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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5.1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피어나네 2026. 5. 10.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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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으면 멀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조용히 마음 안에 머물며 다시 살아갈 힘이 되어주고, 무너질 듯한 순간에도 곁을 지켜주는 존재처럼요.

 

오늘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어느 때 보다도 더 가까이 계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2026년 5월 1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성경 말씀 정리

 

2026년 5월 1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부활 제6주일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과 평화방송 매일미사, 신부님들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를 한 페이지에 정리했어요.

 

2026년 5월 1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목차

오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원하는 내용으로 바로 이동해 보세요!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행전 8장 5-8.14-17절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그 무렵

5 필리포스는 사마리아의 고을로 내려가 그곳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 군중은 필리포스의 말을 듣고 또 그가 일으키는 표징들을 보고, 모두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7 사실 많은 사람에게 붙어 있던 더러운 영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불구자가 나았다.

8 그리하여 그 고을에 큰 기쁨이 넘쳤다.

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냈다.

15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16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17 그때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베드로 1서 3장 15-18절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그리스도께서는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15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히 모시십시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16 그러나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선한 처신을 비방하는 자들이, 여러분을 중상하는 바로 그 일로 부끄러운 일을 당할 것입니다.

17 하느님의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겪는 것보다 낫습니다.

18 사실 그리스도께서도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전체 보기

요한복음 14장 15-21절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16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9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지금 바로 보는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영상과 함께 오늘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5월 10일 오늘 평화방송 매일미사의 순서를 아래에 정리했어요. 시간을 누르면 해당 장면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 시작 00:22

✚ 강론 시작 15:36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
깊이 있는 강론 모아보기

신부님들과 함께하는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묵상 흐름 안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지금 마음에 와닿는 묵상부터 천천히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오늘 전해지는 신부님들의 묵상을 한자리에서 만나보세요.

 

이어서 함께 살펴보세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머무름이 우리를 살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머무르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성령께서 머무르시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인 팀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가문의 남자입니다. 그는 이 능력으로 과거를 바꾸려 하지만 바라지 않는 결과가 함께 생김을 알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행복의 비밀을 알려 줍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낸 뒤에, 시간을 되돌려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처음에 보지 못하였던 삶의 아름다움이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팀은 깨닫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삶을 바꾸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깊게 바라보며 온전히 그 속에 머물 때 행복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한병철 교수는 『시간의 향기』라는 책에서 현대를 ‘시간이 사라진 시대’라고 진단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일을 하고 성과를 내는 것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에 대한 강박이 삶의 의미를 잃게 하고 시간의 향기를 사라지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안으로 관상의 삶, 곧 머무름의 기술을 제시합니다. 무엇인가를 바꾸거나 행동에 옮겨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어 서서 삶을 깊게 바라볼 때 시간의 향기와 의미가 드러납니다.

성령께서 오시어 우리 안에 머무르실 수 있도록 우리에게도 머무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머무름의 시간을 오롯이 가져 보십시오. 머무를 줄 아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오시어 함께하실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머물러 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그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이 제자들을 떠나실 때를 말씀하시며 ‘그날’이라는 표현을 쓰십니다. ‘그날’이란 미래의 어느 날이고 매우 중요한 어느 날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그날이 우리에게도 같은 그날일까요? 나는 나의 ‘그날’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요?

오늘 우리가 이 복음 말씀을 듣는 것은 제자들의 ‘그날’이 우리에게도 같은 ‘그날’이 되게 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끝부분을 읽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세례를 받았지만, ‘그날’이 아직, 성령을 받는 ‘그날’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이번 성령 강림 대축일에는 내게도 그날이 될까요?

그렇게 되도록 우리는 그날을 갈망도 하고 준비도 하며 남은 기간을 잘 보내야 하는데 오늘은 우선 왜 그날이 중요한지 보겠습니다.

그날이 중요한 이유는 그날에 성령께서 오시기 때문인데 그날에 오시는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진리로 인도하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모든 진리는 하느님 자체이시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니까 우리의 주님께서는 진리일 뿐 아니라 모든 진리이십니다.

