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를 먼저 물으시며 조용히 방향을 바꾸어 주시는 것 같아요.
무언가를 더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일, 그분을 삶의 양식으로 삼는 일이 신앙의 시작임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돌아보도록 이끌어주시고, 삶은 노력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심에 감사합니다.

2026년 4월 2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4월 2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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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보기
- 지금 바로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 오늘 말씀 묵상 모아보기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6장 8-15절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11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또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부추기고 나서, 느닷없이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13 거기에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이런 말을 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14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5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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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장 22-29절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22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2026년 4월 20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에파타 성당 소개 00:20
✚ 미사 시작 01:13
✚ 강론 시작 11:1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오늘 나는 무엇을 먹고 있는가
카파르나움까지 따라온 군중에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 군중은 배는 채웠지만, 영혼은 여전히 굶주려 있었습니다. 현세의 이익에 마음이 머물러, 눈앞에 계신 참생명의 표징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한 생명의 길로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과 군중의 대화에서 되풀이되는 표현인 “하느님의 일”(6,29)에 주목해 봅시다. 성경에서 ‘일’이라는 낱말은 때로 ‘음식을 소화한다’는 은유적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양식이 눈앞에 있어도 먹지 않으면 내 것이 되지 않듯,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그분의 뜻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분께서 아직 내 삶의 양식이 되시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일”이란,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을 믿고 받아들여 내 삶의 양식으로 삼고, 마침내 실천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분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내 안에 들이는 것’, 그분의 말씀을 내 삶의 방향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됩니다. 나는 참으로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고 있는가? 복음 속 군중처럼 기적이나 성공만을 바라며 주님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을 내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여, 그분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하루, 작디작은 말과 조그마한 선택에서라도 하느님의 일을 찾는 믿음의 삶을 살려고 애써 봅시다.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참된 양식이신 예수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청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음식이 아니라 양식, 식사가 아니라 성사
지난 토요일 복음은 제자들끼리 티베리아 호수를 건너다 풍랑으로 혼나는데 주님께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시자 즉시 구원받는 얘기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다음 이어지는 얘기로 어떻게 보면 전혀 새로운 국면입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면 전체적으로 생명의 빵과 생명의 말씀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제일 처음 얘기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얘기이고, 장소는 티베리아스 호수 건너편입니다.
그다음은 제자들이 티베리아 호수 건너편에서 호수를 건너 카파르나움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고생할 때 주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어 구해주시는 얘기이고 그래서 오늘 복음은 카파르나움에서 벌어진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과정에서 있었습니다. 곧 오늘 복음의 군중은 오천 명 먹이실 때의 군중이 아니고, 호수 이편에서 주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얘기를 듣고는 부랴부랴 호수 건너편으로 갔지만 주님이 거기 계시지 않자 다시 부랴부랴 카파르나움으로 주님을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주님을 찾아와 언제 이곳에 오셨는지 묻지만 주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썩어서 없어질 양식 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그들은 이렇게 주님께 묻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에 주님께서는 다시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왜 나를 찾아 호수 이편에서 저편으로 갔다가 다시 저편에서 이편으로 오는 수고를 그렇게 하느냐? 내가 썩어 없어질 빵을 주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러는데 그러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분임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주 하는 얘기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잘 믿는 사람과 잘못 믿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라삐’ 정도로 믿고 있고, ‘라삐’로 믿는 것도 빵의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주님을 찾아와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하고 묻잖습니까?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빵이 아니라 썩어 없어질 빵을 주실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먹어야 얻을 수 있다고,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고 이어지는 6장 내내 말씀하실 겁니다. 우리도 음식을 구하지 말고 양식을 찾아야 합니다.
