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네

말씀으로 피어나는 집

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4.1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4. 16. 05:04
반응형

 

 

같은 말인데도 어떤 날은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아요.

 

그래서인지 어떤 말은 거리를 만들고, 어떤 말은 사람을 더 가까이 데려옵니다. 아마 말의 내용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 때문이겠지요.

 

오늘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그 온기가 있는 그대로 전해지는 말을 하도록 이끌어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4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4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4월 1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5장 27-33절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그 무렵 경비병들이

27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28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29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30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31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32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33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요한복음 3장 31-36절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4월 16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06:33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삶 전체가 신앙이 될 때

신앙생활은 미사 참례와 기도와 봉사를 숙제처럼 해내며 구원을 위하여 점수를 쌓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은 세례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우리 존재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에서만 신앙인으로 살지 않고 삶 전체를 신앙인으로 살아야만 성령을 따를 수 있습니다.

성령은 특별한 은사나 능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며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도록 이끄시는 하느님의 영입니다. 성령은 지금 우리 삶 속에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따금 모든 일을 ‘나의 힘’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따르는 삶의 태도는 어려울 때 하느님께 맡기고, 기쁨 속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러한 삶으로 우리를 부르면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믿는 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선포합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은 그분의 영웅적인 삶을 흉내 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뜻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고 그대로 실천하며 사는 데서 시작됩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처럼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관계가 깊어지는 삶입니다. 요한 복음서가 말하는 생명은 ‘만남’이며 ‘관계’입니다. 하느님을 어려운 순간에만 잠시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늘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관계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하였듯이 우리는 땅에 살지만 “하늘의 시민”(필리 3,20)입니다. 부활의 기쁨을 지닌 이들은 이 땅에서 천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추상이나 개념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땅에서 하늘을 사는 부활의 사람은

공관 복음에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요한복음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리고 오늘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로 사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위의 세 말씀을 엮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말이 되겠습니다.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래 있는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기는 하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대한 순종으로 무얼 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랫사람이 순종으로 뭘 하라 해도 윗사람은 순종치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엄마가 아기를 극진히 돌보는 것은 사랑 때문이지 종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엄마가 아기의 모든 요구와 필요를 들어주고 채워주는 것은 사랑 까닭이지 종이기 때문이 아니고 다른 이유 때문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숭고한 순종이라고 하는 것도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그렇기에 또한 사랑이 아닌 것에는 아무리 순종하라고 해도 순종하지 않고, 특히 하느님 사랑에 어긋나는 것은 순종하지 않겠다고 오늘 사도들은 선언합니다.

이 세상에서 죽고 하늘에서 부활한 사도들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을 살고 천국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 왜 세상 지도자들에게 순종합니까?

지금 트럼프라는 막되먹은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에 입각하여 교황님이 반대 입장을 취하시자 감히 이를 굴복시키려고 들지만 교황님은 그의 폭언과 협박에도 꿋꿋하게 주님의 길을 가셔야겠지요.

전혀 구애받지 않고 주님의 길을 가야 합니다. 높이 나는 새는 강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고 제가 자주 말하는 바대로 전혀 구애받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어야 하고 선언해야 합니다. 트럼프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아무리 막돼먹은 짓을 할지라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의 진노를 얻게 될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진정 부활을 사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 죽고 하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땅에서 하늘을 살 뿐이지 세속의 어떤 것에도 휘말리지도 굴복하지도 않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는 오늘이 돼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우리가 믿는 것은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삶

오늘 <복음>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증언하여 말합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3,36)

