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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5.0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5. 9.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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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게 살려고 하면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약자 편에 섰다가 괜한 오해를 받기도 하고, 만만하게 여겨지는 순간도 있고요.

 

그러다 보면 너무 바보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을 읽는데, 예수님도 먼저 그런 길을 걸으셨다는 말씀이 오래 마음에 남아요.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2026년 5월 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5월 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5주간 토요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16장 1-10절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그 무렵

1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하였다. 그곳에 티모테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신자가 된 유다 여자와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2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3 바오로는 티모테오와 동행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베풀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다.

5 그리하여 그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다.

6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7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리하여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갔다.

9 그런데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10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요한복음 15장 18-21절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5월 9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0

✚ 강론 시작 06:3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여러분은 미움받는 것이 좋습니까, 사랑받는 것이 좋습니까?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인 일본의 심리학자 기시미 이치로는 그 책에서, 우리가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진실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인정 욕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 주었을 때 삶의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좋아서, 이웃을 사랑해서 봉사하는 것인지 아니면 혹시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거나 사랑받으려고 봉사하는 것인지. 누구보다도 착하고 온순하며 이타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어쩌면 남들 눈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지나치게 신경쓰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세상에서 미움과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요한 15,18-19).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회 지도층에게 미움을 받으셨고, 결국 대중에게도 미움을 받으시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미워하시는 대신 용기 있게 그들의 마음을 거스르는 사랑과 용서의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을 사랑하는 길임을 아셨습니다.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받기만을, 인정받기만을 바라고 진리와 타협하며 자기 잇속을 챙기는 세상의 정치꾼이나 장사꾼과 같은 사람이 아닌,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을 내 몸처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진심으로 사랑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미움을 최고로 잘 받는 기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저는 오늘 미움과 관련한 묵상을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의 괴로움과 불행 가운데 미움은 가장 큰 괴로움과 불행입니다. 실로 많은 사람에게 미움은 가장 큰 괴로움과 불행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게 더 큰 괴로움과 불행은 미움이 아니라 아예 미워하지도 않는 무관심과 무시입니다. 사실 미움은 사랑이고, 많은 경우 사랑하기에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하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미움받는 내가 괴로울 때도 있지만 미워하는 그가 어쩌면 더 괴롭습니다. 그런데 그 괴로운 미움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미워하는 이유가 실은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괴로워하며 미워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남의 자식이나 남편이 잘못하면 욕 한 번 하고 잊어버리지 계속 붙들고 미워하고 괴로워하지 않지 않습니까? 반대로 자식이나 남편은 괴로워하면서도 미워하는데 사랑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미움을 받아도 그 속에서 사랑을 읽을 줄만 안다면 그것 때문에 내가 괴로워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워하며 고통을 받는 그가 외려 불쌍하고 그것 때문에 안타까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움을 이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미워하는 그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그렇게 괴로워하면서도 나를 포기하거나 무관심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미움을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미움받을 때 그것을 영광과 기쁨으로 삼는 것입니다.

나의 잘못이 없는데도 그의 잘못으로 미움을 받거나 순전히 그의 시기심 때문에 내가 잘하고 있고 의로운데도 미움받을 경우는 미움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미움받게 된 것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영광되고 기쁘게 미움을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 까닭에 미움받고 하느님 때문에 미움받게 된다면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 때문에 미움받게 될 거라고, 당신과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느님 나라에 속하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이들로부터 미움받게 될 거라고 말씀하시며 각오도 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은 아무 의미 없이 고통받고 미움받습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기에 고통과 미움을 아무 의미 없이 억지로 받기 때문입니다.

사랑 때문에 미움받는 것, 더 나아가 하느님 사랑 때문에 미움받는 것, 이것이 미움을 최고로 잘 받는 기술임을 깨닫고 기뻐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느님의 사랑은 고난을 없애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사랑하신다.

우리는 이번 주 내내 ‘사랑의 계명’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제, 오늘 <복음>은 ‘제자들과 세상의 관계’에서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당하게 될 것에 대한 예고입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제자들의 신원과 사명으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들의 몰이해로부터 오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결국, 세상과 제자들의 관계에서 제자들의 사명 역시 “사랑”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당하는 이유를,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15,19)이며, 또한 “내 이름 때문에”(15, 21), 곧 “내 제자라 해서” 그렇게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곧 ‘예수님께 속한다.’는 것과, ‘예수님께로부터 선택받았다.’는 것과, ‘예수님 이름’, 이 세 가지가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되는 <제자들 편>에서의 이유입니다. 사실, 이는 우리 존재의 의미요, 우리 삶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세상 편>에서의 이유를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15,21) 때문이라고 밝혀주십니다.

