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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니아노 남자세례명 5인 목록

피어나네 2024. 11. 13.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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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세례명 마르티니아노는 마르띠니아노, 마르띠니아누스, 마르티니아누스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마르티니아노 5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마르티니아노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마르티니아노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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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티니아노
천주교 남자세례명
5인 목록

 

 

 

 

마르티니아노 남자세례명 목록

 

  1. 마르티니아노 (1월 2일)

  2. 마르티니아노 (2월 13일)

  3. 마르티니아노 (7월 2일)

  4. 마르티니아노 (7월 27일)

  5. 마르티니아노 (10월 16일)

 

마르티니아노 천주교 남자세례명 5인 목록

 

 

1. 마르티니아노

 

  • 세례명 축일
    1월 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ian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35년 밀라노

 

 

마르티니아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띠니아노, 마르띠니아누스, 마르티니아누스, 마르티니안.

 

 

마르티니아노 이야기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또는 마르티니아노)는 423년부터 죽을 때까지 밀라노의 주교로서, 에페소 공의회에 참여하여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저술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르티니아노

 

  • 세례명 축일
    2월 13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ian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98년경 카이사레아

 

 

마르티니아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띠니아노, 마르띠니아누스, 마르티니아누스, 마르티니안.

 

 

마르티니아노 이야기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또는 마르티니아노)는 4세기 중엽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에서 태어나 18살 무렵부터 고향 근처 ‘계약의 궤가 있는 곳’으로 불리는 산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참회와 고행을 실천하며 거룩한 은수자의 삶을 25년 동안 살았다.

그에 관해 전해오는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조에(Zoe)라는 한 매춘부가 우연히 성 마르티니아노의 성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를 유혹할 수 있다며 사람들과 내기를 걸었다. 그녀는 어느 날 늦은 밤에 남루한 옷을 입고 사막을 지나다 폭풍 속에 길을 잃은 사람인 척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하룻밤만 움막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성 마르티니아노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움막 안에서 머물도록 허락했다. 새벽녘이 되자 그녀는 자신의 넝마 같은 옷을 벗고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자신이 카이사레아의 귀부인으로 막대한 영지를 소유하고 있으니 함께 가자고 유혹하였다.

그는 여자의 아름다움에 유혹을 받았으나 죄에 빠지지 않을 결심을 하고 아침에 그녀와 함께 갈 것처럼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갑자기 자기 움막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그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온몸이 반쯤 그을린 채로 밖으로 나와서 하는 말이 “내가 이처럼 약한 불꽃도 견디지 못하는데, 어떻게 지옥의 불을 견딜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이에 그 여인도 회개하고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청했다. 성 마르티니아노의 조언에 따라 조에라는 여인은 베들레헴에 있는 성녀 바울라 수녀원에 들어가 참회하며 여생을 보냈다.

화상으로부터 나아진 후 그는 모든 유혹과 죄의 기회로부터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외딴 섬의 절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참회와 금욕의 삶을 실천하며 가끔 배를 타고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사람 외에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그곳에서 6년을 보내던 어느 날 절벽 아래에서 난파된 배 한 척을 발견하였다.

한 젊은 여인 외에는 모두 죽은 상태였다. 그는 그 여인을 구해 자신이 머물던 곳에서 두 달 후 배가 들어올 때까지 먹을 빵과 물을 남겨 두고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쳐 육지로 향했다. 돌고래 한 쌍이 나타나 그를 무사히 육지까지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하늘을 지붕 삼고 바람을 친구 삼아 방랑하며 살았다. 그렇게 그리스의 아테네(Athenae)까지 간 그는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죽음이 다가온 것을 느낀 그는 성당에 들어가 바닥에 누웠다. 하느님께서는 아테네의 주교에게 그가 누구인지 알려주셨고, 주교는 그의 시신을 정성껏 장례 치러주었다.

그는 옛 “로마 순교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13일 목록에서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레아 근처에서 은수 생활을 하던 성 마르티니아노를 기념한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마르티니아노

 

  • 세례명 축일
    7월 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ian

  • 신분과 직업
    사도들의 제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마르티니아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띠니아노, 마르띠니아누스, 마르티니아누스.

