 

마르코 판투치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판투치 이야기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마르코 판투치(Marcus Fantucci)는 26세의 나이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서약을 하였다. 

그는 3년 후에 몬테 콜롬보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그의 설교가 뛰어났으므로 카페스트라노(Capestrano)의 성 요한(Joannes, 10월 23일)으로부터 관구 밖에서도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 두 번이나 관구장을 역임한 그는 후에 총장까지 되었다.

그는 여러 가지 개혁 운동을 일으켜 설립자의 정신을 회복하려고 애를 썼고, 터키에 포로가 된 회원들을 구출하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는 교황 바오로 2세(Paulus II)가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하려는 눈치를 채고 시칠리아(Sicilia)로 잠적한 적이 있다. 그는 피아첸차(Piacenza)에서 사순절 선교활동을 하던 중에 병을 얻어 선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68년에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마르코

 

  • 세례명 축일
    4월 2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복음사가,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4년경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로 여겨지는 성 마르쿠스(Marcus, 또는 마르코)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사도 12,12. 25)과 동일 인물로 요한은 유다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로마-그리스식 이름이다. 그리고 사도들과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집회를 가졌던 예루살렘 가정 교회의 집주인인 마리아(Maria)가 그의 어머니인 듯하다. 

이런 이유로 성 마르코는 일찍부터 사도들과 친밀한 관계였음이 분명하다. 그는 또한 예루살렘 교회에서 큰 존경을 받고 사도들의 신임을 얻은 사도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와는 사촌 간이었다(콜로 4,10). 

그는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와 성 바르나바를 수행하여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고(사도 12,25), 그다음에 성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Cyprus)로 가서 그와 같이 성 바오로의 제1차 선교여행을 수행하였다(사도 13,5). 

그러나 팜필리아에서 성 바오로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사도 13,13).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성 바오로와의 의견 대립 때문에 성 바오로의 제2차 선교여행에는 동행하지 않았다(사도 15,36-40). 그 후 성 마르코는 성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로 갔으나(사도 15,39), 성 바오로가 로마에서 투옥되었을 때는 그와 함께 갇혀 있었다(콜로 4,10).

성 마르코는 분명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의 제자였는데, 성 베드로는 그를 애정 깊게 ‘나의 아들 마르코’라고 언급하였다(1베드 5,13). 또한 그는 신약성경에 여러 번 언급된 예루살렘 출신의 요한 마르코임이 분명하다(사도 12,25).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는 사도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풀려났을 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12,12)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성 마르코는 사도 베드로와 가까운 관계였다. 초대 교회 전승은 성 마르코가 사도 성 베드로의 대변인이자 통역관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소아시아 지방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성 파피아스(Papias, 2월 22일) 주교는 성 마르코가 사도 성 베드로의 통역자로서 직접 예수님의 말씀을 듣거나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성 베드로에게 전해 들은 증언과 가르침을 정확하게 기록했다고 115년경에 처음으로 전해주었다. 

그러나 동방 교회에서는 요한 마르코를 성 마르코 복음사가와는 다른 사람으로 여기고, 그가 비블로스(Byblos)의 주교였다고 하며 9월 27일에 축일을 지내고 있다.

어쨌든 성 마르코는 60~70년 사이에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서를 기술했는데 주로 사도 성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초로 했다. 

이는 마르코 복음의 사도 전승적 권위가 이미 초대 교회에서부터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성 파피아스 외에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s, 150-215년)나 리옹의 성 이레네오(Irenaeus, 6월 28일) 그리고 여러 교부들이 성 파피아스의 증언을 받아들였고, 그 증언이 교회의 전통이 되었다. 

교부들의 증언이나 교회 전승에 따르면 성 마르코는 사도 성 베드로에 의해 이집트로 파견되어 그곳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으며,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교회를 세우고 초대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어느 부활 대축일에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던 성 마르코 주교는 이교도들의 습격을 받아 붙잡혀 밧줄에 목이 묶인 채 거리를 끌려다니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이교도들이 성 마르코의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천둥과 번개가 내리쳤고, 그 틈에 신자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해 인근 성당에 모셨다고 한다.