그런데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주실 것이다.”라고 요한복음이 말할 때의 그 ‘모든 진리’란 어떤 뜻입니까? 모든 진리란 말 그대로 일부 진리가 아니라 모든 진리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리(一理)와 다른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진리 안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성령께서 오실 ‘그날’을 준비하며 우리는 모든 진리에 비해 우리가 지닌 진리는 일리밖에 되지 않음을, 우리의 이성과 지적 능력이 얼마나 보잘것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러기에 계시의 완성자요 모든 진리이신 주님께로 우리를 성령께서 친히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도 그리고 다른 종교와 문화도 일리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같이 모든 진리를 이루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일치의 성령께서 각각의 진리를 한곳에 모아주시도록 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이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것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날,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또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데 주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신다는 것,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며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사실 이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며 아주아주 중요합니다. 이는 불교나 힌두교의 범아일여(梵我一如)와 맥이 통하는 것이며, 우리는 홀로 있는 존재도 우리끼리 있는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고, 하느님 안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안에 주님께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보물만 있어도 대단하고 우리 안에 성인만 있어도 대단한데 주님께서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다니 이 얼마나 놀랍고도 대단합니까?

문제는 이것을 깨달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다 헛것이고, 완전히 행복할 수 있는데 그것을 놓치는 참으로 딱한 불행입니다. 다 잡은 고기를 놓치는 것보다 더 안타깝고도 불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까지 깨달아야 우리에게도 성령께서 오신 것이고, 이번 성령 강림 대축일이 그날이 된 것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지금 우리는 누구를 따라 살고 있는지요?

부활 제6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부활을 보증해주는 ‘성령’의 기쁜 삶을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서, 사마리아로 파견된 베드로와 요한은 안수로 성령이 충만하게 하고, 당신 사랑을 사도들에게 체험시켜줍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로 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제2독서>에서,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1베드 3,18)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영”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차오를 것입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최후의 만찬’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신 위로의 말씀입니다. 신비로 가득 찬 사랑의 말씀입니다.

먼저, 아버지께서 당신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주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요한 14,16-17)

사실, 약속된 신비로운 이 일이 이미 제자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요한 14,17)

그렇습니다. ‘받아들인 이들’ 안에 ‘성령’은 이미 함께 계십니다. 바로 우리 안에는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바로 이 “진리의 영”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시며,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삶을 보증해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돌아가셨다가 다시 오시겠다고 하시면서, 동시에 언제나 제자들 안에 현존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4,19)

그러니 예수님은 가시면서도 현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곧 부활생명은 항상 우리 안에 살아계심을 말해줍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당신의 선물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 안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여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21)

그렇습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랑의 표시”가 됩니다. 곧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면,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혹 자기 자신을 지키고 있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자일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따라 살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면 돈을 따라 살게 되고,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을 따라 살게 됩니다. 아마 우리는 지금 자신이 사랑하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을 따라 살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따라 살고 있는지요? 혹 자기 자신을 따라 살고 있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혹 세상의 물질이나 명에나 권력이나 힘을 따라 살고 있다면, 바로 그것들을 사랑하고 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있다면, 진정 그분을 사랑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다른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데는 자신이 스스로 사랑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데는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성령’의 도움으로만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다른 보호자”(요한 14,16)인 “진리의 영”(요한 14,17)을 보내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을 우리와 함께 사시고, 우리 안에 계시게.’(요한 14,17 참조) 하시어, 제자들이 당신 사랑을 지키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령’께서 함께 머무르시지 않으면, 결코 우리 스스로는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성령의 도움’으로 사랑하는 일은 가능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거대한 밑그림을 그리실 때, “사랑”이란 물감으로 그 구원의 초상화를 그리셨습니다. 이 “사랑의 초상화”는 결코 입술로 하는 사랑의 고백이나, 그 어떤 감상이나 감정이나 지성으로는 그릴 수도 그려지지도 않는, 오로지 사랑을 몸소 행함으로만 그려지는 초상화입니다.