제 생각에 우리말에서 음식은 욕구를 채우는 것이고 양식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할 때처럼 생명을 주는 것이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음식이 아니라 마음의 양식을 찾음이 좋고, 마음의 양식보다는 영혼의 양식을 찾음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먹는 것보다는 식사하는 것이 좋고 식사하는 것보다는 성사를 거행하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배 채울 것 궁리만 하면서 하느님 일 운운하지 말고, 주님께서 영생의 양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 믿기나 하고 주시는 양식이나 거룩하게 받아먹는 우리가 됨이 더 좋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믿음은 양식
오늘 <복음>에서 호수를 건너 카파르나움으로 몰려 온 군중은 대체 무엇을 찾아 온 것일까요? 또한 우리는 오늘도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는지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
그렇다면, 대체 “빵”은 무엇이며, “표징”은 무엇인가?
“빵”은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 곧 육신을 생명을 위해 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육신의 생명을 살리는 “빵”을 통해, 당신의 ‘말씀’과 ‘당신의 몸’을 ‘영원한 생명을 위한 빵’이라는 “표징”으로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사실, 군중들은 “빵”으로 육신의 배를 채웠지만, 여전히 배고팠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현세적 음식과 자신들의 이익에만 매달릴 뿐, “참된 생명”인 표징을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 6,27)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우리 주님”으로부터 얻습니다. 바로 당신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양식’(βροσισ)이란 단어는 사마리아의 우물가에서 사용되었던 단어입니다. 곧 마을에서 돌아온 제자들이 예수님께 “무엇을 좀 잡수십시오.”라고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요한 4,34)
그러니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고 하느님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참된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군중들이 “우리가 하느님의 일(들)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요한 6,28) 하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8)
여기에서, 군중들은 “하느님의 일들”(εργα)은 ‘복수’로, 자신들을 ‘주어’로 제시하지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하느님의 일”(εργον)은 ‘단수’로, 하느님이 ‘주어’로 제시됩니다. 그러니 결국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이 하는 일에 전폭적으로 의탁하고 신뢰하는 일이요, 그분이 일하시도록 승복하는 일입니다.
사실, 여기에 나오는 ‘일’(εργα)이란 단어는 ‘음식의 소화’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곧 ‘양식’은 눈앞에 두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입에 넣고 잘 씹어 삼켜야만 비로소 양식이 되듯,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과 그분의 뜻을 ‘믿고 받아들여’ 우리 안에서 흡수하고 ‘실행’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양식을 소화시키는 일은 그 양식을 믿고 받아먹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곧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양식을 얻는 ‘하느님의 일’인 것입니다. 동시에, 이 ‘믿는 일’이야말로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소화시켜줍니다.
결국, 우리는 ‘믿음’ 안에서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해 나갑니다. 곧 ‘믿음’은 행위가 되고 실현이 되는 ‘양식’이 됩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6장 27절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주님! 당신이 주시는 양식을 눈앞에 두고 바라만 보고 있지 않게 하소서.
입에 넣고서 잘 씹어 삼키게 하소서.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완성하는 것이 제 양식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당신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당신의 말씀을 이루는 일, 바로 그 일을 하게 하소서.
사랑하는 일, 바로 그 일을 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허기의 번역 오류로 깨달을 수 있는 영혼의 존재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요한 6,26-27)
찬미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참으로 기묘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전날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었던 군중이,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다시 예수님을 찾아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옵니다. 겉으로 보면 대단한 열성을 가진 신자들 같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속내를 가차 없이 발가벗기십니다.
"너희는 지금 표징(Sign)을 본 게 아니라, 그냥 공짜 빵을 먹어서 배가 부르니까 나를 찾아온 거다."