그 후 성 마르코의 유해는 828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Venezia)로 옮겨졌다. 이를 기념해 베네치아 사람들은 성인의 이름을 딴 산마르코 대성당(Basilica di San Marco)을 짓고 그곳에 성인의 유해를 모셨다. 

그 후 성 마르코 복음사가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게 되었다. 그의 상징으로 날개 달린 사자가 주로 등장하는데, 이는 그의 복음서가 세례자 성 요한(Joannes, 6월 24일)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시작하자 예술적으로 그 소리를 포효하는 사자와 비교하면서 생겨났다. 

날개는 에제키엘(Ezechiel) 예언자가 환시로 본 네 마리 생물을 복음사가들에 적용한 데서 유래하였다. 그 외에도 교회 미술에서 그는 책 또는 두루마리나 긴 펜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표현된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4월 25일 목록에서 복음서 저자이자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세운 성 마르코에 대해 전해주었다. 

그에 따르면 복음사가 성 마르코는 처음에 사도 성 바오로의 사도직을 동행했고, 다음으로 그를 아들이라 불렀던 사도 성 베드로의 제자이자 통역관으로 스승의 발자취를 따랐으며, 로마에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모아 복음서를 썼고, 이집트로 가서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설립한 후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고초를 겪은 뒤 감옥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다만 개정 “로마 순교록”은 순교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마르코

 

  • 세례명 축일
    4월 2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92년 갈릴래아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성 마르코(Marcus)는 갈릴래아 출신으로 이탈리아 중부 아브르초(Abruzzo) 지방 라퀼라(L'Aquila)에 있는 마르시(Marsi)의 첫 번째 선교사 주교이자 순교자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신석복 마르코

 

  • 세례명 축일
    5월 29일

  • 호칭 구분
    복자

  • 가톨릭 성인 이름
    申錫福 Mark

  • 신분과 직업
    상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28-1866년 한국

 

 

신석복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신 마르코, 신마르코.

 

 

신석복 마르코 이야기

경상도 밀양의 명례(현, 경남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 사람인 신석복 마르코(申錫福, Marcus)는 장사를 하면서 생활하던 신자로, 1866년 병인박해 때 창원 마포로 장사를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오 야고보 등과 함께 대구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때는 신 마르코가 천주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해 온 지 1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이에 앞서 대구 포졸들은 신 마르코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명례로 들이닥쳐 그의 집을 찾아낸 뒤 재산을 탈취하였다. 

또한 여러 날을 수소문한 끝에 그가 장사를 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신 마르코가 돌아올 만한 길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김해 가산이라는 곳에서 신 마르코를 만나 천주교 신자임을 확인한 다음, 곧장 체포하여 밀양으로 압송하였다.

포졸들은 밀양에서 하루를 머무는 동안, 신 마르코에게 무수한 형벌을 가하였다. 그런 다음 그를 대구로 끌고 갔는데, 이때 그 사실을 알게 된 신 마르코의 형제들이 돈을 마련해 가지고 대구로 가는 일행을 뒤쫓았다. 

그들 일행을 만난 신 마르코의 형제들은 포졸들에게 수작을 하며, 신 마르코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러자 그는 형제들에게 말하기를 ‘한 푼도 포졸들에게 주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래서 신 마르코는 대구로 가는 동안 더 자주 능욕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리고 대구에 도착해서는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아 유혈이 낭자하고 뼈가 부러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으며, “저를 놓아주신다 하여도 다시 천주를 봉행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관장은 이 말을 듣자 화가 나서 다시 신 마르코에게 혹독한 형벌을 가하게 하였다. 그런 다음, 며칠을 옥에 가두었다가 교수형을 집행하였으니, 이때가 1866년 3월 31일(또는 3월 18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이후 신석복 마르코의 가족이 그의 시신을 찾아다 고향에 안장하였다.