그것은 당신의 계명을 지키고 ‘순명’함으로써만 색칠되는 그림이요, 직접 ‘사랑의 삶’으로 온갖 색체를 짜내어야만 그려지는 그림입니다. 곧 ‘사랑’은 순명의 실천으로 그려지는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빈 도화지 위해 우리의 ‘봉헌의 삶’, ‘사랑의 삶’, ‘성령에 따라 사는 삶’으로 우리의 초상화를, 아니 우리의 삶으로 ‘주님의 초상화’를 그려야 할 일입니다. 우리 삶의 빈 도화지 위에 꽉 찬 ‘예수님의 초상화’를 베껴 그려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복음 14장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주님! 당신의 계명을 지키기보다 당신을 먼저 사랑하게 하소서.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에 지키게 하소서.

사랑하면서도 지키지 못함은 제 사랑의 부족이오니 제 사랑을 도와주소서.

제 사랑에 앞서 먼저 베푸신 당신의 사랑을 품게 하소서.

당신 사랑에 깊이 물들게 하시고 당신 사랑의 향기 묻어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상으로 함께 보는 오늘 묵상

 

세상은 왜 성령을 알아보지 못할까?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주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요한 14,15-17)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홀로 남겨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며, 진리의 영이신 '다른 보호자'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이 거룩한 약속의 끝에 아주 뼈아픈 진단 하나를 덧붙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성령을 보지도, 알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영이 우리 곁에 오셨는데, 왜 똑같은 눈을 달고 사는 세상 사람들은 그 위대한 현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뇌가 수신하고 있는 '주파수'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2007년 1월의 어느 추운 아침, 미국 워싱턴 D.C.의 랑팡 플라자 지하철역 입구에 평범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한 청년이 바이올린을 꺼내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출근길에 바쁜 사람들은 그를 흔한 거리의 악사쯤으로 여기고 무심코 지나쳤습니다. 45분 동안 그가 연주를 하는 사이, 무려 1,097명의 사람이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악사는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조슈아 벨(Joshua Bell)이었습니다. 그가 들고 연주한 악기는 1713년에 제작된 350만 달러(약 45억 원)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명기였고, 그가 연주한 곡은 인간이 만든 가장 아름답고 난해한 곡으로 평가받는 바흐의 '샤콘느'였습니다. 불과 이틀 전, 보스턴 극장에서 열린 그의 똑같은 연주회는 한 좌석에 10만 원이 넘는 표가 매진될 정도로 대성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하철역에서 45분 동안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발걸음을 멈춘 사람은 단 7명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계 최고의 거장이 뿜어내는 수십억 원짜리 천상의 선율을 곁에 두고도, 시계를 쳐다보며 종종걸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가버렸습니다. (출처: 워싱턴 포스트, 「진주 실험」 2007)

왜 사람들은 그 엄청난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그들의 영혼과 뇌의 주파수가 '돈을 벌러 직장에 지각하지 않고 가야 한다'는 치열한 생존과 욕망의 채널에 완벽하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존 본능이라는 주파수에 고정된 귀에는 바흐의 명곡도 그저 성가신 지하철 소음으로 들릴 뿐입니다. 이것보다 더 치명적인 잘못은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성령님은 사랑입니다. 사랑하려는 이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래서 그들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모든 맛이 그렇습니다. 맛을 보아야 맛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은 성령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라고 선언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을 상실한 채, 자기 힘으로 돈과 권력을 쥐고 살아남아야만 하는 '고아의 주파수'로 살아갑니다.

하느님 나라의 유일한 주파수는 '사랑'인데, 그들은 애초에 남을 사랑하려는 마음 자체가 없습니다. 사랑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내 힘의 한계에 부딪힐 일도 없고, 한계에 부딪히지 않으니 성령의 도우심을 청할 이유도 없습니다.