이것은 2천 년 전 유다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세상의 빵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동하지만, 왜 그 영혼은 갈수록 메말라갈까요? 왜 인간은 육체가 배부른데도 정서적으로는 '아사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일까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존재를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혼의 배고픔도 있음을 느끼면 됩니다. 우리가 만져보고 해부해 보아서 육체에 위장이 있고 근육이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파서 육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존재건 유지되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영혼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 될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의 딸, 크리스티나 오나시스(Christina Onassis)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외로운 여인'이라 불렸습니다. 그녀는 평생 지독한 영적 허무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 허무를 채우기 위해 선택한 것은 '음식'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루에 다이어트 콜라를 수십 병씩 마셨고, 기분이 조금만 우울해지면 초콜릿과 케이크를 폭식했습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살 수 있지만, 내 마음의 구멍을 메울 방법은 오직 먹는 것뿐이야." 그녀는 육체의 배를 찢어질 듯 채웠지만, 더 허기를 느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정서적 폭식'이라 부릅니다. 영혼의 굶주림을 육체의 허기로 잘못 번역한 결과입니다. 크리스티나는 빵을 먹은 게 아니라, 빵이라는 마취제를 통해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부르짖음을 잠재우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취제가 깨면 통증은 더 심해집니다. 결국 그녀는 37세의 나이에 영혼의 허기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습니다.(출처: 니겔 뎀스터, 『크리스티나 오나시스』)
오나시스는 왜 배고픈 존재가 육체만이 아님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채워도 허기가 진다면 그 허기진 무엇이 먹어야 하는 음식이 따로 있습니다. 음식이 필요하다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기 위해서 그것을 채워보는 것입니다. 영혼은 어떤 음식이 필요할까요? 전쟁이나 사고로 다리를 잃은 환자들 중 상당수는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다리'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낍니다. 발가락이 꼬이는 것 같고, 발바닥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고 호소합니다. 환자들은 고통을 멈추기 위해 비어있는 허공(다리가 있던 자리)을 주무르거나, 진통제를 쏟아붓습니다. 하지만 다리가 없는데 그곳에 아무리 약을 바르고 마사지를 한들 고통이 사라지겠습니까? 환자들은 절망합니다.
"다리가 없는데 왜 다리가 아픈가?"
이 지독한 절망의 끝에서 의학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고통의 실체는 '다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지배하던 '뇌'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뇌가 여전히 다리의 존재를 기억하고 신호를 보내고 있기에, 하위 기관인 다리가 사라졌음에도 상위 기관인 뇌는 고통을 생성해냅니다.
이때 사용하는 치료법이 바로 '거울 치료(Mirror Box Therapy)'입니다. 거울을 이용해 남아있는 반대쪽 다리를 비추어 뇌를 속이는 것이지요. 뇌가 "아, 다리가 저기 있구나"라고 안심하는 순간, 마법처럼 고통은 사라집니다. 뇌라는 것은 ‘믿음’에 의해 움직이고, 이 믿음이 육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입니다.(출처: V.S. 라마찬드란, 『두뇌 실험실』)
믿음에 의해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과학은 이를 뇌라고 하지만, 뇌도 물질이기 때문에 땅에서 나는 밥에 의해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믿음은 밥에 의해 공급받는 게 아닙니다. 육체는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다. 그 온 곳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이 묻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요한 6,28).
사람들은 자꾸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쌓고, 심지어 더 많이 봉사해야 영혼이 채워질 줄 압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답은 우리의 뒤통수를 탁 칩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요한 6,29).
베트남의 구엔 반 투안 추기경님은 공산 정권 아래서 13년간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굶주림과 고문, 어둠이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하느님께 따졌습니다.
"주님, 제가 사목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이런 썩은 빵을 먹으며 여기 갇혀 있어야 합니까?"
그때 주님은 그에게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반 투안, 너는 '하느님의 일'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하느님 자신'을 사랑하느냐?"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그동안 '하느님의 일'이라는 빵에 집착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즉시 방향을 틀었습니다. 감옥에서 하느님 한 분만을 희망하기로 결단했습니다. 하늘에서 오는 양식으로 영혼을 채워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몰래 전달된 포도주 몇 방울과 빵 부스러기로 매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그 작은 성체 안에서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이 하느님으로 가득 차니, 수용소의 죽은 빵은 더 이상 나를 굶기지 못했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생전 느껴보지 못한 가장 큰 풍요를 누렸습니다."(출처: 구엔 반 투안, 『희망의 증거』)
이렇게 배고픈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의 배를 불려 보면 그것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게 됩니다. 저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체조배를 하면서 매번 하늘의 빵으로 배가 채워짐이 느낍니다. 그러면 의심할 수 없어집니다. 이것이 영혼의 존재를 인식하고 하늘의 빵을 찾는 가장 완전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스테파노 성인을 봅니다. 그는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 달려들었지만, 성경은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사도 6,15)고 증언합니다.