신석복 마르코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 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마르코

 

  • 세례명 축일
    6월 1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7년경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성 마르코(Marcus)와 성 마르첼리아누스(Marcellianus)는 저명한 집안 출신의 형제지간으로 로마에 살고 있었다. 그들의 순교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로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1월 20일) 못지않은 용맹함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쌍둥이로서 젊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초기 교회의 부제가 되었으며 또 결혼도 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일어나자마자 그들은 체포되어 로마의 집정관 크로마티우스(Chromatius)에게 끌려가 투옥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들의 배교를 원하던 부모와 집정관 크로마티우스와 그의 아들 티부르티우스(Tiburtius) 등 많은 이들이 성 세바스티아누스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또 끝까지 신앙을 지킬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성 마르코와 성 마르첼리아누스의 친구들이 그들을 회개시킨다는 조건으로 얼마간의 시간을 얻었다. 그들은 이교도의 신전에 희생 제물을 드리는 것이 무슨 대수냐는 식으로 그들을 달랬지만 허사로 끝났다.

이어서 그들의 아내와 어린 자녀들까지 와서 마음을 고쳐먹도록 간청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크로마티우스 집정관의 후임자인 파비아누스(Fabianus)는 나무 기둥 두 개를 세우고 그들을 묶은 뒤 다리에 못을 박았다.

그런 상태로 만 하루가 지났으나 죽지 않자 창으로 찔러 죽였다. 그들의 유해는 도미틸라(Domitilla) 카타콤바 인근 아르데아티나 가도(Via Ardeatina)에 묻혔고, 9세기경에 로마의 성 코스마(Cosmas)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 성당으로 옮겨 모셨다.

그리고 158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8세(Gregorius VIII) 때 그들의 유해가 발견되었다. 동방 정교회는 12월 18일에 그들의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마르코

 

  • 세례명 축일
    7월 3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로마 순교록의 목록에 따르면 거룩한 순교자 성 마르코(Marcus)와 성 무키아누스(Mucianus)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칼을 맞고 살해되었다.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한 소년은 그들을 향해 결코 우상에게 희생제물을 바치지 말라며 큰 소리로 외치다가 채찍형을 받았고, 더욱 큰 소리로 그리스도를 고백하자 그들과 마찬가지로 살해되었다. 

이 때 그들의 순교를 격려하던 성 바오로(Paulus)라는 사람도 함께 순교하였다. 그들의 순교 연대나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마르코

 

  • 세례명 축일
    8월 3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밀라노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성 로부스티아누스(Robustianus)와 성 마르코(Marcus)는 매우 오래전부터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아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마르코

 

  • 세례명 축일
    9월 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세기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성 카스트렌시스(Castrensis, 2월 11일)는 9월 1일 축일을 지내는 아프리카 출신 주교 성 프리스쿠스(Priscus)와 그의 사제들 - 성 탐마루스(Tammarus), 성 로시우스(Rosius), 성 헤라클리우스(Heraclius), 성 세쿤디누스(Secundinus), 성 아주토르(Adjutor), 성 마르코(Marcus), 성 아우구스투스(Augustus), 성 엘피디우스(Elpidius), 성 카니온(Canion), 성 빈도니우스(Vindonius) - 과 함께 두 번째 축일을 기념한다. 

성 프리스쿠스와 사제들은 아리우스파 반달족에 의해 키가 없는 배에 던져져 바다를 표류하다가 다행히 남부 이탈리아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결국 성 프리스쿠스는 카푸아의 주교가 되었고 몇몇 다른 사제들은 다른 주교좌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적들은 다소 신뢰성이 떨어진다. 즉 성 프리스쿠스의 그의 동료들은 로마 순교록이 전하는 이야기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은 프리스쿠스 카스트렌시스(Priscus Castrensis)의 의미를 “프리스쿠스는 예전에 북부 아프리카에 있는 카스트라(Castra)의 주교였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마르코 크리진

 

  • 세례명 축일
    9월 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Krizin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19년 코시체

 

 

마르코 크리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레크,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코로시, 크리제프카닌.