왜 그럴까? 왜 그분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분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졌다고 누구나 내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가진 것을 기꺼이 내어주시는 것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곧 그분의 신원과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신원을 “위에서 오시는 분”, “하늘에서 오신 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라고 반복해서 증언합니다. 곧 아드님은 위에서 오신, 위에서 보내진 사랑입니다. 여기서, ‘위’ 혹은 ‘하늘’이란 단순히 하늘과 땅, 위와 아래라는 상대적인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이’와 ‘오신 분’이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절대적인 차이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는 ‘태어난 이들’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태어난 이”가 아닌, 우리와는 전적으로 다른 “오신 분”, 곧 태어나지 않은 영원한 생명이신 분이심을 말합니다. 곧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분, 우리를 넘어서 계시는 분이심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받아들이는 데는 이해를 넘어선 ‘믿음’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믿음”은 단지 자신을 열고 그분을 받아들이는 내면적인 응답만을 말하지 않고, 동시에 자신을 그분께 바치는 ‘행위’를 동반합니다. 곧 응답을 통하여 자신을 건네 드리는 실천적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믿음은 두 가지 차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곧 정해진 내용을 믿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차원인 ‘하느님께 성실함’을 뜻합니다. ‘성실함’(믿음이나 성실함은 다 같이 히브리어 “에무나”를 쓴다)은 “하느님께 자신을 고정하다.”, “하느님을 붙들고 놓지 않다.”라는 뜻으로, 구체적인 의미로 ‘순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믿음’은 하느님께 성실함, 곧 하느님의 성실하심에 자신을 고정하는 일이요, 자기 자신에게서 하느님의 것으로 돌아서는 철저한 헌신을 토대로 하는 방향전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credo)라는 단어도 자신의 심장, 곧 자기 자신을 건너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cro;심장, 생명’+dare;주다).

그러기에, “믿음”은 결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인격적인 결속을 뜻합니다. 결국, 우리가 믿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상 한가운데서 행동하시며, 오늘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서 행동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받아드리며, 실제로 ‘그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곧 ‘오신 분’이 이미 ‘와 계신 분’이 되고, 동시에 ‘이미’ 신적인 삶이 이루어지게 되고, 영원한 생명이 현재가 되고, 현세에서 ‘이미’ 하늘나라의 생명을 살게 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믿는 이에게서는 이미 신적인 삶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필리 3,20)이 됩니다. 땅에서 부활의 기쁨을 사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오히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3장 31절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주님! 항상 당신을 머리 위에 두고 살게 하소서.

당신 머리 위에 올라 당신을 조정하지 않게 하소서.

제 이성 위에 지혜로 계시고, 제 판단 위에 자비로 계시소서.

오늘도 당신에 신비, 그 놀라움 우러러 주님이신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왜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요한 3,34)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입을 빌려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소속'에 대해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하늘입니까, 아니면 땅입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는 '말'이 곧 우리의 '소속'을 증명한다고 하십니다. 땅에 속한 사람은 땅의 것을 말하고, 하늘에서 오신 분은 하늘의 일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아주 신비롭고도 무거운 구절이 있습니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인한 것이다." (요한 3,33).

이 구절의 원문 의미는 하느님의 말씀에 '인장(Seal)'을 찍는다는 뜻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감히 창조주 하느님께 "당신은 참되십니다!"라고 도장을 찍어드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왜 이것이 우리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는 열쇠가 되는지 깊이 묵상해 보겠습니다.

누군가를 믿어준다는 것은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의 인격에 내 인생을 걸어 도장을 찍어주는 일입니다.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내일 10시에 성당 앞에서 만납시다"라고 했는데, 여러분이 그 말을 믿고 10시에 나타난다면 여러분은 제 말이 '참되다'는 것을 여러분의 행동으로 증명한 셈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가장 감동시켜 '영광의 보물창고'를 열게 만든 한 이방인이 등장합니다. 바로 카파르나움의 백부장입니다. 그는 중풍으로 누워있는 자기 종을 고쳐달라고 주님께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마"라고 하시자,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고백을 던집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저도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제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옵니다." (마태 8,8-9)