 

 

마르티니아노 이야기

성 프로케수스(Processus)와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또는 마르티니아노)는 4세기 이전부터 공경을 받고 있으나 이분들의 전기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 베드로(Petrus)와 바오로(Paulus)가 마메르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사도들의 가르침과 기적을 보고 40여 명이 개종했다고 한다. 즉 성 베드로가 기적적인 방법으로 바위에서 물이 흐르게 하여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것이다. 이때 위의 두 순교자가 개종하였다.

그들의 상급 관리이던 바울리누스(Paulinus)는 두 사람이 새로운 신앙을 거부토록 노력하다가 끝까지 항거하므로 칼로 베었다. 이때 그들은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하는 말을 남겼다. 그들의 유해는 아우렐리아 가도에 묻혔고,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는 자주 그들의 순교 사실을 그의 강론에서 언급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마르티니아노

 

  • 세례명 축일
    7월 2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ian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362년경 에페수스

 

 

마르티니아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띠니아노, 마르띠니아누스, 마르티니아누스, 마르티니안.

 

 

마르티니아노 이야기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 도시인 ‘에페수스의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성 막시미아노(Maximianus), 성 말코(Malchus),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또는 마르티니아노), 성 디오니시오(Dionysius), 성 요한(Joannes), 성 세라피온(Serapion), 성 콘스탄티노(Constantinus)의 이름은 전설의 여러 전승에 따라 다르게도 나타나지만, 그들은 데키우스 황제(Decius, 249~251 재위)의 통치 때 동굴에 감금당했으나 거의 200년 후에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깨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으며 곧 성인으로 공경받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수면은 신화와 민담의 공통된 주제로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머금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이미 6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다.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은 500년경에 시인이자 신학자인 사루(Sarugh)의 야고보(Jacobus)가 시리아어로 남긴 기록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도미니코회 회원이자 제노바(Genova)의 대주교인 복자 야고보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7월 13일)가 “황금 전설”(Legenda Aurea, Golden Legend)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포함한 후 대중적 인기가 많아졌다.

7인의 잠든 자들은 에페수스에서 태어났다. 데키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처형하러 에페수스에 와서 도시 중앙에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아 자신과 함께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찾아내어 희생 제사를 올리든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든지 선택을 하게 했다. 그 일로 인해 고통이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밀고하고,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루카 12,53)라는 말씀처럼.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7명의 그리스도인도 이때 체포되었다. 그들은 우상 앞에서 희생제물 바치기를 거부하는 데 앞장선 인물들로 자신들의 집에 숨어 단식하며 기도하던 이들이었기에 많은 군중이 그들의 체포에 대해 매우 슬퍼하였다.

데키우스 황제에게 고발당한 후 그들은 신심이 매우 깊은 신앙인임이 드러났다. 그들에게는 황제 앞에 재출두하기 전까지 배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와중에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고, 모여서 회의한 후 첼리온 산(Mount Celion)에 올라가 비밀리에 긴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서로를 돌보고 봉사하며, 도시로 내려올 때면 걸인 복장을 하고 내려오곤 했다.

데키우스 황제가 돌아와 그들을 소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들을 섬기며 식사와 음료를 대접하던 성 말코는 몹시 무서워하며 돌아와 황제의 광포함과 광기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모두 하느님의 뜻대로 깊은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데키우스 황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그들이 살던 동굴의 입구를 돌로 막아 봉인하여 그들을 굶겨 죽이기로 했다. 지방 장관과 두 명의 신자인 테오도루스(Theodorus)와 루피누스(Rufinus)는 그들의 순교록을 써서 돌 사이에 끼워 놓았다.

데키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Theodosius II, 402~450년 재위) 재위 30년에 자비로우시며 죽은 이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들은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한 에페수스의 시민이 버려지고 별 쓸모없는 산에 목동을 위해 마구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마구간을 만들던 한 벽돌공이 우연히 동굴을 열게 되었고, 그 순간 그들은 잠에서 깨어 서로 인사를 하며 전날의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하룻밤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노는 그들의 종이었던 성 말코에게 시내에 가서 빵을 사 오라고 하며 전날 사 왔던 양보다 조금 더 사 오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의 명령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성 말코는 5실링을 가지고 동굴을 나와 동굴 앞에 있던 벽돌공들을 보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성 말코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서 동굴 앞에 있던 돌무더기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품지 못했다.