 

 

마르코 크리진 이야기

성 마르코 크리진(Marcus Krizin)은 크로아티아(Croatia) 지역의 유명한 가문 출신으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 그는 로마(Roma)의 교황청 직속 신학교인 제르마니쿰(Germanicum)에서 공부하고 사제품을 받은 후 고향에서 사목하기 위해 귀향하였다. 

그는 헝가리의 수석 주교 휘하에서 에스테르곰(Esztergom) 대교구의 평의회 의원이 되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평소 코시체 지역으로 가서 그곳 주민들이 가톨릭 신앙을 되찾는데 기여하고 싶었던 그는 마침내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받고 코시체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그를 도와 예수회원인 헝가리 출신의 성 스테파누스 폰그라츠(Stephanus Pongracz)와 체코 출신의 성 멜키오르 그로데츠(Melchior Grodecz)가 함께 가게 되었다. 그들은 슬로바키아(Slovakia)의 코시체 지역과 그 근방에서 선교사로서 열심히 사목하였다.

1619년 이들 사제들이 사도직과 교육 활동을 펴고 있던 중, 코시체 지역을 침공한 칼뱅교도로 구성된 신교도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며 배교를 강요당했다.

그러나 끝까지 참된 신앙과 교황에 대한 충성심을 고수하던 그들은 1619년 9월 7일 결국 야만적인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들은 1905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95년 7월 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코시체 지역의 순교자로서 시성되었다.

성 마르코 크리진은 마레크 크리진(Marek Krizin), 마레크 코로시(Marek Korosy), 마레크 크리제프카닌(Marek Krizevcanin) 등으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정의배 마르코

 

  • 세례명 축일
    9월 2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丁義培 Mark

  • 신분과 직업
    회장,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95-1866년 한국

 

 

정의배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정 마르코, 정마르코.

 

 

정의배 마르코 이야기

성 정의배 마르코(Marcus)는 서울 창동의 어느 양반집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천성이 어질고 진실하며 행동이 신중하였다. 그러나 그의 집은 유학을 숭상하였기에 오로지 사서오경을 외우며 과거공부에만 전념하였다. 과거 공부를 마친 후 서울의 어느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며 살다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자식도 없이 홀로 생활하였다.

1839년에 그는 우연한 기회에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와 모방(Manbant, 羅), 샤스탕(Chastan, 鄭) 신부가 순교하는 모습을 새남터에서 보게 되었다. 

이역만리 낯선 땅에 와서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전하며 모욕과 멸시와 학대를 달게 받고 있으니 그들은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바라고, 누구를 사랑하는 것인가? 자기들을 죽이려고 날뛰며 악의에 찬 조소를 퍼붓는데 오히려 웃는 낯으로 불쌍히 여기지 않는가? 이처럼 그의 의문은 끝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천주교 서적을 구해 읽기 시작하였고, 자기가 닦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제껏 나는 천주교 신자가 되면 착한 일을 할 수 없는 자로 보았었지만, 이제 알고 보니 진정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천주교 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영세 입교하여 조선 교회의 훌륭한 일꾼이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46세였다.

1845년에 입국한 페레올(Ferreol, 高) 주교는 그를 전교회장으로 임명하였는데, 죽는 날까지 모든 열성과 신심을 다해 임무를 수행했기에 ‘산 성인’이라 할 정도로 신자들을 잘 이끌고, 예비자들을 잘 준비시키며, 병자들을 방문하고, 먹을 것조차 없어 고생하면서도 버려진 고아들을 데려다가 도와주기도 하였다. 

그의 생활은 매우 검소하였는데 그에게 값진 옷이라곤 한 벌도 없었고, 군데군데 깁고 또 기운 헌 옷을 입었고, 조금 들다가 그만 밥상을 물리곤 하였다. 