이것이 바로 '인장을 찍는 행위'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단순히 병 고치는 마술사가 아니라, 우주 만물에 명령을 내리시는 '사령관'으로 공인했습니다. 그가 주님의 말씀이라는 권위 아래 도장을 꽉 찍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백부장이 주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보증해드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한량없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직접 가지 않고도 말씀 한마디로 병을 고치는 권능을 보여주셨고, 그를 모든 신앙인의 모델로 세워주셨습니다. 우리가 "말씀만 하소서, 제가 그대로 살겠습니다"라고 응답할 때, 하느님은 당신의 자존심을 걸고 우리 삶에 기적의 예산을 집행하십니다. (출처: 『주석 성경』 마태오 복음 8장)

오늘 복음 34절은 기막힌 약속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한량없이(without measure)'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누구에게는 찔끔 주시고 누구에게는 폭포수처럼 주실까요? 하느님은 당신의 명예를 걸고 당신의 진실함을 증언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십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명예 경영' 원리입니다. 국가의 특명을 받은 전권 대사가 외국에 나갔을 때, 국가는 그 대사에게 필요한 모든 자금을 '한량없이' 지원합니다. 왜일까요? 그 대사의 체면이 곧 국가의 체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대사가 돈이 없어서 무시당한다면 파견한 국가가 무시당하는 꼴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 한복판에서 "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분은 참되십니다!"라고 그분의 말씀을 자신의 삶으로 증언하기 시작하면, 하느님은 비상이 걸립니다. '저 자가 나를 믿고 모든 것을 걸었는데, 만약 저 자가 무너진다면 세상이 나를 가짜라고 비웃지 않겠느냐!'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증언하는 자에게 성령의 지혜와 능력을 무한정 공급하십니다. 성령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실함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거는 '정직한 증언자'에게 한량없이 쏟아지는 하느님의 지원금입니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아르스의 주임 신부였던 성 요한 비안네는 지적으로는 아주 부족한 분이었습니다. 신학교 성적은 꼴찌였고 라틴어도 잘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직 '하늘의 것'만을 희망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강론대에서 울면서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여러분은 모르십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당시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사람들은 하느님을 '거짓말쟁이' 취급하며 교회를 떠나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신부님이 하느님을 진실하시다고 온 몸으로 '인장'을 찍으며 증언하자, 하느님은 당신의 체면을 위해 비안네 신부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셨습니다.

전 유럽에서 사람들이 몰려왔고, 그는 하루에 16시간씩 고해성사를 주며 수많은 영혼을 살렸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진실하다고 고백하는 이의 말이 헛되지 않게 하시려 기적을 상비군으로 붙여주십니다. (출처: 프란치스코 트로쉬, 『아르스의 성자 요한 비안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그분에게 인장을 찍는다는 것, 즉 그분을 내 삶의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령의 저수지 문을 여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백지 수표를 주면서 "여기 내 서명이 되어 있으니 필요한 만큼 적어서 쓰시오"라고 했다고 칩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이의 질이 아니라 그 아래 찍힌 '인장(서명)'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수표를 보며 '이게 정말 돈이 될까?' 의심하며 지갑에 넣어만 둔다면, 그것은 종이조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서명을 믿고(인장을 찍고) 그 수표에 10억을 적어 은행에 내미는 순간, 은행은 그 서명의 주인이 가진 모든 자본력을 동원해 여러분에게 돈을 지급해야 합니다.

성령은 바로 이 '은행의 자본력'과 같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말씀의 수표'를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사용하기로 결단하고 그분의 진실함에 인장을 찍는 순간, 하늘 은행은 성령이라는 에너지를 한량없이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수표에 인장을 찍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 주머니 사정을 보는 게 아니라, 수표 밑에 찍힌 하느님의 인장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광의 동기화’를 제안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확증하는 인장을 찍은 이들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성령의 평화와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 그 성령은 죽음조차 농담처럼 여길 수 있게 만드는 영원한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서기 258년, 로마의 부제였던 성 라우렌시오는 교회의 보물을 내놓으라는 황제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금은보화를 챙겨 바쳤겠지만, 라우렌시오는 주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믿는 '인장'을 찍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을 데려와 황제 앞에 세우며 외쳤습니다.