성령의 힘을 체험해보지 못했으니, 당연히 성령이 무엇인지, 어디에 계신지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에 갇혀 있는 자에게 성령의 위대한 사랑과 진리의 숨결은 그저 무의미한 소음이나 환상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 8장에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의 이야기는 이 사랑의 플러그를 꽂지 않고 꼼수로 전기를 훔쳐 쓰려는 자의 비참한 최후를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를 하자 그들에게 성령이 내려옵니다. 이것을 본 마술사 시몬은 그 놀라운 권능을 탐내며 사도들에게 돈을 내밉니다. "나에게도 그런 권한을 주어, 내가 안수하는 사람마다 성령을 받게 해 주십시오." (사도 8,19)

시몬은 세상의 주파수(돈과 권력)를 그대로 유지한 채, 자신을 희생하여 남을 사랑하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이 성령의 능력만 외장 배터리처럼 사려고 했습니다. 희생과 순종, 이웃 사랑이라는 '플러그' 없이 돈으로 전력을 끌어다 쓰려 한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대가 하느님의 선물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그대는 그 돈과 함께 망할 것이오!" (사도 8,20)라며 무섭게 저주합니다. (출처: 『주석 성경』 사도행전 8장). 성령은 결코 세상의 얄팍한 거래로 수신할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닙니다. 자아를 부수고 십자가의 계명, 곧 사랑에 나를 끼워 맞출 때만 접속되는 숭고한 신성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가짜 주파수를 끊어내고, 어떻게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수신하여 내 영혼의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그 완벽한 전환 스위치를 오늘 복음 첫머리에 명확하게 제시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바로 '사랑의 계명 안에 머무는 실천'입니다.

이 원리를 현대 공학의 '무정전 전원 장치(UPS)'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UPS는 병원 수술실이나 대형 서버실에 필수적으로 설치되는 장비입니다. 외부의 메인 전력이 갑자기 끊어지는 정전 사태가 발생해도, UPS는 0.1초의 오차도 없이 자체적인 무한 전력을 공급하여 생명 유지 장치나 컴퓨터가 꺼지지 않게 막아줍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 영혼 내부에 장착된 하느님의 무정전 전원 장치입니다. 내 인간적인 인내심과 사랑의 능력이 바닥나서 절망이라는 끔찍한 정전이 닥쳤을 때, 성령은 내 영혼이 타죽지 않도록 무한한 은총의 전력을 공급하십니다.

하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물리적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수백억 원짜리 최고급 UPS가 설치되어 있어도, 전자제품의 플러그가 그 장치의 콘센트에 꽂혀 있지 않다면 정전이 일어났을 때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도 정확히 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계명을 지켜라"라고 하신 것은 우리를 귀찮게 하려는 구속이 아닙니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억울함을 십자가로 봉헌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내 것을 나누어주는 그 '사랑의 실천'은, 내 영혼의 플러그를 성령이라는 무한한 발전기에 물리적으로 꽂아 넣는 유일한 접속 행위입니다.

저는 성령님의 존재를 가장 크게 느끼는 순간이 언제나 ‘성체조배’입니다. 나는 가지이기 때문에 나무에 붙어있으면 그 수액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맺히는 열매를 보면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사제가 아니면 이만큼 성체조배를 할까요? 안 할 것입니다. 저는 성체조배를 통해 강론도 준비해야 하고 그 에너지로 신자들을 대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려 하기 때문에 성체조배를 하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성령님을 느끼는 것입니다.

먼저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그러면 그 일을 위해 기도하게 되고 그러면 성령님을 만나게 됩니다.

1973년,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 수녀님과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극심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거리에는 죽어가는 빈민들이 넘쳐났고, 고아원과 병원에 밀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수녀들은 잠잘 시간조차 부족했습니다.

수녀들의 얼굴에서는 서서히 미소가 사라졌고, 육체적 피로와 우울증으로 인해 가난한 이들을 향한 '사랑의 능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도, 내면에 짜증과 한계가 차올라 더 이상 사랑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때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세상을 경악게 할 파격적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수녀회의 모든 수녀는, 매일 아침 성체 앞에서 1시간 동안 의무적으로 '거룩한 머무름(Holy Hour)'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주변의 신부님들과 봉사자들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녀님, 지금 밖에서 환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일할 1분 1초가 부족한데, 하루에 1시간을 가만히 앉아 버리다니요!" 하지만 마더 테레사의 결단은 단호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체 앞에 머물며 주님의 사랑을 수혈받지 못하면,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의 능력이 고갈되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열심히 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원천이신 분 곁에 무릎을 꿇고 멈춰 서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매일 아침 성체 앞에 1시간을 조용히 '머무르기' 시작하자, 며칠 뒤 수녀들의 얼굴에 다시 빛이 돌아왔습니다. 1시간의 노동 시간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혼에 성령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공급되자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효율성과 사랑의 깊이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습니다.