그는 브르트니에르(Bretenieres, 白) 신부를 자기 집에 모셔 들여 조선말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는 자주 “순교한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로다. 반면 자기 집에 앉아 안일하게 죽는 것은 진정 두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라고 하였다.

1866년 2월 25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처음에는 감옥에 갇혔으나 의금부로 넘겨졌고, 3월 5일에는 사형선고가 내려졌고, 같은 달 11일에 처형되었다. 

사형 길에 나선 정 회장은 눈을 내리 뜨고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윽고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가 1866년 3월 11일로 바로 그의 72회 생일날이었다.

 그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요한 마르코

 

  • 세례명 축일
    9월 2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Mark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비블로스

 

 

요한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마르코 이야기

1970년 이전의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요한 마르코(Joannes Marcus)는 페니키아(Phoenicia, 오늘날의 레바논 지역) 지방 비블로스의 주교로서 묘사되었다. 

그는 아마도 사도행전 12장 12절(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베드로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과 25절(바르나바와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수행한 다음,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을 데리고 돌아갔다)에 언급된 요한 마르코와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현대의 학자들은 그를 복음사가 성 마르코(4월 25일)와 동일인물로 본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성 요한 마르코를 복음사가 성 마르코와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데, 그를 비블로스(Byblos)의 주교라고 하며 9월 27일에 축일을 지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마르코

 

  • 세례명 축일
    9월 2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경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성 마르코(Marcus)는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알피우스(Alpius), 성 조시무스(Zosimus), 성 니콘(Nicon), 성 네온(Neon), 성 헬리오도루스(Heliodorus)와 30명의 군인들과 함께 소아시아 피시디아(Pisidia) 지방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마르코는 양을 치던 목동이었고, 군인이 아닌 동료 순교자들은 그의 형제들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마르코

 

  • 세례명 축일
    10월 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성 마르코(Marcus)와 그의 형제인 성 마르키아누스(Marcian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의 이집트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셀 수 없이 많은 이들과 함께 순교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다른 순교자 그룹과 중복된 듯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0. 마르코

 

  • 세례명 축일
    10월 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336년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이탈리아 로마(Roma) 출신으로 프리스쿠스(Priscus)의 아들로 전해지는 성 마르코(Marcus)는 로마 교회의 성직자로서 봉사하던 중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신앙 자유 이후 처음으로 뽑힌 교황이다. 

그는 새로운 방향으로 교회를 지도하기보다는 교회의 평화를 위해 진력하였다. 왜냐하면 박해는 이제 종식되었지만 또 다른 사탄(이단)이 침입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재임 8개월 20일 만에 선종하였다. 교황 성 다마수스(Damasus, 12월 11일)가 기술한 성 마르코에 대한 시의 단편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그의 기도 정신이 언급되어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1. 마르코

 

  • 세례명 축일
    10월 2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6년 예루살렘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로마 순교록”은 성 마르코(Marcus)를 유대인 태생이 아닌 이방인 출신 중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의 주교가 된 인물로 소개하였다. 그는 박해의 두려움으로 인해 흩어지고 무너진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 믿음과 성실함으로 신자들을 돌보고 모으다가 안토니누스(Antoninus)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2. 마르코

 

  • 세례명 축일
    10월 2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9년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성 루키우스(Lucius), 성 마르코(Marcus)와 성 베드로(Petrus)를 포함한 50명의 군인들이 클라우디우스 황제 치하의 로마(Rom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3. 마르코

 

  • 세례명 축일
    11월 16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아프리카의 순교자인 성 루피누스(Rufinus)와 성 마르코(Marcus) 그리고 성 발레리우스(Valerius)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로마제국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4. 마르코

 

  • 세례명 축일
    11월 2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 안티오키아

 

 

마르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이야기

성 마르코(Marcus)와 성 스테파누스(Stephanus)는 갈레리우스 황제 때에 소아시아 피시디아(Pisidia) 지방의 안티오키아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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