도시까지 오면서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그는 성문에 도착한 순간 완전히 아연실색했다. 성문 위에 버젓이 세워진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성문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모든 성문마다 십자가가 달려 있고 도시 전체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는 잠시 자신을 진정시킨 뒤 얼굴을 숨기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빵 가게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들은 그는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어제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더니 어떻게 오늘은 모든 이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이 도시는 다르게 지어진 에페수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가 참으로 에페수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성 말코는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돈을 내고 빵을 샀다. 그런데 오래된 동전에 놀란 상인은 빵을 사러 온 젊은이가 보물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그리고 옛 황제들의 보물을 보여주면 빵과 돈을 주겠다고 말하며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상인은 친구가 되어 비밀을 지키겠다며 그를 보챘다.

성 말코는 너무나 놀라 공포에 질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말을 하지 않자 상인과 주변에서 몰려온 이들이 그의 목을 끈으로 묶어 도시 가운데로 끌고 갔다. 그 도시의 마르티누스(Martinus) 주교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정관인 안티파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성 말코와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자신들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성당으로 소환된 성 말코는 자신이 데키우스 황제에게 넘겨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교와 집정관은 돈을 보고 놀라 알려지지 않은 이 보물을 어디서 발견했는지 물었다. 성 말코는 그 돈은 어디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재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정관은 그 돈이 데키우스 황제 통치 초기의 것으로 현재 통용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성 말코는 무척 당혹해하며 자신과 동료들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부터 도망쳐 있으며, 만약 이 도시가 에페수스가 맞는다면 어제 황제가 에페수스로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주교는 한참을 생각한 후 주님께서 이 젊은이를 통해 무엇인가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 말코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첼리온 산에 있는 나의 동료들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우리는 모두 데키우스 황제의 면전에서 도망쳐왔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성 말코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고 도시의 많은 군중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성 말코가 동굴에 먼저 들어가고 주교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을 막았던 돌들 사이에서 은으로 봉인된 두 개의 편지를 발견했다. 주교는 함께 온 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모든 이들이 놀라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굴 안에 앉아있는 성인들을 보았다. 그들의 용모는 꽃피는 장미 같았으며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노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설명하며 부활을 굳게 믿는다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고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께 자신들을 맡겨드리고 숨을 거두었다.

그날 밤 성인들은 황제의 꿈에 나타나 그들이 부활할 그 날까지 누워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황제는 동굴을 진귀한 돌로 아름답게 꾸미고 귀한 보물로 그들의 무덤을 장식하였다.

이 이야기는 몇몇 잊힌 묘소를 발굴하던 중 “주님 안에서 잔다”라는 용어를 오해한 데서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육신의 부활에 대한 논쟁과 연관되어 기록된 신심 깊은 가공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영웅들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특히 동방 교회에서 이 성인들은 매우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이 발견되었던 동굴은 순례자들에게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큰 석관에 담겨 프랑스의 마르세유(Marseille)로 옮겨져 성 빅토르(Victor)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16세기에 교회사학자로 유명한 카이사르 바로니우스(Caesar Baronius, 1538~1607년) 추기경은 이 이야기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들의 이름과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의 7월 27일 목록에 의해 보존되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그들의 이름은 삭제하고 ‘에페수스의 7인의 거룩한 잠든 이들’이 순교한 후 평화로운 쉼 속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은 보통 동굴에서 잠들어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들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르티니아노

 

  • 세례명 축일
    10월 16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ian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58년

 

 

마르티니아노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띠니아노, 마르띠니아누스, 마르티니아누스.

 

 

마르티니아노 이야기

아리우스파(Arianism) 왕인 젠세릭이 아프리카에서 270명의 그리스도인들을 학살했을 때, 어느 반달족의 노예였던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또는 마르티니아노)와 사투리아누스(Saturianus)가 그들의 동료 노예였던 성녀 막시마(Maxima)에 의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들은 이방인 주인의 갖은 학대를 무릅쓰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켰으나 결국은 쫓겨나고 말았다. 그 후 그들은 어느 사제의 도움을 받아서 많은 야만인들을 개종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 그들은 평화롭게 일생을 마쳤다는 전기가 있는 반면에, 반달족의 박해 기록에 의하면 다소 그 내용이 다르다.

무사였던 마르티니아누스는 주인이 막시마와 결혼하라고 강요하였으나, 막시마가 동정서원을 발한 것을 알고는 결혼하지 않고 오히려 이 두 사람이 어느 수도원으로 도망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 그들은 노예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 순교록에는 그들이 모두 아프리카 270명의 순교자들 속에 포함된다고 기록하여 순교자로 공경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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