결국, 오늘 <복음>은 세상이 아무리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자신들이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누구에게 선택받았는지? 제자로서의 신분을 잃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곧 세상의 미움과 박해 속에서도, 오직 예수님께 믿음을 두고, 꿋꿋이 복음을 선포하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이는 비록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을지라도 당신께서 하셨던 것처럼, 당신을 보내신 분을 알게 하라는 소명을 일깨워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께 속해 있다면, 미움과 박해는 당연한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특권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 특권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립 1,29)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명과 함께 고난의 특권도 부여받았습니다.

한스 큉은 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고난을 없애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사랑하신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세상이 아무리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한다 하더라도, 오직 당신을 보내신 분인 아버지께만 믿음을 두셨던 주님이요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믿음으로 복음을 선포하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하오니, 나의 주 나의 전부 나의 임자시여!

나를 독차지하신 나의 지배자 나의 정복자시여, 바로 지금 저를 점령하소서.

저는 본시 당신 것이옵니다.

저는 당신의 것, 당신의 소유이오니, 당신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이옵니다.

당신의 택함, 당신의 보냄을 따라 감히 당신의 뜻을 따르겠사오니, 제가 공동체와 형제들 안에 머물게 하소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혹 내 형제가 나를 미워하고 박해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당신 말씀을 사는 말씀의 봉사자가 되어 주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며 감사하게 하소서. 오 감사하나이다. 나의 주, 나의 임자시여!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5장 19절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주님!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 세상의 사랑을 구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 속하니, 당신의 사랑에 목마르게 하소서.

고난을 겪는 특권을 받았으니,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나 뵙게 하소서.

그 어떤 미움과 배척에서도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면 하느님께 선택받은 것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요한 15,18-19)

찬미 예수님! 부활 제5주간 토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아주 서늘하고도 명확한 경고를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기로 결심하는 순간, 세상은 우리를 칭찬하고 환영해 주는 것이 아니라 맹렬하게 미워하고 밀어낼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앙생활을 잘하면 세상에서도 인정받고 성공할 것이라는 달콤한 환상을 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환상을 가차 없이 깨버리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세상에서 철저히 미움받고 버림받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느님께 완벽하게 선택되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느님을 배제한 채 권력, 돈, 쾌락으로 완벽한 행복을 줄 수 있다고 속이는 거대한 어둠의 공간입니다. 이 영적 진리를 숭고한 피로 증명해 낸 한 남자의 위대한 실화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평범한 농부이자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프란츠 예거슈테터(Franz Jägerstätter)의 이야기입니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했을 때, 세상은 온통 히틀러의 광기에 환호했습니다. 교회의 수많은 성직자와 이웃 주민들조차 "조국을 위해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자 국민의 의무"라며 그 거대한 가짜 세상의 시스템에 순응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성경을 읽고 성체를 모시던 프란츠의 눈에는 그 세상이 살인과 폭력으로 얼룩진 악마의 세트장임이 명확히 보였습니다. 그는 징집 명령이 떨어졌을 때, 흔들림 없이 선언했습니다.

"나는 가톨릭 신자로서 십자가와 나치의 갈고리십자가를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히틀러를 위한 충성 맹세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 한마디에 그는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버림받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반역자요 미치광이라며 조롱했고, 친구들은 침을 뱉었습니다. 심지어 감옥에 갇힌 그를 찾아온 신부님과 변호사마저도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해라. 마음속으로만 하느님을 믿고 겉으로는 충성한다고 타협해라"라고 회유했습니다.

하지만 프란츠는 타협을 거부하고 당당히 세상에서 쫓겨나는 길을 택했습니다. 1943년, 그는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세상은 그를 버러지처럼 죽였지만, 하느님은 그를 영원한 하늘의 상속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는 2007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거룩한 복자로 선포되었고, 그의 이야기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명작 영화 '히든 라이프' (2019)로 만들어져 전 세계에 진리의 빛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종종 거대한 세트장이나 어두운 동굴과 같습니다.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를 떠올려 보십시오. 평생 동굴 벽의 그림자만 보고 살던 사람이 사슬을 끊고 밖으로 나가 진짜 태양(진리)을 봅니다. 그가 다시 동굴로 돌아와 "저 그림자는 가짜다! 밖으로 나가 진짜 빛을 보자!"라고 외쳤을 때, 그림자가 전부라고 믿는 동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를 조롱하고, 종국에는 자신들의 평온을 깨려는 그를 죽이려 듭니다.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 속한 자였기에 세상(바리사이들)과 아무런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의 눈에 진흙을 발라 빛을 보게 해주십니다. 눈을 뜬 그는 "예수님은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이라는 진실을 증언합니다.