놀랍게도 그해부터 사랑의 선교회에 입회하는 성소자의 수는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주님께 철저히 머무를 때만 타인을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부어진다는 것을 수녀회의 역사로 증명한 것입니다. (출처: 캐서린 스핑크, 『마더 테레사 전기』)

교부 성 베르나르도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이렇게 일갈하셨습니다.

"당신 스스로 사랑의 불꽃을 피우려 애쓰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저 마른 장작이 되어 타오르는 그리스도의 용광로 안에 던져져 조용히 머무르기만 하십시오. 그러면 불이 당신을 태워 당신 자체가 뜨거운 사랑의 불꽃이 될 것입니다." (출처: 성 베르나르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많은 이가 아름다워지려고 합니다. 막 중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화장하고 성당에 온 것을 보았습니다. 화장하지 않아도 매우 예쁜데도 왜 화장할까요?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화장하고 또 예쁜 옷을 입고 때로는 성형까지 하는 것 모두가 아름답게 보이려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국어사전에 등재된 ‘아름답다’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하지만 15세기 문헌 ‘석보상절’에서는 ‘아름답다’를 ‘아(我)답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아’는 ‘나’를 의미합니다. 즉, 아름다움이란 나 자신이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답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숨기려고만 하기에 스스로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사는 것입니다. 그 창조 목적은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가장 ‘보시니 좋은’ 것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예수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로 시작해서,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요한 14,21)로 맺습니다. 처음과 끝에 사랑을 위치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보통 사랑을 단순한 감정적 떨림이나 낭만적인 고백 정도로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너는 그냥 좋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자꾸 생각하는 사람이야.’, ‘부담 주고 싶지 않은데, 내 마음을 솔직히 전하고 싶어. 사랑해.’, ‘너를 사랑하고 난 뒤, 평범한 하루도 조금 특별해졌어.’, ‘내 마음이 자꾸 너에게 가. 이제는 숨기기보다 알리고 싶어. 사랑해.’ 등의 표현으로 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사랑은 그분이 주신 계명(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는 구체적인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여 그분의 말씀을 따를 때, 우리는 성부 하느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더욱 깊이 드러내십니다. 특히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새로운 선물을 약속하십니다. 바로 ‘다른 보호자’, 성령입니다. 이 진리의 영은 자기중심적인 욕망에 갇힌 세상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안에서 머무르고 활동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으로 나답게, 즉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일의 삶 속에서 이웃을 향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나는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은 나를 바라보십니다(성 요한 비안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

가장 좋은 오월의 시간이며 가장 좋은 5월의 날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호자를 약속하십니다. 이 보호자께서는 흔들리는 우리 마음을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보호자이신 성령께서는 밖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살아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함께 숨 쉬며 삶을 깨어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이미 살아 움직이고 계십니다.

성령 안에 머문다는 것은 우리의 불안과 욕심을 내려놓고 보호자이신 성령께 우리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불안을 어루만지십니다.

고통 속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시는 현존입니다. 생명의 중심을 일깨워주시는 성령이십니다. 거룩한 생명을 깨닫는 여정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참된 사랑을 얻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끝까지 신뢰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보호는 혼란 속에서도 옳은 길을 선택하도록 우리 마음을 비추는 내면의 빛입니다. 오늘도 우리 곁에 머무르시는 성령께서는 가장 좋으신 하느님 사랑의 현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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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말씀 6가지

하루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성경구절

지금 읽는 말씀에서 시작해 또 다른 말씀으로 이어지며 하루 전체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말씀 6가지를 통해, 하루의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성경구절을 따라가 보세요.

 

흩어져 있는 말씀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모아두었습니다.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성체를 줍지 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지요.

 

오늘 전해진 말씀이 스쳐 지나가지 않고, 하루를 지나는 동안 마음에 천천히 남아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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