왜 스테파노는 죽음 앞에서도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으로 배가 불렀기 때문입니다. 돌이 날아오고 세상의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그는 하느님이 보증하신(Seal) 하늘의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는 육체의 배고픔과 죽음의 공포를 하느님에 대한 신뢰라는 믿음으로 완전히 덮어버린 사람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젊은 시절 세상의 쾌락, 명예, 지식이라는 온갖 빵을 먹어보았습니다. 그는 당시 지성계의 슈퍼스타였고 모든 욕망을 충족시킨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늘 구토와 허무였습니다. 그가 마침내 하느님 품으로 돌아와 『고백록』의 첫머리에 남긴 문장은 오늘 우리 묵상의 마침표입니다.
"주님, 당신은 당신을 향하도록 저희를 만드셨기에,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결코 평안하지 않나이다." (St. Augustine, 『Confessiones』, 1, 1).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어떤 형제님께서 비행기에 타고 서너 시간을 가야 했습니다. 그 시간이 지루해서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이 사람은 쉬고 싶나 봅니다. 그래서 관심을 끌 만한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낸 수수께끼를 당신이 맞추지 못하면 당신은 내게 5만 원을 주고, 반대로 당신이 낸 문제를 제가 맞히지 못하면 50만 원을 주겠소? 어때요? 한 번 해보시겠습니까?”
옆 사람은 먼저 문제를 냈습니다.
“언덕에 올라갈 때는 다섯 개의 발로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일곱 개의 발로 내려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저히 답을 말할 수 없어서 50만 원을 줍니다. 그런데 이 답이 너무나 궁금한 것입니다. 그래서 옆 사람이 냈던 문제를 똑같이 냈습니다. 답이 무엇이었을까요?
옆 사람은 이 사람에게 5만 원을 주었습니다.
답이 없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세상에 답이 없는 문제가 있을까요?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부족하고 나약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한 군중이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그들은 호수 건너편까지 배에 타고 예수님을 쫓아올 정도로 열성적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아주 훌륭한 믿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행동 이면에 있는 진짜 동기를 꿰뚫어 보시고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라고 직설적으로 꼬집으십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7)
썩어 없어질 양식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밥, 돈, 명예, 권력 등 세상의 모든 유한한 가치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잠시 배를 채워줄 뿐, 결국 다시 배고프게 만들고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의 양식인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요한 6,29)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믿음은 단순히 머리로만 동의하는 지적 수용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자기 삶의 중심을 내어드리고, 그분을 나의 주님을 받아들이며 신뢰하는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과 이런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교만과 욕심에서 벗어나는 겸손을 통해서만이 주님과 진정으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아무리 강한 사람도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야 더 좋은 결과를 얻는다(크리스 노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믿음은 무엇을 더 하는 삶이 아니라, 참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맡기는 삶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양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참된 생명입니다.
지혜로운 삶은 더 많이 얻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을 가치에 우리 마음을 쏟는 사랑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가졌는지를 묻지 않으십니다. 다만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바라보십니다.
우리는 부족함을 느낄 때 더 많이 가지면 괜찮아질 것이라 믿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한 욕구 충족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우리에게는 영원을 향한 지향성이 있습니다.
마음을 정화하고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길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새로운 양식의 길입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은 우리가 스스로 확보하려는 안전과 생존의 상징입니다.
그것에만 의지할 때, 우리는 하느님을 잊고 우리 자신의 힘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는 생명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오늘을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곧 영원을 어떻게 사느냐가 됩니다.
영원한 생명은 내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무엇을 선택하며 사느냐 안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사라질 것을 넘어, 영원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삶이 참된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살리시는 참된 생명의 참된 양식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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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