그러자 스스로 본다고 자처하지만 사실은 짙은 어둠 속에 있던 바리사이들은 격분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증언하는 그 사람을 회당에서 아예 쫓아내 버립니다. 당시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가족과 이웃, 직업 등 모든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는 완벽한 '사회적 사형 선고'이자 세상으로부터의 처절한 버림받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은총은 바로 그다음 순간에 일어납니다. 그가 세상에서 버림받아 쫓겨난 바로 그 길바닥으로, 예수님께서 친히 그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세상에서 쫓겨난 자리가 곧 참된 하느님을 대면하는 은총의 지성소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역시 예루살렘 성문 밖, 세상의 가장 비참한 쓰레기장인 골고타로 쫓겨나 버림받으셨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늘 세상이 내다 버린 그 밖에서 완성됩니다. (출처: 『주석 성경』 요한복음 9장 참조)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빛을 따라갈 때 세상의 조롱과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내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궤도가 정상적이라는 뜻이니, 결코 충격을 받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다정한 예방주사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이 세상의 미움을 아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물리학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주선의 탈출 속도(Escape Velocity)와 대기권의 마찰열입니다.

우주선이 지구의 강력한 중력을 벗어나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나아가려면, 초속 11.2킬로미터라는 엄청난 탈출 속도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속도로 대기권을 뚫고 올라갈 때 우주선의 표면은 공기와의 격렬한 마찰로 인해 섭씨 수천 도의 불덩이가 되며 찢어질 듯한 진동을 겪게 됩니다. 공기(세상)가 우주선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결사적으로 저항하고 미워하는 현상입니다.

만약 우주선이 올라가는데 표면이 차갑고 아무런 마찰 진동이 없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추진력을 잃고 다시 지구로 추락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세속의 중력을 벗어나 하느님 나라로 솟구쳐 오를 때, 주변 사람들의 조롱, 경제적 손해, 세상의 따돌림이라는 맹렬한 마찰열을 겪는 것은 당연한 물리적 법칙입니다.

내 신앙생활에 아무런 고난도 없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너무 좋아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느님께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세속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끔찍한 경고음입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 복음 강해』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서늘한 경고를 남기셨습니다.

"세상이 당신을 칭찬하고 열광하며 환호한다면 그 자리에서 벌벌 떨며 두려워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아직 하느님의 원수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미움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세상과 간음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요한 복음 강해』).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2년 동안의 보좌신부 생활을 한 뒤에 국내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공부했습니다. 원래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었기에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스스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공부하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20대의 젊은 청년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저의 부족함이 너무 크게 느껴졌고, 같은 공부하는 청년들은 저를 그냥 나이 많으면서도 프로그래밍을 잘하지 못하는 형, 오빠로 대우했습니다. 사실 보좌신부로 있을 때, 젊은 신부인데도 강론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고, 또 능력이 많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회로 나가보니 여기에 존경과 사랑은 전혀 없었습니다. 사회 안에서의 삭막함을 절절히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라는 옷을 벗어 던지면 이 세상 안에서 너무나 부족한 저였습니다. 결국 주님 덕분에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누리던 권위와 안정은 모두 저의 실력과 능력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달으니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신 차리고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잠을 줄이면서 공부했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강의에 도움이 될 모든 교육을 찾아서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저를 채찍질하며 살았습니다. 주님 덕만 보면서 편안한 삶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더 나은 ‘나’의 발견이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한 것뿐인데, 주님께서 혜택 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혜택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주시기만 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요한 15,18)

요한복음이 말하는 세상은 단순히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라는 공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기중심적인 욕망과 어둠의 원리로 움직이는 세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제자들을 뽑아 세우십니다. 어둠의 진영에서 빛의 진영으로 적을 옮겨 준 것입니다. 세상의 눈에 제자들은 자신들의 방식에 동조하지 않는 배신자로 비칠 것입니다. 그래서 불편하게 생각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편안함을 누리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면서 그분의 가르침대로 이웃을 섬기며 정직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이 미워한다고 해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그 미움은 우리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뽑아 세우신 주님의 참된 친구임을 증명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 머물수록 더 커다란 은총을 받게 됨을 깨닫습니다. 그 사랑에 세상이 보여주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따르지 않게 됩니다. 더 열심히 주님의 뜻을 살아가며 우리는 변합니다. 더 나은 우리가 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들의 최대의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일어나는 데 있다(골드 스미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든 세계 안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만납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잊어버릴 때 미움과 배척과 폭력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박해한 이유도 그분의 말씀이 틀려서가 아닙니다. 자기 집착과 두려움에 갇혀 참된 생명의 빛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잃으면 사람을 잃고 하느님을 만나면 생명을 살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바라보면서도 그분 안에 계신 하느님은 보지 못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다시 연결되는 삶입니다. 모든 삶의 여정에 함께하시는 하나의 생명과 하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이렇듯 참된 신앙은 자신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교만은 마음을 굳게 만들지만, 겸손은 영혼을 열어 줍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모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교만과 변명으로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삶은 사랑 안에 머무는 삶입니다. 미움보다는 자비를 분열보다는 친절을 실천합니다. 하느님을 잃으면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고, 하느님 안에 머물면 사람을 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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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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