"이들이 바로 교회의 영원한 보물입니다!"

진리에 인장을 찍은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그는 시뻘겋게 달구어진 석쇠 위에 눕혀져 서서히 타 죽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진실함을 보증한 라우렌시오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성령의 기쁨이 육신의 고통을 완전히 압도해버린 것입니다.

살이 타들어 가는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라우렌시오의 얼굴에는 천상의 광채가 감돌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박해자들을 비웃으며 전설적인 유머를 던졌습니다. "이봐라! 이쪽은 다 구워졌으니 이제 뒤집어라!" 성령의 힘이 아니면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간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참되다는 것을 증거하는 그 상황에 어떻게 세상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입술은 무엇을 증언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한숨과 불평을 쏟아내는 것은 땅에 속했다는 증거입니다. 이제 입을 열어 하늘의 일을 말씀하십시오. "하느님은 참되시다! 그분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고 여러분의 삶으로 인장을 찍으십시오. 하느님의 체면을 세워드리는 정직한 증언자가 될 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 전체를 성령의 권능으로 덮어주실 것입니다. 석쇠 위에서도 웃을 수 있게 하는 그 한량없는 성령의 은총이, 오늘 하느님께 인장을 찍어드리는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자녀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자매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자기의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열심히 기도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이는 성당에 나오지도 않고 어머니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화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하느님을 절대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자기가 하는 기도가 무슨 효과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당사자가 이렇게 하느님을 거부하니 잘될 것도 잘되지 않을 것 같고, 하느님께서도 이 아이의 괘씸함에 자기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자녀를 위한 기도를 멈춰야 할까요?

하느님께서는 크신 분이며,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복수의 마음을 품으실까요? 또 자기를 부정한다는 이유로 벌을 주시는 쫀쫀한 분이실까요? 우리는 복음의 한 부분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는데, 대부분 부탁한 사람의 믿음을 보고서 치유하셨다는 것입니다. 병자 당사자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선 어머니의 고민은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당연히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한다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순종하는 자녀의 모습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요한 3,31)라면서,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뛰어난 스승이나 예언자 중 한 명이 아니라, 기원 자체가 하늘에 속한 분으로서 온 우주와 역사,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계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땅의 사람들은 짐작하거나 배운 것을 말하지만, 예수님은 성부 하느님 품에서 직접 보고 들으신 생생한 진리를 증언하신다고 하시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요한 3,36)

이렇게 우리에게 두 가지 갈림길이 제시됩니다. 하나는 예수님께 순종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길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 고집과 땅의 기준에 갇혀 불순종함으로써 스스로 하느님의 진노 아래에 머무는 길입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기준과 모습을 내세우면서 주님 곁을 떠나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만이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당신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스탕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신뢰 안에서 내어주는 기쁨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온전히 내어주심으로 드러나는 구원의 기쁨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위에서 오는 것’과 ‘아래에서 오는 것’은 계속하여 충돌합니다. 그 어떤 것도 내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위’를 바라보기보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속에 머물러 있었는지를 돌아봅니다.

‘땅에 속한 것’에 머문다는 것은, 익숙함에 갇혀 위에서 오는 진리를 향해 우리가 나아가지 못하는 삶입니다. 사람은 붙잡을수록 멀어지고, 맡길수록 살아납니다. 성장을 위한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성숙은 얼마나 많이 가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내어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꼭 쥐고 있던 것 하나를 조용히 내려놓아 보십시오. 그 자리에 불안 대신 평안이 스며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의 참된 자유는 깊이 사랑하고, 진실하게 신뢰하며,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살리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내어주는 삶으로 더 깊어지는 사랑의 날 되십시오.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시편 34장 2절 말씀 카드 저장하기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말씀카드-성경구절-시편34편2절-20260416-한글.jpg
0.20MB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